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는 영화
인디즈 X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방문기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은아 님의 글입니다.

계획은 늘 예상을 벗어난다. 타려던 버스가 먼저 떠나고, 길은 막힌다. 덕분에 보려 했던 영화를 놓쳤고 늦은 오후까지 길어진 여유 시간에 착잡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열심히 전주를 돈다. 상영을 기다리는 관객들과 인파 속 활기를 뿜어내는 자원활동가 그리고 마주치는 여럿 영화인들까지. 기다란 길목에 빼곡히 자리한 요소들이 이어질 10일간의 시간이 무척이나 대단할 것 같아 이상하리만치 설렌다. 그날의 사람들은 영화의 주인공이 자신이란 것을 알았을까.
1. 쉬이 공명하기 어려운 영화를 보고 있다. 곧이어 영화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 생각한다. 리클라이너 좌석에 몸을 맡긴 채 잠에 들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행동이 올바른가. 설령 눈꺼풀이 잠시 감겨있더라도 저항할 수 없는 신체의 반응을 이겨내려는 자세가 영화관 안에서 용인되는 멋진 노력이라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영화는 70분이라는 시간을 뚫고 막을 내린다. 꽤나 명확히 남은 메시지에 짧은 감상을 노트에 급히 적어놓는다. '캐릭터 귀여움', '마지막 즈음 울컥함', '비슷한 결의 영화 많음'.
상영관을 나서며 습관처럼 영화의 좋은 점을 계속해서 찾으려 한다.
"리뷰를 써야 하는데 영화가 별로일 땐 어떻게 해?"라고 묻는 지인의 말을 떠올린다. 이어 나는 "오히려 좋아"라고 답한다.
차가운 심장과 놀랍도록 이성적인 머리로 영화를 샅샅이 훑으며 쉼 없이 글을 써 내려 갈 수 있으니까. 좋은 영화는 좀처럼 표현이 어렵다. 멋진 미사여구를 붙이고 싶기도, 영화의 핵심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싶기도 하지만 그보다 영화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늘 이겨버린다. 정제된 글을 만들고서야 비로소 영화에서 멀어진다.
공감할 수 있는 것에만 공감하는 일이 멋없다 생각하면서도 바운더리를 넓히지 못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런 면에서 영화제는 최고의 장이다. 알지 못하는 사람과 세계를 취향대로 골라 마음껏 누벼볼 수 있으니. 전주국제영화제 섹션을 살피며 빈 시간을 채워줄 영화를 다시금 골라본다.
2. 시간은 며칠 뒤로 흐른다. 동행인이 생겼고, 혼자 하는 여행과 사뭇 다른 행동 양식이 생긴다.
첫째, 재밌는 영화를 관람할 것
둘째, 모두의 입맛에 맞는 식당을 찾을 것
셋째, 영화제 바깥의 전주도 구경할 것
나는 프레스 배지를 가방에 넣어두고 엄마의 체력이 소모되지 않는 최소한의 타협점을 찾으려 고민한다. 두 편의 영화를 예매했으나 ’영화를 두 편씩이나 볼 순 없다‘는 말에 오후의 영화를 취소하고, 기념품샵과 영화의 거리를 거닐며 이곳저곳을 소개해 준다. 그러다 문득 5월의 화창한 날씨를 뒤로하고 캄캄한 상영관에 앉아 하루 종일 영화를 보는 행위가 어쩌면 일종의 자학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영화제에 왔으니 영화를 봐야지. 우선 엄마가 정의하는 '재밌는 영화'는 현실을 기반한 액션 내지 드라마 극영화다. 그의 취향을 명확히 알고 있는 바, 예매한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란 예감은 정확히 들어맞는다. 우리는 나카오 히로미치 감독의 〈미치유키: 시간의 목소리〉를 보았다. 어두웠던 상영관에 불빛이 들어오고, 마주친 눈빛에서 어떠한 감정이 아주 강력히 느껴진다. 웃음이 난다. 〈미치유키: 시건의 목소리〉는 기차를 매개로 도시와 소멸 위기의 마을을 이어가며 사람들의 기억을 붙잡는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을 향해가는 기차는 힘찬 기적 소리와 함께 차창 너머의 풍경을 영화로 전환시킨다. 넓은 들과 무성한 나무, 이름이 궁금한 산과 아주 작은 사람들. 영화를 촘촘히 채워주는 존재가 가득한 이 영화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미처 해석하지 못한 장면을 엄마는 내게 요목 조목 설명해준다. 아직 볼 줄 모르는구나! 차가운 심장은 강하고, 좋은 영화는 어렵다. 프레스 배지를 더욱 깊숙이 넣으며 영화제 곳곳을 탐방해 본다.
공사 중인 전주역을 넘어 기차에 올라탄다. 서울까지 다시금 2시간 정도. 전주를 벗어나며 쓸 이야기들을 정리한다. 생각보다 적은 사진과 발권하지 않은 종이 티켓에 작은 아쉬움이 남지만 걷느라 뜨거워진 발바닥이 생생하기에 성숙하게 삼켜낸다. 생각을 마치고 창밖의 세상을 영화처럼 바라본다. 여전히 나의 삶에서 영화는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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