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사람, 길 위의 기억: 〈길위에 김대중〉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진하 님의 글입니다.
작은 이야기를 좋아해서 독립 영화를 좋아한다.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이야기.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 속에서 조금씩 다른 감정을 느끼며 변화해 가는 인물들. 모두가 봐야 하는 영화보다는 아픔을 아는 소수의 사람이 진하게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사랑하며 살아왔다. 정치인, 그것도 전 대통령의 전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는 얼핏 큰 이야기만을 다룰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위에 김대중〉은 한 사람의 큰 이야기를 통해 같은 시대를 살아간 시민들의 이야기로 뻗어나갈 가능성을 품고 있다.
〈길위에 김대중〉은 김대중 대통령의 청년 시절부터 본격적인 정치를 시작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한 인물의 이야기이면서, 일제강점기부터 한국 전쟁, 군사정권 등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이 모두 그려진다. 시대적 배경이 사람 김대중에게 끼친 영향과, 그런 시대 속에서 정치가 김대중이 내린 결정을 오가며 '정치인 김대중'을 보여준다.
90년대 말에 태어나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교과서에서, 부모님의 입으로, 뉴스 기사와 인터넷에서 오르내리는 이름과 구호를 통해 만났을 뿐이다. 진보의 상징. 러닝타임 전체를 채우고 있는 과거 사진과 영상 푸티지는 구호와 상징으로만 만났던 그의 이름이 실제로 어떤 시대를 지나 만들어진 것인지 실감하게 한다.
뜨거운 투쟁만큼이나 차가운 아픔과 죽음을 지닌 채 한국은 '성장했다.' 경제적 성장과 함께 많은 것이 달라졌다. 지역감정이라는 프레임은 여전히 작동하고, 현대사의 비극적인 부분이 반복되는 듯한 기분이 드는 한편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정치인들의 말에 특별히 귀 기울이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푸티지 속 많은 사람이 모여 정치인의 연설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며 수많은 사람이 저마다 품고 있었을 정치적 희망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다큐멘터리 3부작 중 첫 번째라는 〈길위에 김대중〉은 그가 16년 만에 광주로 돌아가 시민들을 만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이 영화가 여타 전기영화와는 다른 연결성을 가지는 지점이다. '김대중 석방'과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던 수많은 사람이 광주의 길 위에서 죽었다. 그 길 위에 다시 서서, 쏟아지는 환호만큼의 책임감을 그는 느꼈을 것이다. 정치인은 시대로, 발언으로, 정책으로, 지역으로, 구호로, 사건으로, 정당으로, 이미지로 기억된다. 각자의 서 있는 곳에서 그 모든 걸 지켜본 사람들이 있다. 이 3부작 다큐멘터리가 다루는 이야기가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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