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의 여행기
[만수의 모험: 이민휘의 영화음악을 찾아서]
〈박하경 여행기〉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3년 12월 23일(토) 오후 7시 상영 후
참석 이민휘 음악감독, 이종필 영화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임다연 님의 기록입니다.
〈박하경 여행기〉의 자랑인 따뜻하고 다정한 분위기는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닌 듯 하다. 한 시간 남짓한 짧은 대화에서도 함께 여행기를 지어 나간 상대에게 보여주는 신뢰와 애정, 그에 기반한 재치는 그들이 만든 여행기를 쏙 빼 닮았다. 그들이 써내린 여행기를 되짚어 보는 짧은 여행기를 남겨보았다.
이종필 감독(이하 이종필): 진행을 맡은 이종필 감독입니다.
이민휘 음악감독(이하 이민휘): 안녕하세요, 이민휘 입니다.
이종필: 오늘 오전부터 쭉 극장에 계신걸로 알고 있는데요. 인사 부탁드립니다.
이민휘: 오늘도 엄청 추운데 이런 날씨에 여기까지 와서 영화도 봐주시고, 음반도 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종필: 저는 사적으로 민휘 씨를 자주 보거나 연락하지는 않는데, 그래도 본 사적인 모습 중에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어요. 뒷풀이 자리에는 현장 스태프가 아닌 분들도 계셔서 모르는 분도 꽤 있거든요. 그런데도 모든 스태프들이랑 잘 어울려서 끝까지 남아 계시더라고요. 파티의 여왕 같았어요. 여기저기서 열렬하게 대화를 나누시거든요. 그것만해도 에너지가 많이 들어갈텐데, 엄청난 양의 작업도 소화 하시는 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왕성한 에너지가 타고난건지, 아니면 어느 시점의 결심과 노력으로 이루어진건지 궁금합니다.
이민휘: 체력을 당겨 쓰고 있는 거죠. 에너지가 항상 넘칠 수는 없어요. 운동도 하고 체력 관리를 해야 하는데, 이렇게 살다 보면 오래 일 못 하겠죠.
이종필: 작업도 왕성하게 하시잖아요.
이민휘: 그러게요. 재미도 있고 욕심도 있는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작업을 못하게 됐을 때 다른 사람이 하는 상상만 해도 배가 아프거든요. 정말 좋으면 잠을 줄이면 되니까 일단 한다고 하죠.
이종필: 그래서 새벽 3시, 4시에도 연락이 되시나봐요. 항상 안 주무세요.
이민휘: 그렇죠.
이종필: 오늘 행사 소개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영화 하는 친구들과 영화 보고 술 먹다 정신 차리니 영화 음악을 하게 되었다. 이제 와서는 어쩌다 하게 되었다고 이야기 하실 수도 있겠지만, 〈박하경 여행기〉 작업 초창기 때 음악 감독님 작업실에 갔다가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코엔 형제의 〈바톤 핑크〉 한 장면을 보여주시더라고요. 갑자기 왜 보여주시나 싶었는데, 듣다 보니 영화의 오리지널 스코어가 아니라 음악 감독님께서 연습 삼아 장면에 음악을 만들어 입힌거였어요. 그런데 눈치 채지 못할만큼 퀄리티가 좋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진지하게 영화 음악을 해봐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본인의 부족한 면이 보여서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던가.
이민휘: 부족한 걸 느꼈다기보다는 부족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이 있었어요. 저는 학부를 음악학이라는, 음악에 대한 글을 쓰는 학과를 다녔는데 영화하는 친구들이랑 어울리다보니 음악을 만들게 된 경우예요. 그런데 제가 작곡 전공이 아니었기 때문에 작곡 공부를 따로 해야 했어요. 저는 무언가를 결심하고 계획대로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에요. 할거면 잘 해야 한다는 생각에 노력을 하는거예요. 항상 잘 해야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가끔 잘 해야 한다고 느끼는 게 사명감인지, 강박인지, 그냥 어릴 때부터 그랬던 사람인건지 궁금해질 때가 있어요.
이종필: 작업하면서 감독님이 잘 해야 한다는 말씀을 많이 하셔서 정말 잘 하고 싶으신가보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서로 비슷한 생각을 했네요. 사람들이랑 교류가 많으신 탓인지 작업물의 장르가 다양한 것 같아요. 그런데 작업 의뢰가 온다고 모두 수락하시는 것 같지는 않으시던데요. 작업을 맡을 때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민휘: 경우에 보다가 눈물이 나면 한다고 해요. 뭘 보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스케줄을 먼저 잡고, 그 스케줄에 끼워 넣지 못하는 것은 다 거절하게 됩니다.
이종필: 눈물이 나는 기준은 뭘까요?
이민휘: 좀 어렵기는 해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아는데 구현이 안 되어 있는 게 보일 때 마음이 아파요. 그런 부분을 음악으로 메우려고 하거든요. 그러면 하려던 것이 보이는거죠. 그렇게 진행되게끔 도와요.
이종필: 상업적인 작품이 아니라 단편이나 독립 영화에 대한 기준도 똑같이 엄격한가요?
이민휘: 상업과 독립을 기준으로 나누진 않아요. 지금까지 했던 작품들은 다 좋았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종필: 〈박하경 여행기〉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을 했었잖아요. 그 때 혼자서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를 보고는 ‘엔니오 모리꼬네도 다 똑같구나’라고 이야기를 하셨었어요. 어떤 점 때문에 똑같다고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이민휘: 작업을 하면서 마주하는 어려움이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감독님과 소통이나 의견이 엇갈릴 때 설득하는 과정, 그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 영화 음악을 한다고 했을 때 작곡 선생님의 반응 같은 것들이 나오는데 공감이 됐어요. 영화 음악이나 대중 친화적인 음악을 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이종필: 감독이랑 의견 다를 때 힘든가요?
이민휘: 아니요.
이종필: 고집을 좀 부리시다가 맞춰주시고, 다시 고집 부리시는 스타일이죠.
이민휘: 그렇죠.
이종필: 뭐가 제일 힘드신가요? 잠 못 자는 거 빼고요.
이민휘: 잠을 못 자는 건 육체적으로 힘든거고, 진짜 힘든 것은, 좀 웃기긴 한데 PD님이랑 돈 이야기 할 때 제일 힘들어요.
이종필: 더 달라고 시원하게 말을 잘 못 하시나봐요.
이민휘: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보는데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덮어놓고 많이 주세요, 다다익선이에요, 할 때도 있고, 조금 달라고 이야기 할 때도 있는데.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마음이 힘든 게 남아있어요.
이종필: 같이 일하는 PD가 〈박하경 여행기〉 때는 금방 잘 됐다고 했는데, 어쩐지 다른 음악 감독님을 만나면 좀 더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반대로 영화 음악 작업하시면서 기쁜 일은 없으셨나요?
이민휘: 잠깐만요, 아직 힘든 일 이야기가 다 안 끝났어요. 원래는 힘들어하다가 지금은 안 힘들게 된 일은 감독님과의 의견 충돌이에요. 전에는 엄청 설득을 했었어요. 제가 장문의 메일을 쓰고 보내지 않기 전문가거든요. 그런 과정을 지나서 그 때는 힘들었는데 이제는 별로 안 힘든 것 같아요. 그냥 설득 좀 하고, 음악 만들었다가 버리면 되니까요. 제가 만든 음악 버리기도 잘하거든요.
뒷풀이에 가서 그 많은 스태프들과 술을 마시면서 영화는 팀 작업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감독님도 이 그림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타협을 하셨을까, 내가 고집 부릴 게 아니다, 모두가 힘들지만 좋은 작업을 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니까 다 맞춰드리게 되더라고요.
이종필: 맞춰주셔서 원활하게 넘어가는 것은 좋지만, 한편으로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 후회하는 경우는 없으신가요?
이민휘: 아니요, 없었어요. 제가 그냥 맞춰드리는 건 아니고, 납득이 될 때까지 이야기를 하고 만들기 때문에 그런 일은 없었어요. 감독님이 왜 이런 것을 원하시는지 끝까지 물어보고 납득이 되면 만들지, 그렇지 않으면 만들지 않습니다.
이종필: 감독님과 대화를 더 하게 되었다는 말씀이시군요.
이민휘: 네.
이종필: 그럼 기쁘고 즐거운 일은 어떤 게 있었나요?
이민휘: 영화제에 가면 저는 항상 맨 뒷자리에 앉아서 보거든요. 그러면 제가 만든 음악을 조용하게 듣고 있는 관객들의 뒤통수가 보이는데, 그걸 보면 기분이 너무 좋아져요. 제가 만약에 제 음악만 하는 사람이면 이 사람들이 집에서 CD를 어떻게 듣고 있는지 볼 수가 없는데, 영화 음악을 하기 때문에 제 음악의 청자들을 볼 수가 있는거예요. 그게 정말 좋아요. 그리고 다 끝나고 술 마실 때도 좋아합니다. 작업이 좋았을 때 술 맛도 더 좋은 것 같아요.
이종필: 영화 음악 작업에 대한 질문은 이쯤해서 마치고요, 상영작들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첫 상영작이 이우정 감독님의 〈최선의 삶〉이었죠. 음악 중심으로 생각했을 때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 같아요. 엄청 처절할 수도 있는 이야기인데 드라마적인 장면에 어울리는 음악은 전혀 없고, 부분의 심상을 표현하는 음악이 많았던 것 같거든요. 우주나 바다 속을 유영하는 듯한 상태에서 조심스럽게 신호를 보내는 것 같은 엠비언스 음악이 기억에 남네요. 어쩌다 이런 방식을 채택하게 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볼륨 조절도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셨을 것 같은데 그 과정에서 하신 고민도 듣고 싶어요.
이민휘: 소설 원작이 있고, 10대 때의 일을 떠올리면서 왜 그렇게 했나 회상하는 내용인데요. 스스로의 10대나 타인의 10대를 떠올렸을 때 그 시절이 어땠다고 명확하게 정해버리고 싶지 않았어요. 주제적으로도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그 장면의 감정을 노래로 명확하게 설명하고 싶지 않았어요. 강이라는 캐릭터도 스스로 왜 그러고 있는지 잘 모를 때가 많은 인물이라 그런 점을 살리고 싶기도 했고요. 그래서 음악을 뿌옇게 만들었어요.
이종필: 영화에 빠져서 보면 음악이 아예 없다고 느끼시는 관객 분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세어보니까 8번에서 10번 이상은 음악이 나오더라고요.
이민휘: 맞아요. 모 평론가 님이 음악이 거의 없다고 쓰셔서 저도 세어봤는데 그래도 꽤 있더라고요.
이종필: 일렉 기타도 한 번 나오죠.
이민휘: 맞아요. 일렉 기타는 한 번쯤은 이 사람의 마음을 엿보게 해보자, 조금 더 가보자는 시도에서 넣었었어요.
이종필: 그 다음으로 상영한 게 단편 〈12월 70일〉이었죠. 무용 공연을 필름으로 작업한건데, 이 작품에는 음악이 굉장히 많이 나와요. 그런데도 아주 딱딱 맞아 들어가요. 무용이 먼저 있고 음악이 있었는지, 음악이 있고 맞춰서 무용을 한건지 알 수가 없어요.
이민휘: 무용이 먼저였어요. 현장 사운드 밖에 없는 무용이었고, 거기에 음악을 맞췄습니다.
이종필: 그 다음 작품이 〈엘리의 눈〉인데 그건 또 다른 작업이었을 것 같아요.
이민휘: 미술 작업이었죠.
이종필: 소개글에 이 작가님께서는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이야기 해주셨다, 그래서 작업이 잘 되었다고 하셨는데. 거절하는 기준 중 하나가 뭘 원하는지 모르고 음악으로 잘 채워주세요, 하는 뉘앙스나 조짐이 보이는 경우라고 하셨잖아요. 연출자가 정확히 원하는 것을 본인도 모르고 대화가 잘 안 돼서 알아서 해야 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하시나요?
이민휘: 알아서 하면 됩니다. 저도 경력이 있어서 보이는 게 있으니까 그대로 하는 거죠, 뭐. 요청하신 게 아닌 것 같아도 들어보셔야 아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우선 그냥 만들어드릴 때도 있어요. 그럼 아닌 것 같다는 대답을 듣고, 역시, 하면서 다시 만드는거죠.
이종필: 사실 작업하다 보면 보통 어느 정도는 예상이 가능하거든요. 그런데 정말 모르겠는 게 음악이에요. 오죽하면 그냥 무섭게 해주세요, 웃기게 해주세요, 귀엽게 해주세요 같은 두루뭉술한 말이라도 하거나 여기서 비선형으로 가주세요, 하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도 해봤어요.
이민휘: 언어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언어의 문제가 아니에요. 일례로 세이지 오자와라는 지휘자가 있어요. 일본 분이신데 영어를 정말 못 하시거든요. 그런데도 세계 곳곳을 다니시면서 지휘를 하세요. 그 분의 머릿속에는 이 곡을 어떻게 구현해야 할지 그림이 매우 명확한 거예요. 그래서 영어를 아무리 못해도 이심전심이 되는거죠. 이종필 감독님도 말씀은 이렇게 하시지만 음악에 대한 그림이 명확하신 분이라서 전달을 잘 해주세요. 여기는 좀 더 귀엽게, 이렇게 말씀을 하셔도 잘 듣다 보면 어떤 걸 생각하시는지 다 알 수가 있죠.
이종필: 커뮤니케이션 없이 본인이 만들어내는 음악의 모티브를 얻는 방식도 궁금해요. 오늘 상영회에는 없었지만 〈박하경 여행기〉 중 학교에서 춤추는 장면이 있어요. 그 장면에 나오는 댄스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아무도 모를텐데 이 음악은 ‘학교 종이 땡떙땡’을 모티브로 삼아 만든 음악이라고 하셨었거든요. 그런 게 궁금해요. 이런 장면에 어떤 멜로디를 만든다, 어떤 템포를 사용해서 어떻게 접근한다는 방식이 어떻게 떠오르는건가요?
이민휘: 이게 좀 복합적인데요. 음악은 저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 연출과 대화를 하면서 만드니까 연출의 생각도 중요하고, 이 장면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듣는 것도 중요하죠. 그리고 음악이 들리는 경우도 있어요. 잘 찍은 장면을 보면 음악이 들려요. 그렇지 않을수록 사실 힘든 것 같아요. 어쨌든 〈박하경 여행기〉는 잘 들렸다는 훈훈한 말씀을 드리며. (웃음)
관객: 걸작이라고 생각하시는 영화 음악 작품이 무엇인지 궁금하고, 그것과 별개로 인생 영화가 무엇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이민휘: 오늘 고른 두 영화도 음악이 정말 좋은 영화들이에요. 〈꽃섬〉과 〈히로시마 내 사랑〉 모두 정말 좋아하는 영화고요, 개인적으로는 타케미츠 토오루를 좋아합니다. 이번에 〈모래의 여자〉 상영을 추진하려고 했으나 어렵게 되었어요. 그 분이 정말 많은 작업을 하셨기 때문에 한 번 들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란〉도 좋고요. 좋아하는 영화는,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거울〉 좋아합니다.
이종필: 이야기 나온 김에 궁금한 점이 있었는데요. 오늘 이민휘 감독님이 고른 영화 중에 〈히로시마 내사랑〉이 있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어요. 〈박하경 여행기〉 3화 초반부 편집 단계에서 〈히로시마 내사랑〉과 거의 비슷하게 대사와 음악을 썼었거든요. 이런 곳에서 당신을 만날 줄 몰랐어요, 당신이 너무 좋고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 있고 하는 대사들이요. 감독님께서는 그럼 편집본을 받아보셨을 때 〈히로시마 내사랑〉에서 가져온 걸 알고 계셨던건가요?
이민휘: 네.
이종필: 그런데 왜 티를 안 내셨어요?
이민휘: 그 때 너무 힘들어서 안 여쭤봤었어요. 그 때 좀 지쳐 있었죠.
이종필: 저희가 시간이 없긴 했죠. 오늘 〈박하경 여행기〉 엔딩 크레딧에 나온 음악 중에 ‘주말 여행’이라는 곡이 있었는데요, 마찬가지로 시간이 없어서 급한 와중에 엄청나게 잘 만들어주셨어요. 노래를 듣고 정말 깜짝 놀랐는데요,
이민휘: 왜 자꾸 놀라세요. 잘 하니까 부탁하신 거 아니에요? (웃음)
이종필: 알긴 알았는데,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영화를 만들다보면 음악이 어떻게 나올지 가늠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다짜고짜 전화해서 잘 할 수 있냐고 애절하게 물어봤고, 음악 감독님께서 아무렇지도 않게 잘 할 수 있다고 대답 하셨었거든요. 그 말 듣고도 좀 불안해서 대중적으로도 잘 할 수 있냐고 물어봤고 그렇다고 대답하셨던 것 같아요.
여쭤보고 싶었던 것은 ‘주말 여행’이라는 곡은 가사도 필요했거든요. 가사 중에 계속 걷다 보면 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거야, 라는 가사가 있잖아요. 이 가사가 최근에 발매 된 ‘미래의 고향’이라는 개인 앨범에 쓸 가사였는데 여기에 썼다고 하신 기억이 나요. 그래서 수록곡 가사를 찾아 보니까 없던데, 겹쳐서 빼신건지 궁금해요.
이민휘: 그냥 안 썼어요. 주제적으로 맞닿은 면이 있긴 하지만 이미 쓴 가사를 쓸 수는 없으니까 안 썼죠. 그런데 대중적으로도 잘 할 수 있냐는 질문 너무 재미있지 않아요? 정말 기억에 남는 질문이에요.
이종필: 이민휘 감독님이랑 이야기를 하다보면 정말 마이너한 음악을 많이 좋아하세요. 이를테면 그린데이 말고 그랜대디 라는 미국의 인디 밴드가 있거든요. 그런데 그 밴드를 알고 좋아하시는거예요.
이민휘: 그랜대디 유명해요.
이종필: 어쨌든 대중적이진 않잖아요. 그래서 저희 드라마를 하면서 이나영 씨가 발랄하게 걸어가는데 엘리엇 스미스 음악 같은 게 나오면 어떡하나, 이런 걱정을 했어요.
이민휘: 〈박하경 여행기〉도 아주 대중적인 드라마는 아니죠. 유유상종 아닐까요?
이종필: 그래서 음악이라도 더 대중적이고 싶었어요. 여쭤보고 싶은 게, 그럼 개인 작업과 영화 음악 작업을 할 때의 가장 큰 차이는 뭔가요?
이민휘: 고통. 개인 작업 할 때가 더 고통스러워요.
이종필: 어떤 게 그렇게 고통스러우세요?
이민휘: 영화나 드라마는 이야기가 있고 장면도 다 있어서 길잡이가 있잖아요. 저는 음악으로 받아쓰는 일만 하면 되는데, 개인 작업은 무에서 시작해야 하니까 너무 고통스러워요. 이번에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작업할 때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창작의 고통이 이렇게 크다니 하하, 이러면서 웃었어요. 어쨌든 나와서 다행이에요.
이종필: 고통스러울 땐 어떻게 하세요?
이민휘: 그냥 누워서 고양이 만지다가 다시 하는거죠, 뭐. 시나리오 쓰니까 아시잖아요. 면벽 수행.
이종필: 또 궁금한 게 있는데요, 해보고 싶은 영화 음악 작업이 있을까요?
이민휘: B급 영화를 해보고 싶어요. 조도로브스키 감독 같은 컬트 영화들이요. 저의 숨겨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종필: 그런 영화는 언제 다 보신거예요? 타르코프스키도 그렇고, 조도로브스키도 그렇고.
이민휘: 제가 학교에서 영화 감상 동아리를 했거든요. 그 때 이상한 영화를 많이 봤어요. 매주 목요일에 한 편씩 봤는데, 그렇게 본 게 편수가 꽤 많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영상자료원을 좋아해서 자주 가는 편이에요. 요새는 못 갔는데. 제가 또 남의 과거 캐는 걸 좋아해서 관심 있는 영화인이 생기면 그 사람이 옛날에 뭘 찍었나 다 찾아봐요.
저도 감독님께 드리고 싶은 질문이 있어요. 〈박하경 여행기〉를 만들고 처음으로 GV를 감독님과 하게 되었잖아요. 작업에 대한 이야기 자체를 나눠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저랑 작업하실 때 어떤 점이 힘드셨고, 어떤 점이 좋으셨고, 다른 음악 감독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이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이종필: 노래를 직접 만들고 불러주셨잖아요. 엄청나게 아름답고 우아한, 범접할 수 없는 노래를 만들고 들려주고 나서는 너무 다른 톤으로 어떠냐고 물어보는데, 그 차이를 견디는 게 힘들었어요. 음악은 너무 아름답고 좋은데, 이렇게 쪼그리고 앉아가지고 써줄거야 말거야 하는 모습의 차이가. 그거 말고는 힘든 게 하나도 없었던 것 같아요.
이민휘: 음악과 실제 인간의 차이가 너무 컸다.
이종필: 그러니까. 뭐가 진짜일까요?
이민휘: 다 진짜죠. 사람이 얼마나 복잡한 존재입니까? 거짓은 없습니다.
이종필: 그런 거 외에 힘든 건 하나도 없었고, 있다면 작업 초반부에 2화 음악을 만들어주셨는데 어떤 부분들이 제가 생각한 것과는 달랐어요. 그 부분에 대해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 게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민휘: 되게 힘들어하시더라고요.
이종필: 어떻게 한건지 모르니까. 이 사람이 또 잠도 못 자고 해온 것일 수도 있는데,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 게 힘들었어요. 힘든 건 정말 그거 밖에 없었고, 좋았던 건 제가 필요하고 원하는 걸 떠나서 음악 자체가 너무 좋아서 행복했어요. 후반부 작업은 제가 직접 편집한 경우가 많았는데, 편집하면서 보내주신 음악을 바로 넣어보면서 행복했어요.
좀 안쓰러울 때도 있었는데, 예를 들면 드라마 크레딧이 올라갈 때 거기에 나오는 음악이 필요하거든요. 보통은 있는 걸 반복해서 길이만 채우면 되더라고요. 그런데 그거를 안 하시는거예요. 크레딧에 쓸 음악을 길이에 맞춰서 완벽하게 만들어요. 반복하는 게 싫다고. 그걸 저렇게까지 하는구나, 싶어서 대단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어요.
다른 음악 감독님과의 차이는, 제가 많은 감독님과 작업해보진 않아서 보통 같이 일하시는 분은 그냥 알아서 하시는 편이에요. 한 번 대화를 시도했는데 벽에다 이야기하는 기분이 든 이후로는 그냥 부탁드리는 편이에요. 그러면 정말 알아서 잘 되는 경우라서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음악 감독님께서 다른 것보다 〈박하경 여행기〉를 특히 열심히 하셨던 것 같은데, 저의 착각인가요?
이민휘: 아니요, 맞아요. 왜냐면 잘 해달라고 계속 말씀을 해주셔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감독님이 처음이었거든요. 그래서 잘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좋은 팁이 아닐까요? 잘 해달라고 자주 이야기하면 그렇게 해줄 수도 있다.
이종필: 그게 가장 큰 차이인 것 같아요. 저는 항상 그렇게 이야기했거든요. 심지어는 뭐가 잘 안 되어서 어떤 음악 감독님 집 앞에서 기다린 적도 있어요. 이민휘 감독님 작업실에는 자주 갔죠. 작업실이니까. 가까워서 자전거 타고.
이민휘: 저희 집 앞에서 음악 때문에 기다리셨던 적은 없었죠.
이종필: 그런 적은 없었고, 음악 주신 걸 들으면서 걷다가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좋았던 적은 있어요. 이 음악이 이 작품의 본질이었구나, 이런 게 느껴졌어요.
이민휘: 다행입니다.
이종필: 그래서 좋다고 이야기하면 돌아오는 답이 감상을 깨는 ‘히히’ 이런 거였어요.
이민휘: 저도 작업에 애정이 있으니까 열심히 한 거죠. 일단 여행기잖아요. 그게 너무 정이 갔어요. 제가 촬영 뒤풀이에 갔단 말이에요. 그런데 사실 저에게는 시작 파티인거잖아요. 후반 작업 담당이니까. 그런데 스태프를 다 만나고 여행기를 보니까 이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박하경 팀’과 함께 여행을 다니는 기분이었어요. 더군다나 화면에는 이나영 배우가 있으니까 계속 보게 되잖아요? 계속 연습해서 열심히 만들었죠.
관객: 2화에서 댄스 음악이 나오잖아요. 그 장면에서 첼로 켜는 사람도 나오고, 색소폰을 부는 분도 나오는데 영상이 먼저고 음악이 나중에 나온건지, 아니면 음악이 아이디어를 주고 영상이 따라온건지 궁금합니다.
이민휘: 그 장면에 제가 건드린 부분은 거의 없어요. 백현진 가수의 ‘빛’이라는 노래를 부르셨고, 콘트라베이스를 사용했어요. 저는 뒤에 피아노만 조금 추가했는데 영상에 찍힌 음악에 얹은 것입니다.
이종필: 조만간 뮤직 비디오 나오지 않나요?
이민휘: 네, 맞아요. 2집 ‘미래의 고향’ 뮤직 비디오예요. 너무 예쁘게 잘 나왔고, 곧 공개될 예정이니 많이 기대해주세요. 1월 12일과 25일에 홍대에서 단독 공연도 있고요, 〈박하경 여행기〉 음반과 무키무키만만수 LP와 이민휘 CD도 판매하고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종필: 네, 오늘 늦은 시간까지 함께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민휘: 감사합니다. 인디스페이스도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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