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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 ‘자기만의 방’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위하여
〈나의 피투성이 연인〉과 〈산후〉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윤정 님의 글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눈에 보이거나 해석되다는 점에 있어서 어떤 각자는 절대 겹쳐질 수 없는 분명함의 영역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남자와 여자, 탄생과 죽음, 축복과 재앙, 결혼과 비혼, 지속과 단절, 그리고 너 그리고 나. 동일선상의 양 극단에 위치하기 때문에 절대 하나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단어 사이에서 나의 자리를 찾는 일은 누구에게나 항상 곤혹스럽다. 이 모든 혼란 속에서 〈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극단의 연장선 상에서 두 연인이 자기 자신, 그리고 우리의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지극히 현실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재이(한해인 분)와 건우(이한주 분)는 하나 같던 우리는 사실 너와 나, 둘로 이루어져 왔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갑작스러운 임신을 계기로 깨닫는다. 이와 동시에 아이를 낳느냐, 혹은 낳지 않고 임신을 중절 하느냐의 선택의 갈래에서 두 사람이 겪는 갈등은 물론이고 재이와 건우 각자로서 갖는 욕망과 불안 역시 시간에 따라 더욱 증폭된다. 결국 강경했던 재이가 아이를 낳기를 결정함으로써 새로운 우리가 될 것을 선택하지만 스스로의 정체성으로 여겨왔던 ‘작가 재이’와 주어진 정체성으로서 ‘엄마 재이’를 동시에 수행하는 것에 혼란을 겪는다. 항상 명확하고 예리했던 재이는 처음으로 불분명함이라는 고착상태에 이르르며 작가로서, 연인으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에 균열을 마주하게 된다. 건우 역시 그런 재이를 바라보며 자신이 위안이 될 수 없음을 통해 상실과 직장에서 겪는 부조리와 개인의 무력감을 번갈아 경험하며 고뇌한다. 안타깝게도 두 사람이 내린 결정은 서로를 무너트리고, 아프게 만드는 가장 취약하고 위태로운 우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결국 두 사람 모두 피투성이가 될 수 밖에 없는 사건을 경험함으로써 재이와 건우의 우리는 해체되고 각자는 나와 너로 완전히 분리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과정의 끝에서 재이는 건우가 자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느꼈을 고독과 책임을 오히려 건우의 뒷모습을 보며 알게 된다. 반대로 건우 역시 자신이 끼어들 수 없다고 여긴 ‘재이만의 세계’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거기엔 더 나아가 자신만의 즉, 재이가 끼어들 수 없는 ‘건우만의 세계’도 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에서 “이제 오지 마.”라고 말하며 우리를 해체하고 너는 너로, 나는 나로 분리되자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으로 건우의 몫일 수 밖에 없다.
재이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은 〈산후〉에서 아이를 낳은 후 심한 산후우울증을 경험하고 있는 수현(강진아 분)에게도 반복된다. 출산 이후 누군가의 엄마이자 아내, 딸, 사회의 일원이고 어느 조직의 직장인, 그리고 그 모든 것으로부터 독립적인 ‘나’는 수현 내부에서 조차 희석되고 모든 관계에서 공허한 결핍과 부족으로 남는다. 내가 되지도 못하였고, 온전한 우리 역시 없는 날들 속에서 생각하지도 않았던 ‘엄마’라는 정체성은 모성의 신화와 여성의 전통적인 성역할로부터 희생을 강요 받는 이 사회의 수많은 여성들을 돌아보게 한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노트북 타이핑 소리와 결국 혼자가 된 재이의 뒷모습이 겹쳐지며 끝이 난다. 두 영화가 끝나는 지점을 바라보며 자신의 자리에서 내몰리는 모든 여성들이 재이처럼 내가 온전히 나 일 수 있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면, 엄마라는 정체성으로부터 발생하는 압박과 당연한 고통에 대해 수현처럼 “그건 희생이 아니야.” 라고 말 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비록 영화에 등장하는 두 사람, 혹은 영화를 보는 모두가 자신만의 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과거의 좌절을 비롯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앞으로도 어쩌면 수많은 고초를 경험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실패의 경험들이 너는 너로, 나는 나로, 또 가끔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서 이분법적인 세상의 문법을 벗어나 또 다른 우리의 생성과 해체를 가져올 것이라고 감히 믿고 싶어진다.
* 작품 보러 가기: 〈산후〉 김홍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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