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연결된 우리
〈담요를 입은 사람〉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6년 9월 14일(월) 오후 7시 상영 후
참석 박정미 감독, 김지음 빈고 책임활동가
*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은진 님의 기록입니다.
돈 없이 사는 삶을 꿈 꾸어 본 적 있는가. 소비를 위한 노동에 지친 자라면 한 번쯤 떠올려봤을 법하다. 방에 누워 숨만 쉬어도 자본이 필요한 세상이 지긋지긋했던 이들은 상상을 현실로 끌어왔다. 0원으로 2년 동안 세계를 누빈 박정미 감독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수많은 변화를 안고 돌아왔다. 최소한의 소비로 잘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 스스로 자급자족하는 것이 전부일까.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다고 말하지만, 누구보다 깊은 사유의 여행을 기록한 박정미 감독과 새로운 삶의 방향을 탐색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박정미 감독 (이하 박정미): 안녕하세요. 〈담요를 입은 사람〉의 감독 박정미입니다.
김지음 빈고 책임활동가 (이하 김지음): 안녕하세요. 빈고의 책임활동가 김지음입니다.
박정미: 김지음님은 빈고라는 공동체 은행의 책임활동가이시면서 ‘빈집/빈마을’이라는 열려있는 생활공동체, 공동 거주에 관한 실험을 10년 동안 하셨던 분이시기도 합니다. 누구나 마음껏 자고 갈 수 있는, 주인도 없고 손님도 없는 ‘빈집’을 시작한 뒤 20개가 넘어가게 됐다고 해요. 그렇게 ‘빈마을’이 형성됐고, 10여 년간 생활하셨다고 합니다. 저에게 이런 실험이 충격이고 감동이었어요. 또 제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화두나 가치관과 비슷한 점이 많다 보니 꼭 소개해 드리고 이야기를 듣고 싶고 싶어서 모셨습니다. 활동가님께서는 자전거 여행 중 경험한 환대로 인해 빈집을 시작하게 되셨다고 하는데, 그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김지음: 저도 여행으로 삶이 바뀐 사람 중 하나입니다. 살구라는 저의 짝꿍과 함께 2007년 동남아에서 약 4개월, 유럽에서 약 7개월 정도 자전거 여행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감독님만큼 근본적인 경험은 아니지만, 근처까지는 많이 갔던 것 같아요. 저도 환대의 네트워크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서 신세도 많이 졌고, 스퀏팅도 가봤습니다. 유럽에서 7개월을 지내며 숙박업소에서 잔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한국에 돌아오고 나니 이 환대의 기억이 너무 좋게 남았습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손님을 맞이할 수 있는 집을 구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몇 명의 다른 친구와 같이 시작한 것이 게스츠하우스(Guest’s house) ‘빈집’입니다. 손님들의 집이라는 뜻이에요. 제가 받았던 환대를 다시 나누려는 일종의 보답이자 환대의 즐거움을 계속 이어가려는 시도이기도 해요.
조금 다른 측면의 이유도 있어요. 계속 돌아다니는 시간을 보내다 보면 손님으로서 한 자리에 오래 머물기가 어렵습니다. 기간이 길어질수록 부담이 커지고, 민폐가 되기도 하죠. 이럴 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한 가지는 떠나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그냥 주인처럼 사는 거예요. 청소도 하고 밥도 하며 주인처럼 사는 거죠. 이렇듯 손님으로서 계속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다 보니 손님들의 집이라는 독특한 주거공동체 빈집이 만들어졌습니다. 비슷한 집이 여러 개 생기니 마을이 됐고, 자연스럽게 마을의 재정적인 문제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집을 구하고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을 계속 모을 필요가 있기도 했고요. 이를 위해서 은행까지 만들게 된 겁니다. 최근에는 〈자본의 바깥〉이라는 책을 이 자리에 계신 저자분들과 함께 썼는데, 그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박정미: 공감되는 게 많아요. 영화를 보면 저도 계속해서 떠나요. 물론 한 곳에 한 달 이상 머물지 않는다는 저의 프로젝트 규칙 때문이기도 하지만, 같은 곳에 오래 있다 보면 눈치가 보이거든요. 마음 편히 있기에는 어려워서 계속 옮겨 다녔던 것이기도 해요. 그런데 이란 쪽에서는 저도 손님이 아닌 가족처럼 살았어요. 물물교환이 아닌 무조건적인 환대를 주셨거든요. 눈치도 안 보였고 오히려 더 있다가 가라는 분들이 많았어요. 다른 곳에서는 노동을 제공하지 않으면 미안해서 계속해서 떠나야 했는데 말이죠. 빈집이라는 개념을 알게 됐을 시점에는 ‘내가 런던에 있었을 때 빈집과 같이 안심할 수 있는 우리만의 피난처가 있었다면 이런 목숨 건 여정을 안 해도 됐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돈이 없으면 갈 곳이 없어서 위험에 처하게 되잖아요. 저는 이렇듯 누구라도 환영받고 환대받는 공간이 세상에 있는지 몰랐어요.
한국에 돌아온 뒤에는 구례라는 지역에 살았어요. 지역에 살다 보면 낙후된 집에서 살게 되어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집에서 살게 돼요. 읍내가 아닌 시골에 살다 보니 읍내에서 쉴 곳도 없더라고요. 소비가 적으니까 애매한 약속에는 카페도 안 갔어요. 공동 공간의 필요성을 느낀 한 친구가 비건 카페가 있던 곳을 공동체 공간으로 바꾸겠다고 했어요. 권리금과 보증금이 필요한데, 친구들이 빈고라는 은행을 이용하면 된다고 알려주더라고요. 일반 대출이 아니라 공동체를 시작하려는 사람, 공유지를 늘리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곳이라니. 세상에 그런 곳이 있다는 사실에 너무 놀라서 찾아갔어요. 제가 빈고의 핸드북과 〈자본의 바깥〉을 읽으며 공부한 결과 핵심 개념은 사양 경제였습니다. 이 부분을 한 번 설명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김지음: 우선 자본주의의 세계를 넘어서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노동의 지점에서 싸우는 노동운동과 소비의 지점에서 싸우는 소비운동이 이에 해당하죠.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한 방식이지만 실현하기 어려운 부분인데, 감독님께서는 노동하지 않고 소비하지 않는 삶이 가능하다고 보여주셨기에 엄청난 감동과 영감을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비해 빈고는 조금 부차적인 영역을 다룹니다.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금융자본도 함께 발달하다 보니 빈고는 노동과 소비가 아닌 금융 영역의 활동을 하고 있는 거죠. 빈고는 자본을 위해 저축하지 말자는 실천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노동운동으로 소득이 증가하고, 소비운동의 일환으로 소비를 하지 않는다면 점차 저축이 늘어날 수밖에 없을 텐데. 이 저축은 다시 자본의 흐름에 빨려 들어가 자본을 위해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소비하지 않으려면 그 저축 부분도 함께 신경 써야만 한다는 것이죠.
박정미: 이게 정말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돈을 안 쓰고 안 벌 때는 상관이 없었는데, 한국에서는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돈만 벌었어요. 그러다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며 주말 알바의 빈도가 늘어났고 가끔은 남는 돈이 생기기도 하더라고요. 물론 그렇다고 제가 부자가 되는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저축을 하게 됐어요. 저는 소비만 안 하고 노동에 끌려가지만 않으면 시스템 밖에서 자유롭게 사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제가 모은 돈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던 거죠.
잠시 사양 경제의 시작으로 돌아가 볼게요. A와 B 두 사람이 함께 살기 위한 집을 마련할 때 A는 보증금 천만 원을 낼 수 있고, B는 돈이 부족했어요. A는 보증금을 자신이 부담하겠다고 했고, B가 매달 주겠다고 십만 원도 사양했죠. 이렇게 서로가 사양하고 양보를 하다가 생긴 십만 원이 공동체 은행 빈고의 시작이라고 해요. 양쪽이 사양해서 남긴 돈으로 더 많은 공유지를 확보해 넓혀 나가자는 것이 빈고의 개념이었던 것이죠. 너무 놀랍지 않나요?
김지음: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에서 보여주신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훌륭한 선택을 하잖아요. 여행을 쭉 이어온 것은 감독님이지만, 낯설고 다시 만날 일도 없을 가난한 사람에게 환대를 선사한 많은 이들의 선택이 이 여행을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해요. 감독님은 사람들에게 ‘당신은 낯설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인가? 혹은 외면하거나 괴롭힐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다수의 사람이 좋은 선택을 했다는 것이죠. 빈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연결돼 있고 함께 산다는 전제가 있으면 냉정해지진 않는 것 같아요. 그렇다 보니 이것을 재정적으로 이해하면 앞서 말한 보증금처럼 사양했을 때 발생하는 어떤 수익을 공유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죠.
사양 교환을 조금 더 이야기해 보자면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선물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선물이 공동체를 만들죠. 공동체 안에서는 그렇지만, 공동체 외부에서 나쁜 사람들을 만날 때 가족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들을 자본이나 국가로 해결하려는 시도가 생겨납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닌 다른 형태의 공동체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양하는 곳에서 생겨나는 공유물과 공유지가 이 공동체의 기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박정미: 제가 사실 영화에서 계속 이야기하는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탐구입니다. 저는 두려움에 대한 화두가 핵심이었어요. 그리고 너무나 두려웠던 정미가 살아갈 힘을 얻었던 것은 가족이 아닌 낯선 사람의 보살핌과 보호였거든요. 그렇기에 한국에 와서도 이게 이어져 가길 바랐어요. 제가 빈고 공동체와 빈집, 빈마을의 역사를 너무 좋아했던 이유도 제가 앞으로 공동체 지향적으로 살고 싶기 때문이에요.
영화의 시작이 2014년이니 한국에 돌아온 이제 10년 됐네요. 그동안 저는 은둔자처럼 살았어요. 자급자족하고 자립하고, 독립해 살겠다는 자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점차 나이를 먹으니 건강이 악화되고 나니 보이더라고요. 도움 없이 홀로 살 수는 없다는걸요. 이 시점에 빈고라는 단체를 알게 되고 안심되는 거 있죠. 내가 이제 공동체를 지향하는 한 함께 연대할 수 있는 힘과 가족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이곳을 소개하고 함께 활동해 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모시게 됐습니다. 여러분께 이곳에서 함께 소개 드린 이유도 비슷합니다. 제 여정이 함께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 가능했듯이 앞으로의 여정도 함께 살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불가능해요. 그렇기에 빈고가 제 비빌 언덕이 됐고요. 제가 그랬듯이 빈고가 여러분들께도 비빌 언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지음: 빈고는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연결 중에서 재정적인 연대를 하고 있는 거예요. 공동의 저축을 하고, 각자가 필요한 만큼 이용을 하는 은행과 같은 것입니다. 자본의 금융은 대체로 경쟁의 결과로 인해 나타나는 형태인데, 빈고는 이것을 반전해 자본 수익을 사양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모두가 사양하는 것을 전제로 완전히 다른 금융의 형태를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 출자를 하면서도 수익을 추구하지 않고, 이자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용하는 사람도 이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의외로 여기에서는 아무도 피해 보지 않아요. 빈고를 공동체들의 공동체라고 표현했었는데, 지금은 공유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공유지는 그냥 가치 있는 공간이고 이것에 필요한 돈을 우리가 같이 모으고 있을 뿐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공동체로 살아갈 것인지는 각각의 공동체가 만들어가는 거고요.
어쨌든 우리는 공동체가 필요할 거예요. 그렇기에 각자의 공동체를 꾸리게 될 텐데요. 그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다른 공동체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때 단순히 자본 수익을 사양하는 정도로 출자하고 함께할 수 있다면 좋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관객: 감독님의 여정을 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함께 따라가면서 경험할 수 있었던 귀한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거울 앞에서 촬영자인 감독님의 모습을 담고 그 이후에는 거의 감독님 자신의 모습은 안 담았던 것 같아요. 계속 감독님의 시선만 보였는데, 혹시 본인의 모습을 찍었는데 편집 과정에서 삭제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또한 2년 동안 계속 촬영을 하시며 중간중간 외로운 순간도 많고, 촬영에 어려움도 많으셨던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거나 촬영하고 있다는 행동, 혹은 의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박정미: 우선 얼굴이 하나도 안 나오는 이유는 제 얼굴까지 촬영할 여력이 없어서입니다. 자전거를 타든 히치하이크를 하든 너무 고된 하루거든요. 더불어 오늘 안전한 곳에서 자고 먹을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을 새롭게 만날지에 대한 긴장감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촬영은 늘 뒷전이었어요. 저는 촬영과 영화를 위해 이 여정을 떠난 게 아니라 정말 생존하고 삶의 목적과 존재 이유를 찾고 싶어서 한 여정이었기 때문에 제게 정말 중요했어요. 촬영이 앞이 되는 순간 영화를 위한 쇼가 된다고 생각했기에 저는 늘 삶에 충실히 하려고 했고, 순간에 진심을 담아서 경험을 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저를 보고 신경 쓰며 촬영할 여력이 없어서 바깥만 찍은 건데 사람들이 해석을 되게 잘해주시더라고요. 일인칭 시점으로 함께 보는 느낌이라고 나중에 의미 부여를 해주시는데 너무 감사했어요.
두 번째로 카메라가 저한테 위로가 되어줬는지는 저도 몰랐는데, 혼잣말을 되게 많이 하죠. 요즘은 브이로그를 찍으면서 혼잣말을 하시는 분이 많잖아요. 그런데 12년 전만 해도 그런 유튜브 영상이 많지 않았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외로웠나 싶긴 합니다. 카메라가 유일하게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친구이긴 했어요. 영화에는 안 나왔는데, 제가 “아 사람하고 얘기하고 싶다”라고 말한 적도 있었어요. 영화 편집을 하는 데에는 제 혼잣말이 정말 도움이 됐어요.
관객: 같은 이야기로 책을 이미 내셨는데, 10년 전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게 된 계기나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여행 이후에 삶을 바라보는 태도나 가치관이 달라지셨는지 궁금합니다.
박정미: 일단 책을 내는 데에도 6년이 걸렸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직업으로 글을 쓰거나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아요. 책이나 영화가 1순위가 아니었어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삶을 살고 집중하는 것만 해도 너무 바빴어요. 자연 속에서, 지역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한순간도 나태하거나 안일하게 보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일과 중 한두 시간만 글을 썼고요.
그리고 여정은 2년뿐이지만, 워낙 제게 울림을 준 게 많아서 정리하는 데 시간이 많이 들었어요. 한 장소를 쓰는 데에 한 달씩 걸렸어요. 이런 식으로 책을 쓰며 2년 동안의 여행을 6년 동안 다시 한 거죠. 사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책을 썼다면 전 자만으로 가득한 글을 썼을 거예요. 삶의 방법을 통달한 사람처럼 말이죠. 그런데 시간이 오래 걸린 덕에 자만이 조금씩 사라지더라고요. 오히려 저에게는 다행인 일이었죠. 지금 책을 보면 여전히 오만한 태도가 많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고치고 싶은 부분도 있고, 조금 부끄럽습니다. 책을 내고 나서 영화 편집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작업자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늦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정에서의 변화는 제가 말하지 않아도 아시지 않을까요? (웃음) 변화의 이야기이잖아요. 저는 오히려 관객분들께 여쭤보고 싶어요. 제가 과연 어떻게 변했다고 느끼셨을까요? 제가 만약 처음부터 환경 문제에 대한 의식이 있는 상태, 혹은 소비와 노동 시스템의 문제를 알고 있는 상태로 시작했다면 오히려 사람들에게 잘 전달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무지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질문할 수 있었거든요. 저는 어디를 가도 끊임없이 불편했어요. 계속해서 이해가 안 되고, 그래서 떠났고. 이를 반복하다 보니까 여행에서 경험했던 것을 한참 뒤에야 이해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자연과의 연결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하면서 팅커들이 왜 그렇게 살았는지 이해했죠. 자연과 제가 연결되어 있고, 실제로 연결되기 시작하니 히피들이 사랑과 평화를 말하고 우리가 연결돼 있다고 말하는지 알았어요. 당시에는 그런 말들이 정말 이상하게 느껴졌었는데 말이죠.
너무 멋있고 지혜로운 이야기를 해준 넵튠과의 대화가 나오잖아요. 영화에는 5~6분 정도 밖에 안 나오지만, 실제 녹음본은 2시간이었어요. 대화를 나눌 때는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여행을 이어 나가고 한참 뒤에 갑자기 그 녹음본이 너무 듣고 싶은 거예요. 길 위에서 되게 두려운 순간이었어요. 그제야 그 말들이 이해되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저만의 경험을 해야 이해하지 않아도 느껴지고 받아들여지는 순간이 오는 거죠.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변화는 영화 속에 나와 있는 것 같아요. 이제까지 몰랐던, 잃어버렸던, 단절됐었던, 분리돼 있었던 ‘연결’을 회복해 가는 것이요. 그리고 그에 대한 믿음이 커진 것이요.

관객: 두 분의 이야기를 공통으로 관통하는 키워드가 ‘공동체’, ‘타인과의 관계’, ‘상호작용’과 같은 맥락의 단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공동체 속에 있으면서도 때때로 고립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두 분도 그런 순간이 있으셨을 것 같고요. 혼자였다가 다시 공동체로 돌아오는 과정을 겪으셨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건지. 혹은 돌아오게 된 이유가 있으신 건지 궁금합니다.
박정미: 질문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제가 김지음 활동가님께 드리고 싶었던 질문 중 하나였어요. 저는 여행을 통해 공동체형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생각보다 질서가 필요하고,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 중요했죠. 그래서 히피들과의 여행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자본의 바깥〉을 읽고 나니까 활동가님은 히피들과 10년간 함께 사신 것 같은 거예요. 어떻게 이렇게 사실 수 있었는지 여쭤 보고 싶어요.
김지음: 제가 생각하기에 빈집은 히피 공동체와는 좀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저희는 계속 속세에 있었고, 저희가 특별히 공동체적인 사람도 아니었고요. 사실 공동체가 공동체로 충분했으면 은행을 만들지 않았을 거예요. 우리끼리의 선물로 충분하고, 사랑하는 사람끼리 사는 것으로 충분했더라면 머리 복잡하게 은행을 만들겠어요? (웃음) 빈고는 상당히 개인적인 결정이라고 생각해요. 출자하고 이용하는 과정을 결정하는 건 오로지 개인이잖아요. 공동체는 변질될 수 있고 공동체도 위험한 지점이 없지 않기에 공동체로써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공유지와 빈고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개인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동체를 이루는 순간조차도 자신이 무언가를 찾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어쩔 수 없이 공동체가 갖게 되는 차별적인 요소나 폐쇄적인 요소도 있기에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도 개인이 중요합니다. 공동체는 언제든지 흩어졌다가 다시 만날 수 있어야 건강하기 때문이죠.
박정미: 최근 9개월 정도 승가 공동체에 속해 있었어요. 공동체적 감각을 되살리고 싶어서 일부러 선택해서 갔어요. 저는 혼자 발가벗고 살아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 만큼의 자유를 느끼고 싶어서 산으로 들어갔던 것인데, 그것 역시 자만이자 도피였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선원에서의 생활은 군대 생활을 다시 한 느낌이었어요. 그렇지만 제가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더라고요. 선원의 스님께서는 우리는 모두 모난 자갈돌이기에 함께 깨지고 부딪히며 모난 곳을 둥글게 하려고 모여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승가 공동체는 함께 모여 사는 생활을 정말 중요시해요. 물론 훈련을 위해 항상 모여 살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고, 활동가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처럼 뭉쳤다 흩어졌다 할 수 있는 느슨한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빈고처럼 얼굴 한 번 본적 없지만 위안을 느끼고 연대감을 느끼며 언제든지 도망갈 수 있다는 안정감을 주는 곳이 공동체이죠. 저는 일본에 가본 적이 없지만, 그곳에도 어떤 공동체가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러면 내가 일본에서 길을 잃었을 때 그곳을 찾아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꼭 함께 살지 않아도 이러한 같은 마음으로, 함께 살고자 하는 마음을 공유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전 그게 집이고 하나의 큰 공동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사실 혼자 있으면 외롭고, 함께 있으면 화나는 게 문제잖아요. 그런데 반대로 혼자 있으면 평온하고, 함께 있으면 즐거운 방향으로 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요. 그리고 이 방향으로 가는 데에 있어서 공동체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지음: 감독님의 경험을 쉽게 따라 하기는 어렵겠지만, ‘난 저렇게 못 살아’라고 생각하고 멀리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우리가 현실을 갑자기 바꾸긴 어렵겠지만, 생각의 방향 전환이 일어날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실질적으로 바뀐 것은 없어도 세상이 달라진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모두가 소비를 조장하고 있는 사회에서 소비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은 것이고, 적게 할수록 아름다운 일이고, 또 올바른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박정미: 돈이 없으면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세상이잖아요. 저 역시도 위태로운 낭떠러지 같은 곳으로 밀려나 살아본 적이 있고, 아마 살고 계신 분도 있을 거예요. 언제 가장자리로 밀려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위태로움이 있을 때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끼리 모이면 되거든요. 위태로운 세상에서 내가 환대받고 환영받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소유하는 집도 필요 없어져요. 이윤을 조금 내려놓고, 조금 더 양보하고. 이런 작은 양보와 사양이 모여 우리 모두에게 집이라는 공간을 주거든요. 저는 그게 공동체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외롭지 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삶으로 모두 나아가길 바라고, 김지음 활동가님 나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다음에 또 만나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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