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해킹하기] 섹션 1 '요즘 애들'
〈나쁜 영화〉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3년 12월 17일(일) 오후 1시 상영 후
참석 김남석 감독,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함연선 마테리알 편집인
*관객기자단 [인디즈] 19기 김해수 님의 기록입니다.
간편히 명명되어온 말로 돌아가 점검하는 일은 중요하다. “나쁜”이라는 좁은 수사에 든 넓은 그들에 대해서 살펴본 자리 역시 필요했다는 생각이 든다.
함연선 편집인(이하 함연선): 영상비평지 《마테리알》에서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함연선이라고 하고요. 오늘 한상철 님과 김남석 감독님 모시고 토크를 진행하려 합니다. 먼저 두 분 간단하게 자기 소개하면서 시작을 해보도록 할게요.
한상철 기타리스트(이하 한상철): 안녕하세요. ‘불싸조’ 밴드에서 기타를 치는 한상철입니다.
김남석 감독(이하 김남석): 안녕하세요. 저는 영화·영상 만들고 있는 김남석입니다.
함연선: 오늘 〈나쁜 영화〉 보시고 이 자리에 계신 걸 텐데, 제가 〈나쁜 영화〉에 대한 설명을 조금 드리고 시작하려 해요. 중간에 나누고 싶은 질문이나 감상이 있다면 편하게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나쁜 영화〉는 장선우 감독의 후기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97년 8월 2일에 개봉을 했고, 서울 관객 14만 8천 명이었다고 해요. 그해 한국 영화에서 1·2위 흥행작이 〈편지〉와 〈접속〉이었는데요. 〈편지〉는 72만 명, 〈접속〉은 67만 명이었다고 하니까 어느정도 가늠이 되죠. 영화는 개봉 전후로 윤간 등의 묘사로 인해 공연윤리위원회와의 갈등으로 큰 논란이 되었다고 합니다. 평단이나 관객들 사이에서도 이 영화가 ‘나쁜’ 영화인지 아니면 ‘나쁜’ 좋은 영화인지에 대해서 논란이 있었다고 해요. 아마 오늘 영화를 보신 분들도 많은 생각을 하셨을 텐데, 특히 윤리적인 부분과 폭력적인 장면의 묘사에 관해서였을 것 같아요.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어 주시면 더 뜻깊은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두 분께 〈나쁜 영화〉를 접하게 된 과정을 여쭤보고 싶어요. 먼저 말씀드리자면, 저는 장선우의 초기작인 〈성공시대〉나 〈우묵배미의 사랑〉을 좋아했었어요. 그런 영화가 재밌다고 하니까 친구들이 〈나쁜 영화〉가 찐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유심히 보던 젊은 평론가나 예술가들이 2010년대 중반에 〈나쁜 영화〉를 계속 언급하더라고요. 그러다 2019년쯤에 학생들끼리 조그맣게 상영하는 장소에서 이 영화를 처음으로 봤어요. 두 분은 언제 어떻게 처음으로 보셨을까요?
한상철: 아까 14만 8천 명이 드셨다고 했는데, 제가 그중에 한 명입니다. 97년에 극장에서 봤습니다. 그때 저는 십대였으니 출연하는 배우들과 비슷한 나이대에 봤죠. 영화를 좋아해서 봤던 건데, 학교에서 불량하다고 불리는 애들도 이건 봤어요. 90년대 중반에 이런 영화들이 전세계적으로 쏟아졌어요. 래리 클락의 〈키즈〉도 그렇고 〈트레인스포팅〉도요. 세기말이기도 하고 당시의 유행인가 싶었어요. 그때는 되게 재밌다는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김남석: 저는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는 많이 어렸기 때문에 못 봤고요. 포스터는 어렴풋이 기억하거든요. 포스터가 굉장히 자극적이어서 궁금했어요. 포스터만 봐도 타이틀처럼 너무 나쁘다고 생각했어요. 영화는 10년 전쯤에 보게 된 것 같은데요. 당시 제가 동유럽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라는 나라의 수도인 ‘사라예보’에서 살면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요. 거기서 영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저희 학교로 에드워드 래크먼이라는, 유명한 작품을 많이 하신 미국의 촬영 감독님이 오셨어요. 〈캐롤〉 영화도 찍으셨고요. 그분이 제가 한국에서 온 것을 들으시고, 이런저런 영화를 아는지 물어보셨어요. 그중에 지금은 돌아가신 박철수 감독님의 〈녹색 의자〉나 〈301 302〉 같은 작품들도 있었어요. 저는 다 못 본 영화들이었어요. 감독님이 추천을 해주셔서 보게 됐어요. 〈나쁜 영화〉도 추천을 해주셨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비슷한 시기에 제가 봤던 것 같아요. 구하기 힘든 영화였고, 아마도 오늘 보신 영화는 검열본인 반면에 제가 처음 봤던 것은 영어 자막까지 들어간 해적판 미검열본일 거예요. 사전 미팅 때 듣기로는 일본에서 편집이 됐다고 해요. 보고 나서 굉장히 흥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함연선: 네. 아마 영화제 상영도 일본일 것 같아요. 두 분 다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한상철님께서는 영화에 나오는 십대와 비슷한 나이에 보셨다고 하셨잖아요. 93년에 수능이 도입되고, 94년에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95년에 삼풍백화점이 붕괴되는 일들을 겪은 상황 속에서의 청소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상황 속에서의 비행 청소년들을 다루고 있는데요. 당시 청소년으로서 봤을 때 또래를 잘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셨을지 궁금했어요.
한상철: 말씀드렸지만, 비슷한 영화들이 막 쏟아졌어요. 당시에는 별생각이 없었어요. 친구들은 (영화에서 나오는) 저런 건 실제로 있고 없고에 대해 말했어요. 하지만 개인이 겪은 게 다 다르니까…. 〈나쁜 영화〉가 나온 후에 영파여중에서 학생들이 직접 저런 영화를 찍은 게 있어요. 〈너희가 중딩을 아느냐〉. 거기서 마지막에 불량한 학생들이 신세 한탄을 하면서 끝나거든요. 나이가 들어서 든 생각인데, 형태는 달라도 비행 청소년들은 전후에도 지금도 존재해요. 모든 세대에 청소년들은 있으니까요. 뭐가 시대에 맞고 정확하다기보다는….
함연선: 제가 한상철님 블로그를 열심히 서치했는데, 예전에 쓰신 글이었어요. 거기서 〈나쁜 영화〉가 판타지 영화 같았다고 표현을 하셨더라고요. 그래서 뭔가 다르다고 생각하셨나보다, 싶어서 여쭤보았어요. 불량 비행 청소년 재현에 대해서 더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데요. 찾아보니까 어떤 관객들은 고증이 안 맞는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가령 본드도 너무 과잉되게 불고, 가출 청소년인데 술집을 털어 양주를 마신다는 게 말이 되냐, 따지자면 “걔네들 그렇게 놀지 않아요”라는 것처럼 들렸거든요. 판타지 같다는 것과 비슷하게 읽혔어요. 최근에 이 영화를 본 익명의 유저는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가출 청소년의 진짜 모습은 안 보이는 것 같은데 가출 청소년의 진짜 모습을 봤다고 자랑하는 장선우의 모습은 잘 보인다.” (웃음) 또 반면에 긍정적인 반응도 있었어요. 주로 최근의 평단에서 그런 반응을 봤는데요. 변성찬 평론가가 2017년에 〈나쁜 영화〉를 다룬 글에서, 〈나쁜 영화〉의 영화적 시도가 “거리의 삶을 장르라는 매개를 통해서 재현하려 하기보다는 거리의 삶과 함께 한 편의 영화를 만들려고 했던 소중한 시도다.”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두 분은 이 영화에서 비행, 가출, 불량 청소년들이 재현되는 방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셨는지, 관련해서 동의가 안 되거나 흥미로운 부분에는 뭐가 있었는지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한상철: 저희 밴드의 비디오로 쓸 때 〈나쁜 영화〉를 편집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처음 봐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저작권 관련해서 물어보려고 했는데 전화가 안 되더라고요. ‘미라신 코리아’가. 일단 올려놓고 클레임이 들어오면 내리자, 했는데 아직 안 들어와서 두고 있어요.
함연선: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한상철님께서 활동하고 계시는 밴드 ‘불싸조’의 뮤직비디오 중 하나가 〈나쁜 영화〉 클립들로 만들어져 있거든요.
한상철: 앞서 고증 관련 말씀을 하셨는데, 크게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다시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게 윤간 이후에 스틸 찍는 분이 안 찍으시는 장면이었어요. 자기는 안 찍겠다, 나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데요. 제가 어렸을 때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생각해보니까 당시에는 〈쇼킹 아시아〉, 〈홀로코스트〉처럼 잔인하고 보기 힘든 영화들이 많이 개봉했어요. 센 것을 과시하려고 일부러 넣었나, 라는 생각을 했는데요. 이건 허구랑 다큐멘터리의 경계잖아요. 내용이 정확하게 그거더라고요.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이 다큐멘터리를 안 찍고 극영화만 찍기로 한 이유요. 그때 인터뷰가 지젝 책으로 나왔어요. 『진짜 눈물의 공포』. 이제는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 진짜 눈물 흘리는 사람을 감히 못 담겠다고 했어요. 저는 스틸 못 찍겠다고 하는 말이 그런 장면 같았어요. 어렸을 때는 자극적인 것을 강조하는 묘사라고 생각했는데, 허구랑 이것(사실)을 왔다 갔다 하기 위해서 넣은 건가 싶기도 해요. 얼마나 철저하게 고증이 되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는 식으로 생각이 드네요.
김남석: 저도 재현적인 측면보다는…. 제가 느끼기에 이것은 좋다, 나쁘다의 개념은 아니고 비행 청소년들의 시점 혹은 그들의 바이브를 나름대로 최대한 살리려는 시도였던 것 같아요. 제가 장선우 감독님의 영화를 모두 본 게 아니라서, 장선우라는 인물의 필터를 얼마나 거쳐 이 영화가 나온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요. 분명히 그 필터가 있긴 한 것 같거든요. 이후에 나온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봤을 때도 고증이나 재현의 방식에 있어서는 전혀 불편하거나 사실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비행 청소년을 다루는 시퀀스들이나 거리의 행려들을 다루는 시퀀스에서 인물들에 대한 편견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카메라가 이들을 보여주는 방식에 있어서요. 무엇보다 선택한 소재도 그렇고요. 저는 장선우 감독님의 세상을 바라보는, 혹은 충무로라는 시스템 안에서 영화를 만들고 계셨던 감독님의 태도를 반영하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을 좀 해보게 되더라고요.
함연선: 충무로 영화계 내에서 장선우 감독의 태도 같은 것을 말씀해 주셔서 이어서 질문이나 제 생각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장선우 감독이 80년대에는 글을 많이 쓰셨어요. 「새로운 삶, 새로운 영화」라는 글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요. “한국 영화의 새로움은 흥행의 성공이라는 가장 큰 미신부터 하나하나 버려 나가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흥행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세요. 그래서 장선우 감독이 방법론으로 제시하는 게 “열린 영화”잖아요. 이 “열린 영화”는 「열려진 영화를 위하여」라는 글에 자세히 나와 있어요. 카메라가 마당극처럼 인물들과 함께 왔다 갔다 하고, 공간이 열려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에요. 장선우 감독이 최근에 회고할 때, 이에 〈나쁜 영화〉가 가장 부합하는 영화였던 것 같다면서, 가장 자기가 만족했던 영화였던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열린 영화”라는 것과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거친 표면? 웰메이드의 반대 항으로서의 아마추어리즘 같은 것들이 이 영화에서 보였어요. 그러면서 만드는 에너지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두 분도 이 영화 특유의 에너지나, 이상한 활력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좀 궁금했어요. 저는 이 에너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오늘날에 그런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연결해서 이야기해 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김남석: 제가 장선우 감독님이 그 당시 인터뷰하신 것 몇 개를 봤어요. 96년도 인터뷰였는데, 차기작 준비하시냐는 질문에 깡패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하셨어요. 나오는 주인공도 깡패 같고 영화도 깡패 같은 것을 만들고 싶다면서 요즘 영화들 너무 재미없다고 하셨더라고요. 한국 영화에 딱 국한해서 이야기를 하기가 조금 어려운데요. 그래도 현 시점에서 유효한 말인 것 같아요. 일단 에너지적인 부분에서 이야기를 해보면, 저는 이 영화를 10년 전에 보고 굉장히 흥분했어요. 타지에서 봤기 때문도 있고 성인이 된 후여서 감흥이 새로웠어요. 이런 에너지를 가진 영화가 이전이나 이후에 있었나, 라는 생각이 들긴 하거든요. 아티스트들이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 그 의도나 애쓰는 에너지가 많이 보이는 작품들이 있는가 하면…. 그런 것들을 많이 보잖아요. 현대 미술 같은 곳에서도요. 이 영화는 분명히 새롭고 신선한데 그게 여전히 유효해요. 거기에 애쓰는 에너지가 없달까,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인터타이틀이 들어가는 방식이나 인터타이틀에 들어가는 워딩 같은 모든 것들이요. 제가 아카이브가 많은 사람이 아니어서 비교 대상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요. GV를 하게 돼서 며칠 전에 다시 봤는데 여전히 새로움과 에너지가 유효하게 느껴지더라고요.
함연선: 아카이브가 많은 사람으로서의 한상철님. (웃음) 당시에 영화를 많이 보셨다고 하셨잖아요. 그 시기에 이 영화가 좋은 의미에서 독특한 것이었는지 궁금합니다.
한상철: 제가 극장에서 이 영화를 처음 보자마자 한 생각이 너무 어지럽다, 였어요. 아마 35mm로 찍었을 텐데요. 화질이 안 좋은 카메라로 들고 찍은 것을 큰 화면으로 봤더니 익숙하지 않아서 어지럽더라고요. 2000년대 넘어가면서 〈클로버필드〉 같은 ‘파운드 푸티지’ 유의 영화들이 생겼잖아요. 관객들도 차차 핸드헬드로 들고 찍는 방식에 익숙해져 갔고요. 그보다 한참 전에 〈나쁜 영화〉를 봤을 때는 멀미가 날 정도였어요. 당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도그마 선언’을 들고 나왔어요. 순수성을 위해서 영화는 카메라를 들고 찍어야 하며, 화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가짜가 없어야 한다 등 규칙이 있었어요. 〈나쁜 영화〉가 ‘도그마 선언’과 비슷한 시기에 나왔어요. 그때는 처음이니까 와아, 하는 게 있었는데 이제는 흔한 게 되어버린 것 같아요. 소재 면에서는 이게 좀 자극적이잖아요. 사전 미팅 때도 지금은 이런 영화를 못 찍을 것이다, 라는 이야기가 나왔었는데요. 영화적으로 90년대 에너지가 있는 건 알겠는데 지금에 와서 어떤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제는 인터넷 방송에 워낙 자극적인 것들이 많다 보니 거기로 에너지가 분산되었잖아요.
함연선: 이번 섹션의 기획 의도에도 나왔었던 이야기로 기억하는데요. Y2K 느낌, 세기말 감성 이런 것들이요. 21세기가 된 지 20년도 더 지난 시점에서 시각적으로 사로잡힌 건, 저도 화면의 자글거리는 질감이나 저화질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겪어보지 못했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고 할까요? 이 영화의 포스터나 템플릿 같은 것도 미감이 독특한 것 같더라고요. 이런 미감들에 대해서 개봉 당시에는 어떻게 느끼셨는지, 이번에 다시 보시면서 시각적으로 매료된 부분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김남석: 크레딧 보셔서 아실 텐데 최정화 작가님이 미술을 하셨어요. 저도 나중에 알고 흥미롭다고 생각했어요. 컬러풀하고, 팜플렛 디자인도 굉장히 신박하거든요. 이건 논외일 수도 있는데, 제가 기억하기로는 비행 청소년들이 서로 강남·강북 스타일을 나누고 그랬어요. 제가 봤을 때 영화에서의 청소년들은 강남 베이스의 무리거든요. 왜 그렇게 선택하셨는지도 궁금하더라고요. 돌아 돌아서 〈나쁜 영화〉에서 보신 인물들의 스타일도 이미 재현이 새롭게 되었죠. 그런 걸 보는 재미가 있었던 것 같고요. 이야기해 주신, 다양한 카메라를 활용해 질감을 섞는 방식에 있어 얼마나 미적인 의도를 가지셨는지는 모르겠어요. 생각을 안 하진 않았겠지만, 저희 세대가 디지털 그레인으로 질감을 만들어내는 맥락은 아니지 않았을까 해요. 특히 제 기억에는 거리의 행려들을 찍는 시퀀스에서 비디오 카메라를 많이 쓰신 것 같은데요. 그건 철저히 영화를 찍을 때의 경제성, 이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가까이 담기 위한 선택에 가깝지 않았을까 해요. 미적인 관점에서의 선택보다는요.
함연선: 혹시 강남과 강북의 비행 청소년이 어떻게 다른지 여쭤봐도 될까요?
김남석: 뭘 했는지까지는 제가 비행 청소년이 아니었기 때문에 모르겠고요. 예전에도 (차림의) 카테고리야 있지만 당시에는 블랙·화이트처럼 지역적으로 확 나뉘는 게 강했어요. 제가 어릴 때 시각적으로 민감했기 때문에 그들을 보면서 다름을 느꼈어요. 요새도 분류가 있기는 하지만, 섞여 있는 것 같거든요. 그때는 어느 역에 내리냐에 따라서도 달랐어요.
한상철: 영화 초반에 스텝프린팅이라고 해야 할까요. 고속으로 촬영해서 느리게 흘러가게 하는 장면이 있어요. 당시 왕가위 영화가 엄청 흥행했기 때문에 닮게 한 것 같기도 해요. 머리를 빗는 장면도 〈아비정전〉에서 양조위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하고요.
함연선: 사실 두 분을 이 자리에 모시게 된 사소한 계기들이 있어요. 한상철 님은 뮤직비디오를 〈나쁜 영화〉 클립들로 만드셔서, 하게 된 경위나 과정에 대해 여쭤보려 했고요. 김남석 감독님은 영화 웹진 ‘리버스’와의 인터뷰에서 언젠가 〈나쁜 영화 2〉를 만들고 싶다고 하셨는데, 당시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여쭤보고 싶었어요. 이 계기들로 인해서 자리에 모시게 된 것이었거든요. 한 분씩 이야기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상철: 저는 90년대의 화면을 쓰고 싶었는데 예전에 〈나쁜 영화〉를 본 게 기억이 났어요. 2000년대에 그런 게 많았거든요. 영화랑 상관이 없는 다른 음악을 함께 틀어서, 둘을 동시에 홍보하는 뮤직비디오를 만들었어요. 이를테면, 아무 상관도 없는 영국 밴드와 붙여서 화면만 〈올드보이〉인 뮤직비디오가 있었어요. 그런 것을 만들고 싶어서 〈나쁜 영화〉를 골랐어요. 편집하는 친구와 불쾌한 장면은 다 빼고 만들었거든요. 그랬더니 90년대 하이틴 영화 같은 거예요. 아까 이야기했던 에너지 같은 게 또 있고요.
함연선: 굳이 〈나쁜 영화〉를 선택한 이유가 있으실까요?
한상철: 요즘은 필터가 좋은 게 많아서 화질을 일부러 안 좋게 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저 자체가 화질이 안 좋으니까 그런 것을 할 필요도 없었고요. 그리고 이전처럼 서로 상관없는 뮤직비디오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김남석: 디테일한 계획이 있어서 〈나쁜 영화 2〉를 만들고 싶다고 얘기한건 아니에요. 제가 사라예보에서 첫 장편 영화를 만들었어요.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에 있는 작업이었고, 90년대 초·중반 보스니아 내전이 있을 당시 태어났던 93-95년생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나쁜 영화〉처럼 거리를 배회하고, 마약을 하고, 방황하는 인물들을 담은 다큐멘터리였는데 〈나쁜 영화〉를 보기 이전에 만들었는지, 보고 나서 연출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다만 〈나쁜 영화〉에서는 감독이 ‘무엇이 나쁘냐’는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아까 촬영적인 면에서 감독이 편견이 없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는데요. 비행 청소년을 화면에 담는 것에 편견이 있었다면 저도 사라예보에서 그들을 찍지 않았을 거예요. 한국에 돌아와 새로운 작업을 준비할 때, 국내에서 방황하는 젊은 세대와 작업하고 싶었어요. 저 스스로 틀에 얽매이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고 저항하는 에너지가 강해요. 지금까지 제 작품에서 주로 다뤄왔던 인물은 사회의 틀 바깥에 있는 인물이었어요. 그들에게 매력과 동질감을 느꼈고 계속 그런 인물들을 찾아서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만약 〈나쁜 영화 2〉를 실제로 제작하게 된다면 ‘무엇이 진짜 나쁜 것인지’ 질문할 수 있는 형태의 작업이 되지 않을까 해요. 문제적인 폭력은 분명 객관적으로 나쁘죠. 하지만 지시에 응하지 않아도 사회는 나쁘다고 하잖아요. 그것을 과연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무조건적으로 반사회적인 사람들에게 매료된다는 것은 아니고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분위기가 더 생기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영화나 예술 작품도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관객: 이 영화에 음악이 많이 등장하는데, 각자 마음에 드시는 부분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함연선: 그렇죠. 음악이 많이 나오죠. 〈나쁜 영화〉라는 제목도 삐삐밴드의 노래 제목이죠.
한상철: 저는 아까 깜짝 놀랐던 게 GOD의 박준형씨가 춤을 추는 장면에서 갑자기 크라프트베르크의 음악이 나오는 거예요. 아마 ‘Tour De France’ 리믹스 같은데 확실하진 않아요. 뜬금없이 왜 나오나 했는데, 97년도에 H.O.T.가 ‘We are the future’에서 크라프트베르크를 샘플링 했어요. 그래서 나온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김남석: 저는 삐삐밴드의 곡이 영화의 시작 포인트 중 하나였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어요. 그 음악도 좋아하고요. 삐삐밴드의 당시 에너지와 개성에 영화랑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영상 작업을 많이 하시는 장민승 작가님도 영화 음악에 참여하셨더라고요. 장선우 감독님의 아들이시거든요. 그것도 흥미로웠던 것 같습니다.
함연선: 감사합니다. 혹시 더 하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으실까요?
한성철: 저는 원래 큰 화면으로 보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어렸을 때 큰 화면으로 본 후에 20년이 흘러 큰 화면으로 또 보니까 좋네요.
김남석: 제겐 좋은 영화였거든요. 〈나쁜 영화〉가 왓챠에 올라와 있더라고요. 좋게 보셨다면 주변에도 추천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함연선: 오늘 이 시간까지 함께해 주신 관객분들과 자리에 함께 해주신 두 분께 감사드리면서 이 자리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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