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어, 프레임 너머로
인디즈 X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방문기
*관객기자단 [인디즈] 정다원 님의 글입니다.
'우리는 늘 선을 넘지'
선을 넘는다는 것은 단순히 경계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저곳으로 나아가는 능동적 행위이다. 우리는 늘 선으로 선명히 분리된 저 너머를 갈망해 왔고, 그 알 수 없고 아름다운 영역으로 가기 위해 끊임없이 선을 넘는다. 그리고 이는 우리를 가두던 프레임(Frame)을 확장하며, 우리는 끝내 각자가 바라던 곳에 도착하게 될지도 모른다.
2026.04.30 기차에서
4월 30일 22시. 나도 이름 붙이지 못한 어딘가에 도착하길 바라며 하루를 마친 무거운 몸을 이끌고 기차에 올라탔다. 개막식의 달뜬 기대감을 함께 즐기고 싶었으나, 사전에 잡힌 일정 탓에 그러지 못해 늦은 기차를 탄 참이었다. 무턱대고 쓸어 담은 내 상영 시간표를 그제서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극장은 구경도 못하던 때에 짰던 시간표여서일까, 쉬지도 못하고 극장에서만 보내야 하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아서 핸드폰을 덮은 채 눈을 감았다. 문득 故 안성기 배우의 별세 소식이 들려온 몇 개월 전이 떠올랐다. 지금과 비슷한 자세로 버스에 구겨져 앉아 영문도 모르게 흐르던 눈물을 닦았던 그때. 그 기억을 떠올리고 보니 두서없어 보이던 시간표에는 내가 사랑하던 모든 것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돌아갈 수 없는 그곳. 과거 같은 것들 말이다.

코리안 키드의 생애
영화의 거리에 도착하자마자 〈이방인〉(1998)을 보았다. 비 오는 듯한 필름 돌아가는 소리와, 생의 많은 부분을 빚진 얼굴이 또 나의 어떤 부분을 보여줄 때. 그러니까 저 프레임 너머로 내게 무언가가 다가온 기분이 드는 경험을 하며 비로소 영화제에 온 것이 실감이 났다. 영화에 나오는 두 종류의 이방인이 꼭 영화제에 온 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고향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이. 그리고 타향에서 두고 온 모든 것을 그리워하는 이. 영화에선 이 둘 모두 마음 둘 곳을 찾아 헤맨다. 나 또한 발 딛고 사는 일상에서 늘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다가, 프레임의 세계에 기어코 찾아와 다시 일상을 그리워하기를 반복하는 사람이다. 이런 이름 모를 감정들에 표정을 지어주는 안성기의 얼굴을 보며, 뜻 모를 외국어도 모국어처럼 다정히 들리게 하는 그의 어투를 들으며 문득 내가 한국 영화를 사랑하는 것은 우리만 공유할 수 있는 다정함이 좋아서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전주'국제'영화제까지 와서도 기어코 한국 영화만 예매하는 이상한 소신을 가진 사람이다. 이는 한국 영화에 대한 거창한 애정으로 읽힐 수도, 어떤 고집으로 읽힐 수도 있지만 나는 그저 내가 편히 들을 수 있는 특유의 다정함이 깃든 모국어가 좋아서 늘 한국 영화를 택한다. 그 모국어로도 표현이 안되는 말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한국 영화의 맥락들, 그 행간을 읽어내는 일이 좋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많은 헐리우드 키드들이, 씨네필이 자라날 때 나는 코리안 키드, 영화광으로서 영화를 사랑했다. 그런 내게 안성기라는 배우는 내 미묘한 감정들의 출처였으며, 때로는 형용할 수 없는 고향의 '다정함'이었다. 나는 '특별전: 조금 낯선 안성기를 만나다' 섹션의 영화들을 내내 보며 필름 시대로 향하고 있었다.
균열 끌어안기
과거를 돌아본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결핍과 균열을 마주하는 일이다. 디지털은 아날로그의 잡음과 딜레이를 없애며 발전해 왔지만, 그 매끄러운 재단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예컨대 비 한자락 내리지 않는 극장에 비 오는 듯한 노이즈를 만드는 필름은 우리에게 다시 보지 못할 빗속의 고독한 이미지를 만들기도 한다. 어쩌면, 필름이 돌아가며 나는 소음은 마치 음악의 메트로놈처럼 어떤 박자감을 부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린 이런 균열이 빚어낸 단 하나의 순간을 잃어버린지도 모른다. 이러한 예상할 수 없는 결핍이 있는 아날로그의 세계는 마치 깔끔히 정리되지 않는 우리네 삶과도 닮아있다.
이는 '라이브 필름 퍼포먼스: 이장욱 + 이민휘' 프로그램을 보고 들으며 더욱 선명해진다. 언젠가 아주 사랑했던 10년 전 앨범의 선율이 상영관을 채우고 그 위로 서걱대는 필름의 질감과 소리가 입혀질 때, 그 시차 사이에서 나는 묘한 위로를 느꼈다. 과거의 내가 사랑했던 음악이 연주되고, 그를 보며 만들어진 필름이 돌아가며 만들어진 충돌이, 과거와 현재 사이에 갈팡질팡하며 영화의 거리를 헤매던 나를 건져올리는 듯했다.
이름 붙이지 못한 곳
전주에서의 시간은 분명 휴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극장에서 극장을 달리는 여정이었고, 그 사이사이에 느낀 높은 밀도의 감정에 되려 피로를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 속 프레임을 넘어 이곳. 나의 현실에 여전히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있다는 걸 상기했다. 스크린 속 변치 않는 얼굴들처럼. 새로이 연주된 10년 전의 앨범처럼 말이다.
기차에서 내려 다시 일상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여전히 사랑하는 모든 것들과 함께 과거에서 현재를 넘어오듯 선을 넘다 보면, 비로소 나는 이름 붙이지 못했던 그곳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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