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위에 발 딛고서
〈이어지는 땅〉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4년 1월 6일(토) 오후 6시 상영 후
참석 조희영 감독, 공민정, 류세일, 정회린 배우
진행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이빈 님의 기록입니다.
〈이어지는 땅〉 속 인물들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런던과 밀라노에서 같은 언어인 한국어를 사용한다. 경계선에 서 있는 듯한 언어 사용은 어딘가 이질적인 이방인의 정서를 자아낸다. 언어만을 기준으로 두고 보았을 때, 인물들은 이방인이 되었다가도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공유하는 관계 형성을 뚝딱 해내기 때문이다. 이방인에 대한 두터운 시선, 배우와 연출자를 신뢰하는 롱테이크, 캠코더의 질감, 기억의 왜곡, 사운드가 자아내는 거리감. 〈이어지는 땅〉 위에 이어진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던 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향한 기분 좋은 의심을 가져 보기 시작했다.
이은선 저널리스트(이하 이은선): 안녕하세요, 〈이어지는 땅〉 개봉 전 프리미어 상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진행을 맡은 이은선 기자라고 합니다. 새해 첫 인디스페이스 방문인데요, 그 전에 오셨던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늘은 〈이어지는 땅〉 감독님과 배우 세 분 모시고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관객 여러분들에게 한 말씀씩 해 주시고, 본격적으로 대화 시작해 보겠습니다.
조희영 감독(이하 조희영): 안녕하세요, 〈이어지는 땅〉 개봉 전에 프리미어 상영을 하게 됐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공민정 배우(이하 공민정): 안녕하세요. 〈이어지는 땅〉에서 이원을 연기한 공민정입니다.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해요. 이야기 많이 나누도록 해요. 감사합니다.
정회린 배우(이하 정회린): 안녕하세요. 호림을 연기한 정혜림이라고 합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류세일 배우(이하 류세일): 안녕하세요. 저는 〈이어지는 땅〉에서 화진 역할을 맡은 류세일입니다. 와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은선: 영화제를 통해서 이 영화를 먼저 보신 분들이 자리에 계실지 모르겠어요. 영화가 막 끝난 직후에는 생각이 여러 가지로 엉켜 있죠. 질문을 생각하실 동안에 제가 먼저 게스트분들께 질문을 몇 가지 드려 보고 관객석으로 마이크를 넘겨서 같이 이야기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감독님께 첫 질문을 드려보고 싶은데요. 이 영화에 대한 저의 첫 인상은 ‘걷는 시간’이었어요. 그래서 산책 같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동시에 좀 사색 같은 영화 같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런데 이 영화가 처음에 서울독립영화제에 상영을 할 때, 감독의 로그라인을 굉장히 인상 깊게 보았거든요. ‘우리는 움직이는 땅을 자리만 바꿔가며 디디고 서 있다’ 라는 표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한 줄이 딱 써 있었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제가 왜 이 로그라인을 떠올렸냐면, 산책하는 영화 혹은 움직이는 영화라고 생각을 했는데 로그라인에서 설명하는 움직이는 주체는 내가 아닌 느낌이었거든요. 땅이 움직이고 있는 느낌으로 영화를 설명하신 것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가 듣고 싶었어요.
조희영: 제가 말씀해 주신 로그라인 같은 문장을 염두에 뒀던 이유가 움직이는 땅이라는 문장을 좀 포괄적으로 이미지화 했던 것 같아요. 움직이는 땅이 환경일 수도 있고, 내가 사는 곳의 환경적인 요건이나 내가 만나는 사람, 관계, 그 수많은 것들일 수 있죠. 그런 것들이 계속 움직이고 있다고 여기면서 그 문장을 떠올렸어요.
이은선: 내가 움직이는 것이 삶이기도 하지만 나를 둘러싼 환경과 관계의 변화들을 조금 더 생각하게 하는 로그라인과 또 제목까지도 그 인상이 이어지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고요. 작품에서 공민정 배우와 정회린 배우는 단편 작업도 감독님과 함께 하신 적이 있으세요. 단편 작업이나 혹은 장편 작업을 이전에 했던 멤버들이 다시 뭉쳤을 때 우리는 이런 오해 아닌 오해를 하게 되죠.(웃음) ‘이 팀 사이가 굉장히 좋았나 보다’ 혹은 ‘서로의 작업에 굉장히 만족했나 보다’ 라는 기분 좋은 오해 아닌 오해들을 하게 되는데, 장편 작업은 단편과 조금 다르기도 하고, 배우들의 입장에서는 감독이 첫 장편을 만들 때 좀 힘을 실어주고 싶은 기분 같은 것도 간혹 있다고 생각을 해요. 이따가 다른 질문을 또 드리겠지만 이미 장편 작업 이전에 단편 작업을 하신 두 분께서는 감독님의 장점을 어떻게 파악하셨는지도 일단 궁금해요. 그것이 저희가 오늘 느낀 연출의 장점과 일치하는지도 굉장히 궁금하기도 하고요.
정회린: 저는 〈주인들〉이라는 단편 작업이 처음 연기했던 작품인데, 감독님과 같이 작업할 때 항상 뭔가 가둬지지 않은 채로 제가 표현하고 싶은 그대로 그냥 둬 주셨던 그런 면들이 저한테 재미있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그냥 믿어 주시고 그런 것들이요.
이은선: 공민정 배우님은 어떠세요? 감독의 연출에서 어떤 인상들을 받으셨어요?
공민정: 예전에도 〈두 개의 물과 한 개의 라이터〉, 〈주인들〉 이렇게 같이 작업 했었는데요. 첫 작업부터 그냥 이 현장이 굉장히 편하다, 나를 굉장히 편하게 해 준다는 느낌을 받았었고 아까 말한 것처럼 좀 놀 수 있게끔,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어떤 약속이 없는 건 아니고 내가 안전한 울타리가 있다는 느낌 하에, 그 안에서 충분히 놀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감독이라는 걸 첫 작업 때 느꼈어요. 한 번만 같이 해 봐도 어떤 사람인지 믿음이 생기잖아요. 알 수 있잖아요. 두 번째 작품도 마찬가지로 또 여전히 좋았고 그래서 장편을 찍을 때 물론 제가 힘이 될지 모르겠지만 조희영 감독이 찍는 첫 장편 영화에 꼭 함께하고 싶고, 같이 첫 장편 작품을 만들어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이은선: 모르지만 엄청나게 힘이 됐을 거예요. 함께 작업했던 사람들이 나와 함께 그 작업을 조금 더 확장해서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만큼 영화를 함께 만드는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어떤 팀워크 같은 게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고요. 자유롭게 연기를 할 수 있도록 풀어 준다는 표현을 쓰셨는데, 이 영화가 길게 이어지는 카메라의 시간들의 연속이기도 하죠. 그래서 숏의 길이가 굉장히 긴 편이고 전체 신을 세어 봤을 때도 최근의 장편 영화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신의 수 자체가 좀 적어요. 아주 간결한 세팅으로 이루어져 있는 영화인데, 바꿔 말하면 배우들이 그 카메라의 시간을 좀 버티듯이 작업해야 되는 순간들도 분명히 있는 거죠. 오래 본인을 관찰하는 무게감을 이겨내야 하는 작업이랄까요? 지금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것이 무게감으로 다가왔던 작업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긴 시간 안에서 본인의 연기를 계속해서 지켜보는 카메라가 있는 현장을 경험했던 소감이 굉장히 궁금해요. 아닌 영화들도 있겠지만 요즘은 숏의 길이가 굉장히 빠르고 화면 전환이 많은 연기들에 익숙함을 요하는 경우들도 있기 때문에 이런 작업이 배우들에게 주는 환기 혹은 즐거움도 분명히 있을 것 같거든요.
류세일: 저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숏의 길이가 굉장히 길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때 좋았던 점은 짧게 짧게 가는 것이 아니라 길게 가니까 충분히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어요. 그래서 뭔가 계속 커트하는 형식으로 가는 게 아니라 쭉 계속 갔던 것 같고요. 그게 그때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지만 돌이켜 생각해 봤을 때, 잘 존재할 수 있는 어떤 여건을 만들어 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정회린: 롱테이크로 계속해서 촬영을 하는 방식이다 보니 연기할 때도 호흡이 끊기지 않았고, 계속해서 몰입할 수 있는 힘들이 작용했던 것 같아요.
공민정: 기본적으로 롱테이크로 찍으면 배우 입장에선 편하죠. 그 시간을 그냥 살아내는 건데, 카메라를 버틴다는 느낌보다는 그 안에서 내가 프레임 인 하고 아웃할 때까지 아니면 아웃을 안 하더라도 그 안에 있는 동안 우리가 첫 대사부터 마지막 대사까지 지킬 약속 지키고 그 안에서 내 마음대로 다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물론 캐릭터 안에서 할 수 있는 정도로요. 그래서 그것만큼 편하고 재미있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컷을 하나하나 쪼개고, 쪼개고, 또 쪼개는 식으로 찍으면 이전 감정도 연결해야 되고 상황도 연결해야 되고 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들어오는데 오히려 그게 더 어렵다면 어려울 수 있는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그냥 한 테이크로 찍으면 좋은 것 같아요.
이은선: 이건 그 안에서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는 배우들의 힘인 것 같기도 하고, 저는 잘 찍은 롱테이크 장면들을 보면 되게 좋은 믿음의 형태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항상 해요. 배우도 감독을 믿고, 연출가 역시 배우의 어떤 면모들을 믿어 줘야만 포착할 수 있는 순간들이 아주 좋은 롱테이크에는 담긴다고 생각해요. 이 영화에는 그런 순간들이 아주 많은데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를 조금 돌이켜 보면서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영화가 공원의 장면으로 시작을 하죠. 그전에 어떤 상황이 아마도 정회린 배우가 연기한 인물을 쭉 따라가면서 펼쳐졌을 텐데 우리에게 주어지는 그 첫 번째 사건은 캠코더를 발견하고 그것을 보는 것이에요. 이 캠코더라는 장치가 극 안으로 들어오게 된 과정이 굉장히 궁금한데 이전에 감독님의 단편 작업을 보신 분도 계시고 보시지 못한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전의 작업에서도 내 곁에 없는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을 보여 준다거나 혹은 물건이 등장하는 식의 이야기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캠코더는 조금 더 적극적인 장치 같거든요. 왜냐하면 내 눈앞의 시야 그리고 기억을 저장하는 물리 매체라는 점에서 이전에 활용하셨던 대화에서 나오는 기억의 방식이나 다른 물건과는 조금 다르다는 인상을 첫 장면부터 받았던 것 같아요. 캠코더라는 장치가 그 안으로 들어오게 된 과정이 좀 궁금합니다.
조희영: 캠코더라는 장치가 시나리오에 들어오게 된 되게 명확한 계기가 있었는데, 그것도 사실 우연스러운 계기였던 것 같아요. 극 중에 경서 역할을 맡은 김서경 씨가 평상시에 오래된 캠코더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는데, 캠코더로 영상을 만들고 혼자 편집하는 게 취미라고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도 같은 기종으로 영화용 소품으로 한번 구매를 해 볼까 해서 구매를 하고 나서 그 캠코더를 어떤 장치로서 활용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이은선: 그게 인물 각자가 가지고 있는 기억이라는 소재와 묘하게 맞물리면서 이 영화에 되게 독특한 질감을 만든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것이 가장 좋은 의미의 이질적인 어떤 질감으로 드러나는 것이 지하도 장면인 것 같아요. 두 인물이 밤에 지하도를 걸어가는 화면 자체가 캠코더 질감으로 표현이 되고, 카메라 속에서 이원을 봤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있죠. 그러면서 ‘나는 그걸 잘 못 볼 것 같다’는 이원의 대사가 끝난 이후에 앞으로 홀로 걸어가는 뒷모습을 쭉 포착하는 그 지하도 장면이 기억이 나실 텐데요. 이 장면이 왜 좋은 의미에서 이질적이라는 표현을 썼냐면 마치 이걸 바라보고 있는 게 호림의 시선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신의 목표라든지 담고 싶었던 질감들이 다 궁금하긴 하지만 지하도 장면은 특히 여쭤보고 싶었어요. 어떤 질감과 표현을 기대하셨는지요?
조희영: 사실 그 장면 촬영할 당시에 가장 긴장하고 떨렸던 것 같아요. 시나리오 쓸 때의 그 분위기를 온전히 캠코더 하나로 구현해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고 두려움도 있었는데 당시에 그 장면에서 제가 풀어보고 싶었던 뉘앙스가 있었어요. 이 두 사람이 일상적인 움직임 안에서 굉장히 환상적인 만남 혹은 환상적인 어떤 사건들, 그런 굉장히 다른 시점에서의 생각이나 사건이 개입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분위기가 호림에서 이원으로 전환될 때 필요하다고 느꼈고, 그래서 지하도 장면에서는 조금 더 캠코더의 오래된 화면의 질감에 조금은 기대서 그런 환상적인 시선으로 이원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하려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이은선: 그 장면에서는 방금 말씀하셨던 목적이 되게 분명하게 보였다고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저는 이 영화 곳곳에서 배우들의 움직임을 조금 반하듯이 카메라가 지켜보고 있다 혹은 아주 오랜 시간 관찰한 이후에 이 배우가 어떻게 움직일 때 가장 말하자면 피사체로서, 캐릭터로서 아름다운지를 좀 포착한 측면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도 그렇게 들어간 장면들이 있는지 궁금해요. 예를 들면 공민정 배우가 맡은 역할이 식물을 심는 사람인데, 그것 때문에라도 필요한 장면이긴 했지만 저는 그 식물을 돌보는 테라스였을지, 어딜지 모르는 장소에서의 장면은 말하자면 제가 설명한 ‘카메라가 이 배우의 움직임에게 반한 순간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어쩌면 시나리오상의 구현보다 조금 더 즉흥적으로 들어간 그런 움직임의 장면들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여기 앉아 계신 세 캐릭터, 세 배우의 그런 순간들을 실제로 감독님이 느끼신 부분이 있는지 궁금해요. 즉흥적으로 반영된 장면이 있을까요?
조희영: 초반에 호림이 공을 튀겨 주는 아저씨 사이로 걸어가는 장면은 그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생겨난 것인데요. 이외에 다른 장면들은 다 시나리오에 있었던 것 같아요.
이은선: 너무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무언가로 보여서 제가 이런 질문을 드렸던 것 같아요. 아까 지하도 장면 이후에 이원에게는 배우로서는 어려웠을 만한 어떤 장면 하나가 주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카메라를 보고 과거를 이야기하는 이원의 독백 장면이 있는데, 이게 외적으로 보면 오디션 셀프 카메라 느낌과 굉장히 비슷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웃음) 카메라가 돌면 ‘자유 연기를 해 보세요’ 같은 느낌의 장면이라고 해야 될까요? 그래서 공민정 배우가 이원을 연기하는 과정에 이 신을 촬영하는 목표라든지 하는 마음은 조금 달랐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조심스레 해 봤는데, 실제 촬영은 어떤 마음으로 다가갔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공민정: 그날 기억이 선명하게 나는데요. 오디션 영상 찍듯이 테이블 위에 카메라 올려 놓고 찍었고, 근데 사실 어떤 특별한 건 없었고 그냥 제가 제일 친한 친구한테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고 연기했던 것 같아요. 전하는 이야기들도 내가 직접 겪은 일이라 믿었고, 믿으려고 했고 그래서 제 얘기를 친구한테 해 준다는 그것만 생각했어요.
이은선: 네, 또 한편으로 정회린 배우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인상적으로 마음에 남게 하는 무언가를 만드셨는데, 저는 정회린 배우가 연기하는 장면을 보고 제가 차이는 기분을 느꼈거든요. 다시 한 번 차이는 것 같은, 가슴 아픈 어떤 이별의 순간을 이 영화를 통해 체험하게 되었는데, 그 장면에서 좀 배우에게 죄송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배우 스스로의 만족도가 궁금해요. 왜냐하면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정회린 배우가 정말 아름답게 감정을 잘 다루는 배우라고 한 번에 인식하게 되었던 순간이기도 하거든요. 전 애인에게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고백하고 결국엔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장면을 촬영할 때, 그리고 이후에 보셨을 때 장면의 만족도는 어떠했나요?
정회린: 일단 그 신을 찍기 전에 대사를 봤을 때 처음에 드는 생각은 호림이 격정적으로 어떤 행동을 취했을 것 같다는 거였어요. 그러다가 제가 현장에서 감동환 배우와 연기를 같이 하면서 그냥 다르게 해 보자는 마음으로 연기를 했어요. 그때 동환 님과 합이 되게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연기를 하면서는 그냥 순간적으로 몰입이 너무 잘 되었고, 그리고 그때 연기가 끝나고 한 번 더 다시 하고 싶다는 마음이 사실 있었는데 감독님이 조용히 오셔서 ‘오케이에요’ 이렇게 해 주시고 가셨거든요. 그래서 저도 그때 제가 어떻게 연기를 했는지 되게 궁금했어요. 그리고 동환에게 최대한 제 슬픈 마음을 숨기려고 하는 그런 생각으로 얘기를 했던 것 같아요.
이은선: 일어나지 않은 과정을 질문하는 건 좀 무례하고 죄송한 질문이긴 하지만 다르게 연기를 했다면 어떤 톤이었을까요? 지금은 너무 최상의 결과물처럼 느껴지는데 현장에서 다르게 해 보고 싶으셨다고 하니 문득 궁금해지는데요.
정회린: 조금 더 날카롭고 거칠게 하지 않았을까요? 제가 이해했을 때, 처음 생각은 그랬던 것 같아요.
이은선: 그 다른 버전을 우리는 영영 볼 수 없습니다. (웃음) 한편으로 화진 역은 또 다른 역들과 너무 다르게 어려웠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 캐릭터는 이전의 캐릭터들과의 관계성이 전혀 없는 데다가, 우리가 한 번쯤은 비포 선라이즈 류의 영화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어떻게 보면 전형성을 좀 가진 캐릭터잖아요. 그래서 이 캐릭터의 톤앤매너를 잡는 게 배우에게 굉장히 어려웠을 것 같아요. 적당한 설렘도 관객에게 줘야 하고, 한편으론 이게 자칫 잘못하면 조금 느끼해지기도 쉬운 캐릭터라서 어느 적정선을 찾아야 할까 하는 부분이 배우의 가장 큰 고민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밸런스를 잡아가는 것이 배우에게도 가장 큰 숙제였는지 궁금하네요.
류세일: 네, 실제로 그게 가장 큰 숙제였어요. 바로 생각이 나는 게, 저는 런던 로케이션을 못 가고 바로 밀라노로 갔었는데 그래서 마주했을 때의 생경함이 있었거든요. 나중에 서울에 돌아왔을 때 저도 런던에 가서 뭐라도, 짐이라도 하나 들어 볼 걸 그랬다 하는 얘기를 했었는데, 다시 또 영화를 보고 생각하니까 화진이 어찌 됐던 이원을 처음 만나는 건 여행에서 만나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게 딱 맞아떨어졌던 것 같아요. 인간 배우로서는 제가 좀 더 런던에 가서 같이 시간을 보내고 친근해지고 했었더라면 더 좋은 시너지가 나지 않았을까 하는 1차적인 생각을 했었는데 그렇지 않았더라도 다 맞더라고요. 화진이 여행 온 게 맞고, 저한테도 감각적으로 그 낯섦이 확 오니까 그런 쪽으로 영향을 받고 톤을 잡았던 것 같습니다.
이은선: 화진이 가구 만드는 얘기 같은 걸 중간에 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이 사람이 일하러 온 것이 맞는가 하는 의심을 저는 끝까지 거두지 않을 수 없었어요. (웃음) 어쨌든 배우들에게는 또 이런 질문을 공통적으로 드려 보고 싶은데요. 이별 후에 남은 잔여 감정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게 이별 후에 놀랍게도 좀 말끔히 해소되는 타입의 사람도 있을 거고, 내가 왜 이러지 싶을 정도로 오래 가지고 가게 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어쨌든 그 잔여라는 것은 남기 마련인데, 그것 또한 그렇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어떤 설렘 같은 것도 우리 인생에 있는 굉장히 보편적인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이 영화는 결국에 아주 특이한 어떤 이야기들을 다루는 건 아니지만 그런 보편적인 만남, 헤어짐,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익숙한 곳이 아닌 조금 새로운 배경에서 풀어냈다는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방금 언급해 주셨듯, 런던과 밀라노라는 배경이 등장하는데요. 배우들은 익숙한 감정, 내가 여러 가지로 생활에서 혹은 연기로 잘 아는 감정들을 새로운 공간에서 펼쳐낼 때 조금 특별해지는 감정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아니면 생각과 다르게 장소는 크게 상관이 없다 하는 인상을 오히려 받은 게 있을까요?
공민정: 당연히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고, 보이는 거에 영향을 많이 받지만 사실 캐릭터 자체는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여기에 익숙한 사람이라서 제가 받는 환경이 주는 영향이 캐릭터한테는 영향을 주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새롭거나 하는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캐릭터로서는 익숙한 공간이니까 익숙한 곳에서 찍는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은걸요? (웃음)
정회린: 저도 실제로는 살면서 처음 가 본 곳이어서 뭔가 낯설었지만 어쨌든 사랑하는 사람을 한 번 더 보려고 가는 곳이었기 때문에 여기저기 구경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웃음) 굉장히 낯설었습니다.
이은선: 신선하고, 낯설고한 감각들이 자기도 모르게 어느 정도 배어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류세일: 정말 신선했는데, 얼마나 신선했냐면 제가 밀라노에 도착해서 약속된 장소에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아야 했어요. 어떤 분이 저한테 오셔서 여기에 갈 수 있다고, 따라 오라고 해서 너무 좋다고 하면서 갔는데 검정색 벤츠가 온 거예요. 그래서 나를 이렇게 대접해 주네 하는 생각으로 탔는데, 그날 갖고 간 돈 다 썼거든요. (웃음) 그래서 감독님한테도 제가 돈을 다 썼습니다 하고 말씀을 드리고 할 정도로 생경했습니다.
이은선: 도착 첫날의 생생한 에피소드까지 갑자기 들을 수 있게 됐네요. 영화의 스타일이라고 할 만한 것을 또 하나 감독님께 여쭤보고 싶은데, 저는 질문을 준비하면서 이게 의도된 스타일이 아니면 어떡하지 하는 약간의 걱정을 하면서 생각한 게 있어요. 제가 이 영화에 왜 이렇게 이입이 안 되지 하는 부분, 그러니까 장면은 좋은데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지지 하는 생각을 좀 해 봤어요. 근데 그게 이 영화의 편집 스타일에 있더라고요. 카메라는 멀리서 인물을 잡고 있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일상적인 상황을 생각하면, 예를 들어 저랑 맨 뒷줄에 앉아 있는 관객분이 여기서 대화를 한다면 목소리가 작고 잘 안 들리는 게 정상적인 거리감이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는 거기에 후시를 붙이기 때문에 소리 자체는 굉장히 가깝게 들려요. 그러니까 여기서 오는 이질감 같은 거였던 거예요. 보다 보니까 저는 그 자연스럽지 않은 거리감을 인식하게 하는 것 자체가 이 영화의 스타일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실제로 그랬는지가 좀 궁금해요.
조희영: 반은 맞고, 반은 다른 것 같은데요. 후시 녹음을 하지 않은 작품이에요. 근데 처음에 녹음할 때 수음을 하는 위치부터 처음부터 인물들하고 계속 가까웠어요. 촬영 감독님이랑 처음 논의했을 때 촬영을 최대한 거리감 있게 잡았으면 좋겠고, 사운드는 거리감과 관계 없이 가도 좋다는 걸 동시 녹음 해 주는 친구한테도 공유를 했거든요. 그랬던 게 이런 효과를 낼 줄은 예상 못 했지만 저한테 가장 중요했던 건 소리가 들려야 한다는 점이었어요. 카메라와 피사체의 거리감하고 같지 않은 조건이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은선: 그게 되게 독특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 같아요. 오늘이 개봉 전 GV잖아요. 이제 이후로는 의도했다고 하셔도 상관없지 않을까요? 우리만 입 다물면 되잖아요. (웃음) 이것 외에, 굉장히 독특한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자연의 풍경들을 담을 때와 비어 있는 공간을 담을 때 카메라의 느낌이 굉장히 다르다라는 거였어요. 그래서 자연이 등장할 때의 카메라와 사물을 비추는 카메라의 목표가 달랐는지가 궁금해요.
조희영: 말로 잘 설명할 자신은 없지만 여쭤보신 그 질문에 최대한 가깝게 답을 드리자면, 계속 동그란 지구의 이미지를 생각해 왔었거든요. 그래서 이 영화를 촬영할 때, 카메라가 만약에 허공에서 우리를 계속 관찰할 수 있는 관찰자의 시선을 갖고 있다면 정말 다른 레벨과 다른 각도에서 계속해서 지켜 봐 주고 있다는 그런 카메라의 시선을 계속 상기시키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촬영 감독님과 계속 이야기했던 건 최대한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뉘앙스를 풍기자는 거였어요.
이은선: 맞는 비유는 아닐 것 같긴 하지만 인공 위성 같은 것이 계속 관찰하는 것 같은 그런 인상을 실제로 받았던 장면들이 있기도 해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여쭤보고 관객석으로 마이크를 넘기려 해요. 이게 가장 궁금한 점이었는데, 영화가 이방인들의 얘기잖아요. 물론 이원은 정착한 사람이지만 그도 어딘가에서 떠나와서 이곳에 정착했던 한 사람이죠. 물리적으로 터전을 옮긴다는 게 요즘 세대나 최근의 창작자에게는 이전과 다른 의미인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무슨 이야기냐면 예전에 1세대, 2세대 이민자들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진짜 아메리칸 드림 혹은 다른 꿈을 꾸면서 삶의 터전을 옮겼을 텐데, 지금에 와서 터전을 옮긴다는 것은 조금 다른 의식의 표현 같다는 거예요. 〈이어지는 땅〉이라는 제목도 연결의 느낌이 강한 어떤 시대를 생각하게 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여기서도 이원이 그런 대사를 하잖아요. ‘뭐가 그리운 건지 모르겠는데 계속 그립다’고. 아마도 그것이 이전과는 다른 이방인의 정서일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감독님께서도 실제로 오늘날의 이방인의 정서 혹은 터전을 옮긴 사람들의 정서가 새롭게 있다고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하고, 본질적은 달라지지 않는다고도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조희영: 되게 재밌는 질문인 것 같아서 반가운데, 그렇게 생각해 보면 좀 다양한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것 같긴 해요. 이전 세대에 갖고 있는 이방인으로서의 어떤 차이 혹은 감각들이 제가 느끼기에는 어떤 본질적인 것은 변함없이 이방인들이 공유할 수 있는 지점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거는 언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언어로 비롯한 차이와 그것이 문화까지 가기까지의 모든 차이들이 이방인 혹은 다른 나라에 살고, 또 옮겨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고독이나 상실감을 유발할 수 있는 뭔가 본질적인 차이가 아닐까 해요.
이은선: 그래서 여기서 이원이 외국어를 쓰는 장면이 잠깐 잠깐 등장하긴 하지만, 공간이 외국임에도 한국 사람들끼리의 어떤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거기서 발생하는 조금 재미있는 이질감 같은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이방인인데 마냥 이방인으로 보이지 않는 정서, 좀 떠도는 사람들이지만 마냥 떠돌지 않는 사람들의 정서 같은 게 이 영화에는 좀 있는 것 같고, 그게 포괄적으로 혹은 결과적으로 〈이어지는 땅〉 이라는 제목과도 다 연결되는 지점들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난해한 질문이었을 텐데 답변 감사합니다.
관객: 화진이 장소가 어딘지 물어봤을 때, 그쪽 가는 길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쪽 가는 길이라고 하면서 이원이 안내해 주잖아요. 두 사람의 감정이 뭐였길래 일부러 거기까지 데려다 줬는지 궁금하고요. 또 제가 제대로 봤는지 모르겠지만 동환과 경서가 노래 부를 때 호림이 한쪽 눈에서만 눈물이 났던 것 같아서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이은선: 공민정 배우님께 답변 부탁 드릴까요? 극중에서 실제로 별 의미 없었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죠.
공민정: 네, 그렇죠. 가는 길이었어요. 가는 길이어서 데려다 준 거죠. 근데 다시 만났을 때에는 조금 반가웠고 그때 이야기를 나누면서 뭔가 더 얘기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그냥 진짜 호의였어요.
이은선: 별뜻 없었다는 대사와 똑같은 마음이었네요. 회린 배우는 아까 언급해 주셨던 장면을 찍을 때 어떤 감정이셨는지 덧붙여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정회린: 한쪽 눈에서만 눈물이 난 걸 이제 알았어요. 자세히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건 제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어서 크게 의미는 없었고요. 그런데 사실 제가 그 신을 촬영할 때는 그냥 제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었던 이가 지금 행복한 모습을 보고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뭔가 속상하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하고 그렇지만 그의 행복을 바라기도 하는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연기했던 것 같습니다.
관객: 영화 제목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어요. 왜 〈이어지는 땅〉이 된 건지 궁금하고요, 한 가지는 배우분들 전체적인 질문인데 촬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장면들이 어떻게 보면은 끝나고 나서는 가장 만족스러운 장면인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실제로도 이번에 힘들었던 장면과 가장 좋았던 장면이 일치하는지 그 부분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조희영: 처음에 제가 제목 지을 때 런던과 밀라노에서 촬영이 이뤄질 거라는 계획을 세운 다음에 런던, 밀라노 도시 이름의 어원을 한 번 찾아봤었어요. 런던의 어원은 ‘좁은 땅의 성’이었던 것 같고,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밀라노에서 찾은 어원의 뜻이 두 개의 강 사이에 떠 있는 땅이었어요. 도시의 어원이 주는 제 나름대로의 어떤 해석과 이미지가 그려져서 그와 함게 시나리오 작업을 했었는데 그래서 〈이어지는 땅〉이라는 제목이 자연스럽게 붙게 됐어요. 〈이어지는 땅〉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그림이 관객분들마다 다르게 새겨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제목을 그렇게 지었습니다.
이은선: 혹시 ‘땅’이라는 단어를 다른 단어로 바꿔 보신 적은 없으세요?
정회린: 네, 제목을 한 번 바꿔 보려고 했었는데 다른 제목이 떠오르지가 않더라고요.
이은선: 배우분들께도 질문 주셨는데요. 촬영 때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했던 게 이후에 봤을 때 가장 만족스러운 장면과 일치하셨을까요?
공민정: 가장 힘들었던 장면은 우선, 저희가 런던에 도착해서 촬영을 할 때 시차적응은 물론이고 잠도 잘 못 잔 상태에서 잠을 이겨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런던 집에서 호림이랑 이원, 서경, 동환이 만나서 얘기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진짜 죽겠는 거예요. (웃음) 눈이 막 감기고, 물리적으로 잘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서로 계속 그냥 눈 뜨고 쳐다보고 있고, 근데 그 장면이 그때는 다른 게 힘든 게 아니라 버티는 것 자체가 힘들었던 건데, 지금 생각해 보면 되게 웃기거든요. 힘든 만큼 기억에 많이 남고, 재미있었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회린: 저도 힘들었다면 그 장면이 그렇긴 한데.
공민정: 진짜 졸렸죠. (웃음)
정회린: (웃음) 제가 좋았던 거는 테라스 신에서 제가 원래 라이터를 놓고 가야 하는 거였는데, 제가 연기하다가 저도 모르게 그냥 가지고 간 거예요. 그래서 동환 님이 라이터를 붙여야 되는 게 시나리오에 있었던 거였는데 라이터가 없으니까 불을 못 붙이고 끝난 거거든요. 그래서 그 장면이 저는 보면서 되게 재미있었던 장면이었어요.
이은선: 그런 건 다시 가자고 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감독님은 그 느낌이 좋아서 그냥 가신 거예요?
조희영: 근데 시나리오에는 라이터가 없는 게 맞았을 거예요. 담배를 못 피우는 게 아마 시나리오에. (웃음)
이은선: 엇갈린 기억이네요. 여러분, 기억이 이렇게 왜곡되네요. 기억의 왜곡을 다시 한 번 또 이렇게 경험하게 되네요. 류세일 배우는 일치하세요? 힘들었던 장면과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이.
류세일: 저는 기억나는 건 주로 혼자 있었던 시간들이 많았다는 건데, 그떄 맛있는 것들이 너무 많았어요. 파스타 너무 맛있고, 납작복숭아 처음 보고. 제가 빵도 먹고 하다가 아마 제 촬영분을 거의 몰아서 찍었을 거예요. 제가 그때 납작복숭아에 빠져 가지고... 아무튼 좀 몰아쳐서 정신없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은선: 그러셨다고 하네요. (웃음) 다음 질문 받아 볼까요?
관객: 어제 KBS 독립영화관에서 조희영 감독님의 단편을 처음 봤는데, 영화가 너무 좋아서 앞으로 기대되어요. 〈두 개의 물과 한 개의 라이터〉랑 〈주인들〉이랑 〈이어지는 땅〉을 다 봤을 때 약간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현실의 맥락을 보여 주시고 있는 것 같은데 어느 순간에는 약간 비현실이거나 환상 같은 느낌으로 영화가 바뀌는 경계에 있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됐어요. 감독님이 어떤 것들을 염두에 두시고 연출을 하셨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두 번째로는 촬영이 되게 세련되고, 공간을 잡아 내고 무드를 만드는 게 되게 놀라운 수준이라고 생각했어요. 촬영의 원칙이랄지 혹시 안 나온 얘기 중에 상의하신 부분이 있을지 하는 것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조희영: 어제 KBS 독립영화관에서 단편을 상영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것까지 봐 주시고, 또 오늘 와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 먼저 드리면은 〈이어지는 땅〉도 그렇고 말씀해 주신 단편 작업들도 그렇고 질문하셨던 것과 같이 현실과 비현실적인 것들, 환상적인 것들의 경계를 담아 보고 싶은 욕심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지점에서 계속 글을 쓰고 싶어 하고, 그런 이미지나 이야기들을 담아내면서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지적해 주신 그 두 가지 포인트가 저한테는 되게 중요한 지점이 되고, 촬영적인 거를 말씀해 주셨는데 저는 단편 세 작품도 그렇고 〈이어지는 땅〉도 그렇고 이진근 촬영 감독님과 촬영을 항상 함께 했었는데, 촬영 감독님 특유의 안정적이고 다정한 시선의 촬영자로서의 자질이 있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정말 기술적으로 늘 안정적이시고, 제가 그거에 100% 의지하면서 현장에서 같이 무언가를 발견할 때 같은 시선에서 바라봐 줄 수 있는 촬영자라고 생각해요. 만약 어떤 장면이 우아하게 느껴졌거나 아름답게 느껴졌다면 촬영 감독님의 공이 큰 것 같아요.
이은선: 이진근 촬영 감독님이 촬영하신 최근의 작품으로는 아직도 극장에서 상영 중인 〈절해고도〉라는 작품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이 영화의 촬영이 좋으셨다면 또 다른 톤앤매너로 좋은 촬영을 볼 수 있는 영화라서 추천 드리고 싶고요. 마지막 질문 있으시면 더 받아 볼까요?
관객: 영화 너무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감독님께 질문 드리고 싶은데, 계속 찍다 보면 시나리오에서 변경되는 부분도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런 부분들이 있었는지에 대한 얘기를 좀 듣고 싶습니다.
조희영: 다행히 제가 런던, 밀라노 특히 밀라노는 미술 감독으로 참여해 준 친구가 밀라노에 거주하고 있어서 시나리오 당시에 필요한 장소와 그 길목 같은 것들을 PD님, 미술 감독님과 계속 공유하면서 픽스를 했었어요. 촬영할 당시 현장에 가서 촬영 감독님과 함께 현지 헌팅을 가거나 사전 답사를 한 게 아니기 때문에 촬영 직전에 바뀌는 배경들이 좀 있었어요. 길에서 촬영한 신들은 그 환경 안에서 결정되었던 촬영 장소들이 많았고, 초반에 오프닝 시퀀스라고 불릴만 한 장면의 영국 공원에 있는 개를 산책하러 나온 사람들의 모습은 그날 비가 와서 저희가 공원에서 촬영을 하다가 잠깐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쉬고 있었어요. 근데 비가 내리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그래서 촬영 감독님과 급하게 카메라를 들고 공원을 찍으려고 하는데 개를 데리고 나오신 어떤 아저씨가 되게 흔쾌히 웃으면서 카메라 쪽으로 뭔가 연기자처럼 뽐내고 계시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보여서 그 신을 즉흥적으로 넣게 되었어요.
이은선: 초록색 티셔츠 입은 분 말씀하시는 거죠? 저는 그분이 주인공인 줄 알았어요. (웃음) 좋은 질문 해 주신 덕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또 들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계신 관객분들도 개봉 전에 부지런히 움직여 주신 관객분들이어서 네 분의 감사함이 다른 관객들보다도 더 크실 것 같은데요. 끝 인사 한 말씀씩 담아서 잘 전달해 주시고 마무리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류세일: 오늘 와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밖에 눈이 많이 와요. 돌아가실 때도 안전하게 조심히 들어가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회린: 와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곧 개봉하는데 주변에 많이 성원해 주시고, 이제 새해가 되었는데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안전히 귀가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공민정: 저희 첫 상영 함께해 주셔서 너무 감사 드리고요. 토요일 주말, 이렇게 황금 같은 시간에 영화 많이 찾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뭐 드릴 건 없고, 그래도 마음을 드릴게요. 너무 감사드려요. 새해 복 정말 많이 받으시고요, 올 한 해 건강하시고, 사랑받는 한 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조심히 귀가하세요.
조희영: 네, 여러분은 아직 모르시겠지만 눈이 정말 큰 입자로 펑펑 내리고 있어요. 이 추운 날, 바쁜 주말 시간 속에서 저희 작품 보러 와 주신 관객분들에게 정말 진심으로 감사 드리고, 개봉하기 전에 와 주셔서 배로 감사 드립니다. 새해 복 가득 가득 받으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은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1월 10일에 개봉을 하니까요, 주변에 많은 입소문 부탁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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