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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단평] 〈바람의 세월〉: 기록함으로써 맞설 수 있다고

by indiespace_가람 2024. 4. 16.

*'인디즈 단평'은 개봉작을 다른 영화와 함께 엮어 생각하는 코너로,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인디즈 큐'에서 주로 만날 수 있습니다.

 

 

 

기록함으로써 맞설 수 있다고

〈바람의 세월〉 〈공범자들〉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수영 님의 글입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우리는 왜 아직도 제자리걸음인 걸까. 〈바람의 세월〉은 2014년 4월 16일 304명의 사상자를 자아낸 국가적 참사 피해자들을 기록한 아카이브 다큐멘터리다. 평범한 부모에서 세월호 가족협의회가 되기까지. 그들이 거쳐야 했던 풍파의 시간은 푸티지의 형태로 재구성되고, 인터뷰를 통해 2024년 지금의 유가족들과 맞닿는다.

 

약 3,650일 동안 유가족들은 분향소를 설치했다가 철거했고, 안산부터 팽목항까지 두 발로 걸어 냈다. 여러 차례의 단식과 삭발, 청와대 노숙, 당 사무소 점거 그리고 농성을 계속했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많은 것이 변하지 못했다. 10월 31일 이태원으로, 5월 18일 광주로 가지를 뻗어내며 겹치는 눈물 자국은 ‘왜 아직도 세월호 얘기를 하냐’는 고리타분한 지적에 통쾌히 답을 내보인다.

 

 

영화 〈바람의 세월〉 스틸컷

 

 

결말을 아는 투쟁임에도 불구하고 〈바람의 세월〉은 무기력하지 않다. 카메라가 담은 유가족은 단순히 납작한 스크린 속 인영이 아니다. 그들은 살아있다. 절규하고 오열하면서도, 침묵하고 기다린다. 누구보다 시끄럽게 소리 지르면서도 정중하게 부탁한다. 수동적인 피해자의 전형에서 벗어나 주도적으로 의견을 주창하고 담론을 생산해 낸다. 이들이 정치적인 집단이어서 그렇다는 모욕은 사절한다. 그 누구도, 이렇게 되기를 바랐던 이는 없다. 얘기하지 않으면 아무도 보지 않으려는 상황 속에서 유가족들은 끝없이 저항한다.

 

그렇기에 〈바람의 세월〉 속 카메라는 누구보다 적극적인 투쟁 수단이 된다. 잊으려는 시도 속에서 살아남겠다는 다짐. 이를 악문 내레이션마저도 구슬프게 들리는 이유는, 흩어지는 발음 속에서 그들의 결기가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계속해서 존재를 지우고 그들을 이용하려 하는 수많은 사람 앞에서 꼿꼿이 서기 위해 유가족들은 카메라를 택했다. 사실을 적시하는 것만으로도 저항이 되는 세월이기에 카메라는 10년 전 그날부터 지금까지 멈추지 않는다.

 

 

영화 〈공범자들〉 스틸컷

 

 

비슷한 시기,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기록한 영화가 있다. 영화 〈공범자들〉은 이명박부터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언론이 겪어야 했던 수많은 탄압의 시도를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기자라는 직업적 특성으로 〈바람의 세월〉보다 적극적으로 고위 인물들에게 접근하지만, 제 발로 자리를 박찬 사람들을 담아냈다는 점이 유사하다.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위기감과 이러면 안된다는 부당함의 감각이 그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단순히 불만 많고 욕심 있는 사람들의 이권 다툼이 아니다. 우리가 움직여야 다음 세대를 지킬 수 있다는 사명, 그리고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옳지 않다는 고리타분해 보일지 모르는 윤리적 당위가 수많은 사람을 움직이게 했다. 좌천당하고, 파면당하고, 모욕당할지라도 그들은 카메라를 들고 기록했고 더 나아가 질문했다. 마치 〈바람의 세월〉 속 유가족들이 거리에 나와 노래를 불렀던 것처럼.

 

작년 11월 KBS 사장이 교체됐고 ‘역사 저널 그날’이 하루 만에 편성표에서 사라졌다. 7월 오송에서는 14명이 부실 공사로 인해 물속에서 사망했고 10월 서울 한복판에서 몇백 명의 사람들이 서로의 무게에 짓눌려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 참사는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을 잊으려는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카메라를, 발걸음을 멈춰서는 안된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우리, 그리고 떠나간 이들을 위해서라도.

 

*작품 보러 가기: 〈공범자들〉(최승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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