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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인물과 공간을 기록하는 새로운 방식 <거미의 땅> 인디토크(GV) 기록

by indiespace_은 2016. 1. 27.

인물과 공간을 기록하는 새로운 방식  <거미의 땅>  인디토크(GV) 기


일시: 2016년 1월 23일(토) 오후 7 상영 후

참석: 박경태, 김동령 감독

진행: 신은실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수빈 님의 글입니다.


세 명의 여성과 그들의 생활공간, 그리고 폐허가 된 옛 기지촌 동네. 영화 <거미의 땅> 카메라에 담기는 전부다. 자신의 과거를 짧게 증언하는 박묘연씨를 제외하고 두 여성은 카메라를 향해 자신의 과거나 현재를 체계화된 언어로 전달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소리를 지르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연기를 하고 춤을 춘다. 화면 밖으로는 자녀에게 편지를 쓰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낭독한다. 이건 과거를 재현하고 현재를 표현하는 세 인물만의 방식이다. 감독은 규정화된 작업 방식으로 세 여성과 공간에 얽힌 기억을 낱낱이 기록하는 대신, 과감히 주인공들의 방식을 따른다. 또한 공간을 끈질기게 응시함으로써 관객들이 감각하는 대신 생각하고 상상하게끔 만든다. 이 지점이 <거미의 땅>를 특별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한파로 거리가 온통 얼어버린 시린 저녁, 인디스페이스에서는 <거미의 땅> 인디토크가 열렸다.


신은실 평론가(이하 신): <거미의 땅>의 박경태, 김동령 감독님 모셨습니다. 


박경태 감독(이하 박): 김동령 감독과 저는 기지촌에서 영화 작업을 하다 만나서 공동 연출을 하게 되었어요. 김동령 감독은 2008년 <아메리칸 앨리>라는 외국인 여성에 관한 다큐 작업을 했고 ‘두레방’이란 시민단체에서 활동했어요. 저는 2002년 <나와 부엉이>라는 작업을 하면서 기지촌 현장을 찾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나오는 박인순 씨와 함께 작업을 했고요. <거미의 땅>을 통해 많은 혼혈인들, 어머니들과 만나고 촬영하면서 점점 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어요. 저희가 이전에 활동할 때는 ‘기지촌’이라는 게 동두천이나 특정한 지역만 지칭했는데 알고 보니 경기 북부 모든 지역이 5-60년대, 그러니까 주한미군이 철수하기 전에 기지촌이었더라고요. 이전에 활동하면서 남성 혼혈인 박명수씨라는 분을 만났는데 그 분 기억을 쫓아서 두 번째로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기획을 했어요. 사라진 공간을 어떻게 재현할지에 대해 김동령 감독과 투어를 다녔죠. 사라진 공간에 대한 기록을 아카이브로 만들고 동네 분들 얘기를 들으면서 현장을 조금씩 찾았던 것 같아요.


신: 이 영화의 영문제목 ‘Tour of Duty‘에 여러 중의적인 의미가 있다고 들었는데 감독님 말씀을 들으니까 하나 정도의 의미는 깨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영화는 맨 끝 자막에도 나오지만, 이 영화가 박명수씨를 기리는 작품이란 걸 알 수 있어요. 우선 영화의 인물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데 말씀해주셨듯이 처음 언급해주셨던 <나와 부엉이>에서는 박인순 씨가 그림 작업하는 게 이미 등장했죠. 또 김동령 감독 전작 <아메리칸 앨리>와 연결시켜서 생각해보게 됐는데,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K라는 여성이 등장하잖아요. 생몰연도가 나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 영화를 다시 극장에서 보니까 K씨가 안성자씨가 찾던 어머니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실제로 생물학적 어머니라기보다 역사적으로 두 분이 인연이 있어서 연결된 것 같다는 생각을 혼자서 영화를 보면서 상상해봤어요. 영화에 등장하는 세 분의 이야기가 마음을 뒤흔들 수밖에 없는 이야기고 큰 인상을 주는데 이 세분을 어떻게 만나고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셨는지 김동령 감독께 얘기를 듣고 싶어요.


김동령 감독(이하 김): 사실 박경태 감독과 저는 영화를 찍다가 만났다기보다는 사실 의정부에 있는 기지촌 여성단체에서 박경태 감독님이 먼저 일하고 있었고. 저는 학교 졸업하고 자원봉사를 하러갔다가 발이 묶여서 파트 타임으로 일하다가 나중에 풀타임으로 하게 되면서 감독님을 만났는데 제가 담당했던 일은 외국인 여성에 대한 것이었어요. 필리핀과 러시아 여성과 주로 관계 맺기를 하고 있었고 그 결과물이 <아메리칸 앨리>이었어요. <거미의 땅>에 나온 분들은 박 감독님이 실태 조사를 하거나 해서 첫 만남이 이뤄진 경우였어요. 비화를 얘기하자면 기지촌에 계시는 나이든 여성들은 당시 저처럼 젊은 여성을 품에 안아주지 않아요. 권력관계가 생기다보니. 저한테는 쌀쌀맞았는데 박 감독이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사랑받았어요.(웃음)


박: 성격도 싹싹해야 해요.(웃음)


신: 제가 보증합니다. 박 감독님은 성격도 싹싹하시죠.(웃음)



김: 영화에 나오는 분들 말고도 10년 동안 알고 지냈던 분이 많은데 이 세 분만이 카메라를 받아들이셨고 카메라 앞에서 말이나 행동을 하길 원했기 때문에 세 분과 작업하게 되었습니다.


신: 첫 시퀀스의 박묘연 씨가 하는 얘기는 카메라 앞에서 하기 힘든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 전에도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두 분이 촬영 이전에 관계를 맺어 가실 때에도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거나 촬영 이전에 사전에 약속한 부분이 있었나요?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작업이 행해졌나요?


김: 바비 어머니 같은 경우는 6-70년대 양색시들의 회장이셨어요. 포주나 경찰 등에 대항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인 ‘민들레 협회’의 회장을 20년 정도 하셨어요. 그 분이 카리스마가 대단하셨어요. 파주 지역의 혼혈인이나 양색시들은 전부 다 바비 엄마를 알고 있고 마을의 일을 추진할 때에나 문제가 생겼을 때 바비 엄마를 찾아갔어요. 저희는 한 번도 바비 엄마의 일생에 대해 물어볼 수 없었어요. 함부로 말조차 꺼낼 수 없는 어떤 게 있었어요. 그런데 저희가 여러 가지 활동을 하다가 10년 정도 됐을 때 우리가 이러이러한 영화를 찍고 있는데 해주실 수 있냐고 말을 꺼냈고 흔쾌히 하겠다고 하셨어요. 선유분식에 매일같이 카메라를 들고 갔는데 도저히 입을 뗄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맨날 의자 찍고 설탕 찍고 간판 찍고 그러고 있으니까 어머니가 하루는 밤에 전화해서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오라고 할 때 “바깥양반은 집에 있고 자네만 오게”하시면서요. 그 때 ‘아, 드디어 때가 왔구나’ 해서 카메라를 들고 갔고 그 이후에 몇 번 인터뷰를 했는데 영화에 나오는 건 첫 번째 인터뷰예요.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처음에 갔을 때 바비 어머니가 기생에 관한 ‘화류춘몽’이란 노래를 한 수 쫙 부르시더니 살아온 얘기를 하셨어요. 어머니가 오히려 더 답답했다고 하시더라고요. 물어볼 것 같은데 안 물어보니까.


신: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바깥양반’이 박경태 감독입니다.(웃음) 박 감독님과 오래 작업하셨다는 박인순 씨는 바비 어머니와는 대비되는 성격이신 것 같아요. 두 분 다 존재감이 대단하시지만 박인순 씨는 바비 어머니처럼 지역 사회에서 오래 활동하시거나 사회적 관계가 강하다기보다는 그림을 통해서 본인의 자아나 경험을 이야기하시고 시카고에 있는 딸에게 편지를 쓰면서 본인의 감정이나 체험을 주관적이고 압축적이고 문학적으로 표현하시는, 예술가적인 심성을 많이 갖고 계시다는 게 느껴져요. 이 영화에서 <나와 부엉이>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담장 너머까지 가셔서 먹을 것을 뿌리면서 보통 우리가 쓰는 말 외에 다른 소리를 많이 내시기도 하고 몸이나 언어로 환원되지 않는 소리로 들려주더라고요. 그 다른 종류의 언어가 인상적이었어요. 박인순 씨는 평소에도 그림 그리는 것 외에 고수레를 많이 가시는지, 그걸 촬영하는 데에는 동의를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박: 생각을 해보면 바비 어머니 같은 경우는 삼고초려 하셨어요. 친해지기 힘들었어요. 사회적인 관계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시고 외부 시민단체나 기자, 영화하는 사람이 어떤 목적으로 하는지 명확하게 아셨죠. 촬영이 어떻게 소비되실지 다 아시고 있었어요. 그러다보니 영화라는 것으로 협업하는 과정이 길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서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어요. 어색한 사이였죠. 그런데 하루는 밥을 해주셨는데 딱 반찬이 저희 고향에서만 나오는 희소한 반찬들, 예를 들어 제사 끝나면 콩나물이랑 생선들 모아서 어젓들 가지고 조림 비슷하게 만드는 반찬이 있는데 그런 걸 내주시는 거예요. 알고 보니 같은 고향인 거죠. 거기에다가 어린 시절 갖고 있었던 협소한 동네의 문화, 음식에 관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일사천리로 풀리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면서 허물없이 지내기 시작했어요.


신: 먹는 걸 통해서 접근하셨군요.(웃음)


박: 원래 자막 끝에 종철 씨라는 분도 나오는데 이 분도 영화에 모티브가 됐던 분입니다. 정신지체가 있는 혼혈분인데 바비 어머님이 보살펴주셨어요. 그런데 뉴타운 때문에 외부에서 깡패가 들어오고 이 사람들이 술 먹고 두드려 패다가 이 분이 죽는, 살인사건이 일어난 거예요. 바비 엄마가 너무 억울해서 저에게 전화해서 이걸 외부로 알리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 때 형사들도 강력사건이 아닌 과실치사로 처리하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제가 시사인 기자를 섭외해서 경찰서 가서 따지기도 하면서 기사화 됐죠. 그 때 바비 엄마가 풀리신 것 같아요. 본인도 이런 거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셨던 것 같고. 어쨌든 찍자고 한 적은 없었어요. 항상 거리를 유지했죠. 그러다가 본인이 먼저 다가오셨고 그러다보니 구술사적인 방법이었죠. 자신의 기억을 서사적으로, 체계적으로 전달하고 경험담을 극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거죠. 인순 아주머니는 반대로 기억을 풀어내는 방법이 다르셨어요. 전쟁고아시다 보니 글자를 배우지 않으셨어요. 사람을 봐도 직감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신기로 받아들이는 거죠. 제가 어렸을 때 인순 할머니는 술을 드시고 맨날 고함지르고 다니시는 분이셨어요. 고통이 너무 심해서 심리 치료를 받으셨어요. 처음에는 항상 칼 들고 다녀서 무서웠어요. 분노의 표현을 많이 하고 계셨어요. 점점 저랑 작업을 하다보니까 (믿음 같은 게) 쌓인 것 같아요. 저랑 메뚜기 같은 거 잡으러 다니며 같이 놀기도 했고요. 

<나와 부엉이>를 보며 많이 비판을 했어요. 다큐라는 형식을 잡고, 그 때의 모토가 대상화시키지 않고 낯선 존재를 친근하게 받아들이는, 그들의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목표였어요. 결과적으로는 치료되는 과정에 정서적 위안감 등으로 관객들이 불편한 감정에서 탈출하는 걸로 했어요. 하지만 현실은 변화가 없는 거죠. 몇 년 뒤에 찾아가도. 문제는 거기서 생기는 거예요. 다큐멘터리라고 만들었는데 실제와는 다른 거죠. 오히려 저희는 <나와 부엉이>로 더 큰 픽션을 만든 게 아닌가 싶었죠. 영화가 어떤 의미에서 더 큰 픽션이라면 더 과장해서 그들의 트라우마로 들어가자 싶었어요. 바비 어머니는 바비 어머니의 방식대로. 바비 어머니의 구술사도 어떻게 보면 픽션일 수도 있어요. 자기가 경험한 시간을 압축적으로 서사화 시키는 과정이니까. 말을 잘하는 사람이 전달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거든요. 인순 할머니는 그림을 통해 더 극화시켜버리는 거죠. 하지만 문제가 뭐냐면 안성자 씨 얘기가 나오겠지만 몸을 통해 보여주는 방식으로 가는 거예요. 우리가 지금까지 역사라는 것, 팩트라는 것, 다큐라는 건 언어로 증언되고 체계적으로 전달되는 것에 한해서 인정해왔는데 그러다 보니 역사 속에서 비명소리, 그림, 몸으로 행동하는 것 같은 주관적인 건 인정되지 않은 거죠. 이번 기회에 공간 속에서 새롭게 다시 채집했어요. 그래서 문제제기 했던 건, “<나와 부엉이> 같은 것들이 다큐지만 오히려 픽션이다”며 솔직해지자 싶었어요. 첫 번째 방식은 구술사 적으로 증거를 모으는 것, 좀 더 나아가 버려지는 것,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기록. 아우슈비츠 같은 데에 보면 긁힌 흔적들을 최근에서야 발굴해서 채집하고 역사 자료로 보존하잖아요. 몸짓이나 비언어적인 부분이 오히려 사실이다 싶었어요.



신: 저도 그래서 특별히 더 <거미의 땅>이 더 생생하게 다가오고 좋았던 것 같습니다. 경우에 따라 글을 쓰기도 하고 말로 설명하며 여러분을 만나는데, 말이나 글은 영화를 보고 느꼈던 걸 표현했을 때, 천분의 일, 만분의 일도 안 되는 것 같아요. 말로 뭔가를 잡으려 할 때 손가락 사이로 많이 빠져나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두 번째 박인순 씨, 세 번째 안성자 씨를 찍을 때 새로운 방법론, 미학적인 부분이 더 생생하게 다가왔어요. 앞서 얘기해주셨듯이 언어 말고 다른 방식으로 본 자아를 표현하거나 존재하는 방식이 개성적으로 있다는 걸 느꼈어요. 안성자씨는 몸짓으로, 춤을 통해서도 얘기하시지만 춤 외에도 몸짓, 표정 같은 걸로 배우처럼 표현하시죠. 오히려 배우를 능가하는 연기력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영화를 통해서 들었어요. 박인순 씨가 본능적으로 외치는 고함과 몸짓뿐만 아니라 안성자씨가 몽키하우스로 짐작되는 공간을 돌아다닐 때 쾅 소리가 나서 놀라서 돌아가는 장면이 연극적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두 분을 촬영할 때 감독님이 임하는 방법론이 달랐을 것 같아요. 어떻게 작업하셨나요.


김: 바비 엄마와 박인순 씨 경우는 방법이 정해져있었어요. 카메라에서 취하는 포지션이 정해져 있었죠. 그 포지션을 어떻게 잘 살려서 촬영하느냐가 우리의 관건이었어요. 안성자 씨 같은 경우엔 가장 나중에 주인공 중 한 분으로 선택했는데 몇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어요. 우선 말씀을 정말 많이 하세요. 한번 이야기하면 쉼표 없이 세 시간을 말씀하세요. 그 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이상한 얘기가 많이 나와요. 주어와 목적어가 바뀌고, 시간이 바뀌기도 하고, 이 얘기가 안 끝났는데 다음 얘기로 넘어가기도 하고요. 말하자면 인터뷰의 퀄리티로는 너무 안 좋은 거죠.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죠. 그래서 박인순 씨를 촬영했던 방식처럼 그 분을 찍어보러 갔는데 가면 안성자 씨가 다 세팅을 해놓는 거예요. 원래는 보통 집안에서 머리를 감잖아요. 근데 아침에 가서 대문을 열어보면 마당에서 막 남편의 머리를 감겨 주고 계신 거예요. 사실 이 분이 ‘애니의 사랑’이라는 타이틀로 [인간극장]에 시리즈로 나왔던 분이예요. 혼혈인들이 얼마나 슬픈지, 한이 뭔지 전형적인 TV 다큐로 오래 찍으셨던 분이라 영화를 같이 찍는다고 했을 때 똑같은 걸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남편의 머리를 열심히 감기고난 후 그 머리를 빗으면서 “회장님, 오늘은 성경구절을 읽어주세요.” 이러면 남편 되시는 분이 성경을 막 읽고, 그런 식의 설정들이 있어요. 그걸 막 찍다보니까 안 되겠는 거예요. 근데 그래도 너무 찍고 싶었어요. 이 분이 사실은 알코올 중독인데 한번 드시기 시작하면 매일매일 일주일을 드세요. 그렇게 술을 많이 드실 때 저희가 찾아가면 괴성을 지르면서 난리를 치시기도 하고 그러는데 술이 깨면 저희한테 “미안하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꽃잎하나 들 힘이 없었다.”고 하기도 하고요. 그 분이 자기 자신을 생각하는 거나 전하시는 말이 저한테는 너무 괴상한 거예요. 박인순 씨와 안성자 씨 다 외부에서 보면 미친 사람이에요. 그런데 안성자 씨가 가진 과장된 몸짓이 저한텐 예뻐 보이는 거죠. 그래서 이 분을 찍고 싶은데 인터뷰도 안 되고 일상도 팔로우가 안 됐어요. 그럼 연기하고 세팅하는 걸 좋아하시니 그렇게 들어가 보자 싶었어요. 그래서 본인의 이야기와 본인이 들었던 이야기 등 여러 가지가 섞여서 이야기가 완성이 됐던 거예요. 현장에서도 이 분과 어떻게 작업해야 할지 몰라서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안성자 씨는 뭘 하길 원하시는지 그걸 알아차리긴 힘든데 본인이 의지가 굉장히 강하세요. 본인이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하는 거예요. 다 의미가 있다는 거예요. 박 감독은 약간 좀 과격하고 진보적이라 그런지 마음대로 하시라고 하는 스타일 이예요. 그러면 저는 막 뿔이 나고 그러는 거죠. 현장에서 신경전이 많이 있었어요. 앵글 잡는 것부터 시작해서. 얼마나 웃겼냐면, 안성자 씨 찍을 때 앵글이 서로 잡은 게 마음이 안 들면 지나가다 카메라를 쓱 쳐요.(웃음) 안성자 씨는 허구를 가지고 찍는데 제일 즉흥적이었어요. 약간 도박 같은 느낌이었달까요. 찍을 때마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찍었어요.


신: 이 영화에서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게, 안성자 씨를 통해 들어갈 수 있었던 ‘애니와 세라의 이야기'예요. 안성자씨가 시제나 인칭 같은 게 오락가락하면서 본인의 언어를 구성하는 방식이 애니와 세라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이미지를 구성하고 보여주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엔 빨래를 할 때 물을 뿌리면서 “세라야”하고 부르실 때는 ‘저 분이 좀 이상하신가? 귀신을 보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애니와 세라의 이야기 처음에는 본인이 애니이고 세라를 회상하는 방식이어서 그렇게 생각하고 따라갔는데, 몽키하우스에서 하얀 옷을 입고 방 복도를 걸어갈 때는 ‘저 분이 애니만 되는 게 아니라 세라도 되는 거구나’ 싶었죠. 나중에 홀하우스를 찾아갈 때는 애니와 세라를 자유롭게 오가기도 하다가 나중엔 아이를 낳고 미군에게 맞았던 얘기를 할 때는 이전에 출연하셨던 박묘연, 박인순 씨의 삶과 겹쳐졌어요. 처음에는 단순히 애니 얘긴지 세라 얘긴지만 따라가다가 나중엔 세 분의 이야기가 결합되기도 하고, 세라가 사라졌다는 내용이 나온 뒤 다시 16살 때 이야기가 나올 때에는 세라의 흔적을 찾고 기억하기 위해 우리 모두를 대표하는 존재, 집단기억의 대표로서의 존재로 보이기도 하더라고요. 안성자 씨 속에서 태어난 애니와 세라 이야기가 재밌었어요. 애니와 세라 이야기는 극적인 장치면서 보통 다큐에서 등장하지 않는 방식이고 다큐에서의 픽션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 장면에 공간, 창문이나 문이 많이 보일 때는 액자로 느껴지기도 해서 재밌었는데 그 부분을 구상하고 내레이션 하는 과정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박: 바비 어머니의 이야기에도 듣다보면 액자식 구성이 있어요. 지미를 자기가 입양해온 이야기가 있고 다시 낙태한 얘기가 있죠. 그 인터뷰가 파워풀해서 쓴 이유도 있지만 뭔가 고통이 많고 트라우마가 많은데 그것들이 덧대어지면서 표현된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안성자 씨의 애니와 세라 얘기는 10년 동안 들었지만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근데 이게 어떤 의미에서 보면 고통을 감당하는 하나의 방법이에요. 술을 마시거나 마약을 하거나 종교에 귀의하는 방식처럼 하나의 이야기를 덧대어가는 거죠. 그 구조를 파악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그리고 세라와 애니 얘기만 하다가 기지촌을 기억하는 것들을 넣기 시작했어요. 시간적인, 연대기적인 구성은 여기서 의미가 없어요. 오늘은 몽키하우스를 찍어보자고 하면 세라가 죽은 뒤의 먼 뒷얘기일 수도 있고 세라의 초기 얘기일수도 있는 거죠. 안성자 씨도 그 곳을 아니까 가서 이야기를 만들어요. 대강의 이야기 흐름에 맞게. 연기 같은 경우도 한 장면 한 장면 찍으면서도 조금씩 바꾸기도 했어요. 


신: 이 영화에서는 세 인물로 대표되는 역사적 기억이나 사건 외에 공간도 기억을 머금는 느낌이에요. 처음에 바비 엄마가 햄버거를 몇 십년동안 만들었다는 선유분식도 일상적으로 가는 분식점과 다르지 않지만 바비 엄마의 굴곡 있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보는 그 공간은 뭔가 다른 느낌을 줘요. 박인순 씨가 다니는 골목도 일상의 동네 골목 같은데 ‘라스베가스 클럽’같은 이름이 쓰인 간판들이 있어요. 이를 테면 오즈 야스지로 감독 영화의 간판이 다른 느낌을 주는 것처럼 간판들이 특별한 느낌을 줘요. 또 고수레하러 들어가는 공간도 마찬가지에요. 나무에 붉은 팻말이 붙어있는데 거기에 번호가 쓰여 있어요. 그 번호에는 어떤 의미와 기억이 분명히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안성자 씨의 경우에도 예수님 액자라든지 그릇 정리하는 찬장 등 집 구석구석 마찬가지고요. 김 감독님의 말을 들으니까 더 많은 상상이 가능해요. 경기도에 남아있는 기지촌 건물들도 많은 사연이 있을 것 같아요. 최근 TV에서 박정희 정권의 몽키하우스가 나왔는데 영화에 나오는 곳이 같은 곳인지 궁금했어요. 홀하우스라고 불리는 곳도 서로 비슷해 보이는데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거기에서 수첩도 발견하고 발견한 옷을 입고 춤추기도 하죠. 공간들을 발견하는 영화적인 작업과정이나 촬영하면서 에피소드를 말씀해 주세요.


김: 영화를 시작하면서 사실 세 분의 주인공이 정해지기 전엔 공간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로 만들자고 했어요. 중간에 실패한 것 같아요.(웃음) 사실은 다큐멘터리를 더 이상 찍기 싫어서 책을 만들기로 한 적이 있어요. 파주나 연천 같은 경기 북부 지역을 돌아다녔는데 그 때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어요. 지도를 펼쳐서 거기 나와 있는 모든 마을 중에 큰 곳은 다 기지촌이었다는 거죠. 경기 북부 기지촌을 다닐 때도 매우 쇠락해 보이는 데 뭔가 이상해서 물어보면 마을 이장이나 노인분이 여기 양색시가 500명이 살았다고 증언하세요. 옛날에 소설가 김승옥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대요. “남한 전체가 기지촌이었다”라고요. 쇠락한 마을에 시멘트로 만들어진 집이 있다, 그럼 느낌이 오는 거죠. 물어보면 그 곳은 보건소였다고 그래요. 양색시들이 강제적으로 검진을 받으러 가는 보건소가 마을마다 있는 거죠. ‘개미집’이라는 곳도 있는데, 복도가 있고 안에 방이 엄청 많고 방에 다 번호가 쓰여 있어요. 대부분 비어있고 노인들이 살고 계시는데 그 때 느껴지는 시간차는 마치 화석의 지층들을 연구하는 느낌이에요. 아무튼 그래서 공간을 주인공으로 하겠다는 기획서도 열심히 쓰고 그랬는데 공간만 찍으니까 정말 재미가 없더라고요. 폐허 포르노란 말이 있잖아요. 폐허만 찍으면 힙해보이는 뭔가가 있는데 그런 느낌을 야기하다보니까 ‘이건 아니구나’ 싶었죠. 공간만 주구장창 찍는다고 해서 기억을 복원해낼 수는 없겠더라고요. 어쨌든 공간이 기억과 연결돼야겠다 싶어서 다시 인물들을 찾아 나섰어요.


신: 이 영화 주인공이 ‘공간’이라는 생각이 확 들었던 게, 후반부에 나왔던 개발 부동산 가건물이 나오는 장면들에서예요. 그 직전 인서트 샷에 공사 안내 표지판에서 미군 철수 반환지역 안내가 나오면서 다른 장면이 들어가고 미군이 철수한 지역에 부동산이 개발되어서 파주에 큰 아파트나 건설회사 자본이 들어와서 대형 브랜드가 있는 부동산들이 들어서는 징후들을 보여주는데 그걸 통해서 공간이 단순히 폐허로 남아있는 게 아니라는 느낌이 들고 기지촌의 현재적 의미가 다가왔어요. 실제로 전선에 가까웠던 경기 북부에 기지촌이 많았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닌데 평소에 그걸 잊고 살면서 기억의 공간이 투기나 이윤으로 환원되고 기억이 소거되었다는 점이 그 숏을 통해 확 전해졌어요.



신: 오늘 <거미의 땅> GV가 마지막이 된 것이, 감독님 두 분이 곧 다음 작품 때문에 먼 데 가셔서라고 들었어요. 이 작품과도 연관이 있는 프로젝트라고 들었습니다.


김: 준비한지는 꽤 오래 되었어요. 두 번째 에피소드에 나오는 인순 할머니가 딸을 찾아서 미국에 가는 내용으로 준비 중에 있어요. 다음 주에 저희가 미국에 먼저 갈 예정이에요.


신: 시카고에 딸이 계신건가요? 2014년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다음 작품을 미리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셨어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라는 가제가 유효한지요.


김: 이 제목은 박인순 씨가 그린 그림 중 하나의 제목이에요. <거미의 땅>에 그 그림이 나옵니다.


박: 딸을 찾아가는 것과 미국에서 거리의 여성으로 살았던 걸 비슷한 방식으로 역추적하면서 만들어진 장면이 들어갈 것 같아요. 미국에서 한국을 찍은 아카이브도 찾아봐야 할 것 같고요. 일단 가봐야 할 것 같네요.



두 감독의 이야기를 들으며 진정한 협업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두 감독 모두 활동가로 기지촌 여성 공동체 곁에서 생활하다가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다큐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영화 작업의 화두를 이어오고 있다. 그 과정에서 여성들과 감독 간에는 단단한 유대가 형성되고 소통의 다리가 놓였을 것이다. 때문에 세 여성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곧게 기억을 꺼내보였고, 감독도 기꺼이 그들의 방식을 따름으로써 결과적으로 귀한 시각과 태도를 가진 영화가 탄생했다. 두 감독의 카메라는 계속해서 기지촌 여성들을 향한다. 이들의 끈덕진 관심과 진심이 얼음장 같은 현실에 균열을 내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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