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단평] 〈아가미〉: 결핍의 모양새

by indiespace_가람 2026. 10. 2.

*'인디즈 단평'은 개봉작을 다른 영화와 함께 엮어 생각하는 코너로,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인디즈 큐'에서 주로 만날 수 있습니다.

 

 

결핍의 모양새

- 간신히 숨을 다 토해냈다

 

〈아가미〉 그리고 〈봄밤〉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예송 님의 글입니다.

 


사람의 결은 그가 안고 있는 콤플렉스에서 비롯된다는 말이 있다. 고약한 냄새는 지독한 향수로 덮고, 보기 싫은 상처는 두꺼운 분칠로 가린다. 이는 외양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한 사람의 분위기와, 나아가 생애 전반을 뒤흔든다. 생사를 오가는 경험 끝에 아가미를 달고 다시 태어난 곤(정해인)은 그 흔적을 가리기 위해 후드를 눌러쓰고 숨어 지낸다. 고물을 주워 팔던 노인(유재명)과 손자 강하(강하늘)는 우연히 발견한 곤을 보호라는 이름 아래 꽁꽁 숨긴다. 처음에는 아이가 말을 하지 못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면,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고 목의 이상한 상처가 아가미를 닮았다는 것을 알아챈 뒤로는 온갖 끔찍한 상상에 사로잡혀 바깥출입을 최대한 막는다. 곤에게 허락된 시간은 늦은 밤뿐이고, 자라는 머리카락은 강하가 직접 잘라 준다. 그의 유일한 세계이자 대화 상대는 오직 두 사람뿐이다.

영화 〈아가미〉 포스터


〈아가미〉는 세 인물을 축으로 전개된다. 아버지를 잃고 홀로 남은 곤은 강하의 할아버지에 의해 물 밖으로 건져진다.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삶에서 세상 밖으로 나서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강하는 할아버지 손에서 자라고 있다. 배우를 꿈꾸던 강하의 어머니 이녕은 홀로 아이를 키워야 하는 처지에서도 꿈을 놓지 못하고 매몰차게 집을 나갔다. 다만 아들을 버렸다는 죄책감에서는 끝내 벗어나지 못한 듯 보인다. 강하는 가난한 환경과 고물을 주우러 다니는 할아버지가 원망스럽다. 그러나 보고 배운 것이 그것뿐인 그는 결국 곤을 끌고 가 호수 바닥에 가라앉은 동전을 줍게 한다. 집 안 가득 쌓인 쓰레기는 그들에게 유독 귀한 것으로 둔갑하고, 주워 온 것에 대한 집착은 곤에게도 향한다. 마지막으로 병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하류가 있다. 택시비조차 없어 걸어서 귀가하던 그는 휴대폰을 물에 빠뜨리고, 그것을 건지려 손을 뻗다가 결국 물에 빠진다. 남들 눈에는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처럼 보일 법한 상황이다. 숨이 점점 멎어 가던 순간, 누군가 헤엄쳐 와 그를 건져 낸다.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목에는 아가미가, 등에는 영롱한 비늘이 있다. 하류는 일 년 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이후 그 정체를 찾아 길을 나선다.

영화 〈아가미〉 스틸컷


극의 주인공 세 사람 모두 결핍을 안고 산다. 그렇다고 영화가 이들을 동정하는 태도를 보이지는 않는다, 누구에게나 제 삶의 애환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안다는 듯이. 세 사람은 자신이 놓인 환경에 대해 쌓여 가는 울분을 속으로 삼킨다. 제 한 몸 건사하기도 버거운 이들에게, 간신히 숨을 붙들고 있는 홀어머니와 가난의 굴레 속에서 구원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할아버지는 마음의 짐이면서도 함부로 내칠 수 없는 아픈 손가락이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거두어진 처지에 만족해야 하는 곤에게는 노인과 강하가 전부다. 곤은 오로지 두 사람뿐인 세계에 줄곧 순종적이다. 친구이자 가족이 된 강하는 지나치게 솔직하고 때로 투박한 말투와 애정으로 날 선 기운을 그에게 내뿜지만, 곤은 이에 맞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영화 〈아가미〉 스틸컷


아가미가 달린 사람에게 더 안전한 곳은 물속일까, 물 밖일까. 사람이면서 물고기인 곤이 택해야 할 세계는 어디일까. 다행히 물 밖에서 말라 죽는 물고기의 운명을 따르지 않아도 되는 곤에게, 물 밖의 세계가 살아가기 크게 어려워 보이지는 않는다. 잘 숨어 지내며 목만 가리면 아무도 그를 해코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곤은 물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숨어 지내야만 하는 그에게 물은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 침묵에 가까운 안온한 세계다. 상처를 가릴 필요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그 상처가 수단이 되는 유일한 공간이다. 자신의 쓸모를 되새길 수 있는 물속에 대한 미련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영화 〈아가미〉 스틸컷


그러나 상황은 단숨에 뒤바뀐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온 강하의 어머니가 집안의 공기를 흐트러뜨린다. 억겁의 증오를 품어 온 강하는 어머니의 등장에 반발하지만, 부모의 부재를 겪은 곤은 숙고와 인내로 그녀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약에 취한 그녀가 사고로 마당에 쌓여있던 고물에 찔리고, 이를 막지 못한 곤의 눈앞에서 이녕은 숨을 거둔다. 세상의 시선이 그에게도 쏠릴 수 있는 위기, 어쩌면 예상치 못한 죽음의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르는 순간에 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울타리를 벗어나야만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강하는 결심한다. 과보호에 가까울 만큼 모든 순간을 통제하려 했던 그는, 피로 엉망이 된 집 안을 수습하기에 앞서 곤을 멀리 떠나보내며 세상밖으로 나서길 강요한다.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죽지 말고 살아 달라는 바람을 건네면서. 곤은 그렇게 두 번째 가족과 이별한다.
 

영화 〈아가미〉 스틸컷


강하와 곤 사이에 다정한 말이 오간 흔적을 찾기 어렵다. 강하는 곤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곤의 이름은 영화 내내 강하와 하류의 대화 속에서만 흘러간다.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는 강하가 전할 수 있는 진심은 곤이 '살아 줬으면' 한다는 바람뿐이다. 그 가냘프고 아련한 마음에서 곤을 향한 강하의 애틋함이 엿보인다. 상처는 확인할수록, 되새길수록 그 존재를 지우기 어려워진다는 듯이. 너무 소중해서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애달픈 마음은 강하의 아슬아슬한 긴장으로 표출된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곤(鯤)이 붕(鵬)이 되어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간절함 속에는 강하의 서툰 마음이 배어 있다. 떠나지 말라는 두려움은 결국 때로 난폭해 보이는 행동으로 투영된다.

영화 〈아가미〉 스틸컷


우리는 서로의 상처에 무심하다. 관심이 있다 한들, 네가 가진 상처와 약점이 무엇인지 나는 어떤 수를 써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상처난 우리는 대개 상처가 더는 살갗을 파고들지 않도록 끌어안고, 겹겹이 포개 둔다. 그러나 보기만 해도 안쓰러운 상처지만, 거기에만 온 신경을 쏟기도 어렵다. 주변에는 이미 눈 둘 곳, 신경쓸 곳이 너무 많다. 상처를 안고 산다는 것은 어떤 날은 곪아 버린 상처를 안쓰럽게 바라보다가도 어떤 날은 태연하게 시선 두기를 되풀이하는 일이다. 말하자면 대수롭기 보다는 관성이다. 아가미를 가진 소년은 상처를 숨기며 사느라 바빴지만, 죽음과 고난이 이어지는 가운데 상처를 돌보기보다 그것을 안고 살아야 하는 삶을 더 고민해야만 한다. 영화 말미, 하류가 전한 강하와 노인의 소식은 곤에게 아가미를 상처가 아닌 수단으로, 앞으로 해 나가야 할 행동의 중추로 바꾸어 놓는다. 이제 곤은 사라진 가족을 찾기 위해 수만 번 물속으로 뛰어들기를 반복할 것이다. 그저 나를 아프게만 했던 상처가, 그 고통을 안은 채로도 나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으로 자리 잡게 된다.

 

영화 〈아가미〉 스틸컷


결국 당신의 결핍, 아픔, 트라우마, 콤플렉스. 무성한 상처들 가운데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지 누구도 잘 알지 못한다. 고통을 나눌 수는 있겠지만, 각자가 지닌 고통의 형상은 너무나 다르다. 그렇다고 고통을 안고 있지 않은 이가 있을까. 곤이 그랬듯 우리는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상처는 때때로 내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가늠하게 한다. 상처를 품은 채로도 숨을 쉰다는 것. 그제야 알게 된다. 물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강한 끌림 속에서 물이 없는 이곳의 마른땅이 겨우 숨을 옥죄기만 하는 것 같았지만, 결국 이곳 역시 눈에 보이는 물이 없을 뿐 하나의 바다라는 것을.

영화 〈봄밤〉 스틸컷

 

각자가 지닌 결핍은 때에 따라 나 자신을 추락시키고 고통을 가중시키지만, 때론 내가 살아가는 모양의 형태를 빚어내기도 한다. 지난한 삶에 상처 입은 영경(한예리)과 수환(김설진)은 서로에게서 닮은 상처를 알아본다. 취약하고 나약한 인간이 안쓰럽다는 듯 그 상처를 응시하며, 부들거리는 신체로 겨우 서로를 껴안는다. 알코올과 병으로 위태롭게 아슬한 생과의 줄타기를 이어 가는 두 사람은 땅을 기어서라도 함께한다. 〈봄밤〉은 사랑이 구원한다는 마냥 희망적인 메시지보다도, 용감한 위로를 쏟아낸다. 결핍과 상처 속에서도 생과 삶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순간을 기억하게 만든다. 

 

* 영화 보러 가기: 〈봄밤〉(강미자 감독)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