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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기획] 삶을 살아낸 이들에게 용기를 받으며

by indiespace_가람 2026. 5. 14.

 삶을 살아낸 이들에게 용기를 받으며 

 인디즈 X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방문기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은진 님의 글입니다.



‘영화 좀 보는 사람’
그간 스스로를 소개할 때면 주저함 없이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해왔다. 실제로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는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었고, 종류를 가리지 않고 보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당당히 애정을 밝히기에는 한 가지 마음에 걸렸던 점이 있었다. 전주국제영화제와 같은 대규모 영화제 방문 경험이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수도권에서 개최되는 크고 작은 영화제에는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다만 자신을 ‘영화 좀 보는 사람’으로 칭하기 위해선 대규모 국제 영화제를 경험해 봐야 한다는 개인적인 기준을 세워버린 탓에 마음속에 남는 미묘한 아쉬움을 지우기 어려웠다.

이렇듯 아쉬움의 몇 년을 보내던 가운데 전주로 향하기 가장 좋은 시기가 찾아왔다. 시간적인 여유도 충분할뿐더러 여러 가지 주변 상황이 알맞게 돌아갔다. 이보다 완벽한 시기가 또 찾아올까 생각해보면, 당분간은 없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덕분에 지체하지 않고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5월이 눈앞으로 다가왔고, 4시간의 이동 끝에 전주에 도착했다.

 


우리는 늘 선을 넘지
전주국제영화제만이 가지고 있는 색을 고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슬로건이 함께 떠오른다. ‘우리는 늘 선을 넘지’라는 슬로건은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경계를 넘나드는 상상력과 경계를 넘어 하나 되는 화합에 집중해 본다. 전주국제영화제는 대규모 국제 영화제임에도 상업영화보다는 독립・예술 영화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영화제다. 덕분에 다양한 주제를 가진, 다양한 국가의 영화를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현장의 분위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화의 거리를 걷다 보면 영화라는 이름 아래 모인 다양한 이들이 서로를 스쳐 간다. 나이와 성별, 국적 등 많은 것이 다른 사람들이 영화를 향한 애정만으로 한 공간에 모여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아울러 근방의 식당과 상점 등에 방문하며 지역 전체가 영화제와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 역시 화합을 느끼는 순간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묵묵히, 나의 삶을 위해
본 영화제를 통해 접한 작품 가운데 몇 가지를 큰 주제 아래에 모아 함께 소개해 보려 한다. 만나지 못한 영화도, 미처 이 글에 담아내지 못한 영화도 많기에 절대적인 추천이라 할 수는 없으나 조금이라도 전주의 영화와 분위기가 함께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전해본다.

어려움이 닥쳐도: 〈이상 가족〉, 〈공순이〉, 〈마우스〉
〈이상 가족〉은 레즈비언 부부가 이혼을 결심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극영화다. 퀴어 영화에서 자주 다뤄지는 기본적인 어려움을 넘어 일상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유쾌하게 담아낸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던 작품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수많은 정체성을 지니고 각기 다른 어려움을 겪는다. 여성과 퀴어, 학생과 아이돌 등과 같이 그 범위가 매우 넓다. 그럼에도 각자의 답을 찾아 나가며 삶을 살아낸다. 다양한 주제가 모였지만, 혼란스럽지 않도록 가족이라는 큰 주제 아래 묶어 그들의 삶을 그렸다는 점이 좋은 영화다.
그런가 하면 〈공순이〉는 유소영 감독이 자신의 어머니 ‘김공순’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어린 시절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공장에서 일했던 어머니는 이혼으로 인해 다시금 가장이 됐고, 공사장에서 노동을 이어갔다. 그보다 어린 시절에는 농인의 자녀로 살아가며 ‘버버리 딸’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녀를 이루는 정체성들을 보고 있으면 굴곡진 삶에 마음이 아파져 한숨을 숨기기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그녀는 노동할 수 있음에 기뻐한다. 반복되는 어려움 끝에도 삶에 기뻐하고 유쾌함을 잃지 않는 ‘김공순’의 삶. 그리고 여공, 기술직 여성, 코다의 삶을 기억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마우스〉는 상실 이후의 삶과 극복을 그린다. 한 존재의 상실을 겪게 되면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하지만, 세상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인다. 남겨진 이들은 끝내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영화는 관계에 집중한다. 관계 안에서 비극을 주고, 그 비극을 극복하는 희극 역시 선사한다. 늘 행복하고 완벽하기란 불가능하지만 늘 불행하고 부족한 것도 아님을 느끼게 된다. 이를 앞선 두 영화의 주제를 안는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 인생은 희극과 비극의 연속이기에 어려워도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공통의 메시지를 갖기 때문이다.

 

영화 〈이상 가족〉 스틸컷


삶이 무가치해 보여도: 〈음악만세〉, 〈시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이 있었다면, 다른 한 편에는 살아갈 가치를 찾는 예술가가 있다. 〈음악만세〉의 단편선과 〈시인〉의 오스카가 그렇다. 단편선은 예술로 세상을 바꾸고 싶은 음악가이자, 프로듀서, 사회 운동가다. 그런 그가 추구하는 예술은 의외로 천박하고 아마추어스러운 것이다. 이 세상이 그다지 고상하지 않다는 것이 이유다. 그는 계속해서 천박해지고 투쟁을 요하는 세상에서, 천박한 예술을 하는 우리가 못나고 부족할지언정 한 사람으로 살 가치만큼은 충분하다고 말한다. 천박한 세상을 함께 견뎠기에 투쟁할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관객을 설득한다. 함께 살아내고 투쟁하자고.
〈시인〉의 오스카는 더욱 찌질하고 처참한 인물이다. 지나가 버린 전성기를 회상하며 생업은 팽개친 그는 영화 중에도 계속해서 잘못된 선택과 실패를 반복한다. 그러던 중 시에 두각을 드러내는 유를라디를 만나서 실패의 일부를 극복하기도 한다. 물론 오스카가 절망을 완전히 극복하진 못한다. 그러나 지금의 못난 나를 벗어날 수 있다는 작은 희망만으로도 삶의 가치는 뚜렷해진다. 못나도 살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단편선처럼 말이다. 그렇게 두 예술가는 예술 안에서 자신이 살아갈 삶의 방향과 가치를 찾아낸다.

 

영화 〈이상 가족〉 스틸컷


위 다섯 영화에서 가장 집중한 지점은 ‘그럼에도 살아가는 삶’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각기 다른 어려움 속에서 고난을 겪지만, 자신의 삶을 지키며 살아낸다. 설령 그 삶이 온전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처럼 공통된 가치는 다시금 전주의 슬로건을 소환했다. 선을 넘고 경계를 지운 뒤 ‘삶을 살아낸 이들’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그들을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다짐하게 된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게 되더라도 나의 삶을 지키자. 나의 삶을 살아내자. 나의 첫 전주는 삶을 살기 위한 원동력으로 기억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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