트랙 위에 선 우리
인디돌잔치〈스프린터〉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4년 5월 28일(화)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최승연 감독, 박성일, 전신환, 임지호 배우
진행 진명현 무브먼트 대표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예송 님의 기록입니다.
뜨거운 땀과 열정, 스포츠를 대상화했던 기존의 영화들과는 상이한 기묘함. 영화 〈스프린터〉를 본 이들이라면, 그들이 제안한 미지근한 온도에 저며, 잠에 들기 전 싱숭생숭한 감정에 나도 모르게 베개에 얼굴을 묻어 버렸을 지도 모른다.
그간 나는 어떻게 살았는가. 무엇을 사랑했는가, 간절했는가,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 앞에서 인생은 너무 짧지 않은가. 어디를 향해가는지 방향조차 알려주지 않는 미래를 눈앞에 둔 우리 모두는 ‘스프린터’가 아닐까.
진명현 무브먼트 대표(이하 진명현): 우선 1주년 〈스프린터〉팀 축하드립니다. 최승현 감독님부터 인사 말씀과 함께, 인디돌잔치 선정 소감 부탁드리겠습니다.
최승연 감독(이하 최승연): 오랜만에 상영하는 것 같은데 인디돌잔치를 통해서 관객분들한테 선보일 수 있어 기쁜 것 같고, 마지막으로 GV한게 한 7~8개월 정도는 된 것 같아요. 많이 뵙던 분도 있고 처음 보는 분도 계신데 궁금한 것들 여쭤보시면 최대한 잘 말씀드리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자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명현: 저는 오늘까지 해서 영화 〈스프린터〉를 네 번 본 거 같습니다. 아마 〈스프린터〉팀을 작년 여름에 뵙고 1년이 지나 이렇게 또 여름이 시작될 무렵에 뵙게 되었는데 영화 다시 봐도 참 좋아요. 여러 번 보신 분들 느끼시겠지만은 아마 지금까지 만들어진 스포츠 영화 중에서 가장 담백하고 정교한 편집으로 이루어진 영화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보신 분들도 마찬가지로 진짜 곱씹을 만한 맛이 있는 영화거든요. 땀과 노력으로 만든 아주 매끈하고 탄탄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또 내일이죠? 29일 들꽃 영화상에 박성일 배우님이 남자 연기상 후보로 올라 있습니다. 좋은 기운을 이렇게 이어서 수상까지 가면 너무 좋을 거 같아요.
보셔서 아시겠지만 〈스프린터〉는 끝나고 나서도 굉장히 곱씹을 게 많은 영화입니다. 아마 정의가 허락한다면 우리 현수는 국가대표가 됐겠죠? 궁금한 게 많을 거 같은데, 간단하게 먼저 감독님부터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혹시 또 준비하고 있는 일들이 있는지부터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최승연: 저는 계속 작업을 하고 있고요. 제작 중인 작품의 캐스팅을 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좀 더 구체화시키려고 고심하는 요즘입니다. 드라마 하나랑, 운동 영화를 준비중입니다. 운동 종목은 말씀을 드리기 좀 어려울 것 같은데, 이전과 마찬가지로 비인기 종목에 대한 영화고 이전에 봤었던 스포츠 영화들이랑 어떤 차별화를 가질지 고민중입니다. 짧게만 말씀드리면 나이가 되게 많은 남자 주인공의 스포츠 영화입니다. 드라마 같은 경우는 소재는 경찰인데 범인은 나오지 않고 경찰 내부에서 일어나는 오피스 드라마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진명현: 굉장히 기대되는 작업이네요. 혹시 어떤 작품을 저희가 좀 더 먼저 만나게 될까요?
최승연: 아직 저도 모르겠어요. 지금 캐스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여러명의 배우분에게 거절을 당한 상태라어떤 배우분과 함께 할지 고민하는 중입니다. 드라마 같은 경우에는 편성 권한이 있는 방송국과 함께 해야하는 작업이라, 더 많이 논의 되어야 할 거 같습니다. 아직 정해진 건 많이 없고 준비중인 단계입니다.
진명현: 관객분들과 함께 이렇게 응원의 기운을 보내드리면, 좋은 소식으로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임지호 배우님(준서 역)은 어떻게 지내셨나요?
임지호 배우(이하 임지호): 이것저것 공부도 하고, 노래 연습도 하고 있습니다. 작년 말에 단편영화 하나를 찍었고 최근에도 단편 독립 영화 하나 찍고 있어요. 두 작품 모두 다 부산에 내신다는데 부산에서 다시 만나뵐 수 있다면 더 좋을 거 같습니다.
진명현: 박성일 배우(현수 역)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박성일 배우(이하 박성일): 다들 아시다시피 열심히 장사하고 있습니다. 사실 현재 영화 업계가 정말 많이 위축된 상태라 작업을 이어나가기가 정말 어려워요. 그런 와중에 가뭄의 단비처럼 좋은 작품 몇 개가 들어와서 2월부터 촬영을 시작하게 됐고요. 제가 작년에 운 좋게도 다작을 했었는데, 작년 말에 모든 촬영을 마치고 지금 한 5개월 정도 장사만 하고 있는데, 문득 배우분들 전부 진짜 힘들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작품도 없고, 제작 환경도 위축되고, 업계까지 타격이 너무 크게 와가지고 주변에 진짜 실업자가 너무 많거든요. 저는 드림랜드(박성일 배우의 분식집)가 있어서 버텼어요. 정말 저도 힘든 상황이었는데, 좋은 작품때문에 인디스페이스에 다시 오고, 행복한 지금입니다. 그리고 요즘은 녹슬어가는 실력을 조금 붙잡으려고 악기를 다시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나이 먹어가고 있고요. 나이가 계속 많아지네요.
진명현: 네, 박수 한번 부탁드립니다. 전신환 배우(지완 역)님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전신환 배우(이하 전신환): 저도 이렇게 힘든 시기에 운이 좋게 〈아이쇼핑〉이라는 드라마를 촬영 중에 있고, 개인적으로 일본어, 영어 독학을 하고 있는데 저한테 일본인 역할 비슷한 게 많이 들어오더라구요. 캐릭터 떄문에 공부를 하고 있는데, 같이 공부하려다 보니 막 섞여서 배우는 데 좀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고 있고 방금 감독님이 언급하신 작품이 궁금해서 시나리오도 읽고 싶고 언제쯤 연락이 올까 생각하는 그런 상태입니다.
진명현: 네 분 다 진짜 바쁘고 성실하게 보내셨던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좋은 소식과 기대되는 소식이었던 거 같습니다. 오늘 아마 처음 보신 분들은 궁금하신 것들이 있을 거고 또 여러 번 보신 분들은 새롭게 발견하신 부분들이 있을 것 같은데, 저는 여러 번 보다보니 어떤 장면을 알고 있는데도 좀 다른 눈으로 보게 되더라고요. 예를 들어, 꿈꾸는 건 내 마음이고 내 자유인데 그게 스스로 생각하기에 욕심이라고 생각이 드는 순간이 오면,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늙어서 죽을 때까지도 꿈꾸는 건, 내 마음인데, 마음 한 켠에서 이게 욕심이라고 생각이 들면 나는 그때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이 드네요. 답을 내려줄 사람도 세상에 나밖에 없을텐데, 영화를 보면서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건넸어요. 물론 끝날 때까지 답을 못 찾겠더라고요. 감독님이라면 이런 질문을 받으신다면, 어떻게 대답해 줄 수 있을까요?
최승연: 어떤 특정 한 사람의 고민이라고 보기보단, 학창시절을 보내고 사회에 나오는 모든 이들이 다 하는 고민이라고 생각을 했고, 고민에 대한 영화지 답을 제안하는 영화는 아니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노력을 느끼고, 만족을 하면 되는 영화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진명현: 그렇다면 네 분의 배우분들께, 공통적으로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스포츠에 관한 얘기를 듣고나서, 이 영화를 접하셨을 때랑 이 영화를 다 촬영하고 완성된 작품 보셨을 때 또 느낌이 많이 다르셨을 것 같아요.
나에게 처음 다가왔던 〈스프린터〉와, 지금 좀 숙성된 상태에서 내가 〈스프린터〉라는 작품에게 느끼는 감정은 어떠실까요?
임지호: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가 생각이 나는데, 〈스프린터〉가 제가 하고 있는 일과 되게 비슷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막상 또 이제 촬영에 임하면서 실제 육상의 현실을 들어보고 했을 때,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었습니다. 배우라는 꿈은 장애가 없는 한, 거의 죽기 직전까지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하는데, 이제 운동 선수들은 나이가 들수록 신체기능이 떨어지게 되고, 자연스럽게 순위에서 밀려나고, 기록으로도 보여지게 되잖아요. 정말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이 스포츠에서 통용되지만, 떠나야하는 날을 본인의 선택에 맡겨야 하니까, 그렇다면 만약에 나라면, 나는 언제 배우라는 직업을 떠나겠다고 마음을 먹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굉장히 많이 했던 영화였어요. 캐릭터 준비하면서도 어려웠던 것 같아요. 답을 내릴 수가 없었고 촬영을 하면서도 내가 맞게끔 연기한 건가 스스로한테 질문을 많이 건넸고, 다시 한번 봐야겠다는 마음을 들게 하는 그런 영화였던 거 같습니다.
박성일: 저는 처음에 스프린터 감독님이 만나자고 했을 때 욕심이있었던 거 같아요. 근데 전체를 지나면서 제 꿈이 되었습니다. 꿈과 욕심과 구별되는 것 같아요. 처음에 감독님을 만나 뵈었을 때, 장사 중에 만났었어요. 그런데 저를 보고 그대로 오시면 될 것 같아요라고 하셨었는데, 대체 어떤 모습을 봤길래 그럴까. 촬영 내내 궁금했거든요. 근데 영화가 완성되고 그리고 그 과정을 거치면서 그 존재 자체가 꿈이 된 것 같아요. 제가 드림랜드라는 분식집을 하고 있는데, 이름처럼 이거 자체가 꿈이 됐거든요. 꿈을 이루기 위한 꿈이 됐고 거기서 파생되는 어떤 이야기들이 저한테 큰 에너지를 주고 자양분이 돼서 배우 생활을 하는 저에게 영향을 끼쳤거든요. 그래서 방금 감독님한테 질문하신 것과 〈스프린터〉를 대하는 저의 자세를 접목시켜서 답을 드리자면, 꿈 같기도 하고 앞으로의 꿈인 것도 같고 어떤 우상 표상이 된 것 같은 그런느낌입니다. 이런 작품을 또다시 만날 수 있을까 생각도 들고, 영화를 볼 때 감독님한테 그리고 다른 동료들한테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임지호: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욕심이었죠. 저는 이 시나리오를 오디션 때 처음 보고 정말 하고 싶었어요. 스포츠 영화에 대한 욕심도 있었고, 시나리오도 잘 읽혔고, 하고 싶다는 마음이 제일 먼저 앞섰던 것 같고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랬는데 사실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제가 앞으로 어떤 역할들을 하고 싶고 어떤 배우가 되고 싶다 이런 거는 언제든 이룰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포기하지 않고, 의지만 있으면 때는 찾아 오고 내가 원하는 것들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요. 근데, 미래에 과거를 돌아봤을 때 〈스프린터〉가 내 필모에 있다는 게 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것 같아요. 그때 같이 했던 동료들이 너무 좋았고 그때 만들었던 영화를 많은 분들이 사랑해줬고 그런 추억들로 저한테 남을 것 같아요. 물론 질문의 의도는 영화를 봤을 때 이 영화와 함께하며 어떤 감정으로 변화 했는지에 대한 것으로 이해했지만 저는 그냥 〈스프린터〉를 생각하면 제가 준비했던 기간, 촬영했던 기간 그리고 관객분들 만났던 이 기간까지 완전 가득하게 채워진 듯한 그런 영화여가지고 저도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고 ‘내가 배우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좋은 영화를 지나왔구나’라는 걸 느끼게 했습니다. 그런 점이 〈스프린터〉에 오고, 영화를 보고, 행사 다 끝나고 나서 느꼈던 감정이었던 것 같아요.
진명현: 배우님들에게 이 작품이, 어떤 시절이 됐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작품을 통해 귀한 경험을 하셨다는 생각이 눈으로도 느껴지는 거 같고, 감독님 되게 기분 좋으시겠어요. 배우들이 이렇게 이야기해준 경우는 이렇게 많지 않잖아요. 그렇다면 감독님한테 〈스프린터〉는 어떤 작품입니까?
최승연: 제가 첫 영화 〈수색역〉을 만들고 다음 영화를 준비했었는데, 제작이 멈췄었거든요. 저는 영화과를 졸업하고, 아카데미 졸업하고 운 좋게 독립 영화로 바로 입봉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어떤 친구들은 대학교 1학년 때 영화를 관두고, 누군가는 졸업 영화 찍다 관두고, 어떤 친구는 졸업한 다음에 관뒀었어요. 곁에 이런 상황을 계속 봐오다가, 〈수색역〉을 찍고 난 뒤에, 영화를 못 찍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었는데, 그 시기에 영화를 관둬야 되는 시간이 왔구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었습니다. 그 당시엔 영화가 아닌 다른 일을 했거든요. 그런데, 다른 일을 하면서도 계속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저를 발견하곤 했었습니다. 쓰면서 왜 이게 하고 싶지 혼자 추궁하고 그랬는데, 그런 순간들이 방금 언급했던 상황들과 비슷한 거 같고, 제게도 그런 과거가 있었던 것 같아서 배우들이 이런 얘기를 해줄 때 내가 왜 이 얘기를 하고 싶었지에 대한 것을 많이 생각하게 되고, 이 영화가 틀어졌을 때 관객과 배우들한테 어떤 식으로 와 닿을까, 이런 것들을 좀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은 글을 쓰는 시간이 많으니까 글을 쓸 때도 사람들한테는 어떻게 읽히겠는지를 좀 많이 생각 하게 됩니다. ‘내가 왜 썼는지 기억 하고 있자’라는 생각을 습관적으로 좀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진명현: 스포츠 영화를 보면 우리가 기대하게 되는 카타르시스, 에너지, 쾌감 이런 것들이 있는데, 〈스프린터〉가 그런 게 없는 건 아니었지만, 바로 직설적으로 오지는 않거든요. 신기하게 끝나고 나서 몇 시간 있다가 와요. 아마 여러분들도 늦은 밤에 갑자기 영화에 어떤 장면이 생각나서 되게 뭉클할 수가 있어요. 이 영화는 채도, 소리, 속도 모든 게 많이 강하지 않아요. 담담하고 담백한 구조인데, 어느 순간에 어떤 장면이 갑자기 확 와 닿아요. 여름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쨍하지 않은 영화도 드물거든요. 감독님이 이 저민 온도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진짜 애를 많이 쓰시지 않았을까 생각했었습니다. 물론 쨍한 순간들이 주는 아주 즉각적인 것들이 있지만 그 주변에도 관심을 두신 건데, 그게 아마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지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 객석에 계신 분들 중에 질문이나 아니면 또 소감 있으신 분 계시면은 편하게 손을 들어주시면 저희가 마이크 전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관객: 저는 오늘 〈스프린터〉를 처음 봤는데요. 미리 봤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금 진행자분께서 말씀해 주신 것처럼 영화가 쨍한 색감 없이도 채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게 되게 흥미로웠는데 그런 점에서 이제 촬영하실 때 날씨 같은 것도 굉장히 좀 신경을 많이 쓰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야외 촬영하시면서 날씨 같은 거라든가 또 예기치 못한 사고 같은 게 있었을 거 같은데, 고생하신 게 있었는지 또 고심하셨던 게 있었을 지 궁금합니다.
최승연: 날씨는 머릿속에 상상할 수 있는 여름 날씨가 있잖아요. 그런 날씨를 상상했었어요. 그런데, 2020년도 여름을 한번 찾아보시면 우리나라 최장마 기록이었어요. 60일 정도 비가 왔었어요. 그래서 안 오겠지 하고 촬영 들어가면, 계속 비가 왔었어요. 비가 오니까 촬영을 접고, 비가 안 오는 날은 다시 촬영을 하고, 근데 기상청이 계속 틀리는 거예요. 그래서 나갔다가 들어오는 걸 너무 반복했었습니다. 머릿속에서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날씨에서 영화를 찍을 생각이었는데, 날씨가 우리가 예상한 대로 가지 않더라구요.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저희가 예천에 내려와서 촬영을 했는데, 지방으로 내려갈 때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3장 갖고 있었어요. 이걸 돌려서 쓰는 건데 이 정도면 충분히 촬영 현장이 원활하게 돌아갈 거라고 생각을 하고 갔어요. 재생비 카드죠(웃음). 근데 점점 카드 하나씩 월 한도를 넘어가기 시작을 하는 거예요. 비가 와서 촬영은 늘어지고, 카드는 한도가 넘어가고. 촬영 중간에 비가 오니까 쉬는 잠시 동안 은행에 가려는데, 은행은 본인이 가야 하니까, 감독이 없으니 촬영 현장은 멈추고, 스태프와 배우분들께 본의 아니게 민폐가 된 경우가 있었죠. 사실 되게 민망할 수 있는 상황인데 배우들, 스태프들이 상황을 재밌게 만들어줘가지고 웃으며 넘어가기도 했었습니다.
진명현: 만약에 장마가 아니었다면 지금 우리가 보는 영화보다 훨씬 더 쨍한 이미지의 영화가 나왔을까요?
최승연: 사실 그건 아닌 거 같아요. 현수가 주연이 되는 부분 에피소드의 경우, 컷구성이 단조롭고 거의 다 아이레벨로 촬영했고, 일반적으로 저희가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호흡이 길어요. 좀 루즈하고 경기가 펼쳐지는 장면에서 조차도 되게 담담하게 보여져요. 현수 부분이 끝나고 나서부터 그때부터는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많이 봐왔던 드라마 형식으로 들어가기 시작해요. 옷도 준서같은 경우에는 원색이 사용되고, 카메라 워킹도 넓게 들어가는데, 현수가 나온 부분 같은 경우에는 흰색과 검은색이 주로 사용됩니다. 똑같은 얘기가 세 번 반복이 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세명의 대비를 확실하게 가져가려고 했어요. 그래서 모든 장면 이런 여름 느낌을 강박적으로 주려고 하지 않았고 이렇게 세 캐릭터를 나눠서 찍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진명현: 네 충분한 대답이 된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지금 떠오르는 에피소드들 지호 배우님부터 이야기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임지호: 저는 감독님이 은행으로 가셨을 때, 실제로 큰일 난 줄 알았어요. 촬영하면서 딜레이도 많이 되고, 감독님께서 정말 느닷없이 사라지셔가지고 당황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리고 촬영할 때마다 대기를 정말 많이 했었고, 날씨 관련해서 말씀드리면 제가 테닝을 엄청 했거든요. 좀 태워야 된다고 하셔서 근데 살이 잘 안 타서 고생했었는데, 학교 장면을 찍으면서 정말 다 탔어요. 역시 이렇게 바르고 예쁘게 태우면 안 되는구나, 땡볕에서 태워야 되는구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박성일: 대기하다가 날이 좋으면 나가서 찍고 다시 굳으면 들어오고 이게 반복이었거든요. 그래서 예정보다 더 오랜 시간을 체류했어요. 날씨가 영향을 많이 끼쳐서 배우들이 진짜 5분 대기조처럼 기다리다가, 찍을 수 있는 시간만 되면 나가서 찍었어요, 그래서 원래 계획하셨던 드론 샷이나 이런 것들이 좀 불가피하게도 못 찍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현실과 타협하면서 촬영하다 보니, 콘티, 시나리오를 보기보다 돌격하듯이 찍었어요. 물론 성의없지는 않았지만 뭐 찍을 수 있으면 바로 찍는 걸 반복했었죠. 그리고 지금 기억나는 건 국가대표 출신 코치 두 분이 예천까지 내려와서 저희를 서포트를 해 주셨는데 그분들이랑 촬영 마지막날 정말 다 찍은 게 맞나 재차 질문했었어요. 그런데 영화를 보니, 어려웠던 상황과 달리 부족한 부분 없이 정말 이렇게 다 찍었을 줄은 몰랐습니다.
전신환: 영화는 원래 천재지변과의 싸움이기도 하고 비에 대한 마음 준비를 하긴 했었는데, 그 경기 운동장을 열흘 정도를 빌렸는데 정말 정확히 8일 동안 말도 안 되는 폭우가 내렸거든요. 거의 일주일 동안 방에서 대기하다가, 밥 먹다가 급하게 촬영장으로 가고, 또 갑자기 비가 와서 돌아가기를 습관처럼 반복했어요. 물론 대기시간이 길어지면서, 현수, 준서랑 엄청 친해졌어요. 원래는 경기장에서 열흘동안 나눠서 찍기로 한 거를 비가 안 오는 시간동안 몰아서 찍다 보니, 전력 질주를 막 몇 번씩 하는 거를 지켜보면서 저는 선수를 안 하길 잘했구나 코치하기를 잘했구나 그런 마음도 들었었고, 또 이제 비가 거세게 오니, 캐노피도 날아가고 스태프들은 비 맞아가면서 막 카메라 덮고 하는데 너무 안쓰럽고, 막상 또 해가 쨍해서 촬영에 들어가려고 하면 감독님이 없는 거예요. 찍어야 되는데 감독님은 은행에 끌려가셨다고 하고, 재밌는 상황이 연발되었었습니다.
진명현: 사실 촬영은 4년 전에 진행했잖아요. 코로나도 심했고, 장마도 극심했고, 근데 예기치 않은 장마 덕분에 팀워크도 강해질 수 있었던 것 같고 이 작품이 옴니버스 구성이라 인물이 붙는 장면이 많이 없는데 되레 비가 우리에게 결속을 준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현수가 혼자 운동하던 공간도 비가 아니었으면 여름에 잘 없을 풍경이기도 해요. 여름에는 풀들이 높게 자라지는 않다 보니, 여러모로 또 비의 도움을 또 받은 영화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관객: 저는 영화를 보면서 수조 속에서 빠져 있는 약간 짙은 파란색의 느낌이 들었는데, 배우님들은 영화를 보며 어떤 색이 떠오르셨는지 궁금하고, 그리고 두 배우(임지호, 박성일)분들은 영화 속에서 열심히 뛰셨잖아요. 원래도 달리기를 잘하시나요?
임지호: 저는 뭐 달리기는 잘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늘 계주를 빠지지 않고 출전했던 기억이 있고 중학교 때부터 공부하느라 달리기를 좀 멀리 했는데 몸은 잘 썼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달리기는 되게 재밌게 잘 배웠던 것 같고, 저는 이 작품이 회색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현수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영화를 반복해서 볼 수록 이 〈스프린터〉가 현수의 색으로 물들어가는 영화라는 느낌을 신기하게 많이 받아요.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어요. 현수가 너무 좋은가 봐요(웃음).
박성일: 저는 오래 달리기는 잘하는데, 단거리는 해본 적이 별로 없어가지고 훈련을 통해서 달리는 시늉만 한 것 같아요. 폼은 나와야 된다고 하셔서 열심히 훈련했는데 개인적으로 조금 아쉽고요. 색깔을 따지면 저는 늘 쫓고 있는 영화 전체적인 어떤 분위기나 그런 걸 다 떠나서 지금 인물들이 쫓고 있는 각자의 이상향이 있잖아요. 그게 다 무지개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들을 쫓아가는 각자의 색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영화 속에 7개의 빛이 있는 게 아닐까요.
진명현: 달리기 선수는 아니지만 전신환 배우님의 이야기도 좀 들어볼게요. 지완도 선수였으니까요.
전신환: 현장에서 같이 뛴 적은 없고요. 국가대표 코치님들이 이제 수업을 해주신다고 해서 참고하러 갔다가 많이 놀랐었습니다. 달리기라는 종목이 엄청 과학적으로 발전이 됐고 하루에 전력 질주도 두 번 이상 안 시키고, 체계적으로 그 선수의 체형에 맞게 스타팅 자세까지 잡아주시더라고요. 그때부터 준서의 몸을 보면서 어떻게 가르쳐야겠구나 하면서 공부가 됐던 것 같아요. 저는 사실 빨리 하는 걸 제일 싫어하거든요. 누구를 뛰어넘는 것도 크게 좋아하지 않고요. 그냥 저는 천천히 나아가는 걸 생각했는데, 이 메커니즘을 자체가 누군가를 이겨야 하고, 더 빨리 달려야 하는 방식에서 이행되다 보니, 배우는 게 또 새로운 도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관객: 저는 〈스프린터〉를 처음 봤는데요. 정말 잘 봤고요. 감독님께 질문드리고 싶은 건 이 〈스프린터〉라는 제목 말고 원래 또 생각하셨던 다른 제목이 있으신지, 또 원래 구상하셨지만 좀 영화상에서 편집된 부분이나 생각하셨던 다른 결말이 있으신지 그리고 배우분들께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어떤 게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최승연: 일단은 제목 자체가 원래부터 〈스프린터〉였고요. 제가 이 시나리오를 왜 쓰게 됐는지 말씀드렸던 것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그냥 혼자 나가서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운동하고 들어오고 이런 사람에 대한 얘기였어요. 그런 사람의 속사정을 알아보니, 100m를 달리기 위해서 계속 준비하고 밥 먹고 몸 풀고 그런거를 하는 거였다 라는 게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제목은 처음부터 〈스프린터〉였었습니다. 결말 같은 경우에는 쓸 때부터 좀 고민이 많았고 촬영 도중에도 스태프, 배우들이랑 많이 얘기 했었어요. 과연 이야기의 결론을 내주느냐 아니면 그냥 이대로 끝내느냐에 대한 고민이었죠.
제가 생각을 했을 때 현수는 영화의 시작에 있었던 것처럼 아마 포기해야지라고 말은 했지만 이 영화가 끝난 당분간은 계속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고, 그리고 정호 같은 경우도 약물을 하고 걸렸지만 사정을 이야기하고 피해 나갈 거라고 생각을 했고, 준서 같은 경우도 선생님에 대한 걱정은 하지만, 아이만의 이기적인 면모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진명현: 영화가 지완이의 등으로 끝나잖아요. 지완이만 지금 선택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결론은 이미 타인으로 인해서 나버린 사람이거든요. 지완이의 등으로 영화가 가진 의미심장한 부분을 표현해낸다고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배우님들이 생각하시는 각자의 최애 장면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신환: 사실 지완은 쓸쓸하게 가는 것 같지만 저는 되게 행복하게 끝났다고 생각하거든요. 저 스스로도 슬퍼해야 하는지, 즐거워 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이 되었었는데, 실제 국가대표 했었던 친구들에게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물어보기도 했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분명히 긴 시간이 흘러 다른 방식으로, 각자만의 형태로 살고 있어도 순간마다 과거에 대한 그런 이게 쓸쓸하게 보일 것 같은데 전혀 안 보이더라고요.
너무 잘 살고 있었고, 그때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에 이렇게 잘 살 수 있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냥 지완을 어둡게 연기하지 않아야겠다라는 게 생각이 들어서, 마지막 뒤돌아서 갈 때는 엄청 그냥 밝게 갔던 것 같아요. 오히려 첫 장면과 좀 대비가 좀 됐던 것 같고 그래서 기억에 남는 장면은 저희 춤추는 장면입니다.
박성일: 살면서 그런 질문을 되게 많이 하는 거 같아요. ‘내가 계속 이 일을 해야 할까?’ 감독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계속할 것 같은 세명의 인물인데, 제가 그런 적이 있어요. 처음 가게 운영할 때, 주변에서는 계속 관두라고 하고, 거의 적자였거든요. 돈을 못 버니까 의심도 많이 되었죠. 그런데 전하고 싶은 건, 어떤 목표를 정해놓고 가기도 하지만, 가다 보면 목표가 생기는 경우가 있거든요. 하다 보면 정해지는 것들이 제가 살다 보니까 분명히 있더라고요. 꾸준히만 하면 무언가 목표도 생기고 친구도 생기고 그런 것 같아요. 극중 장면으로는 스틸 사진으로 남아있는데, 1차 경기에서 패배 후에 집에 가지도 못한 채, 버스 지나가는 걸 정류장에서 앉아 보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로 연기하면서 그런 생각을 곱씹었던 것 같아요. 다들 만류하는데 이걸 왜 하고 있지 뭐 이런 생각을 곱씹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꾸준히 하다 보면 무언가가 어떤 돌파구가 보이지 않을까요? 그 장면이 생각나네요.
임지호: 저는 최근에 영화를 한 번 더 봤었는데 지금 스크린에 나와있는 장면(인물들이 트랙 위에 서있는 장면) 이 제일 좋아요. 이 장면이 영화를 위해서 조금이라도 쓴 마음, 노력 그런 것들을 집약한 유일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진명현: 여러분들도 아마 배우님들과 감독님 답변 들으시면서 느끼셨을 텐데요. 〈스프린터〉는 스포츠 영화 속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것이 전혀 충족되지 않아요. 스포츠 영화를 만든 배우님과 감독님이 이렇게 문학적으로 대화하시는 것도 신기하지 않나요? 이 영화에는 행간이 있는 것 같아요. 걸음걸음 사이에 흔적이 남아있고, 거기에 참 많은 감정들을 담은 영화 인 것 같습니다. 감독님의 다음 작품도 또 배우님들의 다음 행보들도 응원하면서 기대하고 또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네 분 끝 인사 말씀 간단하게 한마디씩 해주면 좋겠습니다.
최승연: 개봉하고 이렇게 1주년 행사에서 뵙게 돼서 감사드리고 또 극장에서도 여러 번 보셨는데 또 봐주신 분들이 계신 것 같아서 그것도 너무 감사드립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또 이런 자리가 있다면, 제가 영화를 만들며 생각했던 것들을 더 좀 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후에도 관객분들과 저와 배우들이 이렇게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임지호: 요즘 영화를 보러 다니면 뭔가 시간이 되게 많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어요. 영화 보는 시간도 그렇고 오고 가는 시간 까지 해서 하루에 24시간 중에 최소 4시간을 투자해서 영화를 보러 와주시는 분들이 너무 고마운 분들이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렇게 시간 내서 와주시는 만큼 좋은 영향들 받아가셨으면 너무 좋겠고 저도 앞으로 자주 여러분을 뵙고 싶습니다.
박성일: 1년 만에 이렇게 뵙고 인사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사람들이 왜 그렇게 열심히 사냐고 묻는데, 저한테 시간이 주어졌고 뭔가 할 일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서 그렇게 살고 있는 거 같습니다. 열심히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들 하나하나가 사회를 구성하는 한 요소라고 생각하는데, 여러분이 빠지면 이 사회가 굴러가지 않는다는 걸 명심하시고 자긍심 가지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전신환: 다시 이렇게 올해 또 〈스프린터〉로 GV를 할 수 있게 됐다라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시간이었고, GV를 통해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어 재밌었습니다. 또 저도 관객분들도 각자의 삶을 재밌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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