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즈_Choice]에서는 이미 종영하거나 극장에서 만나볼 수 없었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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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속의 그대> :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수빈 님의 글입니다.
이제 막 동거를 시작한 차경(한예리 분)과 혁근(이희준 분). 이들은 부부 같은 뒷모습만큼이나 서로를 향한 애정이 뜨거운 커플이다. 혁근은 차경의 입맛에 맞게 된장찌개를 끓이고, 차경은 혁근을 무릎에 뉘인 채 정성들여 귀를 파주던, 여느 평범한 저녁이었다. 차경의 절친한 친구인 기옥(이영진 분)으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플로리스트인 차경에게 꽃꽂이 작품을 달라는 전화였다. 혁근의 만류에도 차경은 씩씩하게 웃어 보이며 늦은 밤 집을 나섰다. 하지만 꽃을 전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자전거 브레이크 고장으로 사고를 당한 차경은 그 자리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사고 후 1년이 흘렀다. 하지만 차경의 둘도 없는 연인, 친구, 가족들 중 그 누구도 그녀를 떠나보내지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기억하거나 망각하거나. 더 이상 살을 맞대며 함께할 수 없는 이상,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속에 품고 살거나 아니면 아예 의식의 끝 혹은 무의식의 한켠에 묻어둘 수밖에 없다. 혁근과 기옥, 그리고 차경의 언니인 주경도 선택을 해야 했다. 혁근은 차경을 곁에 두기로 했다. 차경이 좋아하던 어항에 그녀의 뼛가루를 뿌리고 차경의 환상이 머무는 공간을 단단히 세워서 같은 세계를 살고자 했다. 하지만 차경의 죽음을 자각하게 하는 주변 인물들과 그가 사는 '현실' 속에서 환상의 세계를 지키는 일이란 불가능했다. 기옥은 망각하기를 택했다. 엄밀히 말해 기옥은 사고가 났던 그 날로부터 부단히 헤어 나오고 싶어 했다. 스스로를 가꾸며 새로운 사랑을 꿈꿨고 사고가 났던 자전거를 수리하며 스스로의 삶도 고치려 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주변 인물들로 인해 죄책감에서 조금도 멀어지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주경도 혁근처럼 차경을 기억하려 했다. 그녀는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기옥 곁에 머물면서 기옥을 평생 원망하고 저주하고자 했다. 하지만 기옥에 대한 원망은 오히려 스스로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왔다. 결국 잊으려고 하던 이도 잊지 않으려 하던 이도 모두 뜻대로 하지 못했다. 그 모든 악다구니와 눈물, 증오, 자기 암시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만 이들 곁으로는 현실에 발 붙였다면 피할 수 없는 '시간'이 흘렀다. 공평히 흐르는 세월 속에서 차경은 기억과 망각 어느 쪽도 아닌 ‘추억’의 언저리로 조금씩 흘러갔다.
환상속의 차경은 억울하게 죽어 구천을 떠도는 그녀의 원혼이라기보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만든 죄책감과 미련, 애타는 마음의 표상이었을 것이다. 꿈이든 현실에서든 차경의 환상을 마주하는 건 살아남은 자들이 겪는 이별의 통과의례에 가까웠다. 영화 말미에 이르러 차경이 살던 환상의 세계가 무너지고 나면 서태지의 ‘환상속의 그대’를 부르던 세 친구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환상 속에 그대가 있다. 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 환상 속에 아직 그대가 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은 진짜가 아니라고 말한다.’ 서태지의 노래를 들으며 세상을 노래하던 젊은 그들은 세월은 서른 즈음에 김광석의 노래도 듣지 않았을까.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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