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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벽을 해킹하기] 섹션 5 '도시 뒤에 공간 있어요' 인디토크 기록

by indiespace_가람 2024. 1. 15.

[벽을 해킹하기] 섹션 5 '도시 뒤에 공간 있어요'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3년 12월 16일(토) 오후 1시 상영 후

상영 〈낙원〉, 〈들랑날랑 혼삿길〉, 〈리얼 서바이벌 가이드 공중도시〉

참석 홍민키 감독, 박동수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19기 김소정 님의 기록입니다.

 

 

혼잡하고 바쁜 도시의 이면에는 분명 존재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퀴어들의 공간이 있다. 홍민키 감독의 〈낙원〉(2023), 〈들랑날랑 혼삿길〉(2021), 〈리얼 서바이벌 가이드 공중도시〉(2019)는 가상과 현실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퀴어의 공간을 구획하는 벽을 해킹한다. 이로써 홍민키는 퀴어의 역사적 공간을 목도하며 현재의 장으로 퀴어 공간을 불러온다. 픽션과 논픽션, 다큐멘터리와 미술의 경계를 오고 가는 홍민키 감독의 실험적이고 참신한 기획은 은밀하고 귀중한 도시 뒤의 공간들을 발굴하며 새로운 지평을 연다.

 

 

 

 

박동수 평론가(이하 박): 안녕하세요, 질문을 주고받기 전에 제가 이 기획전을 ‘도시 뒤에 공간 있어요’라는 제목으로 기획하게 된 이유를 짧게 얘기해 드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같이 기획해 주신 최이다 감독님께서 ‘벽을 해킹하기’라는 제목을 건네 주셨을 때 저는 바로 홍민키 감독님의 세 작품을 먼저 떠올렸었는데요. 올해 5월에 〈ACT!〉라는 웹진에서 퀴어 다큐멘터리스트 몇 분을 모아서 대담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그때 홍민키 감독님도 함께해 주셨는데 개인의 육신이 놓이는 어떤 지지체로서의 공간을 역사화하고 기록하고 싶다고 말씀해 주신 게 있었거든요. 오늘 상영한 이 세 작품도 공간이라는 키워드가 굉장히 좀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그런 작품들이에요.

 섹션 기획 글에도 적었지만 도시라는 공간이 평준화되고 합리성에 따라 개발될 때마다 오히려 소수자는 역으로 배제당하고 차별당하는 그런 상황들이 계속 있다는 생각이 한편으로는 계속 들었던 것 같아요. ‘기둥 뒤에 공간이 있어요’라는 인터넷 밈이 있는데 이 공간 바로 뒤에 저 공간이 있음에도 그거를 억지로 안 본 체하는 상황을 말하는 밈이거든요. 그래서 도시 뒤에 분명히 소수자들의 공간이 존재하는데 왜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 섹션을 기획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감독님과 이야기 나눠 볼게요.

 공간에 대한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보통 어떤 공간을 직접 카메라에 담아내고 그것을 직접 보여주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감독님의 세 작품은 가상으로 만들어진 공간들을 많이 사용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한 작품씩 얘기를 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요, 먼저 19년도 작품이죠. 〈리얼 서바이벌 가이드 공중도시〉(2019)에서는 망원동이 망리단길로 젠트리피케이션 된 과정을 다루고 있는데 인스타그램 라이브랑 피드의 형태로 제시되고 있어요. 해시태그로 망리단길을 검색해서 그 피드를 쭉 내려보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그런 이미지들을 택한 이유를 한 번 여쭤보고 싶었어요. 왜 익숙한 다큐멘터리적인 표현이 아니라 가상의 TV쇼와 가상의 소셜미디어 타임라인을 사용하셨는지요?

홍민키 감독(이하 홍): 일단 작업과정을 말씀을 드리면 제가 다큐멘터리를 전공하지 않고 미술을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편집하는 것에 스스로 개인적인 흥미를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낙원〉(2023)과 다르게 저 때는 다큐를 처음 시작하던 때였기 때문에 누군가를 인터뷰 하는 것들이 익숙지가 않은 거죠. 그래서 녹음기 작은 걸 하나를 들고 그냥 망리단길에 무작정 가서 아무 매장이나 가게에 들어가서 마이크를 들이대면서 시작한 거였어요. 내가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겠다는 의도보다는 조금 더 이야기를 수집하는 수집자에 가까운 태도로 녹음을 시작했던 것 같고요. 그러다 보니까 필연적으로 영상을 찍지 않았던 거죠. 다큐를 경험해 보신 분들은 많이 느낄 텐데 특히 한국에서는 자신의 얼굴이 녹화가 되는 것을 굉장히 기피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녹음할 때도 굉장히 작은 디바이스를 일부러 이용을 했던 것 같아요. 어떤 이야기를 끄집어낼 때 경계심을 허물기 위해서였죠. 아까 말씀하신 단어를 빌려 말하면 도시 뒤에 있는 공간을 끄집어내기 위해서 디바이스를 최소화하고 이미지를 선택함에 있어서 오히려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 보니까 그들의 얼굴을 배제한 수집 방식을 택했던 거죠. 그러다 보니까 오디오 자료를 재편집을 할 때 그냥 무빙 이미지 위에 이야기를 얹는다면 과연 그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굉장히 고민이 많았어요.
  요즘에는 조금 익숙하긴 하지만 그때 당시에 ‘페이스 스왑(swap)’과 같은 것들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던 시기다 보니까 이것이 이야기가 담기는 신체의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사실 거기서 나온 이야깃거리들이 개인의 사적 경험이라기보다는 역사적인 공통된 기억에 가까운 경험이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발화하는 사람이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도시 뒤에 숨어 있던 이야깃거리들을 역사화하고 공동의 기억으로 증명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런 방식을 썼던 것 같아요. 그리고 말하면서 떠올랐는데 그때 당시에 ‘O리단길’이라는 게 우후죽순 생기던 시점이기도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게 단순히 망리단길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O리단길’에서 벌어졌던 그리고 벌어질 그리고 명백하게 이미 사라지고 있는 ‘O리단길’을 포함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보편성을 다루고자 가상 공간을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박동수: ‘공중도시 쇼’라는 이미지가 좀 독특하잖아요. 인스타그램 피드들이 마치 에반게리온에 나오는 것처럼 삥 둘러싸여 있고 그 와중에 말씀하신 대로 합성된 얼굴들이 있는데 그 얼굴들은 그러면 실제 상인 분들의 얼굴이긴 한 건가요?

홍민키: 아니에요. 제 기억을 더듬어서 가장 그들과 닮은 얼굴로 합성을 한 거고, 여러 얼굴을 섞어서 만들어서 그 얼굴을 제 얼굴에 얹어서 제가 액팅을 하고 있는 모습인 거예요. 제가 덧붙이고 싶은 게 저는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에 대해서도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인 것 같은데 어떤 이야기가 진실성을 획득하기 위해서 과연 그 당사자가 등장해야 할까 라는 그 고민이 또 반영됐던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그들의 얼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여지는데 이런 방식이 결국 어떤 퀴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룰 때 퀴어 존재가 직접 등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가 거짓이 되지 않을 수 있는 형식적인 실험을 시도해보고자 했던 것에서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박동수: 관련해서 한 가지만 더 여쭤보자면 해시태그 ‘망리단길’로 인스타그램 검색을 하는 그런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걸 생각해 보면 망리단길이라는 것 자체가 망원동에 실제로 존재하는 길이라기보다는 소셜미디어라는 가상의 공간을 통해서 구현된 상상의 산물처럼 느껴진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염두에 두고서 가상적인 쇼와 공간성을 사용하신 건지 한번 여쭤보고 싶습니다.

홍민키: 너무 좋게 해석해 주셔서 기쁜데 사실 그런 것들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제가 가상의 스튜디오를 구성했던 이유는 〈NPC 튜토리얼〉이라는 작업에서 공론장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던 것과 연결돼요. 한창 박근혜 대통령 퇴진 시위가 막 있었을 때 공론장에서 지나치게 양극화된 의견 대립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던 작품이었는데 서로의 견해를 주고받을 중립지대는 왜 없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거든요. 서로가 서로에게 날을 세우면서 거리감을 확인하는 것 이외에 중간지대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견해 차이를 확인하고 조율을 해 나가는 과정을 원했던 것 같고 나아가서 저 또한 분명히 정치적 견해와 의견이 있긴 하지만 이것을 지나치게 편향적으로 작업으로 제시했을 때 갖고 있는 한계점이 있다고 저는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공론장을 형성하고 싶은 마음에서 가상의 공론장이라는 세트장을 지어서 거기에서 이야기를 던졌던 것 같습니다.

박동수: 공론장이라는 것 자체가 결국 가상성에 기대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드는 것 같고 또 한편으로는 지금 공론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곳들이 대부분 온라인이라는 지점을 상기시키는 그런 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들랑날랑 혼삿길〉 얘기로 조금 넘어가 볼게요. 여기에서는 인터뷰이들이 감독님의 가족들이라는 특수성이 있긴 하지만 음성으로만 등장했던 〈리얼 서바이벌 가이드 공중도시〉와는 정반대의 느낌을 주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전에는 음성들을 가상의 공간으로 가져왔다면 〈들랑날랑 혼삿길〉은 인터뷰의 대상들을 가상의 배경 속으로 밀어넣는 방식으로 완성이 되었는데 맥북이나 아이폰 화면들도 원래 화면이 아니라 합성된 것 같은 느낌을 주잖아요. 그래서 앞선 작품과 어떻게 보면 정반대라고 할 수 있는 방식을 택한 이유를 한번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홍민키: 현실적인 이유가 가장 많이 작동하는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에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방식이 결국 작품에 그대로 영향을 미친단 말이죠. 〈들랑날랑 혼삿길〉 같은 경우에는 말 그대로 가족이기 때문에 좀 못된 태도이긴 하지만 가족주의적인 맥락에서 자식의 혹은 동생의 성취를 위해서 제가 희생을 시켰어요.(웃음) 인터뷰를 진행할 때 나 이거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설득을 하긴 했었거든요. 제발 출연해 주면 좋겠다, 나 이거 꼭 찍고 싶다, 이때 아니면 또 못 찍는다, 이러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설득을 한 거죠. 가족이라는 이유로 흔쾌히 응해주시기도 했고.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당사자성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가 토크를 준비하면서 최근 제 작업들을 돌아봤을 때 망리단길에 대한 이야기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주제로 원주민들이 이탈되거나 원주민 속에서도 가장 먼저 이탈되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는데 사실 저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당사자는 아닌 거죠. 거기서 비당사자로서 소수자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면 〈들랑날랑 혼삿길〉 같은 경우에는 당사자로서 소수자성을 다루기 때문에 거기서 조금 구분이 되어지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인터뷰이를 직접 섭외할 수가 있었고 그들과의 친밀감을 바탕으로, 그리고 그들에 대한 사전 지식을 바탕으로 인터뷰의 내용을 구성할 수 있었고 그거에 따라서 좀 더 디테일한 설계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들랑날랑 혼삿길〉 스틸컷

 


박동수: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보니까 흔히 다큐멘터리 같은 거 작업하시는 분들이 얘기하는 ‘라포’가 형성이 되어 있어서 다른 방식이 자연스럽게 나왔다고 생각이 드네요. 저는 〈들랑날랑 혼삿길〉을 보면서 영화 속의 공간이 세 개의 레이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첫 번째는 줌 화면처럼 보이는 가상 배경에 있는 가족들의 인터뷰이고, 두 번째는 감독님이 아이폰을 계속 들고 버스를 타든 집 밖으로 나서든 지하철을 타든 계속 이동하시잖아요. 아이폰 속에서는 보라돌이 필터와 마법 소녀 필터를 낀 지인과 계속 영상 통화를 하는 장면이 나오고, 마지막으로는 감독님이 남자친구분과 함께 사는 집인데, 이 집만은 필터나 합성이 가장 배제되어 있는 공간, 거의 촬영된 현실 그대로의 공간으로 등장을 해요. 이렇게 세 가지 레이어가 얽히면서 이 영화 자체에 흥미로움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을 하는데 이 레이어들을 구성할 때 혹시 어떤 생각들을 하셨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홍민키: 일단 맨 처음에 말했던 가족들의 모습은 그때 당시가 딱 코로나 시기이기도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온라인으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굉장히 익숙하기도 하거니와 그리고 전체적인 디자인을 할 때 프린세스 메이커를 떠올리면서 모델링을 했던 것 같아요. 저희 가족이 말하는 이상적인 가족 혹은 한국 사회에서 말하는 정상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저는 들을 때마다 프린세스 메이커 같은 게임처럼 느껴질 정도로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 때가 많더라고요. 제가 아는 가족들은 이런 형태를 띠는 사람이 오히려 더 드물어요. 저 같은 경우만 해도 친형이 딱 이걸 촬영할 때쯤 결혼 얘기가 나왔는데 저랑 연애 기간이 6년인가로 비슷했어요. 근데 형은 신혼부부 전세대출을 받아서 신축 오피스텔에 들어가는 반면에 저는 여전히 결혼도 하지 못하고 남자친구 비자 문제에 그리고 COVID로 인해서 해외 출국이 되니 마니 이런 얘기까지 오고 가고 있었으니까요. 저한테는 정상 가족이라는 것이 굉장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오히려 그들을 게임의 공간에 집어넣어서 저에게 낯선 느낌을 만들고자 했던 것 같아요. 그것과 대비되게 저의 남자친구와 제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말씀하셨던 것처럼 거의 합성을 하지 않았는데 이거야말로 제가 경험하고 있는 가족의 형태이고 내가 바라보는 세계의 모습인 거죠.

 그리고 나아가서 이동하는 공간이라는 것은 합성과 현실이 왔다 갔다 하거든요. 폰을 들고 있는 장면은 거의 다 합성한 거예요. 1인칭 FPS에서 손이 다 등장하는 것처럼 편집을 한 장면인데 그런 식으로 제가 이 세계로 들어갈 때 약간 이스터에그 같은 건데 제가 핸드폰 화면이나 모니터 화면에 텔레토비 동산이 계속 뒤에 배경으로 뿌옇게 있거든요. 엄청 평화로운 분위기가 있는데 그게 저에게는 세계로 나아가는 일종의 안정장치 같은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혐오 표현을 듣고 공격을 받더라도 내가 핸드폰에서 나와 친밀감을 느끼는 사람이랑 대화할 때만큼은 안정감을 느끼는 일종의 중립지대를 디지털 디바이스를 통해서 이스터에그처럼 넣어놨던 거거든요. 그래서 세 개의 각각 다른 공간이 긴장을 주기도 하고 풀어주기도 하는 식의 설계를 했던 것 같습니다.

박동수: 중립지대라고 얘기를 해 주시니까 아까 얘기했던 중립적인 의사표현이 가능한 공론장으로서의 온라인 가상 공간에 대해서 얘기해 주셨던 게 다시 떠오르는 것 같아요. 저는 영상 통화를 하는데 둘 다 필터를 사용해서 진짜 자신의 원래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있어서 퀴어가 도시 공간으로 나갈 때 가면을 쓰고 나가는 것처럼 연출이 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서로 다른 공간적 층위에서 퀴어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고, 어떤 존재로 인식되고, 어떻게 비가시화되는가를 명쾌하게 보여줬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낙원〉(2023)으로 넘어가 볼게요. 낙원 같은 경우에는 실제 인물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죠? 맨 처음에 잠깐 극장 관리실장님만 실제 인터뷰 영상이 나오고, 나머지 인터뷰들과 전체를 진행하는 내레이터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꾼 모두 가상의 캐릭터로 등장을 해요. 흥미롭게도 영화 티켓이나 맥주 캔, 음료수 캔, 라이터나 담뱃갑 같은 것으로 캐릭터화되는데요. 과거에 크루징 장소로 유명했던 바다극장을 돌아다니는 콘셉트가 귀엽고 신기해요. 물론 대역을 통해서 당시 바다극장에서 벌어졌던 게이들만의 은밀한 시간들이 살짝 재연되긴 하지만 대부분은 결국 캐릭터를 통해서 가상적으로 재현된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인터뷰이들의 음성을 캐릭터화하는 게 〈리얼 서바이벌 가이드 공중도시〉에서보다 훨씬 더 발전한 형태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어디서 아이디어가 시작되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홍민키: 이것도 결국 익명성의 문제가 필연적으로 따라오기 때문인 것 같아요. 퀴어의 서사를 다룰 경우에 특히 한국에서 간단한 사례로 얘기하면 외국과는 다르게 한국에서는 당사자가 사망하고 나서 그의 이야기를 실명으로 다룰 때 유족들이 명예훼손으로 고소가 가능해요. 그 정도로 굉장히 프라이버시를 보호해 주는 법적인 구조를 갖고 있죠. 그 말인즉슨 사망하지 않을 경우에는 더욱이 그런 부분에서 예민하고 당사자도 굉장히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예요. 특히 퀴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룰 때 그러다 보니까 한계가 너무 명백한 상태로 시작을 했어요. 그들이 절대 등장할 수가 없고 심지어는 저는 인터뷰이들을 거의 대부분 만나지 못했어요. 한때 이 다큐를 기획했던 프로듀서인 퀴어 역사를 다루시는 토드 헨리 교수님께서 모든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인터뷰이 중 한 분은 당신이 한국인이었으면 인터뷰에 응하지조차 않았을 거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 말을 할 정도로 세대적으로 갖고 있는 아웃팅에 대한 공포심이 굉장히 큰 거죠.

 그런 전제조건 하에 이들의 이야기를 다룰 때 음성으로만 다루게 되면 이야기가 흩뿌려질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이 이야기가 시작할 수 있는 혹은 담길 수 있는 신체가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을 했고, 신체를 제시하면서도 바다극장이라는 공간성을 다루는 다큐이기 때문에 공간을 보여주기 위한 방식을 고민을 했어요. 그때 작은 사물들로 극장의 구석구석을 핥듯이 제시가 되는 것이 그때 당시의 퀴어가 혹은 제가 경험하는 도시에서의 퀴어의 시선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을 핥는 식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굳이 작은 사물들을 선택해서 의자 밑이나 구석으로 시선이 갈 수 있게끔 유도했던 것 같습니다.


박동수: 그럼 극장 바닥에 버려져 있을 것 같은 음료 캔이나 과자 껍질 같은 것들을 선택한 이유도 그것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도 되겠군요.

홍민키: 그렇죠. 부연하자면 어쨌든 그 공간에 들어왔던 퀴어들은 자신의 흔적을 최대한 남기지 않기 위해서 노력을 했을 것이고, 그들이 필연적으로 남기고자 하는 기억이나 흔적, 추억이 그런 것을 통해서 반영됐다고 생각해서 제시하고자 했던 겁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특정되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이야기가 거기 머물렀었다는 증거로써 사소하거나 혹은 버려지는 껍질들을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낙원〉 스틸컷

 


박동수: 영화 속에서 캐릭터화된 쓰레기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어떻게 보면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것들이라는 생각도 한편으로는 드는 것 같아요. 바다극장이라는 공간이 지금은 운영을 하지 않고 있고 공간만 남아 있는 그런 상황인데 그곳이 극장이었다는 걸 알려줄 수 있는 지표라고 할까요? 저는 〈낙원〉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볼 때 지난달에 개봉했던 권아람 감독님의 〈홈그라운드〉를 많이 떠올리면서 영화를 봤었는데요. 〈홈그라운드〉는 가시화되지 않은 레즈비언들의 공간을 많이 다루고 있고 〈낙원〉 같은 경우에는 게이들의 공간을 다루고 있어요. 그런 식으로 제대로 이야기되지 않거나 역사화되지 않았던 퀴어들의 공간을 영화로 만들어낸다는 게 굉장한 임파워링을 낳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다극장이라는 공간에 어떻게 처음 접근하게 되셨는지도 여쭤보고 싶어요.

홍민키: 앞서 잠깐 언급했던 토드 헨리 교수님께서 한국 퀴어 역사를 연구하시면서 여러 학자들을 많이 알고 계신데 그 중에서 건축과 안창모 교수님이 도움을 주셔서 엔딩 크레딧에 나오세요. 그분과 산책을 하다가 초록 색깔의 이상하게 생긴 빌딩을 발견했고 그 공간에 들어가서 구경 좀 하고 싶은데 괜찮냐고 여쭤봤고 그래서 아까 말씀드렸던 관리실장님이 투어를 시켜주신 거예요. 근데 투어를 하다가 갑자기 그분이 여기가 호모들이 모이던 곳이었다고 먼저 말씀해주신 거예요. 그분께는 가십거리고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라서 저희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먼저 꺼내신 거고요. 토드 헨리 교수님은 한국 퀴어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인데 갑자기 입 벌리고 있는데 물고기가 내 입에 들어온 격이잖아요. 그래서 바로 저한테 전화가 온 거죠. 민기야, 너무 중요한 것을 발견했고 우리 꼭 다큐를 만들어야 된다. 그렇게 해서 시작했던 다큐멘터리입니다.

박동수:  정말 우연히 발견한 거군요. 저도 서울극장이 폐관하기 전에는 그쪽을 되게 많이 다녔는데 바다극장이라는 곳이 있는지도 사실 몰랐거든요. 영화 중간에 지도로 크루징 공간이었던 다른 극장들이 몇 군데 언급이 되는데 그것들 모두가 어떻게 보면 바다극장과 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거나 완전히 공간 자체가 사라져버린 경우도 있고 해서 바다극장이라는 공간이 더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영화관이라는 공간이 결국 기록된 이미지가 계속 영사되는 환영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공간 안에서 가상으로 만들어진 증언들이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들을 계속 발굴하고 작업하시는 게 항상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제 관객분들 질문을 받아보려고 합니다. 혹시 질문 있으신 분 계실까요?

관객: 저는 이 영화들을 보면서 몰입도가 좋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들랑날랑 혼삿길〉 같은 경우에는 가족분들을 인터뷰하는 거라서 예측되는 반응이 있었을 것 같은데 〈낙원〉이라든지 특히 〈리얼 서바이벌 가이드 공중도시〉는 되게 러프하게 가셨다고 말씀을 주셨잖아요. 많은 인물들을 인터뷰를 하신 거니까 처음에 기본적인 틀을 잡았을 때랑 조금 달라진 게 있었나요?

홍민키: 사실 〈리얼 서바이벌 가이드 공중도시〉 얘기를 먼저 하자면 거기서 나오는 이야깃거리들을 사전에 공부를 다 해갔어요. 한 두 달 동안 망원동에서 있었던 모든 역사적인 자료를 다 수집을 했고 그걸 거의 달달 외우다시피 한 다음에 인터뷰를 나간 거죠. 그래서 저는 다큐멘터리과 학생인데 여기서 84년도에 수해가 있었다고 굉장히 선량한 목소리로 아는데 모르는 척 물어본 거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는 적절하지 못한 태도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저도 하면서도 계속 의문이 들어요. 제가 하는 게 진짜 다큐가 맞을까 하고요. 왜냐하면 저는 다큐를 구성할 때 인터뷰를 할 때부터 결과를 정해놓고 인터뷰를 하는 편인 것 같거든요. 그래서 어느 정도 내용을 알고 그걸 유도하고 원하는 문장을 이렇게 끄집어내기 위해서 노력을 했던 것 같아요. 이것이 다른 다큐멘터리 감독 분들한테 어떤 의미일지 모르겠는데 일단 제가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은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나서 〈낙원〉 같은 경우는 조금 달랐어요. 제가 인터뷰를 할 수도 없거니와 인터뷰 자료들을 넘겨받았을 때 다큐멘터리 혹은 영상 작가로서의 인터뷰와 역사학자의 인터뷰는 너무 다른 거예요. 인터뷰라는 것이 표면적으로는 그냥 인터뷰니까 이야기만 끄집어내면 되겠거니 했는데 역사학자의 인터뷰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거기서 사실을 발굴해내기 위해서 어떻게 보면 사소하고 똑같은 이야깃거리들을 더 많이 찾고 개인적인 서사를 비교적 배제하는 인상에 가까웠어요. 그러다 보니까 받아서 봤을 때 굉장히 무미건조한 텍스트들이었던 거죠. 그래서 이 이야기를 재구성함에 있어서 말씀하셨던 단어를 빌려 말하면 몰입도를 구성하기 위해서 개입이 필요했고 그래서 등장했던 게 이야기꾼이라는 캐릭터였던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제가 어떻게 보면 다큐멘터리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개입을 많이 하는 편인데 제가 예측하지 못하는 부분이나 혹은 통제하지 못하는 서사가 있을 때 저는 가상의 캐릭터나 합성 기술을 통해서 이야기를 조금 더 매끈하게 혹은 홈을 메우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설계하는 편인 것 같습니다.

 

〈리얼 서바이벌 가이드 공중도시〉 스틸컷

 

 

박동수:  〈리얼 서바이벌 가이드 공중도시〉나 〈들랑날랑 혼삿길〉 같은 경우에는 인터뷰를 다 직접 진행을 하셨잖아요. 근데 말씀하신 것처럼 원하는 답변이 이미 설정되어 있고 그거를 얻어내는 방식으로 인터뷰를 진행하셨다고 얘기를 하셨는데 혹시 거기서 원래 생각했던 것에서 돌출된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걸 자신의 작업 안으로 포섭하는 그런 경우는 아예 없었던 건지 여쭤보고 싶네요.

홍민키: 대표적으로 〈들랑날랑 혼삿길〉에서 ‘결혼정보회사’. 이건 정말 예측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내 형제를 좋아하면 어떡하지’라는 대사 있잖아요. 정말 예측하지 못했고 그 얘기를 듣자마자 됐다, 나왔다. 이런 식의 반응이 있었어요.(웃음) 제가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좋아하는 순간이 그런 순간인 것 같아요. 굉장히 설계에 집착하면서 만드는 편에 속하는데 똑같은 내용이어도 문장의 구조나 혹은 문장의 표현이 달라진단 말이에요. 〈낙원〉에서는 특히 수위의 문제가 많죠. 끈적끈적하다든지 하는 것들은 제가 대본을 줘도 할 수 없는 대사들이란 말이에요. 그런 대사들을 발견했을 때 감독으로서 엄청 쾌감을 느끼고 이런 것들을 꼭짓점 삼아서 이야기를 매끈하게 만들려고 노력을 하는 편인 것 같습니다.

박동수: 〈낙원〉에서 그런 경우가 좀 많았던 것 같아요. 다른 작품들보다 유독 육체적인 표현이나 촉각적인 표현이 많고 직접적인 행위들에 대한 묘사도 상당히 많은 편이었어서 그런 부분들을 감독님이 되게 발견하실 때 즐거워하셨겠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것 같습니다. 다음 질문을 받아보겠습니다.

관객: 두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인터뷰 대상자의 익명성을 위해서 출처를 숨기는 듯한 작업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데 그렇게 되면 장소와 증언만 남게 되는 형식인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픽션이라고 생각하고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저는 이야기로서 인식되는 게 있었는데 〈낙원〉 같은 경우는 이야기를 상자에서 꺼내는 방식으로 전달이 되어서 픽션과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점이 있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그런 지점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작업을 하시는지 궁금했고요.

 두 번째는 방금 답변 주신 것 중에 이야기를 매끈하게 만들려고 노력하신다는 이야기를 주셨는데 그렇게 되는 과정에서 일부러 배제되거나 빠져야 했던 이야기들은 없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역사화를 위해 작업하신다는 이야기를 처음에 하셨던 것 같은데 만약에 이야기를 매끈하게 만든다고 했을 때 배제되는 이야기가 많다면 그것이 역사화라는 목적에 있어서 달라지는 방향이 아닌지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홍민키: 첫 번째 질문으로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이거에 대한 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그런 고민을 많이 하는 입장에서 머릿속에서 계속 떠올리는 이미지가 하나가 있어요. 우리가 달을 볼 때 달의 뒷면을 보지 못하잖아요. 그러면 과연 우리가 달의 앞면만 봤을 때 사실을 봤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 들더라고요. 그래서 사실 달의 뒷면을 앞으로 끄집어 당겨서 달의 정면과 함께 봐야 달을 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픽션이라는 것과 논픽션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게 되는데, 저는 그게 오히려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깃거리를 몰입감 있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과정에서 그 사람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삶의 모습, 혹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도시 뒤의 공간과 같은 것들을 전달할 수 있는 일종의 도구라고 생각해요. 제가 말하고자 하는 건 다큐멘터리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을 가지고 담론을 형성하고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하는 거죠. 그래서 달의 앞면을 고집하면서 내가 최대한 더 좋은 화질로 앞면을 기록하겠다는 태도보다는 비교적 화질이 흐려지거나 혹은 픽션일지언정 내가 생각하는 달의 뒷면을 앞으로 끄집어와서 내가 달의 형태를 재현하고 싶다는 태도로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이 배제되는 이야기가 있는지에 대한 거였는데요. 배제라는 단어를 선택이라는 단어로 바꾸면 어떨까 싶어요. 제가 역사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이야기를 다룰 수 없을 뿐더러 역사학자조차도 결국에는 역사가의 견해에 따라서 분명히 선택되는 흐름과 방향성이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까 내가 이야기를 구성할 때 어떤 부분에 있어서 이걸 배제하겠다는 태도보다 이 이야기에서 이 부분을 조금 더 조명하겠다는 태도로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명하는 기준은 그동안 다뤄지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것이죠. 게이들조차 크루징이라는 문화를 말하고 싶지 않아 하는데 굳이 게이의 성적 경험과 육체적인 욕망에 대해서 이야기를 다루는 것에 있어서 저는 선택이라는 단어를 조금 더 쓰고 싶은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비교적 집중도를 떨어뜨리는 부분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익명성 때문에 어떤 사람이 특정될 수 있기 때문에 다루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많아요. 배제라는 단어를 쓰고 싶고 굉장히 아쉬우면서도 필연적으로 해야만 했던 선택들이 있기도 했습니다.

 배제가 되었을 때 과연 그걸 역사라고 말할 수 있냐고 하셨는데 저도 사실 역사화하고 싶다고 거창하게 말은 하지만 어떤 누구보다 더 자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다만 제가 말한 역사화라는 것은 그동안 다뤄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기록하고 그리고 이러한 콘텐츠에 누구나 다시금 접속할 수 있게 만들고 싶은 것 같아요. 한국에서 그런 공간이 굉장히 쉽게 사라지고 그리고 그 공간에 있었던 기억은 더더욱 빨리 휘발되고 특히 소수자들의 이야기와 공간은 더 빨리 사라지기 때문에 그런 것을 굳이 기록을 해서 이미지로 남기고 그들의 증언을 기록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깃발들을 꽂아서 내가 이 깃발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왔는지, 어느 방향을 향해 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바다극장이 없어진 지 10년이 넘었는데 그 시점으로부터 지금 한국 사회가 퀴어를 다루는 방식이 얼마나 달라져 왔는지에 대한 지표가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제 작업들이 그런 지표의 역할을 하길 바라고 그런 의미에서 그것을 역사의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는 깃발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 역사란 단어를 쓴 것 같습니다.

박동수: 길게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같이 얘기해보고 싶은 게 픽션과 논픽션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생각해 봤을 때 결국 다큐멘터리도 촬영되는 순간과 크랭크업이 되는 순간이 있는데 그 사이만을 다루게 될 뿐이잖아요. 결국 이것도 연출자가 이때부터 이때까지만 찍겠다 혹은 이 사람이 어떤 순간, 어떤 국면, 어떤 맥락만 찍겠다고 선택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아무리 다큐멘터리일지라도 기본적으로 가공된 픽션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저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역사화라는 작업도 그러한 선택의 결과물이고 배제라는 표현을 쓸 수도 있겠지만 특히 오늘 본 작품들 같은 경우에는 홍민키 감독님이 말씀하신 대로 깃발 꽂기의 대상들로 선택된 그런 공간과 시간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질문 받아보겠습니다.

관객: 안녕하세요. 작업도 너무 잘 보고 설명도 잘해주셔서 유익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작업들 제목을 어떻게 지으시는지, 그리고 혹시 좋아하지 않는 성향의 제목 스타일이 있는지도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홍민키: 진짜 처음 받아본 질문인데(웃음) 제목은 〈리얼 서바이벌 가이드 공중도시〉 같은 경우에는 맨 처음에 짓고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고, 〈들랑날랑 혼삿길〉은 완성 한 달 전에 제목을 정해서 디자이너한테 말했고 〈낙원〉 같은 경우는 비교적 끝 무렵까지 끌고 갔던 것 같아요. 최근에 작업을 할 때 제목을 짓는 걸 정말 고민을 많이 하는데 그러면서 왜 고민을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또 다시 하게 되잖아요. 왜 제목을 이렇게까지 고민하나. 저는 〈들랑날랑 혼삿길〉을 정말 잘 지은 제목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게임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까 우선 제목이 예뻐야 선택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제목을 지을 때 제가 차용한 형식들을 많이 반영하는 것 같아요. 〈들랑날랑 혼삿길〉은 아까 말했던 프린세스 메이커를 떠올렸다고 했잖아요. 그런 식으로 프린세스 메이커에서 보통 쓰는 형용사를 덧붙인 형태의 제목이 되었고, 〈낙원〉 같은 경우는 비교적 시네마틱한 연출을 상상하다 보니까 그렇게 접근했던 것 같고, 〈리얼 서바이벌 가이드 공중도시〉는 정말 게임 그 자체인 느낌으로 지었던 것 같아요. 게임은 끝도 없이 이름이 길어질 수 있잖아요.

 취향이 아닌 제목은 어쨌든 저는 미술을 베이스로 작업을 했으니까 ‘무제’ 이런 거 너무 싫어하고요.(웃음) 무언가 지나치게 상징적이거나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해서 작가만이 알 수 있는 그런 제목을 좀 지양하는 것 같아요. 〈낙원〉 같은 경우도 아실 분은 아시겠지만 게이들이 모여서 노는 공간이 낙원동이에요. 낙원동 일대에 업소가 많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낙원이란 이름으로 또 다큐를 지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들의 밤의 낙원 같은 거죠.

관객: 사실 저는 제목이 〈낙원〉이어서 낙원상가가 먼저 떠오르긴 했었거든요. 그리고 〈리얼 서바이벌 가이드 공중도시〉 같은 경우에는 ‘위기탈출 넘버원’ 같은 TV프로그램이 먼저 떠올랐던 것 같아요. 조금 다른 얘긴데 작년이었나요? 올해였나요? 〈리얼 서바이벌 가이드〉 2편을 공개하셨잖아요. 부제가 ‘디지털 안내견 똘똘이’였는데 시각장애인 유튜버인 양주혜 님이 나오시고 윈도우 XP 시절에 있던 것 같은 강아지가 디지털 상에서 배제되는 시각장애인을 돕는 안내견이 되겠다는 내러티브로 만들어진 작업이에요. 그걸 보면 온라인 공간이 앞에서 얘기할 때는 중립적이고 정치적으로 활용 가능한 공론장처럼 느껴졌지만 2편을 보고 나서는 온라인도 결국 도시가 그런 것처럼 점점 더 자본화되고 누군가를 배제하는 공간이 된다는 것을 새삼 느꼈던 것 같아요. ‘도시 뒤에 공간이 있어요’라고 얘기를 했는데 가상 공간 또한 도시의 작동 원리를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도시 공간과 온라인을 함께 다룬다는 것, 그리고 작업에서 항상 가상성이라는 것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 같은데 가상성에 주목하시는 이유 또한 여쭤보고 싶습니다.

홍민키: 일단 방금 이야기해 주신 것 중에 먼저 말하고 싶은 건 온라인 공간이 아까 말했던 것처럼 중립성,자유, 혹은 시공간의 제약이 없는 이데아처럼 묘사가 되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문득 그것에 대한 의문이 생긴 거죠. 프랑켄슈타인은 왼손잡이일까 오른손잡이일까 라는 질문은 정말 멍청한 질문인데 이 말을 던진 이유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존재에는 정상성이라는 게 분명히 부여될 거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만든 사람이 상정하고 있는 정상 신체, 그리고 그것을 위한 세계라는 것이 저는 있다고 생각을 했고 그런 의미에서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괴물을 왼손잡이로 만들었을까 오른손잡이로 만들었을까 라는 사소한 질문에서 시작했던 게 〈리얼 서바이벌 가이드 공중도시〉 2편이었어요. 배제되는 신체와 감각 편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제가 가상 공간을 많이 다루게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앞서 말했던 것처럼 저는 게임을 너무 좋아하고 제가 어렸을 때 대부분의 여가 생활은 게임 속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게임 공간이나 가상 공간은 저한테는 가상의 공간이 아니라 저의 또 다른 공간 중 하나인 거죠. 학원, 학교 놀이터 그리고 게임 속. 저는 그 공간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새로운 걸 배우고 사회생활을 하고 사기를 당해서 현금을 잃어보기도 하고(웃음). 그러다 보니까 저에게 가상 공간은 특수한 공간이나 격리된 공간이 아니라 신체의 일부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그것을 다루는 게 옆에 나뭇가지가 있어서 이걸로 조각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일종의 자연스러운 재료로 받아들여졌던 거죠. 모두가 인스타그램을 사용하듯이 〈리얼 서바이벌 가이드 공중도시〉에서 인스타그램이 특수하거나 낯선 환경이 아니라 그걸 위해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만큼 현실을 잡아먹고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가상성이라는 게 저에게는 현실 그 자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관객: 혹시 준비 중인 프로젝트가 있다면 공유해 주실 수 있을까요?

홍민키: 〈낙원〉 같은 경우에는 작년 오늘 바다극장에서 상영을 제일 먼저 했어요. 그때 ‘쇼쇼쇼’라는 기획을 제가 했었거든요. 1부에서는 상영 쇼, 2부에서는 역사 강연 쇼, 3부에서는 캉캉쇼를 했었습니다.
 1부 상영 쇼에서는 바다극장을 다룬 〈낙원〉을 바다극장에서 첫 번째로 보여주는 행사였던 거죠. 저는 〈낙원〉이라는 다큐가 과거에 있었던 경험을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노스탤지어로 머물게 한다는 한계가 있다고 스스로 생각을 해요. 그들의 이야기가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가 다큐멘터리를 구성하면서 어쩔 수 없이 가지고 가야만 했던 한계였다고 꼭 고백을 하고 싶어요.
 2부에서는 역사학자가 지금은 MTF로서 노래를 부르고 무대 위에서 쇼를 하시고 과거에는 바다극장에서 혹은 그러한 크루징 극장의 경험이 있었던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는 역사 강연 쇼가 있었어요. 과거의 이야기를 현재로 끌고 오고 싶었어요. 이어서 3부의 캉캉쇼 같은 경우에는 바다극장에서 당시에 실제로 캉캉쇼가 있었는데 ‘House of Seas’라는 보깅 댄서 그룹이 그것을 보깅 캉캉쇼로 재해석했고 제가 ‘동성 캉캉쇼’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아실 분은 알겠지만 ‘동성 캉캉’이 게이 성매매 홍보하는 문구 중 하나예요. 어원은 모르지만 뉘앙스는 다 아는 단어인 거죠. 그런 식으로 캉캉쇼를 기획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나아가서 현재의 퀴어들이 해석하는 미래로 향하는 퀴어의 모습을 재현해서 퀴어의 역사성을 구축하고 싶었습니다. 이전의 기획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쇼 2부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죠.
  쇼 2부에서는 1부에서 제가 미처 다루지 못했던 부분을 다루고 싶은데요. 엔딩 크레딧 끝 무렵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던 사람의 독백이 있잖아요. 거기서 이어져서 노인의 사랑과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노화와 신체의 질병에 대한 문제에 대해 다루고 싶어요. 이렇게 퀴어와 노화, 그리고 신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다큐와 함께 관련된 퍼포먼스가 있는 두 번째 쇼를 기획해서 2025년에 여는 게 저의 목표입니다.

박동수: 너무 기대됩니다. 사실 작년에 했던 쇼도 가고 싶었는데 그때 못 가서 많이 아쉬웠거든요. 내년에는 어떤 내용으로 어떤 공간에서 어떤 사람들을 다루게 될지 궁금합니다. 그럼 저희 이제 마무리해보려고 하는데요. 오늘 이렇게 본인 작품을 연달아서 상영하고 토크를 나눈 소감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홍민키: 일단 이렇게 제 작업이 묶여서 상영하는 것도 뜻깊고, 짧지 않은 시간인데 같이 봐주시는 분들이 많이 생겨서 너무 기쁩니다. 나아가서 제가 다루는 이야깃거리나 형식에 대해서 처음에는 좀 확신이 없었어요. 이걸 정말 다큐라고 말할 수 있나, 미술에서는 다큐라고 말하고 다큐 쪽에서는 미술이라 말해서 이도 저도 아니고 진짜 호모 같네 이런 느낌이었거든요.(웃음) 어느 순간 관심 있게 봐주시는 분이 계시고 이것이 서사가 될 수 있구나, 이것이 역사가 될 수 있구나 하는 순간인 것 같아서 저에게는 잊지 못할 날이 될 것 같아요. 앞으로도 제가 만드는 이야깃거리들에 많이 관심 갖고 지켜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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