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땅〉: 끊어지지 않는 것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채운 님의 글입니다.
런던에서 대학원 입학을 앞둔 호림(정회린)은 우연히 주운 캠코더 속에서 어떤 여성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본다. 이후 호림은 공원에서 자신의 옛 애인인 동환(감동환)과 마주치고 이어서 동환의 현재 애인인 경서(김서경)를 만난다. 그리고 호림은 경서의 친구이자 캠코더 속 여성인 이원(공민정)을 만나게 된다. 이처럼, 처음 보는 인물들 사이의 조우가 잇따라 발생하는 서사의 흐름은 ‘이어지는 땅’이라는 영화의 제목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영화는 1부와 2부로 나눠 볼 수 있다. 우선 1부는 호림과 동환의 이야기이다. 호림은 동환과의 재회를 위해 갖가지 애를 쓴다. 휴대 전화가 고장났다는 거짓말을 하며 동환에게 접근한 호림은 동환의 현재 애인인 경서를 만나며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경서에게 은근슬쩍 긴 머리 시절의 동환을 이야기하거나 자신과의 연애 기간과 경서와의 그것을 견주는 등, 조바심을 내며 과거의 인연을 현재에 다시 이어 붙이려 한다. 그러나 이는 거듭 실패한다. 이별 후 호림과 동환 각각이 쌓아온 감정의 퇴적물이 더는 서로 혼합될 수 없는 시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한편 2부는 이원의 과거로 이루어진다. 조경 일을 하는 이원은 어느 날 화진(류세일)을 만난다. 해가 저문 무렵, 이원은 화진과 거리를 함께 걸으며 편안한 대화를 이어간다. 이원과 화진은 자신들이 무언가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믿음을 가진다는 기질을 공유한다. 어느 광장에 이른 두 사람은 담배를 피우려고 한다. 라이터를 구하기 위해 화진이 길을 나서고 화진을 기다리던 이원 역시 광장을 벗어나며 둘은 다시 재회하지 못하게 된다. 순탄할 줄만 알았던 인연이 의도치 않게 끊어지는 순간이다.
유적이 된 건물과 여전히 자라나는 식물. 과거가 담긴 캠코더와 현재를 비추는 카메라. 그림 속에서는 죽어 있으나 실제로는 살아 있는 비둘기. 헤어진 후 마주 앉은 옛 연인과 이별하지 않았지만 만날 수 없는 두 사람. 〈이어지는 땅〉 속 여러 요소들은 멀리 떨어진 채 점대칭을 이루고 있는 것만 같다. 상반된 의미를 품기에 단절된 듯한 이들은 사실 시간을 축으로 이어져 있기에 결코 끊어질 수 없는 것들이다. 플라밍고에 대한 진실이 시간이 지나 거짓으로 밝혀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어지는 땅〉은 우리가 끊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여러 조각들 사이에 여전히 끊어지지 않는 그 무언가가 있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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