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바람의 세월〉: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by indiespace_가람 2024. 4. 15.

〈바람의 세월〉리뷰: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윤정 님의 글입니다.

 

 

매일 수십 번씩 이름 모르는 사람들의 곁을 지났지만 막상 나의 공간에 들어서면 그들의 존재를 쉽게 잊었다. 누군가의 영원한 부재를 경험했을 때, 쉽지는 않았지만 마음 속에 묻었던 날들도 있었다. 나 홀로 안온한 날들 사이에서 그럼에도 연고 없는 타인의 부재가 감정적 공허를 넘어 텅 빈 공백으로 남아있는 날이 있다. 모든 것이 탄생하듯 느껴지는 4월의 어느 날, 어김없이 과거로 돌아가게 하는 부재의 시간들이 모여 어느새 10년이 되었다. 상실이 발생한 자리에 지금 무엇이 남아있냐 묻는다면. 

 

 

영화 〈바람의 세월〉 스틸컷

 

 

〈바람의 세월〉은 2014년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로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을 기다리는 10년, 3654일의 시간을 보여준다. 끝내 부재하게 된 사람들과 그 부재를 온 몸으로 경험하는 사람들을 응시하는 카메라의 시선은 그간 볼 수 없던 새로운 시점인 당사자 시점을 공유하도록 허락한다. 완전무결한 피해자성을 요구하는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대응 속에서 각자들은 나 되기를 넘어 우리가 되기까지의 연대의 순간들을 통해 발언의 기회와 공간을 만들어냈고 무수한 왜곡의 말들을 걷어내는 시도를 보여준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단원고등학교, 진도 팽목항, 안산 합동분향소, 국회의사당, 광화문 광장을 거스르는 시간과 공간들의 흐름 속에서 일례 없는 감정의 고통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꺼이 나누어 주기에 이른다. 어떻게 우리는 개인을 넘어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까?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의 구절을 빌려 고통의 확장과 사랑과 연대의 가능성에 대해 답하고 싶다.  


 

감정이입 덕분에 당신은 고문, 배고픔, 상실의 느낌을 상상할 수 있다. 당사자를 당신 안으로 불러들여, 그들의 고통을 당신의 몸이나 가슴, 혹은 머리에 새기고 그 다음엔 마치 그 고통이 자신의 것인 양 반응한다. 동일시라는 말은 나를 확장해 당신과 연대한다는 의미이며, 당신이 누구와 혹은 무엇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정체성이 구축된다. 신체적 고통이 자아의 신체적 경계를 정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동일시는 애정 어린 관심과 지지를 통해 더 큰 자아라는 지도의 경계선을 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정신적 자아의 한계는 더도 덜도 말고, 딱 사랑의 한계다. 그러니까 사랑은 확장된다는 이야기다. 사랑은 끊임없이 뭔가를 덧붙여 가고, 가장 궁극적인 사랑은 모든 경계를 지워 버린다.  


 

살아있는 모든 이에게 상실과 부재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리고 동시에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와 그 누구도 이 경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무릇 납득할 수 없는 방식으로 찾아와 갑작스러운  외로움을 딛고 자아를 넘어서는 고통으로 사랑의 한계를 확장하던 영화 속의 외침과 얼굴들을 이제는 기억한다. 반복되는 사회적 참사의 순환을 끊어내고, 사무치는 슬픔과 상실의 외로움을 경험하는 이가 없도록, 가장 순수하고 선한 마음들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제는 감히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바람의 세월〉 스틸컷

 

 

외로움과 고통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음을 연대하는 세월호 참사 당사자들을 통해 경험한다. 그들이 움직이고 행동하는 동기는 좁은 의미에선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상실과 부재이고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들을 그저 지켜볼 수 없음을, 그리고 시간이 지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 이는 결국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거대한 거룩한 사랑의 움직임이다. 그러니 더욱 많은 사람들이 결국 이성보다 감성의 영역으로 충분히 슬프고 아파했음 좋겠다. 10년의 시간이 무색하게 앞으로의 모든 날들 동안 처음인 것처럼 아파하고 하나의 고통을 같이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2014년 4월 16일을 기억할 수 있는 물리적인 공간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바람의 세월이 지나면 모든 것이 부식되어 사라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법칙이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바람이 끝내 아스러지더라도, 꽉 쥐어진 주먹의 감각마저 사라져 버릴지 언정 다시 한 번 끝 없는 여정을 향해 다시 한 번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바람만은 같은 숨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몸을 자유롭게 이어준다.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어루만지며 나아가는 바람이 그저 슬픔으로 남아 흐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담아 곳곳에 존재하길 바란다.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이들도, 그들의 존재를 기억하는 사람도, 슬픔과 상실의 무게를 감당해야할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홀로 외롭지 않도록. 천개의 바람들이 그 누구도 외롭지 않게 모든 보이지 않는 마음들을 어루만지고 사라지는 모든 존재들을 위해 노래 부를 수 있기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