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딸들〉리뷰: 공간이 머금은 이야기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지윤 님의 글입니다.
양경인과 파치스, 두 사람은 그날의 딸들이다. 제주 4.3 항쟁에서 어머니와 언니, 오빠를 잃은 생존자의 딸 양경인, 르완다 제노사이드에서 남편과 아빠, 이모, 삼촌을 잃은 생존자의 딸 파치스. 이들은 1948년 4월의 제주와 1994년 4월의 르완다 사이의 46년이라는 시간을 고이 매만지며 서로의 공간에 동행한다. 제주와 르완다를 오가며 그날의 딸들은 서로에게 화자와 청자가 되어 공간이 머금은 이야기를 말하고 듣기 시작한다.
그날의 딸들이 만나 서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간은 이들 자신의 공간에서도 벗어나 자주 외부로 향한다. 테이블을 두고 앉기보다 계속해서 바깥으로 움직이며 펼쳐지는 대화는 그 움직임으로 이들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양경인과 파치스는 어머니의 4월로부터 한 세대의 시간을 가지지만, 각자의 4월로 잃은 어머니의 가족은 곧 자신의 가족이며 이들의 이름을 호명함으로써 다시 4.3과 제노사이드는 양경인과 파치스의 움직임을 만든다. 제주 4.3항쟁의 증언을 채록하고 4.3을 기록하는 구술 작가로 활동하는 양경인과 한국에서 유학 중인 르완다에서 온 파치스. 영화를 통한 이들의 만남은 언뜻 멀게만 느껴졌던 이들의 시간을 단숨에 묶어내고 다시 서로의 움직임을 이끌어낸다. 양경인이 들려준 자신의 증언 채록 이야기는 파치스가 ‘그날’의 사람들과 만나며 1994년의 이야기를 제대로 마주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한다. 그렇게 파치스는 르완다로 향한다. 그 옆은 파치스의 손을 맞잡고 양경인이 함께한다. 1994년 제노사이드가 일어난 공간을 옮겨가며 생존자들을 만나 증언을 채록하듯 이야기를 듣는 파치스와 양경인의 옆에서 영화는 함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게 르완다의 자연이 머금던 1994년의 이야기와 1948년의 제주가 만나 아픔과 슬픔을 읽어내는 마음의 크기와 힘을 기록한다.
파치스는 다시 양경인과 함께 제주로 향한다. 4.3을 겪은 생존자의 집을 함께 찾아가고 4.3 평화공원을 함께 찾다 서귀포의 정방폭포로 향한 그들은 제주도의 자연을 앞에 두고 공간이 머금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1948년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역사의 공간이면서도 바다로 이어지는 높은 폭포의 자연경관이 많은 사람들을 찾게 만드는 명승지로서 존재하는 정방폭포에서 양경인이 파치스에게 공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 장면에서 역사와 아픔, 슬픔과 자연은 한데 뒤섞여 있다. 그렇게 공간은 이야기를 머금고, 슬픔을 머금고 그렇게 한 자리에서 묵묵히 존재하며 기억된다.
이 영화의 영제는 〈April Tragedy〉이다. 1948년과 1994년의 4월을 각자 품던 그날의 딸들이 함께 같은 공간을 머물며 4월의 시간들을 이어내는 동안 이들의 움직임은 ‘함께’였고 ‘연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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