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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언젠가 닿을 것이기에

by indiespace_가람 2024. 4. 18.

〈세월: 라이프 고즈 온〉리뷰: 언젠가 닿을 것이기에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예송 님의 글입니다.




'Life Goes On', 삶은 계속된다. 해답 같은 형용이지만 기묘한 질문이 연쇄되고, 마음 깊은 골 속엔 달갑지 않은 반감이 생긴다. 그 심리의 궤적이 위 답을 부정하고 싶기 때문인지, 혹은 터무니 없는 위로가 야속한 것인지 마땅한 결론이 서지 않는다. 

 

 

영화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스틸컷

 


2014년 4월 16일. 나는 중학교 1학년이었다. 제법 소란스러운 교실 분위기에 앞자리 친구를 불렀다. "무슨 일이야?" "어디 경기도 학교에서 수학여행 중에 바다에 배가 빠졌대." "아니, 21세기에 무슨 그런 일이 일어나? 사람들은 다 구했대?" "응. 거의 구했대." "다행이네." 어릴 때부터 유난히 잔병치레가 많았던 나는, 초등학교 시절 다리 골절로 인해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다. 수학여행은 십 대 시절의 가장 큰 이벤트인데, 가지 못했던 게 천추의 한이었다. "이거 때문에 수학여행 취소 되는 거 아니겠지?" 속도 없이 천진난만했다. 
그날 저녁, 집 앞 골목에 있는 분식집에서 엄마와 함께 떡볶이를 저녁으로 먹던 참이었다. "아까는 얘들 전부 구출했다고 했었는데…" 엄마의 혼잣말을 엉겁결에 들은 나는 반사적으로 마주 앉은 이의 시선 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작은 브라운관 TV, 뉴스가 한창이었다. 영상 속엔 바다 한가운데 배가 잠겨있었다. 그리고 귀퉁이에 적힌 '사망, 실종, 구조'. 실종 옆 숫자가 심상치 않다. 4월의 바다는 아직 찰 텐데, 참아낼 수 있으려나? 의문도 잠시 고개를 제자리에 두고 단무지를 집어 먹었다. 
내 전화번호조차 헷갈릴 정도로 기억에 미련이 없는데, 유난히 이날의 기억은 세밀하고 친절하다. 그리고 그 기억의 기저엔 슬픔도 어떠한 안타까움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특징이 있다. '돌아올 수 있겠지'라는 왠지 모르는 확신만 들었을 뿐.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등교 전 TV 속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로 실종자 수가 줄어들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마치 그 숫자가 바다의 찬 기운에 아이들이 이미 잡아먹혔다고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슬픔을 완전히 체감할 리도 없을 그 시절을 지나, 현재는 재학하는 학교에 의해 안산시 단원구에 거주하고 있다. 너무 어릴 적의 사건이라 날짜만 달랑 기억하며 이 곳에 상경했는데, 학교 기숙사 짐을 넣으러 현관문을 연 순간 처음 날 반긴 것은 노란 리본 장식이었다. 그리고 무섭게도 그 순간 돋아나는 소름이, 이 장소가 그날의 슬픔을 온몸으로 껴안고 있음을 방증하는 듯했다. 마치 역사 속에 박제된 서술로만 기억되던 ‘세월호’가 내 곁으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그제야 체감했다. ‘주변이 사라졌다.’

 

 

영화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스틸컷

 


 ‘세월호’의 기억을 담은 영화는 점차 다양해졌다. 참사의 증언을 샅샅이 들추는 영화가 있었다. 생존자들의 기억은 사료가 되었다. 사라진 학생들을 추모하기도 하였으며, 정부의 무능함을 탓하기도 했다. 그리고 10년이란 시간이 지나, ‘세월호’의 이야기는 잊어버린 친구와 가족의 이야기가 되었고, 빈자리의 공허함을 비추던 시점을 지나, 빈자리에 먼지가 쌓이지 않게끔 따스한 맨손으로 반듯하게 쓸어 넘기는 이들의 마음에 다가섰다. 〈세월: 라이프 고즈 온〉은 ‘세월호 참사’ 피해자의 유족, 예은 아빠(유경근)를 중심으로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씨랜드 수련원 화재 참사’를 관통하고 있다. 참사로 인해 자식을 잃은 이들은 비슷한 경험 속에 서로를 보듬고 있다. “그래도 제가 조금은 더 오래됐으니까, 안정은 됐다고 보는데...” 공유된 기억 속에선 진심 어린 안타까움이 쏟아져나온다. 
유경근 씨와의 대화로 진행되는 영화는 흔치 않은 희생자 가족들의 덤덤하고 평범한 일상의 목소리를 듣게 한다. 영화의 시작에서 유경근 씨는 과거의 에피소드를 풀어 놓는다. 딸과 딸 같은 친구들, 사준 음식을 맛있게 나눠 먹던 모습을 두 눈과 사진 속에 담아내는 아빠의 다정한 모습. 여느 가족의 유쾌한 에피소드처럼 느껴지는 것도 잠시, 우리는 사진 속 아이들이 현재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뒤통수 맞는다. 이 서술 방식은 영화 속에서 이들의 인터뷰를 보여주는 방식과도 연결된다. 가슴속에 슬픔을 묻고 사는 이들의 목소리가 담백하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참사의 현장을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서술할 줄 안다. 유족들은 그날의 사실을 들려주는 데에 망설임이 없다. 
영화를 읽는 우리라면 익숙할 문법인 ‘슬픔’의 문법을 묘하게 거스르고 있다. 피해자들이 슬퍼하는 단면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 보통의 날과 순간이 이어지고, 끼니를 챙겨 먹고 두 다리로 삶을 지탱하는 모습에 한 발짝 더 다가서 있다. 그렇다면 왜 영화는 기준 문법 정반대의 서술 구조를 택한 것일까? 

 

 

영화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스틸컷

 


‘비-일상의 격동과 울림에 따라 일상은 그 이상의 무게를 갖게 한다.’ 우리는 정반대의 구조에 다가서면 이 해답을 얻을 수 있다. 기존의 영화 문법은 울음 가득한 유족들의 모습을 비추었다. 참사의 현장에 대한 소식은 타인에게서 읊어지고, 기다리던 유족들은 단호한 확언과 암담한 예견에 무너져 내렸다. 가족 잃은 슬픔으로 내리 눈물을 쏟는 모습에 우리는 공감하고 동화되었다. 관객은 그를 통해 함께 슬퍼할 수 있었다. 그러나 ’피해자‘라는 명칭을 더 견고하게 만드는 위의 문법 속에서 상심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있고 유족들은 기다리며 수용하는 존재가 된다. 다시 말해 ’피해자‘의 역할을 벗어날 수 없는 존재로 영상 속에 각인된다. 그 한정된 그릇은 유족들의 회복과 치유의 과정을 가끔 묵인한다. 
때문에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속 인물들의 반듯한 자세에서는 이질감이 느껴진다. 이 속에서의 유족들은 지난 사건에 대해서 또렷하게 전달한다. 잃어버린 자식의 신체를 찾기 위해 자신이 어떠한 행동을 했으며(대구 지하철 참사), 사건의 진위를 올바르게 고하고(씨랜드 수련원 참사), 그것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도 기억한다(5.18 민주화 운동 이한열 열사). 관객은 일상의 소리로 뱉어내는 비-일상의 이야기를 들으며 분열과 혼동을 느낀다. 그리고 유족들은 그 자세를 자식을 위한 애도이자,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게 내 아이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라고 칭한다. 

 

 

영화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스틸컷

 


앞서 ’삶은 계속된다‘라는 말을 떠올렸을 때 겪는 혼동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모호함과 상투적임에서 파생된다고 본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상념은 매년 초 우리를 뒤따르기도 한다. 그리고 위 질문을 유족들에게 연장하였을 때, 과연 이들은 어떻게 가족을 향한 애도를 표해야 하는가로 이어진다. 남은 세월 동안 어떠한 방식으로 나의 아이를 그리워해야 할까. 각자의 방식은 다르다. 그들은 그리운 이에 대한 대답을 영화 속 모습을 통해 밝히고 있다. 
나는 2024년 4월 16일, 안산에서 열린 세월호 10주기 기억식에 다녀왔다. 250명의 이름이 차례대로 불리는 데, 호명될 때마다 얼굴도 모를 그들의 얼굴을 상상하며 이름을 한 번씩 곱씹었다. 세상에 더 많이 불릴 이름들의 기회가 사라졌다. 
이 잠시 잠깐의 호명으로, 뒤를 돌아 행복한 추억을 마주하고 끌어 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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