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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피나〉: 비언어의 시

by indiespace_가람 2026. 5. 19.

〈피나〉리뷰: 비언어의 시

* 관객기자단 [인디즈] 정다원 님의 글입니다.

 

 

말은 무력하다. 아무리 정교히 조각하여 만들어낸 문장일지라도, 그것은 결국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는 일 외엔 할 수 없다. 대상 자체가 될 수 없는 텍스트의 한계 속에서 우리는 종종 갈증을 느낀다. 텍스트와 통념이 얼마나 우리를 쉽게 가두는지 깨달을 때 비로소 움직임이 보인다. 

 

영화 〈피나〉 스틸컷


우리는 의자를 단순히 ‘앉는 도구’로 정의한다. 하지만 피나의 세계에서는 다르다. 누군가의 몸짓 속에서 의자는 결코 평온한 휴식처가 아니다. 그것은 때로 위태로운 순환의 고리가 되고, 텅 빈 무대를 의미로 가득 채우는 오브제가 된다. 이때 육체는 정신을 가두는 무력한 그릇을 벗어난다. 오히려 정신을 가장 가까이서 목격하고, 이를 날 것 그대로 번역해내는 가장 정직한 언어 체계가 된다. 이와 동시에 우릴 둘러싼 모든 것은 언어의 초석이 된다. 육체가 가닿는 모든 것이 언어다. 우린 이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영화는 말한다. 

 

영화 〈피나〉 스틸컷

 

영화는 피나 바우쉬의 단원들의 목소리(내레이션)와 그 목소리의 주인인 무용수의 얼굴 이미지를 따로 떼어 교차시킨다.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정돈된 고백과 달리, 카메라 앞 무용수의 얼굴에는 정돈되지 않은 감정이 머문다. 이는 ‘이미 말해진 것’과 ‘말해지지 못한 것’ 사이의 간극을 표현하는 가장 적확한 연출처럼 보인다. 때로는 열 마디의 묘사보다, 피나를 가만히 떠올리는 단원의 얼굴에 스치는 미묘한 표정이 더 와닿는다. 그녀를 구체적인 문장으로 설명하려 노력하는 내레이션보다, 그녀의 말을 떠올리는 움직임들이 피나라는 존재를 훨씬 더 가깝게 느끼게 만든다. 영화 〈피나〉는 이처럼 말 너머의 순간들을 정성스레 모아가는 피나 바우쉬에 대한 애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 〈피나〉 스틸컷


춤이란 내 생의 모든 이력을 남김없이 사용하는 언어이다. 무용수가 허공에 긋는 선 하나, 바닥을 딛는 무게감은 그가 통과해온 삶의 세월이 묻어난다. 모두가 직관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정확한 소통보다, 타인에게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 나만의 모호함이 중요한 이들이 모여 움직임을 만들고, 이는 영화가 되어 또 다른 개인적인 모호함을 낳는다. 모든 것이 규명되고 해설되는 세계에서 영화는 모호함을 추구하며 고유한 언어 체계를 확립한다. 따라서 움직임은 끝내 완전히 번역되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는 그 설명되지 못한 것들을 포착한다. 

말은 무력하다. 그리고 이 한계를 기꺼이 인정할 때, 그리하여 말을 잃은 그 침묵의 끄트머리에서 움직임이 비로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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