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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인디토크 기록: 당신을 위하는 마음

by indiespace_가람 2024. 4. 9.

당신을 위하는 마음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4년 03월 27일(수)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장민경 감독, 이한솔, 허경주

진행 정혜윤 PD (CBS 라디오 피디, 에세이스트)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지윤 님의 기록입니다. 

 

 

 

4월의 시간 위에 서서 지나온 시간을 바라본다. 지나온 시간 속에서 누군가 주저하지 않고 잡아준 손을 기억하며 서로의 손을 건네고 맞잡는다. 그 맞닿음은 각자가 보낸 세월을 묵묵히 위로한다. 그 ‘위로’의 영화로 극장에 모여 앞으로의 ‘세월’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본다. 그렇게 우리 앞에 다시 놓인 4월을 두고 가끔은 더듬어보던 ‘기억’과 ‘연대’의 힘을 이내 곧 확신한다.

 

 

 

 

정혜윤 PD (이하 정혜윤): 안녕하세요. 오늘 진행을 맡은 CBS PD, 정혜윤입니다.

 

장민경 감독 (이하 장민경): 안녕하세요. 저는 영화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연출한 장민경입니다. 반갑습니다.

 

허경주: 저는 스텔라데이지호 대책위원회 부대표로 활동하고 있고, 스텔라데이지호 허재용 이등 항해사의 누나, 허경주입니다.

 

이한솔: 안녕하세요. 저는 CJ ENM의 PD였던 고 이한빛 PD의 동생, 이한솔입니다.

 

정혜윤: 사실 저희는 같은 팀이었어요. 세월호 나고 1년쯤 있다가 2015년도에 제가 세월호 유족들을 모시고 5·18 광주 어머니들 만나러 가는 일이 있었어요. 그때는 공식적인 만남은 아니었고, 어쩌다가 ‘우리 5.18 광주 어머니들 만나러 가자’고 이야기가 돼서 서울에서 출발을 했어요. 그런데 광주에 도착하니까 수피아여고 앞에 5·18 유족들이 쫙 한 줄로 서 계시더라고요. 유족과 유족이 만난 거죠. 이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세월호 유족과 광주 5·18 유족이 만나는 자리인데 정말 만나는 순간 서로 자석처럼 끌어안더라고요. 처음 보는 사이인데 세월호 유족들이 차에서 내리자 마자 5·18 어머니들이 거의 달려들 듯이 끌어안으시더라고요. 한참 울고 나서 방에 들어갔는데, 세월호 부모님들이 5·18 부모님들 앞에서 무릎을 꿇으시더라고요. 저에게 이 장면이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세월호 부모님들이 “우리가 모르고 살았다. 당하고 나서 보니까 겪고 나서 보니까 내가 얼마나 모르고 살았는지. 진짜 미안하다.” 이렇게 사과를 하시더라고요. 그 다음 말은 제가 평생 잊을 수 없는 말이에요. 세월호 어머니 한 분이 5.18 어머니한테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이 말은 제가 그 뒤로 지금까지 잊은 적이 없는 말인데 잘 들어보세요. “어머님. 우리 아이와 나는 이렇게 헤어질 사이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렇게 헤어질 사이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꼭 다시 만날 거예요. 이 다음에 다시 만날 건데 그럼 만나면 할 말이 있어야 되잖아요. 나 이렇게 살았어. 서로 많은 말을 하고 싶은데 그때 가서 할 말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때 우리 아이를 다시 만나면 그 말을 하려고 지금 사는 겁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내 아이를 다시 만나면 그때 들려줄 말인거죠. 지금 이 관점으로 유족들의 삶을 한번 생각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제 세월호 유족이 5.18 유족에게 ‘그 때를 위해서 제가 어떻게 살아야 됩니까.’라고 묻는 겁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라고. 그걸 보고 ‘진짜 세월호 유족들이 궁금하겠다.’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가끔 슬픈 일 겪으면 ‘다른 사람은 대체 어떻게 살까.’ 이런 생각한단 말이에요. 다른 유족들이 지금 산산이 흩어져 있어요. 씨랜드 따로, 삼풍 따로, 광주도 따로 흩어져 있는데, 만약에 이분들이 서로 만나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았냐고 묻는다면 어떤 말들이 오갈지 그리고 서로에게 얼마나 힘이 될지 상상을 하게 돼서 이제 영화에 계속 등장하는 〈세상 끝의 사랑〉이라는 팟캐스트가 만들어진거에요. 유경근 아버지랑 다른 유족들이 차례차례 나오고, 한솔 씨도 나오고요. 한솔 씨가 오던 날을 아주 선명하게 기억하는데요. 진짜 아무 일도 안 겪은 사람처럼 털레털레 걸어오더라고요. 한솔 씨에 대한 질문이 ‘왜 이렇게 안 슬퍼 보이냐’ 였는데 그때도 굉장히 감동적으로 대답했어요. “이런 일을 겪어보니까 다른 사람이 슬픈 걸 알겠더라. 그래서 내 슬픔은 말할 수 없더라.” 그때 그 말을 듣고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그때 제가 팟캐스트 만들 때 제 옆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던 분이 장민경 감독님이세요. 감독님께 질문 드릴게요. 이렇게 팟캐스트를 찍다가 어떻게 영화를 만들게 됐어요?


장민경: 저는 그때 4.16 미디어위원회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분들의 활동을 기록하는 일을 하고 있었고요. 그러다가 18년도에 유경근님께서 팟캐스트 진행을 맡게 되셨다고 들었어요. 다른 사회적 참사 가족분들을 게스트로 초대해서 매주 한 분씩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 과정을 기록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었고, 제가 그 일을 맡게 되었어요. 총 4개월 정도 14회 차 가량 촬영을 했는데, 스튜디오가 되게 작아서 두 분의 게스트 와 저밖에 못 들어가는 공간이었어요. 말씀을 하실 때 보여주시는 어떤 표정들이나 얼굴들을 보고 매 순간 어떤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물론 어떻게 이렇게 다른 시공간에서 일어난 일들인데 같은 문제가 반복될까라는 궁금증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촬영을 마치고 나서도 그 얼굴들이 잊히지가 않았고 어떻게 지내고 계실지도 궁금했어요. 또 팟캐스트에 나오셨던 분들이 대부분 참사 이후로 본인의 삶에서 좀 다른 분기점을 가지고 계시고, 참사 이후에 본인의 어떤 어떻게 살아가야 될지를 고민하면서 좀 다른 어떤 삶들을 살고 계셨거든요. 그래서 지금 그분들의 일상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담고 나누는 것이 우리한테 되게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출연자분들께 연락을 드렸었고 그때부터 저는 팟캐스트 촬영과 함께 저 또한 어떻게 살아야 될지를 고민하면서 저만의 애도의 시간을 좀 길게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됐어요.

 

 

영화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스틸컷

 

 

정혜윤: 맞아요. 그때 녹음실이 저희 회사에서 창밖을 볼 수 있는 녹음실이었는데요. 녹음실 밖에 PD도 있고 작가도 있고 또 아래 촬영진도 있고 게스트도 있는데 일단 출연자랑 진행자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저희가 숨도 못 쉬었어요. 어떤 의미로 보면 ‘어떻게 살았을까’하며 반응을 못했다는 말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한마디도 놓치고 싶지 않기도 했어요. 녹음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지 조용했어요. 함께하는 시간이었다고 느끼고 저는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어요. 허재용 님의 누님, 허경주님께 질문 드릴게요. 영화 어떻게 보셨어요?


허경주: 영화 보면서 ‘와. 똑같다. 똑같다.’ 했어요. 고석 대표님도 그렇고 유경근 대표님도 그렇고 사실 종종 뵙고 있는 분들인데요. 그분들이 참사를 겪고 난 후에 어떤 식으로 정부가 처리를 했고 그럴 때 유가족들이 어떻게 싸워야 했고 그럴 때 일반 국민들로부터 혹은 댓글 부대로부터 인터넷을 통해서 어떤 식으로 조롱과 멸시와 모욕을 당했었는지 어쩜 그 워딩들까지 다 똑같은지 그런 것들이 참 변하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봤어요. 예전에 2019년도에 4·16재단이라는 곳에서 재난 참사 권리자 포럼이라는 국제포럼을 진행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삼풍백화점 참사 유족대표님을 만났었거든요. 그때 삼풍백화점 참사 유가족 김문수 님이 유경근 대표님한테 나 할 말이 있다고 하시면서 “너무 미안하다. 그때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500명 넘는 사람들이 희생이 됐었는데, 그때 우리가 그렇게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대한민국이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이 되었을 것이고, 어쩌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그때 우리가 그렇게 포기해서 미안하다”고 하시는데 굉장히 울컥했어요. 저희가 세월호 가족들을 처음 만났을 때 그때 세월호 가족들이 저희에게 미안하다고 하셨거든요. 스텔라데이지호가 2017년 3월에 참사가 일어났었고 세월호가 2014년이다 보니까 딱 3년 정도 차이가 나요. 세월호 가족분들을 처음 만났을 때, 그분들이 저희에게 “3년째 이렇게 싸우고 있는데 대한민국 사회는 하나도 바뀐 것이 없느냐, 해양수산부는 왜 여전히 그때와 똑같은 모습을 반복하고 있는 거냐, 미안하다. 우리가 나름대로는 열심히 싸운다고 싸웠는데 아직도 부족했나 보다. 그래서 스텔라데이지호가 또다시 침몰하게 됐고 또다시 대한민국 정부가 똑같은 행동을 하는구나.” 이렇게 말씀하셨던 그때가 떠올라서 울컥했어요. 영화에도 나오잖아요. 고석 대표님이 유경근 대표님한테 미안하다고. 왜 우리 같은 피해자들이 우리끼리 미안해야 하는 것인지. 정작 미안해야 하는 사람들은 절대 사과하지 않고 계속 진실을 숨기고 있는데 왜 우리끼리 미안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바다에서 일어났건 혹은 땅에서 일어났건 화재이건 침몰이건 다양한 모습으로 참사가 일어나지만 그 이후에 흐르는 모든 프로세스들이 정말 똑같구나라는 걸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영화를 봤습니다.

정혜윤: 혹시 그 이유를 아실 것 같으신가요. 이번에 이태원 유족들을 만난 세월호 유족들이 ‘미안하다고 우리가 잘 싸웠으면 이런 일 없었을 거라고 또 미안하다고’ 하고 있거든요. 왜 유족들은 다른 유족들한테 미안하다고 계속 말할까요? 혹시 짐작이 가세요?

이한솔: 제가 잘 알 거라고 생각이 들지는 않는데, 근데 저는 그런 부분들은 있는 것 같아요. 유가족분들 입장에서는 본인들이 이 참사를 겪고 그것들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그런 마음으로 계속 그 길을 걸어가시는데, 그 과정에서 사실은 그렇게 해서 살렸던 사람들은 눈에 별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스텔라데이지호’분들이 노력을 해서 만약에 발생할 수 있었던 참사들을 막아낸 것들, ‘그래서 나로 인해 바뀌었구나.’라는 것들은 알 수 없고요. 어떤 문제들로 인해서 또다시 참사가 발생했을 때 거기에 더 많은 마음들을 할애하시는 것 같기는 해요. 이렇게 할애하시는 게 사실 한편으로는 너무 안타까우면서도 사실 공감대가 또 새롭게 발생한 어떤 유가족분들한테 그래도 작은 연대의 힘이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파하는 마음이 너무 안타까우면서도, 또 새롭게는 고마우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린 분들이 더 많았다는 것들을 유가족분들이 많이 서로 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좀 있습니다.

정혜윤: 맞는 말 같아요. 슬픈 일이 생길 때마다 마음 아프지만 또 새로운 사랑이 생기더라고요. 한솔 씨는 영화에서 너무 중요한 말을 했어요. “이야기가 이렇게 끝나지 않게”라고 이야기하는 컷이 들어갔던데 영화 어떻게 보셨어요?

이한솔: 이렇게 병렬적으로 사람들이 나오는데 이게 다 하나의 지점을 관통하고 있으면서도 다 같은 얘기들이 마치 이제 병렬적인 것처럼, 다른 사건인 것처럼, 나오고 있는 가운데서 저는 이분들이 주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본 것 같아요. 주체가 되었다는 걸 조금 자세하게 좀 풀면 그동안 삼풍백화점이 이게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무너져도 그걸 다루는 사람들과 보는 사람들이 슬프다는 것에 그치고, 혹은 정치인들이 그 슬픈 사람들의 어떤 감정들을 잘 받아서 그 문제들을 해결하겠다라고 선언을 하는 것에 그치다 보니까 오히려 유가족분들은 계속 슬픈 공간에서 머물러야 했죠. 거기서 더 나아가는 주체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계속 전이되다 보니까 이 문제들이 계속 약간 미완으로 계속 남아 있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근데 이 영화는 오히려 응원하는 입장에 있다고 봤고, 세월호 유가족인 유경근 선생님께서 직접 이분들의 이야기를 꺼내고, 또 유가족분들이 직접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그 과정들을 쭉 담은 거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영화가 슬프게 바라보기보다는 주체로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연대의 힘을 보였다는 점에서 감동이 있었습니다.

 

 

영화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스틸컷

 


정혜윤: 옛날에 플로리다 총기 난사 사건 혹시 기억나세요? 고등학교에서 밸런타인데이에 총기 사건이 있었는데 그때 워싱턴으로 고등학생들이 수업을 멈추고 행진을 했어요. ‘수업을 멈추고 학교를 안 나가고 행진을 한다.’ 이게 그레타 툰베리에게 영감을 주는 사건인데, 이분들이 자기 정체성을 ‘우리는 피해자다. 그리고 생존자다. 그런데 체인지 메이커스다.’ 이렇게 했거든요. 새로운 정체성이 탄생하는 순간인데요. 저도 그렇고, 이 영화도 그렇고 ‘얼마나 슬프세요?’라고 끝나지 않죠. 그래서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살까요?’라고 묻는데, 그랬을 때 ‘슬퍼하고, 조용히 집에 있어야죠.’라고 하지는 않는 영화이죠. 그래서 묻고 싶은데요. 제목은 어떤 의미로 정하신 거예요?

 

장민경: 원래는 세월만 이렇게 제목으로 하고, 영제를 라이프 고즈 온이라고 했었는데요. 이번에 두 개를 붙여서 하는 게 더 맞겠다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세월’은 여기 영화에도 나오지만, 유경근님과 배은심 선생님이 이야기하며 ‘세월이 약이냐’고 했을 때 그 세월에 관한 거였어요. 삶은 계속된다는 말이 되게 처음에는 잔인하다고 느껴졌었어요. 어떤 커다란 상실을 경험했을 때 삶은 계속된다고 하면, 그 말이 어떤 위안이 되는 게 아니라 되게 모질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그런데 삶을 사는 데 있어서 약이 되지 않는 게 지금까지의 세월이었다면, 그 세월이 약이 될 수 없다고 했을 때, 그럼에도 삶이 계속된다고 하면, 어떻게 살면 약은 되지 않더라도 좀 다르게 삶을 살아낼 수 있게 되는 걸까라는 질문이 컸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내 앞에 놓인 어떤 세월 그리고 내가 살아온 어떤 세월 앞에서 이 삶이 계속된다는 어떻게 살아갈지 같이 찾는 영화라고 생각을 했기에 제목을 이렇게 지었습니다.

정혜윤: 제목에 대한 두 분의 답을 듣고싶어요. 어떻게 살고 계신지, 어떻게 삶을 진행시키는지.

허경주: 진짜 많이 듣는 질문이거든요. 영화에 이미 나왔어요. 스튜디오에서 말씀들을 하실 때 ‘버티는 거지. 뭐 버티는 거지.’ 이런 말씀들 하시잖아요. 상실을 딛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라고 물어보시면, 아시는 분들은 아시고 모르시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스텔라데이지호 같은 경우에는 아직까지 진행형이에요. 영화를 보면서 제가 했던 또 하나의 생각은 ‘부럽다.’였거든요. 영화에 나오는 분들이 추모를 하시잖아요. 근데 스텔라데이지호 같은 경우에는 깊은 바다에 침몰해 있고 심해수색이라는 걸 한 번 했어요. 그리고 유해가 있는 걸 선명하게 확인을 했어요. 근데 수습해오지는 않았거든요. 그냥 버려진 채로 있거든요. 그렇다 보니까 저희는 그리울 때 가서 보거나 추모를 할 수 있는 그런 곳이 없어요. 그것 때문에 부럽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까 영화를 봤는데, 그렇다 보니 저희가 상실을 딛고 일어선다는 것 자체가 좀 말도 안 되는 것 같아요. 원래 내가 2017년 이전에 살았던 모습은 많이 잃어버렸고 사실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내가 얼마나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여행을 좋아하고 노는 것도 좋아하고 즐겁게 살았던 사람인지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어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좀 많이 신경 쓰는 것도 있고요. 나중에서야 다른 분들에 의해서 내가 이런 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어느 분이 설명해 주시더라고요. 대한민국 사회가 생각보다 ‘피해자다움’을 피해자들에게 많이 강요한다고. 그 말씀을 듣고서 제가 저를 돌이켜 보았을 때 지난 2~3년 동안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너무나도 신경을 많이 쓰고 갇혀 살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유경근 대표님이 영화 속에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인터넷에서 ‘다들 저 사람들은 다른 뜻이 있어서 저러는 거다. 보상 많이 받으려고 저러는 것이다. 정치하려고 저러는 것이다.’ 라는 얘기. 똑같은 얘기를 저도 들었거든요. 그리고 오죽하면 이 스텔라데이지호 선박회사의 사장이 저희한테 이런 말을 했어요. ‘피해자면 피해자답게 슬퍼하고 있으라고. 너희들이 나서서 경찰이 할 원인을 밝히고 수색을 하겠다고 나서지 말고 피해자는 피해자답게 슬퍼하고 있으라고.’ 이런 말을 했었거든요. 근데 그 말에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고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굉장히 많이 갇혀 있었더라고요. 그래서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라고 하시면 자기 의지를 가지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삶이라고 보아야 한다면 없죠. 어쩔 수 없이 지금 버티고 있는 거고요. 저희 언니랑 저랑 활동을 좀 주도적으로 많이 하고 있는데 나중에 죽어서 내 동생을 만났을 때 ‘누나들이 너 때문에 이만큼 했다.’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그런 부분 때문에 지금 많이 참고 버티고 있는 거죠.

이한솔: 저도 비슷할 것 같고, 근데 이게 또 부모 자식을 떠나 보낸 부모님의 마음과 또 형제자매 제가 감히 비교할 수는 없을 것 같고요. 20대 초반에 사회생활도 하고 싶고 돈도 좀 벌고 싶어서 이한열 기념사업회라는 곳에 좀 일 좀 하겠다고 찾아간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일을 한 1년 정도 했었는데 그때 여기 나오신 배은심 어머님을 만났고, 제가 이름이 거의 비슷해서 저를 맨날 한열이라고 부르면서 친하게 한 10년을 넘게 같이 보고, 일도 같이 하고 했어요. 제가 봤을 때 배은심 어머님은 출구는 딱히 설정하지 못한 느낌이었어요. 그러니까 ‘유가족으로서의 내가 이거를 해내면 이제 또 새롭게 또 살아갈 수 있겠구나.’라는 것들을 갖고 있지 않은 채 한 30년을 넘게 살아오신 느낌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열이가 약간 나한테 좀 들어와 있는 그런 안정감이 있고 본인도 그 안에서 어쨌든 행복들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을 근처에서 볼 수 있었어요. 하다못해 이름이 비슷한 제가 인턴으로 들어온 것만으로도 '이름이 비슷한 동생이 들어와서 좋네' 이렇게 느끼실 만큼 내재화시키시면서 살아가시고 있는 것 같았어요. 사회적 죽음이라고 했을 때는 그 죽음의 의미들이 있을 겁니다. 이게 구조적인 문제든 정부의 무능함이든 혹은 우리 사회의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문화든, 어떤 모순 때문에 이제 사회적 죽음이 발생했고 이 모순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내가 고인을, 내 사랑하는 가족을 기억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조금씩 받아들이면서 내재화하면 출구는 없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의 행복들을 찾아갈 수 있는 것들이 있었고요. 그래서 아까 말했듯 주체로 나서는 게 중요합니다. 혼자 안고 있으면 사회적 죽음의 문제들은 결코 내재화되고 나한테 행복이 될 수 있는 요소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계속 사람들하고 호흡하고 그 호흡 속에서 또 새롭게 기억을 이어나갈 수 있는 매개들을 만들어야 유가족들한테도 다음을 걸어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혼자 안으로 가두는 것보다는 사회에서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호흡할 수 있게 하는 것들이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배은심 어머님을 통해서 그 이후에 사건이 벌어져도 많이 배울 수 있었듯이 이 영화처럼 이런 사회적 참사를 겪은 사람들이 계속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만드는 계기들이 많은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정혜윤: 배은심 어머니는 저희가 촬영할 때는 살아 계셨는데 돌아가셨습니다. 이후에 이 대화가 생각이 나더라고요. 살아 생전에 제가 여쭤본 적이 있어요. '만약에 한열이 만나면, 아드님 만나면 뭐라고 말할 거예요?' 이렇게 물어봤어요. 뭐라고 대답하셨을까요? “한열아 이 세상이 참으로 더럽다, 이 세상이 너무 더럽다.” 그렇게 말하기까지 어떤 일을 겪었을지 상상하기도 쉽지 않아요.

 

 

영화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스틸컷

 

 

이한솔: 제가 감히 자식을 떠나 보낸 부모의 마음과 감히 비교할 생각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는 입장이긴 해요. 그런 만큼 슬픔의 크기도 완전히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회적 죽음으로만 제한해서 본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어떠한 과정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할 때 사실 그 문제가 존재하지 않았으면 이 죽음도 없었을 겁니다. 혹은 이 문제가 유지된다면 다음에 또 누군가의 죽음이 나타날 거라는 것에는 모두가 이견이 있지는 않을 거에요. 가족분들의 슬픔의 크기가 당연히 다를 수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없었으면 안 죽고 열심히 살았을 사랑하는 사람이 못 산만큼을 내가 같이 살아주고 싶다라고 하면서 지금 이렇게 앞으로 나서서 살고 계신 거거든요. 결국, 그 마음의 크기는 조금씩 달라도 분명히 관통되는 지점들은 있다라는 거고요. 또 하나 별개로는 아까 유가족들이 주체로 나서야 된다라고 말씀드린 이야기와 비슷한데, 꼭 시민들이 다 같이 그 아픔을 똑같이 느끼고 슬퍼해 달라 요구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걸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며 찾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이런 것들은 앞으로의 과제이지 않을까요.

허경주: 세월호 가족들 어머님들이 항상 저를 보시면 엄마 잘 챙기라고 말씀하세요. 근데 형제인 저희는 저희 나름대로의 또 힘듦이 있어요. 물론 부모님하고 비교를 하자는 것은 아닌데, 형제로서 나의 동생이었고 그리고 상실로 인해서 너무 힘들어하시는 부모님을 옆에서 지켜야 하는 힘듦이 또 있거든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됐던 학생의 누나들이 찾아와서 연락을 해줬어요. 근데 그 친구들이 저와 똑같은 느낌을 갖고 있더라고요. 엄마 아빠를 지켜보는 것도 힘들고, 주변 사람들이 나도 힘든데 엄마 잘 챙기라고 말하는 것도 힘들고, 그렇지만 그것을 엄마한테 말할 수조차 없어서 또 한 번 힘들고요.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세월호 어머님들을 만났을 때와는 또 다른 유대감이 있었습니다. 

정혜윤: 우리 사회는 참사를 몇 번이나 겪어도 타인의 불행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죠. 가장 지혜롭고 가장 부드러운 사람은 ‘안 겪었는데 알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슬픔은 절대 줄지 않죠. 이게 어떻게 줄겠어요? 안 줄어요. 근데 알 수 있어요. ‘이 사람이 나랑 슬픔을 나누려고 하는구나. 이 사람이 냉소하는구나.’ 인간들 사이에는 그런 에너지가 전해지는데요. 이 사람이 나의 말을, 나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하는구나. 그냥 내 옆에 있으려고 하는구나. 이건 다 느낀답니다. 그것만큼은 힘이 돼요. 슬픔이 덜어지는 건 아니지만요, 유족들끼리 있을 때는 분명 나아집니다. 어떻게 나아지냐면, 이 사람을 웃게 하고 싶거든요. 프랑스에서 연대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단어를 들었어요. ‘내가 이런 일 겪어보니 알겠어요. 겪어보니 이제서야 알겠어요. 나는 당신이 그런 일을 겪지 않도록, 당신이 나보다는 덜 슬프도록, 나만큼은 슬프지 않도록 내가 모든 걸 나눠드릴게요.’ 이게 ‘연대’라는 단어의 뜻이었는데요. 유족들이 그렇게 연대한다고 생각합니다. ‘슬픔 안에서 당신은 나보다는 덜 슬프게. 나만큼 슬프지 않게.’ 근데 그 말이 왜 나오냐면 진짜 슬프거든요. 진짜 찢어지게 슬프거든요. 인간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유족들이 제일 싫어하는 단어가 ‘역지사지’에요. 겪어보니까 너무 힘든 거예요. 얼마나 슬픈지 전 좀 그려져요. 자기 가족의 마지막 순간을 모른다는 것, 그리고 그 가족이 어쨌든 나를 찾았을 거예요. 특히 부모님들은 그 생각한단 말이에요. 죽어가는 사람이 얼마나 외롭겠어요. 그리고 그 생각을 하는 유족은 얼마나 또 외로워요. 저는 그게 느껴진단 말이에요. ‘안타깝게도 내가 이런 일 겪어서 알게 됐는데 너무 슬프고 힘들더라. 당신은 나만큼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이걸 연대라고 생각합니다.

장민경: 제가 이 영화를 만들고 개봉을 했던 이유 중에 하나는 그거였어요. 저에게 되게 소중하고 깊이 다가왔던 영화들은 제가 외롭거나 필요한 순간이 제 곁이 되어주는 영화였거든요. 아마 살아가면서 어떤 순간을 필요로 할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오면 이 영화를 그냥 꺼내 보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라고 만든 영화니까요. 그럴 때 너무 혼자 고립되지 않고,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스틸컷

 

 

관객: 저는 이 영화가 ‘기억’에 대한 영화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봤는데요. 유독 한국 사회에서 이런 사회적 참사를 기억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물론 기억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어떤 이들은 왜 이렇게까지 유가족을 조롱하거나 이런 방식으로 기억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걸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장민경: 그 기억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결국에는 사회적 참사가 반복되는 이유이기도 할 텐데요. 한편으로는 참사가 일어나고 이후에 어떤 해결해야 될 문제들을 자꾸 개인의 몫으로 돌리고 있잖아요. 그리고 어떤 개별 가족의 몫으로 돌리고 있고. 그런데 그러려고 하는 게 어떤 정부라든지 책임자들이 그렇게 하기도 하지만, 개인에게도 그런 마음들이 나타나는 것은 아마 거대한 불안 때문인 것 같아요. 그것이 나의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는 어떤 불안이 가상의 해결책을 내놓는 게 ‘망각’인 것 같고, 그래서 곁에 두지 않으면 실제로 곁에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어떤 이 영화를 만들면서 어떤 애도의 시간을 가지고, 기억의 시간을 가지면서 제가 조금 더 단단해질 수 있었던 것 같거든요. 그래서 다른 참사들이 일어났을 때도, 물론 슬퍼하고 아픈 감각을 계속해서 느끼지만, 그게 어떤 무력하고 무방비 상태에서 무너지는 경험이 더 이상 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계속 찾는 방향에 또 다른 방법을 찾게 되는 시간도 가질 수 있게 되고 그래서 기억하지 않고 싶어 하는 그런 분들이 스스로를 불안에 가두지 않으려면 같이 만나고 같이 호흡하면서 살아가는 게 궁극적으로는 참사의 어떤 반복도 막을 수 있고 본인의 삶에도 또 다른 새로운 삶을 발명할 수 있는 길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한솔: 죽음의 모습을 조금은 다양하게 볼 필요는 있겠다고 생각해요. 무겁고, 굉장히 딥하고 조심스럽고 굉장히 슬픈 무드로만 이러한 죽음을 다루려고 하는 경향들이 있고 사실 거기서 없지 않아 파생되는 부정적 효과도 저는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어쨌든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의 면면은 다양했고 그 죽음들을 꼭 같은 무드로만 기억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도 사실 한빛센터에서 이한빛 PD를 추모하는 때에는 이한빛 PD가 좋아했던 기획은 무엇일까, 이런 쪽으로 많이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굉장히 무겁고 힘들게만 이것들을 기억하려고 하면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면 어쩔 수 없이 조금은 거부감 들고 좀 놓고 싶어 할 것 같기는 해요. 그래서 저희 스스로도, 이런 것에 연대하시는 분들도 꼭 죽음을 딱 하나의 모습만으로 볼 게 아니라 다양한 모습으로 생각하고 다양하게 풀어내는 작업들이야말로 오히려 길고 오래 버티고 기억할 수 있는 방향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허경주: 저는 ‘그 사람 자신의 이익에 반해서.’라고 생각이 들어요. 저희 사건을 예시로 들어서 말씀드리면, 그 선박 회사 쪽에서 다양한 언론 공작, 유언비어 만들기와 자기네 회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가스라이팅이 있었거든요. 그것은 결국 일반 사람들이 제대로 된 진실을 파악하지 못하게 막는 공작이었고 그리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이런 참사를 기억하기보다는 ‘저것은 내가 겪을 일은 아니야. 나랑은 상관없어. 나는 저런 일이 없을 거야.’라고 생각하게 만듦으로써 선박회사 쪽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영리 추구와 생명 경시와 이런 것들을 이어가려고 하는 그런 커다란 프레임의 하나가 아니었을까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스텔라데이지호가 침몰하고 나서 몇 달 뒤에 선박 회사 직원이 제 페이스북에 찾아와서 엄청 공격을 하고 갔어요. 공격은 하도 많이 당해서 그런가 보다 하는데 그 사람이 공격하셨던 내용이 좀 충격적이었어요. 본인의 어머니가 암에 걸리셨었는데 결국 세상을 떠나셨대요. 근데 그 사람은 본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해서 저를 공격하더라고요. 그 이유가 스텔라데이지호 침몰하고 난 이후에 자기가 회사에서 그 뒷처리를 하느라고 너무 바빠서 암에 걸리신 어머니와 마지막에 몇 달간 시간을 제대로 보내지 못했다. 내가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건 너 때문이다라고 공격을 하더라고요. 저는 사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사람한테 그냥 댓글을 이렇게 달아드렸어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 좀 잘 생각해 보셔라. 어머님과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것은 나 때문이 아니다. 스텔라데이지호를 그런 식으로 운항을 하다가 침몰시켰던 당신네 회사 사장 때문이다. 그 회사 사장은 불안해하는 회사 직원들을 상대로 계속 유언비어를 퍼뜨렸거든요. ‘언론 플레이를 하고 침몰 원인을 밝히라고 싸우는 척하지만 사실은 뒤로 회사에다가 50억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사람들이니 믿지 말아라.’라는 식으로 계속 직원들을 대상으로 소문을 퍼뜨렸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그 소문을 믿었던 사람 중 하나가 저를 공격하는 거였고요. 저는 결국에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고수하려고 하는 집단들의 그런 언론 플레이에 눈이 가려져서 그런 식으로 기억을 하지 못하고 이런 일이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잊어버리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혜윤: 사실 참사라는 게 당시에는 모두의 관심거리지만 시간이 흐르면 각자의 일상을 돌아가는데요. 이제 관심이 식었을 때 영화 제목대로 ‘라이프 고즈 온’ 하는 건 정말 너무 힘든 일인데요. 지금 그걸 여기 계신 두 분이 하시는 거예요. 사람들의 관심이 없는데 해야 되거든요. 다른 식의 기억을 만들 거예요.


허경주: 스텔라데이지호가 침몰했던 날짜가 참 얄궂어요. 2017년 3월 31일이라는 것 자체가 박근혜 대통령이 구속 수감되던 날이었었고, 세월호가 목포신항에 올라오던 날이었어요.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1000일은 성탄절이었어요. 기독교 단체들이 연합으로 매년 예배를 드리는 것이 있는데, 성탄절에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연합 예배’라는 것을 그때 당시 스텔라데이지호를 주제로 예배를 해주셨어요. 올해 2024년 3월 31일. 이때는 7주기에요. 7이라는 숫자가 기독교에서 굉장히 상징적인 숫자라고 알고 있는데, 또 하필 부활절이 겹쳤더라고요. 보통 부활절이 4월인데 올해는 참 이상하게 3월 31일로 많이 당겨지면서 7주기랑 부활절이 겹쳤어요. 그래서 이번에도 기독교 단체에서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연합 예배’ 부활절 예배 주제를 스텔라데이지호 그리고 다른 재난 참사 피해자들로 잡아주셔서 이번 주말 3월 31일 오후 3시 30분에 용산 대통령실 건너편에서 연합 예배가 열립니다. 이 자리는 단순히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로 희생당한 사람들만을 기리고 추모하는 자리가 아니에요. 저희 이외에도 재난 참사 피해자 연대라는 단체에 소속되어 있으신, 아까 여기 영화에 많이 등장하셨던, 분들이 상당수 같이 참석을 하실 거고 참석하시는 시민들이 단순히 스텔라데이지호 하나 때문이 아니라 이것을 하나의 사회적 참사로서 기억하고 똑같은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계속 기억하고 행동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자리로써 연합 예배가 열리게 됩니다. 관심 있으신 분 같이 참여해 주시면 좋겠네요.

정혜윤: 각자의 마무리 말을 듣고 끝내야 될 것 같아요. 저의 마무리 말은 이 영화 제목 ‘라이프 고즈 온’, 삶은 살아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장민경: 삶을 살아볼 가치가 있는 것 같고 계속해서 옆에 공간들을 많이 내어가는 삶이 되게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고요. 그래서 오늘 이렇게 와주신 관객분들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허경주: 라이프 고즈 온. 저의 라이프를 다시 찾기 위해서 앞으로 계속 고즈 온 하겠습니다.

 

이한솔: 살아있는 사람이든 또 이제 곁을 떠난 사람이든 삶을 계속 살다 보면 같이 행복할 수 있는 것들을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꾸준히 열심히 같이 잘 살아보면 좋겠습니다.

 

정혜윤: 오늘 와주셔서 감사드리고, 끝까지 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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