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즈 단평'은 개봉작을 다른 영화와 함께 엮어 생각하는 코너로,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인디즈 큐'에서 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진실 혹은 괜찮아
〈그녀가 돌아온 날〉 그리고 〈오목어〉
*관객기자단 [인디즈] 강신정 님의 글입니다.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을 처음 들은 옛사람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믿었던 진실이 순식간에 빠져나간 자리가 얼얼했겠지 싶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다. 어리둥절해하는 인간을 두고도 다음 날의 태양은 평소와 같이 떴을 것이다. 지구가 평평하다 믿었을 때처럼, 그의 삶은 똑같이 둥글게 흘러갔을 것이다. 때로 진실은 우리 삶의 거대한 의미처럼 여겨지지만 허무할 정도로 아무것도 아니기도 하다. 그러니 산다는 건, 허무한 진실의 세계 속에서 끊임없이 괜찮다고 되뇌는 하루의 반복일지 모른다.

허무해도 괜찮아
영화 〈그녀가 돌아온 날〉의 ‘정수’도 진짜, 진실, 진리의 절벽 그 끝에서야 한층 후련해 보인다. 12년 만에 영화로 복귀한 배우로서 정수는 세 명의 기자와 인터뷰를 한다. 세 번의 인터뷰, 그 중심에는 “있는 그대로의 진짜”를 강조하는 정수가 있다. 작은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는 일에 지쳤다며 세상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일관한다. 이런 태도는 흑백영화라는 형식과 맞아떨어진다. 흑백의 장면들은 진짜(라고 믿어지는) 세상의 다채로움과는 거리가 있지만 동시에 가장 본질적이기도 하다. 정수의 표정과 기자의 옆얼굴, 그리고 주고받는 대화들만이 영화에서 두드러진다.
문제는 정수가 말하는 진실이 기자들은 물론, 정수 자신에게조차 가닿지 못한다는 점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강조하던 정수가 기자에게 어떤 답변은 사용하지 말아 달라고 편집을 부탁한다.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대본으로 적어 연기해 보라는 연기 수업에서는, 그토록 강조하던 부분에서 자꾸 대본을 훔쳐보게 된다. 당연하다. 있는 그대로의 나는 대본에 없다. 다만 정수는 망설이고 혼란스러워할지언정 멈추지 않는다. 진실이라 믿으며 적었던 대본 밖에서야 진짜 자신의 내면을 만나는 그 과정에서, 정수에겐 미묘하지만 작지 않은 변화가 일어난다. 자신의 모순을 끌어안고도 후련해 보일 수 있다.
연기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정수의 뒷모습에서 이런 말이 들리는 것 같다. 진짜라는 건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스스로 쌓아 올린 믿음조차 가짜일진 몰랐다고. 참 허무하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보잘것없는 내 진실을 찾아 나아갈 뿐이라고. 진짜 나를 사랑하라는 정수의 말은 이때야 진심으로 들린다.

허무해서 괜찮아
진실을 갈구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영화도 있다. 영화 〈오목어〉는 삶이란 진리를 향해 허우적거리는 일이 아니라, 그저 운명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일이라 믿는다. 작은 웅덩이에 사는 ‘오목어’는 “어른이 되려면 물 밖에 나가야 한다”는 올챙이들의 말에 여행을 떠난다. 물 밖의 세상이 바로 오목어가 찾는 진실인 셈이다. 그러나 여행 내내 진실은 보일락 말락 하다. 올챙이가 말하는 물 밖이 다르고, 개복치가 말하는 물 밖이 다르고, 지렁이(미끼)가 말하는 물 밖이 다르다.
끝내 오목어가 마주한 진실은 무서울 만큼 허무하다. 국수용 소면으로 만들었다는 특이한 제작 방식에 걸맞게, 물밖으로 뛰어올랐다고 생각한 오목어는 사실은 국수 소면이었다. 맛있게 국수를 먹어 치우는 감독의 모습이 잔인해야 하는데 왜인지 위로가 된다. 허무함의 순기능 중 하나는 가벼워진다는 것이지 않은가. 온갖 의미를 짊어진 채 하루하루 잘 해내야 한다고 믿으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 별거 아니라고 짓궂게 일러줄 수 있는 것이 허무함 말고 또 뭐가 있을까. 그러니 오목어의 결말은 오목어에게도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인생, 허무해서 괜찮은 거라고. 그러니 뻣뻣하게 있지 말고 마음껏 물러져도 보라고.
저마다의 진실을 찾아 떠도는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잘 모르겠지만 무거운 마음으론 도착할 수 없는 곳이 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그러니 오늘만큼은 진실은 잠시 잊고, 편하게 가볍게 허무하게 걸어봐도 괜찮겠지 싶다. 아무렇게나 구겨진 정수의 대본처럼. 부드럽게 삶은 국수 가락처럼.

'Community > 관객기자단 [인디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인디즈 기획] 선을 넘어, 프레임 너머로 (0) | 2026.05.14 |
|---|---|
| [인디즈 기획] 아주 짧은 전주 기록 (1) | 2026.05.14 |
| [인디즈 기획] 이어폰을 빼고 보낸 시간 (0) | 2026.05.14 |
| [인디즈 기획] 삶을 살아낸 이들에게 용기를 받으며 (0) | 2026.05.14 |
| [인디즈 기획] 닿는 영화 (0) | 2026.05.1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