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즈 단평'은 개봉작을 다른 영화와 함께 엮어 생각하는 코너로,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인디즈 큐'에서 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세상은 변하고, 그럼에도 여전히
〈철들 무렵〉 그리고 〈장손〉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은아 님의 글입니다.

정미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닌 전사가 필요한 역할을 맡아야 된다 말한다. 전생에 자신이 여왕의 무당이었음을 고하며 피 분장을 닦아내고, 몸을 쓰느라 결린 군데군데에 파스를 여럿 붙인다. 한편, 〈철들 무렵〉은 술로 하루를 사는 철택과 고요한 주택 생활을 즐기는 현숙, 복지 센터에 다니는 옥남을 그려낸다. 옥남의 긴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그리 길지 않고, 꽤나 짓궂은 구석이 있다.
우선 나열된 네 명의 관계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별거한 지 오래된 부부와 그들의 딸, 현숙의 엄마 옥남까지 피로 엮인 가족인 것. 기존의 관계는 철택이 암 말기 진단을 받으며 전복된다. 자식이었던 정미와 현숙은 철택과 옥남의 보호자 역할을 맡기 시작했고, 사람을 잃을까 걱정하던 시절을 지나, 이들은 어느새 그 사람을 귀찮아하는 시점에 도착한다. 철들지 않는 순간의 설익은 말들이 서로를 향해 오갈 때, 홀로 영위하는 시간을 존중받지 못할 때에 이들은 서로의 자리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지난한 효도의 특수성과 타협하지 않는다. 부모가 자식을 외면하고 자기의 생을 택할 권리와 철저히 계산한 돌봄의 보상을 요구한다. 숨길 법도 한 감정을 모조리 꺼내 불편한 시원함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간 이들의 결말은 어쨌거나 해피엔딩의 모양을 띤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철택의 건강뿐, 가족에게 닥친 사건은 누구의 삶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했다. 그저 각자의 삶에 한 편의 서사를 덧붙였을 뿐이다.

가족을 위해 누군가는 자신의 삶을 뒤로 미뤄야 한다. 그 역할은 누구에게 주어지는가? 오정민 감독의 〈장손〉에서는 돌봄에서 비껴난 인물이 존재한다.
고향 집으로 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짐을 짊어진 채 늦게 도착한 성진을 온 가족이 반기며 맞이하지만, 성진의 마음은 불편하기만 하다.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기대를 한몸에 받는 성진은 돌봄과 살림의 자리에서는 자유롭다. 제사를 준비하고, 집안을 돌보는 일, 가족의 뒤를 살피는 일은 그의 몫이 아니다. 가장 큰 기대를 받는 사람이 역설적으로 가족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어놓는 일과는 무관하다. 이 지독한 불균형을 영화는 쉽게 판단하지 않는다. 성진에게도 가족의 뜻을 거스르고 떠날 권리가 있다. 다만, 그가 떠난 자리를 대신 지키는 사람은 여전히 존재한다. ‘효’라는 이름 아래 요구되는 의무는 모두에게 같은 무게로 주어지지 않는다.

'Community > 관객기자단 [인디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인디즈 단평] 〈담요를 입은 사람〉: 다르게 걸어야만 보이는 것들 (0) | 2026.10.02 |
|---|---|
| [인디즈 단평] 〈아가미〉: 결핍의 모양새 (0) | 2026.10.02 |
| [인디즈 Review] 〈97 혜자, 표류기〉: 나의 항구는 나 (0) | 2026.10.02 |
| [인디즈 단평] 〈환희의 얼굴〉: 노동의 가시화 (0) | 2026.10.02 |
| [인디즈 Review] 〈환희의 얼굴〉: 이야기의 마법 (0) | 2026.10.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