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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기획] 영화제에는 늘 비가

by indiespace_가람 2026. 5. 14.

 영화제에는 늘 비가 

 인디즈 X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방문기 

 

*관객기자단 [인디즈] 남홍석 님의 글입니다.

 

 

 영화제에는 늘 비가 내린다. 특히 전주 하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객사골목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어떻게 항상 방문 일정에 맞춰 비 예보가 있는지 모르겠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기 예보를 확인했지만 올해도 역시다. 체념하는 마음으로 가방에 우산을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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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내내 전날 밤 캐리어를 미리 챙겨두지 않은 걸 후회했다. 거북 등껍질 같은 백팩을 멘 나와는 달리, 함께 역에 모인 친구들은 거의 모두 캐리어를 끌고 나왔다. 2박 3일 일정이라고 얕본 내 실수였다. 징검다리 연휴의 첫날이라 그런지 전주역에 사람이 무척 많았다. 잠시 ‘이 사람들이 다 영화제에 간다고?’ 하고 생각했지만 금세 모든 사람이 연휴마다 영화제를 찾진 않을 거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내려올 때마다 종일 영화만 봐서 잊고 지내던 사실이지만, 전주는 여행하기에도 좋은 도시다. 괜히 황금연휴가 아니구나, 생각하면서 거대한 백팩을 돌려 메고 콩나물시루 버스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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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영화제를 다니다 보면 한 해의 영화제 일정에 따라 시간을 체감하게 된다. 뭐했다고 벌써 전국제 할 때가 됐네, 하는 식이다. 1년의 1/3 지점에서 포문을 여는 전주를 시작으로 수많은 영화제가 12월까지 이어진다. 그래서일까. 전주에 다녀오고 나면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기분이다. 공교롭게도 해마다 전주국제영화제 일정과 생일이 겹쳤다. 그러니 실제로 전주에 다녀오고 나면 한 살을 더 먹게 되는 것이다. 분기점처럼 느껴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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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중한 기회로 프레스 배지를 얻어 방문했지만, 올해는 할 일이 밀려 있어 예년만큼 영화를 많이 보지 못했다. 그래도 배지를 받았으니 우선 구경이나 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프레스센터에 갔다가 인디즈 동료를 만나 반갑게 인사했다. 몇 년 전에 배지가 있었더라면 종일 영화만 봤을 텐데 아쉽다는 대화를 나누고 일어나니, 바로 뒷자리에서 장률 감독이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내려오자마자 각종 일정에 피로를 느껴 예매해 뒀던 영화까지 취소한 상태였음에도 눈이 번쩍 뜨였다. 그제야 프레스 자격으로 영화제에 온 실감이 났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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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으로 향한 곳은 배지 혜택을 확인한 뒤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비디오 라이브러리였다. 작은 컴퓨터실 같은 공간에 줄지어 놓인 아이맥으로 모두 영화를 보고 있는 광경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작년부터 궁금했던 임지훈 감독의 〈유령〉을 보았다. 창작자 개인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정치성을 잃지 않는 작품은 늘 매력적이다. 이런 다큐멘터리가 더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유령〉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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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방문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은 아마 전주영화호텔에 위치한 영화도서관일 것이다. 영화제 중심가 바로 근처에 있어서 예전에도 종종 들르던 곳인데, 올해 다시 가보니 층고도 높고 조용해 퍽 작업하기 좋은 공간이라는 걸 느꼈다. 빈 시간마다 와서 밀린 할 일들을 처리했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역시 노트북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무엇보다 이곳, 도서관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커피가 맛있다. 3일간 매일 자리를 잡고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씩 수혈했다. 영화제 기간 동안 작업 공간이 필요한 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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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최고의 데뷔작 중 하나로 꼽힌 〈푸른 왜가리〉는 기대했던 대로 멋진 작품이었다. 중반부까지는 〈애프터썬〉(2022)이 연상되기도 했는데, 예상하지 못했던 이후 전개가 인상적이었다. 샤론 록하르트의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은 대사 없이 열두 개의 롱테이크로 구성된 작품이었음에도 넋 놓고 보게 만드는 순간들이 있었다. 이종수 감독의 세 번째 장편 〈나타 근영〉 역시 특유의 개성이 새로운 방향으로 드러난 것이 흥미로웠다. 올해는 원래 계획했던 일정의 절반 정도밖에 소화하지 못했지만 영화제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작품들을 만난 것이 좋았다. 내년에도 전주에서는 더욱 도전적인 작품들을 시도해 보고 싶다.

 

영화 〈푸른 왜가리〉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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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전주에서 먹은 것들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하고 마치려고 한다. 사실 전국제에 오면 먹는 음식들은 항상 정해져 있다. 콩나물국밥, 불백, 중식, 카레 등등. 든든하게 먹기 어려운 영화제 기간에 금일옥의 불백은 항상 옳은 선택이다. 매년 먹던 음식들을 먹어줘야 영화제에 온 느낌이 난달까. 내년에는 꼭 동영커피의 바스크 치즈케이크를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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