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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란 12.3〉: 어지러움의 영화화

by indiespace_가람 2026. 5. 22.

〈란 12.3〉리뷰: 어지러움의 영화화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예송 님의 글입니다.

 


‘란(亂)’은 어지럽다는 뜻이다. 영화 〈란 12.3〉은 2024년 12월 3일, 어지러웠던 하루, 그 새벽의 상황을 직설적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이 영화가 선택한 ‘직설’은 흔히 기대하는 방식과 다르다. 영화는 충분히 어지러웠던 상황에 초점을 맞춰 인터뷰나 나레이션, 해설과 같은 유도의 목적을 가진 기존의 익숙한 다큐멘터리 문법을 거절한다. 이명세는 그날의 혼돈을 가타부타 설명하는 대신, 혼돈 그 자체를 눈앞에 제시한다. 그가 선택한 영화의 언어는 다채롭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일러스트이자, 그래픽, AI, 애니메이션, 게임, 12월 3일을 살았던 많은 이들이 남긴 흔적이다. 각자의 개성이 너무 뚜렷하여, 화려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균일하지 못한 소스들이 한데 모여 공명하고 영화는 전진한다. 12월 3일의 수많은 마음과 영화에서 들끓어 쏟아지는 에너지가 그곳에 위치한다. 결국 우리 모두 겪었기에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긴장 어린 마음으로 영화의 끝을 함께 달려가게 만든다. 대화와 인터뷰, 나레이션이 사라진 무언극의 구조에서 영화는 음악을 통해 리듬을 전개한다. 

영화 〈란 12.3〉은 민주주의의 위기가 눈앞에 펼쳐졌던 202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석열 대통령의 기습적인 비상계엄 선포로 연말의 평화로움이 단숨에 박살 난다. 무장한 군 병력이 거리를 활보하고, 국회로 진입하려는 국회의원들은 이동을 방해받는다. 시민들은 불안에 떨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도심으로 모이고 서울은 소스라치게 악의를 품은 비행기 소리로 신경이 곤두서 있다. 기다림과 안주 속에서 탄생할지 모르는 과거의 공포를 돌아보며 모두가 우리를 지키기 위해 길을 나선다. 〈란 12.3〉은 그날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하루의 시간 동안 벌어진 상황들을 여러 이미지와 사운드, 텍스트로 표현하고 있다. 함께 보낸 시민들이 보낸 푸티지들은 기록과 목격의 열망이 어지럽게 쌓여 무수히 쏟아지고, 이날을 꼭 기억해야 한다는 미래를 향한 선언을 한다.

영화 〈란 12.3〉 포스터


영화의 시작부터 극의 형태로서, 천막과 무대가 등장한 채, 마치 대사를 읊는 것과 같은 연출로 윤석열의 비상계엄이 선포된다. 극장의 관객은 스크린 내의 관객을 투영해 거울처럼 영화에 진입한다. 이 연극적 프레임은 영화의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무대의 막이 내리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수미상관을 이룬다. 이어 영화의 중간, 메이킹 테이크를 여러 차례 옮기며 당시의 사태를 회고하는 장면과 실제 인물을 각본의 이름처럼 나열하는 시퀀스에서 이 영화가 ‘사실 나열’의 다큐멘터리가 아님을 지속해서 주장한다. 관객의 모두가 대부분이 알고 있을 그날의 서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영화는 콜라주의 형식을 택한다.  

영화 〈란 12.3〉 스틸컷


기존의 영상 문법을 벗어나는 이미지들이 일정하지도 않은 형태로 지속해서 자리를 바꿔나가며 영화는 전개된다. AI 이미지로 구현된 부분에서 일종의 상상력을 불어 넣다가도 그날 실시간으로 쏟아지던 댓글들을 통해 그날의 심경을 날것으로 돌출시킨다. 이어 움직이는 지하철의 속도와 당시의 모습을 담은 라이브 영상들은 긴박한 심정으로 표상된다. 쉴 새 없이 몰아치고 움직이며 전환되면서 그날의 ‘란’의 감각을 골똘하게 표현한다. 여기서 카메라의 무빙을 통해 빛을 들고 온 시위대의 중심에 서서 그 안을 집요하게 따라가거나, 각자의 색으로 구분된 지하철 노선도를 따라 유영하는 움직임은 영화의 리듬감을 설계한다. 여기서 제시되는 조성우 음악감독이 제작한 음악과 실제 피아노 연주 소리는 한데 어우러져 어지러움 속에서의 질서를 구현한다. 관객들은 영화가 호명하는 곡조에 따라 상승과 하강으로 이어진 역사의 굴레 속에 탑승한다. 

어지러움 속에서의 미학을 발굴하는 영화는 관객들에게 어떠한 강요보다도 이 리듬의 열차에 몸을 싣고 당시를 경험하게 한다. 정돈되지 않은 푸티지들은 인물들의 격하고 어쩌면 우스꽝스러운 묘사마저도 온몸으로 느끼게 하며, 담을 넘고 오르는, 문을 막기 위해 무거운 방패막을 쌓는 인물들에 동화되게 만든다. 쏟아지는 “광주를 기억해”와 같은 단어는 움직임의 연유를 잊지 않게 하며, 빠르게 달려 전 층의 불을 밝히는 인물의 가빠른 숨을 함께 고르게 한다. 

영화 〈란 12.3〉 스틸컷


〈란 12.3〉은 다큐멘터리가 어떠한 지점까지 놓일 수 있는가를 실험하는 무대로 기능한다. 그리고 ‘란’속에서 새롭게 정립한 사운드와 이미지의 질주는 어디까지 확장 가능한지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영화는 그날의 정보가 아닌 그날의 감각을 요청한다. 재현을 넘어 오늘에 위치시킨 영화의 당돌함에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한다는 현재의 감각과 미래를 위한 당찬 걸음을 연상하게 된다. 정돈되지 않은 푸티지와 격렬한 감각들은 관객의 몸과 마음에 직접 닿게 하며, 어지러움 속에서도 미학을 발굴한다. 이 집요함에 결국 12월 3일은 그냥 흘러가지 않게 되며, ‘란’은 단순한 기록이 아닌 현재를 향한 선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보이는 것 이상의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2024년 12월 3일은 그냥 흘러가지 않아야 한다. 영화는 지적하고 증명하고 호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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