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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인디돌잔치 〈흐르다〉 인디토크 기록: 거스를 수 없는 시간 속에서

by indiespace_가람 2024. 4. 3.

거스를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인디돌잔치〈흐르다〉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4년 3월 26일 (화) 오후 7시 상영 후

참석 김현정 감독

진행 차한비 웹진 리버스 기자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윤정 님의 글입니다.

 

 

머무는 자리를 생각하면 당장 내가 서 있는 이 자리도 한 없이 어색해질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발 붙이고 사는 이상 시간은 흐르고 그에 맞춰 삶도 어떤 방향으로 흐른다. 어디로 길을 틀지 모르는 날들 속에서 속절없이 휘둘리는 것 같은 인생도 멀리서 보면 그저 고요하고 평온한 하나의 갈래가 아닐까. 외로움과 괴로움 속에서 절망하지 말고 앞으로의 날들을 꾸준히 흐르게 둘 수 있길.

 

 

 

 


차한비 기자(이하 차한비): 안녕하세요, 오늘 진행을 맡은 차한비 입니다. 오늘 이 자리가 이 영화가 개봉하고 관객들의 투표를 받아 선정된 작품을 상영하고 이야기 나누는 자리로 마련되었다고 하더라요. 영화를 개봉한 시점에서 1년 정도 지났는데 그동안 감독님은 어떻게 지내셨나요?

 

김현정 감독(이하 김현정): 〈흐르다〉로 장편 개봉이 처음이었어서 GV도 몇차례 진행하면서 재밌는 경험들을 했어요. 개봉 직후에는 독립 영화 스코어에 무감각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심 자꾸 클릭을 하게 되더라고요. 일년이 거의 다 되는 시간이 지났는데 개봉 직후는 방금 말했던 것처럼 사소한 일들로 시간을 보냈었고 현재는 다음 작품에 대한 작업도 진행하고 있어서 다소 정신 없이 보낸 것 같습니다.

차한비: 그래도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뵈니까 좋은 것 같아요. 영화를 다시 보고 무슨 얘기부터 해볼까 생각을 하다가 1년 전 쯔음에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영화에 출연하신 진영 역의 이설 배우님과 인터뷰를 했을 때 드렸던 첫 질문이 떠올랐어요. 영화 제목이 〈흐르다〉 인데 배우님은 ‘흐르다’의 주어를 뭐라고 생각하셨어요, 라고 여쭤봤거든요. 이설 배우님은 질문에 대한 답으로 삶이 흐르다 라고 생각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감독님 같은 경우에는 그 동사의 주어를 뭐라고 생각했을까 궁금했고 보통 우리가 흐르다 라고 말하면 어디에서 어디로 다시 말해 발원지와 도착지가 좀 문장이 같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잖아요. 감독님이 떠올렸던 방향 같은 것도 있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김현정: 저도 삶 내지는 인생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특히 작품 내에서는 엄마의 죽음이라는, 예기치 못한 가족의 죽음이 들이닥쳐서 주인공이 자신의 어떤 감정을 정의 내리지 못한 채로 흘러가잖아요. 영화 2시간 안에 인생의 속성을 다 담을 수는 없지만 우리 삶에서 그렇게 불현듯 다가오는 어떤 상황에 반응하는 이미지를 좀 떠올렸던 것 같아요. 사실 제목 고민을 많이 했어요. 영화에 포인트 서사들이 있긴 한데 명사로 표현할 수 있게 담아내는 것들이 좀 쉽지는 않더라고요. 저는 제목을 어렵게 짓는 것을 선호하지 않고 명확하게 짓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이 작품 같은 경우는 시나리오 다 쓰고 나서도 제목이 좀처럼 명사로는 잘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야기의 전체적인 이미지 내지는 속성을 담아서 동사형 제목이 떠올랐던 것 같습니다.

차한비:  주변에서 〈흐르다〉 라는 제목을 만류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후보로 나온 것 중에 마땅한 것을 찾을 수 없었던 걸까요?

김현정: 부녀 관계에 대한 또 책도 좀 읽긴 했는데 예를 들어 극중 진영처럼 아버지가 좀 더 의지하거나 자기와 닮은 딸을 아버지의 딸이라는 명칭으로 부른다 하더라고요. 그런 단어로도 묶기에는 영화를 부녀관계로 한정 짓는 것 같아 아쉽다는 생각이 우선 들었고 이야기가 어떤 관계에만 머무르는것이 아니라 큰 맥락에서 보여지길 바랬어요. 물론 부녀관계가 가장 핵심적인 부분에 위치하지만 진영이 개인적으로 겪는 다른 이야기들도 충분히 조명 받길 바랬던 것 같아요. 그래도 그 당시에 이설 배우는 이 제목을 좀 좋아해 주셔서 둘이서 그냥 밀고 가자 하면서 서로 토닥이기도 하고 그렇게 후보였던 제목을 개봉까지 유지하게 됐습니다.

차한비: 말씀하신 것처럼 영화에 굉장히 다양한 주제들이 들어가 있잖아요. 나이와 자립과 상실과 애도와 그것들이 살아가다 보면 인생의 한 길목에서 우리가 마주할 수밖에 없는, 마주하는 때가 오고 마는 어떤 어려움들, 고민들을 담고 있어서 이 영화가 2020년도에 촬영을 진행한 걸로 알고 있는데 감독님은 당시에 어떤 시기를 통과하셨던걸까, 이런 것들이 뒤늦게 궁금해졌어요.

김현정: 단편을 작업한 경험만 있다 보니 단편의 물리적인 확장 정도의 힘듦 정도이지 않을까 하는 착각을 하면서 촬영을 진행한 것 같아요. 물론 물리적으로 따지면 오차가 굉장히 적겠지만 그 안에 담긴 불확실의 속성들이나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이 너무나 많은 거예요. 그래서 버겁다는 생각들을 정말 현장에서도 많이 했고 영화 작업의 후반과 공개하기 전까지도 제 인생에서 진짜 정말 힘든 시기를 굳이 꼽는다면 아마 〈흐르다〉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물리적으로 긴 시간도 생각보다 더 힘들었고 아까 언급됐던 불확실함 속에서 저는 선택들을 계속 해야 하는 입장으로서 쉽지 않다고 느낀 경우가 많았어요. 그러면서 새삼스럽게 영화가 뭐지 라는 생각도 영화 작업 이후로 많이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차한비: 원했던 답을 좀 찾으셨나요?

김현정: 답을 찾았다기보다 오히려 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들을 알게 되어서 강박처럼 생각했던 것들,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조금 놓게 되는 지점이 많이 생긴 것 같아요. 리얼리티라든가 가능성이라든가 감정의 이입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제가 끌고 갈 수 있는 영역이 있고 반대로 그렇지 못한 부분도 굉장히 많다 이런 것들을 많이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영화 〈흐르다〉 스틸컷

 

 

관객: 최근에 발표하신 작품들의 제목을 보면 주로 세 음절로 반복된다고 생각했는데 완결된 문장형태를 갖추지 않는다거나 글자수에 대한 규칙이라던가 제목을 지을 때 구체적으로 신경쓰시는 부분들이 있으신가요?

김현정: 단편 제목을 지을 때와 장편의 제목을 지을 때 약간의 마음가짐이 좀 다른 것 같아요. 단편은 핵심을 관통하는 단어들을 떠올려서 조합을 하는 편이었던 것 같고, 그에 비해 장편은 핵심만 떠올려서 제목을 짓기엔 아쉬운 경험들이 있어서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 편이에요. 제가 알기론 많은 감독님들이 직관적으로 제목을 선택하시는 걸로 알고 있고 있거든요. 저도 사실은 시집에 좋은 단어들의 조합이 아무래도 많으니 모티브를 얻고 싶어서 시집을 많이 보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시집을 통해 결정된 경우는 없었어요. 그래서 이 영화와 관련된 단어들을 따라가며 제목을 떠올리는 경우들이 좀 더 빈번했던 것 같아요. 제목이 정말 중요하다는 경험들을 좀 많이 했거든요. 좋은 제목이 생각날 때까지 그냥 끊임없이 고민했던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단어 수에서 좋은 기운을 얻는 건 아니고 본의 아니게 최근 작품들이 필모를 정리하다 보니 세 글자로 반복된다는 생각을 하긴 했거든요. 특정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고 이후에 보여드릴 작품들에선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관객: 영화 나오는 공간들 중 집이 나오는 장면들이 인상 깊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지 않는 부분들이 집에서는 보여지기도 하고 남들이 쉽게 볼 수 없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집이라는 공간이 사람의 내면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한편으로 이어서 생각을 하다 보면 한 집에 사는 가족들은 필연적으로 좋든 싫든 간에 같은 내면이나 어떤 마음들을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집은 진영이 사는 공간이기도 하고 아빠나 엄마가 살기도 했던 공간이었잖아요. 그래서 진영의 가족들이 공유하고 있는 내면이나 마음들이 있었다면 그런 게 어떤 부분이었을지 첫번째로 궁금했고 결국에 마지막에 진영이 계속 어떤 상황들에 인해 집에 묶여 있다가 결국에는 워킹홀리데이를 가게 되잖아요. 물리적으로 가족들이랑 분리 되는데 엮여 있던 심적인 거리감들도 같이 분리될 수 있었는지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김현정: 같은 집이라는 공간에 살고 있지만 여기 같이 사는 세 식구는 이제 각자 공간이 너무 뚜렷하게 나눠져 있는 것으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진영의 방과 거실은 이제 공동의 공간이긴 하나 이 집을 보면 아버지의 공간처럼 따로 분리가 되어 있고 거실 함께 하는 것은 거의 이제 없다시피 설정을 했어요.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꽃무늬가 잔뜩 들어간 이불이 있는 방 같이 어머니만의 공간이 있고요. 그래서 집이라는 같은 공간을 공유하지만 굉장히 보이지 않는 선이 뚜렷한 관계임을 저도 좀 보여주고 싶어서 문을 좀 많이 활용을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문 너머에 들리는 소리로만 약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기도 하고 심리적인 거리감 같은 것들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좀 고민했던 것 같긴 해요.

 

차한비: 엔딩에서도 진영이가 이제 집이라는 공간을 떠나서 혼자 다른 곳으로 가게 됐을 때 가족들과 공유했던 공유할 수밖에 없었던 어떤 내면도 조금 분리가 되는 걸까,라고 말씀을 해 주셨는데 감독님은 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현정: 엔딩에 대한 것이 좀 이슈가 있었는데요. 가족과 떨어져 있는다는 결론을 내린 상황이었는데 캐나다를 실제로 갈 수 있을지 아니면 한국에 다른 집을 구해서 분리되는 엔딩들 중에서 고민을 했어요. 근데 어떻게 보면 퍽퍽한 얘기에 캐나다까지 못 가면 너무 절망스러운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 일단 캐나다를 떠나게 되는 것으로 엔딩을 했고 다만 표현할 때 고민을 당연히 했거든요. 진영은 캐나다에 어디에 있을까 같은 고민을 되게 많이 했고 진영은 몸소 일하는 이미지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사실 진영이 머무는 곳이 남들과 같이 쉐어하는 게스트하우스고 그 장면에서 마치 공용 화장실처럼 보이는 장면이 또 나오거든요. 영화 첫 장면에서 밑이 잘려서 잘 표현되진 않았지만 같은 집에 살지만 밖에 아빠가 있다는 사실이 조금 불편해서 옷을 입고 나오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내 집이지만 편하지 않은, 그래서 진영이 가족으로부터 분리는 되었지만 사실 앞으로 살아갈 어떤 공간에서도 마냥 편하지는 않겠다라는 생각을 좀 하면서 캐나다에서 묘사되는 공간들을 선택하긴 했어요. 남들과 공유하는 화장실과 공용으로 쓰는 침대처럼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녹록치 않지만 어쨌든 뚜벅뚜벅 걸어갔으면 한다는 마음을 담아서 엔딩 장면을 생각을 했습니다.

차한비: 한편으로는 말씀해 주신 것에 덧붙이면 집이라는 공간에서의 관계에서 보이지 않는 경계선 같은 것들이 이 영화에서 보면 추상적이기 보다는 저는 신체적으로 와닿는 부분이 있었거든요. 진영과 아빠와의 거리와 엄마와의 거리를 표현하는 방식이 되게 다르잖아요. 밖에 아빠가 있으니 샤워 후에 옷을 입고 문 밖에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엄마는 한 욕실을 쓰기 하고 이런 식으로 관계마다 좀 몸에 대한 경계가 정서적인 거리감으로 비례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 같아요.

 

영화 〈흐르다〉 스틸컷

 

 

관객: 게스트하우스가 배낭 여행 하는 젊은 사람들이 한두 달 정도 짧게 머무르는 장소로 알고 있는데 진영 같은 경우 1년 이상 머물렀던 걸로 맥락상 예상이 돼서 진영이 장기적으로 그 숙소에 머무르는 설정에 의도를 두신건지 궁금했고 DVD같은 물리 매체 발매 예정이 있으신지도 궁금합니다.

김현정: 시기는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저를 생각했을 때 나는 어떤 곳에서 지낼까도 생각을 이렇게 했던 것 같아요. 돈을 아끼기 위해서 조금 불편하지만 같이 지내는 공간은 조금 오래 머물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저에겐 조금 더 당연했던 것 같이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다른 매체로는 발매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관객: 주인공이 정서적 교류를 하는 다른 관계의 지인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스터디는 목적을 가지고 만다는 사람들이고 주로 가족들과 교류를 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감독님께서 진영의 삶이 팍팍하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감독님께서는 숨을 터주는 순간이나 아니면 관계가 그런 장면을 넣을 생각을 해보셨는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배제를 하신 건지 일단 첫 번째로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아버지 역할하시는 배우(박지일)분께서 정말 가부장적인 경상도 남성의 몸짓을 정말 잘 재현하셨다고 생각했어요. 연기하는 과정에서 감독님께서 구체적으로 디렉션을 주신 것인지 아니면 배우님께서 어느 정도 자율성을 가지고 연기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차한비: 개인적으로 진영이 나이 서른이라는 나이를 가진 것과 취업 준비생이라는 신분이 되게 큰 영향을 미친다고는 생각은 하는데 감독님의 의견도 궁금하네요.

김현정: 저도 사실 영화를 다 만들고 나서 깨닫게 되긴 했던 것 같아요. 이야기 속에 어쨌든 넣어야 되는 내용들이 있다 보니까 친구 관계까지 넣기에는 너무 내용이 많아질 것 같아서 철저히 어머니의 죽음을 기점으로 앞뒤 이야기 방식을 구성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나름 고민했던 거는 호진과의 약간의 썸 아니 썸 이런 것들을 생각했어요. 실제로는 그런 관계는 아닌데 영화에서 봤을 때 조금 진영이가 뭔가 마음이 있나 헷갈리게 보이게 할까 잠깐 고민했거든요. 그래서 기계를 같이 보는 장면을 찍어 놓은 게 하나 있긴 했지만 최종 편집 과정에서 너무 사족같이 느껴져서 그런 걸 다 배제시키니 어쩌다보니 관계를 배제한 것 같은 메마른 영화처럼 만들어졌네요. 그리고 아버지 역할을 해주셨던 박지일 배우님에 대해 말씀도 해주셨는데, 디렉션이 필요 없을 정도로 역할과 그에 맞는 연기를 너무 탁월하게 수행해주셨어요. 박지일 배우님 뿐만 아니라 주인공인 이설 배우님의 연기에서도 제가 오히려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박지일 배우님은 본인의 아버지를 많이 떠올리셨다고 먈씀해주셨어요. 부산분 이셨는데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와 동시에 저에게 도움되는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셔서 본인의 삶과 아버지의 삶, 그리고 말씀해주신대로 몸 쓰는 부분에서 구부정한 느낌들을 일부러 보여주시려고 하셨다고 들었어요. 저는 그 과정에서 캐릭터를 현실로 불러오고 연기로 수행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굉장히 감사했고 오히려 많이 배울 수 있던 것 같습니다.

차한비: 말이 나온 김에 캐스팅 비화 잠깐 듣고 가면 좋을 것 같은데요, 저는 가족의 캐스팅이 너무 절묘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보다 보니까 그런 것일 수도 있는데 이설 배우님과 박지일 배우님이 은근히 닮으셨고 그리고 또 엄마 역할을 해주신 안민영 배우님과 언니 역할하신 강진아 배우님이 또 닮았단 말이에요. 그래서 뭔가 이렇게 섞으면 저 얼굴이 나오겠다 약간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닮은 구석들이 있어서 캐스팅 과정도 궁금하고 어떤 순서로 배우님들 또 모으게 되셨는지도 듣고 싶어요.

김현정: 우선 이설 배우님이 가장 먼저 캐스팅이 됐는데 보통 감독님들이 배우 모집할 때 필름 메이커스라는 모집 사이트를 이용하거든요. 거기서 프로필을 받아서 이설 배우님을 만나게 됐고 프로필을 받는 순간 사실 다른 배우를 더 이상 만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매력적이어서 같이 하게 됐어요. 그리고 아무래도 가족 얘기다 보니 배우님들 간에 이미지적인 조화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다음 후보군 중에 경상도 말을 할 수 있었던 박지일 배우님이 캐스팅이 됐어요. 그리고 안민영 배우님 같은 경우는 이전에 〈외숙모〉라는 작품에서 작업을 진행한 이력이 있어서 그 분의 연기력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박지일 배우님과 이설 배우님 두 분을 아빠와 딸로 캐스팅하고 나니까 엄마 역할에 안민영 배우님도 너무 잘 어울리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이미지 조합들을 고민하면서 순서대로 강진아 배우님까지 모시게 되었습니다.

 

영화 〈흐르다〉 스틸컷

 

 

차한비: 저는 오늘 꼭 여쭤보고 싶었던 질문 중에 하나가 영화에 등장하는 울음에 관해서 한번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진영이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들이 있고 영화에서 그 울음을 보여주기로 한 순간과 보여주지 않기로 하는 순간이 있는데 보여주지 않기로 하는 순간이 조금 궁금했어요. 떠오르실지 모르겠는데 구치소에 들어간 아빠를 만나서도 얘기할 때 분명히 진영이 우는 것 같은데 고개를 돌리잖아요. 근데 카메라의 얼굴이 담기지 않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이제 유학원에 가서 직원과 대화할 때도 카메라는 지금 진영이 뒤통수를 비추는데 유학원 직원이 괜찮으세요라고 물어보는 걸로 이제 미루어 짐작하던데 진영이 아마도 울고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보여지는 두 번의 눈물이 나오는데 하나는 아빠 앞에서 이제 터져 나온 눈물이고 유학원의 계단 밑에 내려와서 그 두 번의 눈물을 제외하면 나머지 순간에는 좀 그 울음을 안 보여주기로 하신 것 같거든요. 감독님은 어떤 고민으로 이렇게 선택하셨는지 궁금했어요.

김현정: 아직 저는 부모님이 살아 있으셔서 부모의 죽음이란 게 뭘지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긴 하는데 실제로 저에게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고민이 많았어요. 근데 그것과는 별개로 시나리오 쓰면서 정말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엄마의 죽음 기점을 자꾸 상상하니까 눈물이 자꾸 터져서 글을 못 쓰겠더라고요. 그래서 시나리오를 후반부를 쓰는 과정에서 사실은 조금 겁나기도 했었거든요. 제가 뭔가 그 감정을 잘못 전달을 할까 그런 걱정도 있었고 한편으로 최대한 상상을 했을 때 당연히 가족의 죽음 이후 몰아치는 슬픈 시기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었어요. 영화에서 그 순간들을 일부러 약간 배제를 시켰고 관련된 감정들이 소강 된 상태부터 일상을 살다가 되게 엉뚱한 곳에서 예기치 못하게 왠지 눈물이 팍팍 이렇게 터지지 않을까 생각했건 것 같아요. 그 슬픔이 그냥 기저에 깔려 있는 거죠. 그래서 오히려 엉뚱한 포인트에서 눈물이 나지 않을까 이런 상상이 좀 했었고 그런 감정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사실 한 포인트 정도 더 엉뚱하게 울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해서 초반에 버스정류장에서 자동차 할부금을 갚아야 된다는 그 얘기에 눈물이 터지는 거를 조금 표현을 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잘 담기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시도는 표현이 충분히 되지 않는 것 같이 해당 장면은 배제를 시킨 거고 결과적으로 영화 속에 남게 된 것이 육교 밑에서 우는 장면이에요. 앞서 말씀드린 고민과 제가 생각하는 진짜 감정 이런 것들이 그 타이밍에 담겨야 될 것 같다고 생각을 해서 본의 아니게 압축적으로 그 장면들이 보여지게 된 것 같습니다.

차한비: 육교 아래에서 엄마 부르면서 울 때 진영의 안에서 진짜로 상실이 시작이 되고 애도가 시작되는구나라고 느꼈던 것 같아요. 혹시 마지막으로 질문 있으시면 받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관객: 처음 이 영화 보고 당연히 해피엔딩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진영이가 외국에서 하는 일이 언니를 만났을 때 언니가 하던 일과 비슷했고 화장실에서의 일도 사실 한국에서랑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라고 생각을 해서 감독님께서는 진영이가 외국에 나가서 사는 엔딩에서 진영이가 행복하다고 느끼실지 그게 좀 궁금했어요. 두 번째 질문은 영화에서 사투리를 주로 사용하다보니 배우의 연기에 있어 불안도가 조금 높아질 수 있던 상황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실제로 감독님이 대구에서 영화를 많이 찍으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사투리 연기에 대한 불안감은 없으셨는지 그리고 영화의 배경을 대구로 지정하신 이유와 감독님이 갖고 계신 지역의 의미가 어떤 것일지 궁금했습니다.

김현정: 저는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면서 만들었어요. 진영이가 헤맸던 이유는 진영이 아버지처럼 대단한 성과라든가 증명해 내야 된다는 강박이 컸기 때문에 굉장히 헤맸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언니나 엄마와 같이 그냥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노동을 하는 사람보다 자기가 뭔가를 더 증명해야 된다는 것 때문에 스스로 더 옭아매는 과정들을 겪었다고 생각해요. 진영이 느끼는 성과나 압박에서 벗어나더라도 매일매일이 충실한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삶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실제로 어떤 노동과 행동을 하잖아요. 그동안은 어떻게 보면 헤매기만 했던 그런 시간을 거쳐서 가족으로부터 홀로서기를 하게 된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선택을 했다는 지점에서 저는 물론 고단한 점은 있겠지만 해피엔딩 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 영화는 대구 배경의 영화고 실제로 대구에서 촬영을 했고요. 저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좀 내심 지역성 같은 것도 좀 보여드리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해요. 아버지로 대변되는 공장이나 제조업 같은 이미지도 사실은 좀 묘사하고 싶었거든요. 외국인 노동자가 대다수이고 환경이 녹록하지 못하고 막 붕괴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기울어져 있는 지역의 배경들도 내심 영화의 내용과 좀 겹쳐서 좀 보시기를 바라면서 경상도 대구로 배경설정을 했어요. 그리고 사투리 같은 경우 제 이전 단편 중에 〈나만 없는 집〉이라는 작품도 대구 배경이고 풀 이제 사투리로 이제 진행이 되는 작품인데 그때 오히려 걱정이 진짜 많았거든요. 당시 이제 주인공이었던 민서 배우가 서울 친구였고 너무 같이 하고 싶었는데 언어 때문에 고민했어요. 그래서 제가 작품의 시나리오를 다 바꿀까, 혹은 그냥 서울 말로 다 바꿀까 고민이 많은 시점에서 그냥 한번 시도해보자 했는데 생각보다 암기로 잘 진행을 했던 경우가 오히려 있었어요. 근데 재밌던 점은 사투리를 제가 가르쳐야 하니까 그게 본의 아니게 연기 연습까지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작품의 경우 제가 이미 이전에 경험한 게 있어서 이번에는 사투리 연기에 대한 걱정은 크게 없었고 더불어 사실 주연 배우님들이 다 경상도 분이셔서 오히려 더 수월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진아 배우님은 사투리를 도와드렸어야 되는데 되게 재밌었던 것 같아요.

차한비: 감독님과 리딩을 하며 사투리 연습, 연기 연습까지 한 번에 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네요. 조금 다른 얘기지만 제가 GV 들어오기 전에 감독님한테 "요즘 뭐 하세요?" 이렇게 물어봤는데 재미있는 거 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현재 작업하고 계신 작품 소개도 듣고 이 자리를 좀 천천히 마무리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김현정: 작년 여름에 장편 촬영을 했는데 그 후반 작업이 얼마 전에 끝났어요. 언제 공개가 될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아마 빠르면 올해, 늦어도 내년에는 공개가 될 것 같고 사실 작품이 한 개 더 있긴 해요. 60분이 조금 넘는 짧은 장편을 하나 이제 만들었는데 아마 올해 상반기에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서신교환〉, 전주국제영화제 상영)

차한비: 감독님이 열일 하시면 저희야 좋죠. 오늘 이렇게 〈흐르다〉 1년 돌잔치에 함께해 주셔서 또 너무 감사드리고 관객분들과 오순도순 우리끼리 남아 있는 느낌이 더 재밌고 좋았던 것 같아요. 감독님 어떠셨는지 오늘 소감과 함께 끝 인사 들으면서 이 자리는 마무리를 하도록 하고 오늘 저희의 축하와 응원을 받아서 두 작품 모두 빠른 시일 내에 볼 수 있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김현정: 사실 이 자리 때문에 오늘 대구에서 왔는데 되게 좀 설렜거든요. 〈흐르다〉 로 GV한 게 오랜만이기도 해서 오늘 이렇게 다들 이렇게 반짝반짝 이렇게 자리 잘 채워주시고 또 얘기 같이 나눠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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