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독립영화 53호]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사업 참여 활동가 좌담회: 지금 단편 영화와 매개의 문제

by indiespace_가람 2024. 4. 12.

 지금 단편 영화와 매개의 문제 
독립⦁예술영화 유통배급지원센터 인디그라운드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사업 참여 활동가 좌담회


참여
김윤정, 김태현, 박이빈, 이수영(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성림(독립⦁예술영화 유통배급지원센터 인디그라운드)

 


진행⦁기록⦁정리
임종우(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독립⦁예술영화 유통배급지원센터 인디그라운드(이하 “인디그라운드”)는 2020년 코로나19 속에서 문을 열었다. 오프라인 영화 관람 문화가 크게 위축되면서 독립영화 혹은 영상콘텐츠산업의 디지털 대응 문제가 전면으로 올라왔다. 이런 상황 속에서 독립영화 라이브러리는, 특히 그 안에서 운영되는 온라인 상영관과 같은 사업은 작지 않은 의미를 만들어 냈다. 그렇다면 이제 독립영화 라이브러리는 어떠해야 할까? 어떤 목표를 수립해야 할까? 어떤 미래를 바라보아야 할까? 온라인 상영관 큐레이션 기획에 참여한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관객기자단 인디즈 4인(김윤정, 김태현, 박이빈, 이수영)과 인디그라운드 유통배급지원팀 박성림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인디그라운드 -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작품 리스트.



임종우: 인디그라운드와 함께하는 인터뷰이지만, 우선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관객기자단 인디즈(이하 “인디즈”)를 만나 무척 반갑다. 나도 비평 활동 초반 인디즈에 참여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기사를 읽고 현장을 지켜보면서 응원하고 있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김태현: 독립영화를 좋아하고 이리저리 감상을 남기고 있는 김태현이다.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큐레이션에 참여했다.

김윤정: 종종 글을 쓰고 말하는 김윤정이다.

이수영: 나는 인디즈 19기와 20기 활동하고 있는 이수영이다. 인디즈로 활동하며 영화를 비롯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다양한 매체를 탐색하고 있다.

박성림: 나는 인디그라운드 유통배급지원팀에서 일하고 있는 박성림이다.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관련 업무 전반을 담당하고 있다.

박이빈: 학교에 돌아가지 않고 인디즈 활동하는 박이빈이다. 관심사가 맞닿아 있는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과 서울동물영화제 등에서 관객 심사를 경험했다.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큐레이션에 참여하면서 단편 독립영화를 조금 더 말랑말랑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인터뷰에 참여하게 되었다.

임종우: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박성림 팀장께서 먼저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사업에 관해 설명해 주면 좋겠다.

 

 

 



독립영화 라이브러리의 가치와 역할

박성림: 독립영화 라이브러리는 인디그라운드 시작할 때부터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업이다. 인디그라운드에서 시작된 일은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독립영화배급지원센터를 운영, 독립영화 라이브러리를 구축하고 공동체상영 등을 지원하려고 했다. 이러한 역사가 앞에 있다. 인디그라운드가 만들어지면서 앞선 사업을 이어가려는 의지가 있었다. 
지금의 독립영화 라이브러리는 첫째, 독립영화 몇 편을 선정하여 1년 동안 온라인 상영을 통해 관객을 만나도록 지원한다. 둘째, 이 작품에 대한 공동체상영을 지원한다. 그리고 셋째, 청소년 영화교육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관람 가이드 등을 개발하고 학교, 기관, 단체 등과 매개한다. 마지막으로 독립영화 라이브러리는 아카이브의 역할도 생각하고 있다. 한국영상자료원이나 영화진흥위원회에서도 아카이브나 데이터베이스가 있지만 인디그라운드는 독립영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임종우: 소개해 주셔서 감사하다. 매해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공모에 많은 작품이 들어오는 걸로 안다. 하지만 선정 규모는 크지 않을 테다.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선정하는지 궁금하다.

박성림: 많은 독립영화를 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인 제약이 있다. 우선 독립영화의 생태계 혹은 지형도랄 것이 변화했다. 독립영화도 상업영화와 유사한 경로로 개봉하고 있고, 단편 영화의 경우 전문 배급사도 생겼다. 유통배급 환경에서 이해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나서, 작품이 동시대성을 가졌는지, 인디그라운드가 지향하는 방향에 부합하는지, 교육적 가치를 보유하고 있는지 다양한 관점에서 본다. 단편 영화의 경우 영화제 최초 상영 후 1년이 지난 작품을 지원한다. 다시 돌아와 장편 영화와 단편 영화 합쳐 평균 700여 편의 작품이 접수되는데, 선정위원회를 구성하여 심사하고 있다.

임종우: 인디즈 분들에게 질문하겠다. 그렇다면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사업에서 인디즈 분들이 수행한 역할을 스스로 어떻게 설명하게 되는지 궁금하다. 그 역할을 당사자는 어떻게 의미화하고 있나?

박이빈: 큐레이팅에서 큰 주제로 묶을 수 있고 작은 주제로도 묶을 수 있지 않나. 자유로우면서 어지럽기도 했다. 작품 감상에 있어서는 당시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문제들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 큐레이팅할 때는 작품에 대한 선호와 별개로, 각각의 작품들이 스스로 하고 싶은 말을 잘 전달하고 있는지 살펴보면서도 하나의 큐레이션이 내가 아닌 관객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일지 고민했다. 개인적인 물음에서 시작한 것이 어떻게 관객 보편의 경험으로 닿을 수 있을지 생각했다.

이수영: 확실하게 목적을 가지고 보게 되기는 했다. 평소 영화를 볼 때는 재밌는지 재밌지 않은지를 판단했다면, 이번에는 어떤 업무로서 작품을 보면서 “왜 독립영화를 봐야 하는가?”에 답할 수 있는 걸 찾으려고 했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상업영화가 자본 혹은 대중과 타협하면서 잃게 되는 것, 드러내지 못하게 되는 것을 가진 독립영화를 선택하고 싶었다. 내가 정말 이 영화를 진심으로 추천하고 싶은지 물었을 때 망설이게 되는 작업도 있었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 영화가 어떤 의미가 있을 수 있는지 오늘 독립영화를 보는 사람에게 나는 왜 이 영화를 소개해야 하는지 되새기고 질문하는 과정이었다. 

김윤정: 지금까지 취재와 비평 활동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다른 견해를 제시함으로써 내가 해석하는 것을 보여주는 거다. 그래서 큐레이션을 구성할 때도 지금 사회에서 우리가 말했으면 하는 이야기나 하고 싶은 메시지에 관심을 기울였다.

김태현: 나는 영화를 일반 관객보다 먼저 본 또 다른 관객의 관점에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짧은 기간 안에 많은 영화를 보니까 어떤 경향 같은 게 읽혔다. 소재뿐만 아니라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어떤 흐름을 보았는데, 한 명의 관객으로서 이 방향을 지지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이 영화들이 각각 어떤 문제를 말하고 있고 어떻게 논의를 끌어나가고 있는지 문제를 지켜봐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나의 큐레이션으로 관객이 이러한 부분을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권유 혹은 제안의 맥락이 있지 않았나 싶다.

박성림: 우리가 원하는 바는 결국 관객이 독립영화를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또 다채롭게 해석하며 대화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야 함께 독립영화를 보는 게 가치 있을 테다. 어떻게 다양한 시선을 확보할 수 있을까, 인디그라운드 안에서 혹은 기성 독립영화인 안에서 가능할까? 이러한 질문 끝에 인디즈 분들께 참여를 제안했다. 큐레이션에 정답은 없기에 누군가는 이 결과에 동의할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이게 큐레이션 작업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임종우: 직업 비평가로 일하면서 느낀 것이 나의 글쓰기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지면에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해관계가 개입했을 때 그것과 타협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하게 되는 부분이 있고 그래서 아쉬울 수 있겠다. 행정가 혹은 실무자로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어떤 협상 속에서 확장하고 성장하는 경험도 있지 않나 싶다. 조금 더 질문하고 싶다.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를 거점 삼아 하는 일상적인 인디즈 활동과 인디그라운드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큐레이션 활동에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박이빈: 평소 인디즈 활동은 오프라인 영화관 기반임에도 온라인 같고, 독립영화 라이브러리는 온라인 중심 사업임에도 오프라인 같았다. 반대의 경험을 했다. 인디즈에서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지만 비평을 쓸 때는 결국 혼자 컴퓨터를 켜고 작업을 하지만, 독립영화 라이브러리는 온라인으로 각자 영화를 보지만 큐레이팅은 가능한 직접 만나서 함께 하려고 했기 때문이 아닐까. 어떤 자료든 다 같이 읽고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임종우: 나는 인디즈 활동할 때 낮에 영화관에서 작품을 보고는 했다. 낮에 가면 거의 혼자 영화를 보게 되지 않나. 영화관에 있지만 혼자 집에서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글도 혼자 집에서 쓰게 되고 말이다. 지금 말이 어떤 뜻인지 알겠다.

이수영: 나는 크게 다르다고 느끼지 않았다. 인디즈라는 이름으로 생산하는 글과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콘텐츠의 일부로서 나오는 글 모두 관객에게 한 번 더 영화를 보여줄 기회를 얻게 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인터뷰 주제 중 하나가 단편 영화인데, 나는 영화제에 가면 단편 영화를 꼭 보려고 한다. 이번이 이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비평이든 큐레이션 서문이든 해시태그이든 영화를 다시 한번 관객에게 노출하는 데 의미를 둔다면 이것들 사이에 큰 차이가 있지는 않다고 본다.

임종우: 공감한다. 독립영화 비평 분야에서 일하며 느끼는 아쉬움이 있는데, 바로 관객과 독자 트래킹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글과 활동이 관객에게 어떤 영향, 어떤 임팩트를 주는지 추적하고 측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지금 작업을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평가하고 전략적으로 다음을 기획하고 변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지금 독립영화 노동 환경에서 어떤 일을 얹는 게 미안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필요한 일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김태현: 인디즈 기사를 쓸 때는 과감한 비판은 어려워도 어느 정도 자의식이 들어갈 수 있는 여지가 있었는데, 독립영화 라이브러리에서 글을 쓸 때는 관객에게 소개한다는 취지를 생각하면서 나의 자의식을 조금 덜어내려고 했다. 그게 차이일 수 있겠다.

이수영: 나는 완전 반대로 생각했다. 인디즈를 할 때는 나쁜 얘기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되도록 좋은 부분을 보려고 했고 구조와 형식 등을 분석하는 데 집중하면서 작품에 대한 나의 주관은 많이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다. 반면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큐레이션에서는 왜 이 영화가 좋은지, 왜 중요한지 미래 관객을 설득해야 하다 보니 나의 의견이 많이 들어가게 되었다. 반대로 느꼈다는 게 재밌다.

김윤정: 나는 인디즈 활동의 좋은 점 하나가 글을 쓴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다는 부분이었다. 한 사람이 한 영화를 어떻게 종합적으로 보고 있는지 그 맥락을 확인할 수 있고,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만나 생각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참 좋다.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큐레이션 활동은 그 두 개가 하나로 모이는 경험이었다. 작품 하나하나가 가진 문제는 결국 현상인데, 현상이 현상으로 남으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적지 않나.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내가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으로서 현상이 해석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뻗어나가는 것, 그 과정에서 담론을 제기하는 역할을 우리가 크고 작게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우리의 영화 글쓰기에 더욱 많은 의견을 담고 또 그 글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더 많이 듣고 싶다.

 

[사진] 2023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작품 중 일부.

 

 

독립영화 라이브러리에서 단편 영화와 매개의 문제

임종우: 비평 주체로서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참여 경험이 어떤 의미인지 들어보았다.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하다. 그럼 다시 인디그라운드는 어떻게 이 사업을 평가하는지 들어보고 싶다.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사업이 독립영화, 특히 단편 영화의 유통과 배급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나.

박성림: 어려운 질문 중 하나였다.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사업이 과연 지금 독립영화의 유통 배급에 큰 영향을 주고 있을까? 내부적으로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단편 영화가 국내에서 어떻게 유통되는지 이야기해 보자. 우선 영화제가 있다. 그곳에서 먼저 관객을 만난다. 배급사가 있는 작품이 있고 없는 때도 있다. 영화제 이후에는 대부분 공동체상영 혹은 커뮤니티 시네마 활동 안에서 소비된다. 그 외에는 IPTV나 대중매체를 통한 방영이 있겠다. 전통적으로는 이렇다. 
그런데 최근에는 OTT에서도 많이 소개된다. 다만 OTT를 두고 창작 주체와 배급 주체 사이에 관점 차이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뉴미디어 영역은 현재 개척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인디그라운드에서는 온라인 상영을 실험, 전개하고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직 의견 차이가 있다. 무료 상영이라 저항감이 있고 돈을 받지 않는 온라인 상영이 단편 영화의 유통배급 활성화로 이어지는지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도 당분간 “볼 수 있는 기회”를 늘리는 게 우선이라고 보고 있다. 어떻게 해야 지금까지 독립영화 혹은 단편 영화를 만나보지 못한 사람과 접점을 만들고 경험적인 틈새를 줄일 것인가 깊이 생각하고 대화하는 중이다.

임종우: 인디즈 분들에게도 다시 한번 질문을 드리고 싶다.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큐레이팅 활동에서 장편 영화와 단편 영화를 다룰 때 차이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이 질문이 나의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비평가로서 나일까? 아마 행정가로서, 배급 상영 주체로서 나에게서 시작된 것 같다. 그러니까 태도의 맥락보다는 실무의 맥락에 가깝겠다. 
영화제에서 단편 영화를 가지고 상영 프로그램, 섹션을 만들 때, 길이를 어느 정도 균등하게 만들고 작품을 여러 의미에서 퍼뜨려야 하는 사정이 있다. 혹은 섹션에 어떤 주제나 테마를 부여할 때 단편 영화가 가진 어떤 의미의 네트워크를 잘라내는 게 아닐지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다고 단편 영화가 가진 고유의 미학이 존재하는가? 존재했다면 오늘날에 유효한가? 의문이 남는다. 그럼 단편 영화와 장편 영화 구분을 폐기하면 되는 걸까? 한편으로 단편 영화는 제도의 축적, 정책의 축적, 경험의 축적에 따른 산물이기도 한 거다. 누군가는 굳어졌다 할 테고 다른 누군가는 이러한 체계 안에서 다른 의미를 탐색할 테다.

이수영: 앞에서 말씀해 주신 분절 혹은 단절의 문제를 사실 영화제 현장에서 크게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그곳에서는 완전히 관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큐레이팅하면서는 이 부분을 되게 많이 느꼈다. 큐레이팅이라는 작업 자체가 어떠한 축을 세우고 작품을 하나하나 묶어내는 일이 아닌가. 영화가 개별적으로 다양한 측면을 갖고 있을 텐데 불가피하게 그중 몇 개를 부각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박성림: 큐레이팅에 대한 한계에 대해 공감한다. 독립영화 현장에서도 다중의 단편 영화를 묶거나 카테고리를 형성하지 않으면서, 온전하고 독립적인 단편 영화로서 작품을 상영하고 누리게 하는 방식을 찾아야 하지 않느냐는 비판이 있다. 지금은 단편 영화에 대한 문턱을 낮추는 단계에 있다고 본다.

김태현: 단편 영화로 큐레이팅할 때 나는 어떤 마음을 갖고 있었을까?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나는 단편 영화를 가능한 느슨한 연결고리로 묶고 싶었다. 특정한 부분을 추려내어 각각의 작품이 개별성을 잃게 되면 그 위에서 관객이 작품의 의미를 만들 때 그 가능성을 협소하게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박이빈: 나도 큐레이팅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했다. 과거 작업에서 노동이라는 키워드로 프로그램을 기획했는데 나중에 실현되지 않았던 적이 있다. 사실 노동은 큰 범주이고 당시 20여 편의 영화가 이곳에 들어갈 수 있었다. 위에서 말씀 주신 그 느슨한 안에서 무언가를 찾고 싶었던 것 같다. 어떤 사람이 노동에 대해 말한다고 해도 온종일 노동만 생각하며 일상을 보내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우리 삶은 하나의 문제의식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작품이 가진 결들을 넓게 펼쳐놓고 그 위에서 큐레이팅을 시도하려 했다. 그랬을 때 단편 영화만의 유용성 같은 게 보이더라.

임종우: 박성림 팀장께 여쭙고 싶다. 이러한 노력 속에서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온라인 상영 프로그램이 만들어진다. 이 프로그램 혹은 큐레이션을 관객은 어떻게 수용하고 있나? 인디그라운드는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온라인 상영관의 관객성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 궁금하다.

박성림: 사업 초기 통계를 내보니 30대~40대 관객이 많다. 20대~30대가 독립영화를 많이 관람한다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관객성과 다른 거다. 그 연령대의 관객이 이제 30대~40대가 된 걸 테다. 그런데 해가 지날수록 20대~30대 관객의 비중이 높아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지역 단위로 데이터를 추출해 보기도 했는데, 서울 및 수도권 관객이 오프라인 관람을 많이 하고 동시에 온라인 관람도 많이 한다. 한편으로 독립영화전용관이나 유관 인프라가 없는 지역 주민들도 인디그라운드 온라인 상영관을 꽤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유튜브(YouTube)와 같은 뉴미디어와 연계하여 독립영화 소개 콘텐츠를 만드는 등 가치 확산 및 인식 확대 활동도 열심히 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한 신규 관객의 유입도 눈에 띄었다. 10대 관객이 독립영화에 대한 편견이 가장 적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긍정적인 지표들이 있었다.

임종우: 단편 영화를 특정해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나?

박성림: 온라인 상영에서 단편 영화 선호도가 장편 영화보다 확실히 높다. 이는 일상 속 관람 환경이나 인터넷 기술 환경 등의 영향이 분명히 있었을 거다.

 

 

 



독립영화 라이브러리의 한계와 과제

임종우: 지금 독립영화 라이브러리에서 아쉬운 점이 있는지 이야기해 보자.

이수영: 독립영화 OTT 개발 상황이 궁금하다.

박성림: 최근에 보고서가 나왔는데 아직 연구 단계에 있다. 독립영화 OTT가 출범했을 때 발생할 여러 영향이 예상되어 고민 중이다. 기술적인 부분과 산업적인 부분을 같이 고려해야 한다. 누군가는 독립영화를 위한 OTT가 새롭게 만들어질 필요가 있는지 질문하기도 한다. 
나 개인으로는 온라인 플랫폼으로 독립영화 콘텐츠가 이동할 때 오히려 접근성이 떨어지지 않나 하는 우려가 있다. OTT로 들어가면 상업영화나 유사한 규모의 미디어 콘텐츠와 경쟁할 수 있을까? OTT로 들어가지 못하는 독립영화 작품은 또 어떻게 될까?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 시기다.

김태현: 독립영화 라이브러리가 과거 독립영화가 닿지 못했던 사각지대를 발굴하고 독립영화가 문화적으로 확산하는 데 분명히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독립영화 라이브러리가 1년 동안 소개하고 유통하는 독립영화가 그 시기 최선의 결과물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소개되지 못한 영화가 훨씬 많을 것이다. 제작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만들어진 소수의 영화, 영화제 공모를 통해 관객을 만난 소수의 영화, 그리고 독립영화 라이브러리에 의해 선택되어 1년간 관객을 만나는 소수의 영화, 이 바깥에 있는 독립영화 혹은 단편 영화의 존재에 대해 생각한다.

임종우: 몹시 동의한다. 어떻게 판이 더 커질 수 있을까? 지금의 규모, 지금의 지형 바깥으로 영역을 확장할 수 있을까? 나는 경계 바깥을 향한 질문, 호기심, 욕구가 모였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했을 때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큐레이션은 “이러한 영화가 존재했다”라는 마침표가 아니라 “그럼, 이렇게 좋은 영화 아니면 이것과 조금 다른 영화는 어디에 있을까?”라는 “쉼표의 실천”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무엇보다 이러한 마음이 영화계 종사자보다 관객에게서 나왔으면 좋겠다. 관객의 수요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지표로 드러낼 수 있을 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공적 자원을 지금보다 더 모을 수 있지 않을까.

이수영: 나는 여전히 큐레이션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보가 분산되어 있고 플랫폼이 너무 많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떤 이정표를 제안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 연장선에서 큐레이션과 아카이브가 지금보다 긴밀하게 연동될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단편 영화에 대해서는 지금 우리를 둘러싼 미디어 지형 전반에서 단편 영화의 자리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고민했으면 한다. 단편 영화를 우리는 어떨 때 볼까? 식사하면서 볼까? 설거지하면서 볼까? 집중해서 보고 있을까?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고 있나? 그럴 때 볼 만한 콘텐츠일까? 왜 볼까? 

김태현: 청소년 추천 독립영화 사업에서 만들어진 콘텐츠를 보았는데 참 좋더라. 어떤 내용인지 소개하는 걸 넘어서서 어떤 부분을 어떤 관점을 취해 어떤 방법으로 생각하면 되는지 자세하게 안내하는 자료였다. 독립영화 라이브러리와는 다른 사업인지?

박성림: 엄밀하게 말하면 다른 사업이지만,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안에서 대상 작품을 선정하고 있다. 연계된 사업이라 설명할 수 있겠다.

박이빈: 평소 독립영화를 보는 사람만 독립영화를 보는 것 같아서 이 점에 불만을 가졌던 때가 있다. 판이 더 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 속에서 그래도 독립영화 라이브러리가 관객에게 다양한 경험과 다양한 자극을 주는 창구 구실을 하는 것 같아 어느 정도 불만이 해소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속 모든 작품이 나에게 온전히 설득되지는 않았다. 선정되지 않은 영화, 그 영화를 만든 창작 주체에 대한 고민도 들었다. 그리고 독립영화 라이브러리가 창작 주체에게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이 될까 궁금하기도 했다.

박성림: 독립영화, 특히 단편 영화 창작 주체의 경우 관객을 더 만나고 싶은 갈증이 많이 크다. 창구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고 있다. 관객의 응답, 피드백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 보인다.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사업이 이러한 부분에서는 크고 작은 도움이 되고 있지 않을까?

김윤정: 나는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큐레이션이 사람이 하는 작업이라는 게, 오히려 사람이 해서 불편하고 수고스러운 점이 가장 좋았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알고리즘이나 인공지능이 큐레이션을 만드는 경우가 워낙 많다. 알고리즘 위에서 미디어를 소비하다 보면 내가 정말 이러한 성격의 콘텐츠를 좋아하는지, 비슷한 콘텐츠에 어쩌다 계속 노출되어 좋아하게 된 건지 혼란스러운데 이럴수록 가치에 대해 질문하기 어려워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독립영화 라이브러리는 많은 사람의 노력을 통과하며 만들어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어쩌면 그래서 독립영화 OTT가 모순일 수도 있겠다. 많은 사람이 보고 싶어 하는 독립영화만을 드러내고 더 볼 수 있게 한다면 그 반대에 있는 독립영화는 점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지게 되니까 말이다.

박이빈: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큐레이션 활동이 없었다면 언제 우리가 이렇게 모여 영화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생산 주체 입장에서는 독립영화에 대해 고민과 질문을 나눌 수 있는 창구였다.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속 작품을 오프라인 기획전(영화제) 형태로 다시 만났던 걸 생각하면, 수용 주체 입장에서는 이 사업이 독립영화 생태계를 조금씩 넓게 펼치는 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진] 인디그라운드 온라인 상영관 내 큐레이션 일부. 2024년 11월 15일까지 온라인 상영관을 통해 인디즈의 큐레이션을 관람할 수 있다.

 

 

 

마무리하며

임종우: 우리 꽤 긴 시간 뜨겁게 대화했다. 이제 정리하고자 한다. 이번 인터뷰에 대한 소감을 나누어 보자.

박성림: 이 자리 자체가 소중하고 또 함께해 감사하다. 업무로 만나 여러 회의를 하고 몇몇 작업을 요청하고 또 어떤 것들을 요청받는 소통만 있었지 않나. 각자 자리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들, 바라보고 있는 것들을 들을 수 있어 기뻤다. 인디그라운드에 대한 애정도 느낄 수 있었다. 센터 내부에서 오늘 나눈 어젠다를 공유하고 사업 운영에서도 좋은 방향을 찾아나가겠다.

이수영: 지속가능성에 관한 질문이 남았다. 어떤 포럼에서 연사가 미디어 플랫폼이 다변화되는 시대가 열렸는데 정작 우리가 소비하는 미디어에 다양성이 찾아왔는지 질문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아니라고 단호하게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여기서 독립영화, 단편 영화는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 참 어려운 산업이다. 이 산업 속 사람들의 고민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박이빈: 인디그라운드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온라인 상영관 프로그램은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천천히 공개되지 않나. 나는 이 부분이 조금 든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단발성 프로젝트에 임할 때는 회의감에 빠지기도 했는데 이 사업은 넉넉히 시간을 두고 관객과 함께 가는 느낌을 주어서 개인적으로 반가웠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일의 수고로움에 대해서는 마음이 다소 복잡하다. 영화를 곁에 두고 노동하는 동료들이 충분히 존중받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계속 고민하고 있다.

김태현: 나도 작년에 영화 주변을 떠돌면서 우울감을 느꼈다. 그런데 오늘 지속가능성 문제라든지 독립영화 산업 속 실무적인 부분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문제를 타개하려는 노력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에서 힘을 받았다. 어떻게 해야 많은 관객이 독립영화를 보게 될까 막연한 상상만을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니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하고, 또 노력해 봐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김윤정: 나는 다른 분들이 말씀 주신 것에 비해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무엇일까 자문하면 재미가 바로 그것이다. 재미로 시작한 일인데 여기까지 이어진 걸 보니 감회가 새롭다. 다양한 위치에서 다양한 관점으로 생각하는 동료를 만나 좋았다. 같은 편이 늘어났으면 한다.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 말이다.

 

 

*

한국독립영화협회, 인디그라운드, 인디즈가 함께 한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사업 참여 활동가 좌담회'는

비평전문지 독립영화 53호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

인디그라운드 홈페이지: https://indieground.kr/indie/index.do

*

한국독립영화협회 홈페이지: https://kifv.org/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