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기획] 〈두 사람을 위한 식탁〉김보람 감독 인터뷰: 두 사람의 곁에서

by indiespace_가람 2023. 11. 23.

두 사람의 곁에서

〈두 사람을 위한 식탁〉 김보람 감독 인터뷰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태현 님의 글입니다.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의 주인공 박채영 씨의 책 『이것도 제 삶입니다』의 한 문단을 옮겨보고 싶다.  “내 생각에 한국 사회는 전문가, 치료자의 권위가 너무 절대적인 곳이다. 그들이 내리는 진단은 평면적이다. 그러나 병을 겪는 환자의 삶은 굴곡지고 복잡하며 다채롭다. 난 치료의 주도권을 환자가 쥘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병원을 다녀오면 종종 불쾌해지는데, 내가 한 명의 사람이 아니라 질병 자체로 대해지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나의 복잡한 감정을 궁금해하지 않는 의사, 나의 개인 서사에 호기심이 없는 의사. 빠르게 증상을 호전시킬 방법만 궁리하는 의사는 환자를 외롭게 만든다. 나는 충분히 환자의 서사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지원을 하는 것이 진정한 ‘치료’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일주일에 한 번 만나 병의 호전 정도를 확인하고 끝내는 점검사가 아니라 병이라는 산을 함께 등반한 셰르파다.”. 어쩌면 이 문장들은 질병의 치료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곁을 지키는 일에도 절절히 맞아떨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을 만든 김보람 감독은 박채영 씨와 박상옥 씨의 삶을 잠시나마 같이 등반한 셰르파다. 그를 만나 나눈 대화를 전한다.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은 2022년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후, 여러 영화제를 지나 극장 개봉을 맞이했습니다. 저는 개봉 이후 독립예술영화관이 아닌 멀티플렉스에서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을 봤는데, 가족 단위 관객의 모습을 여럿 볼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관객을 만날 수 있는 극장 개봉을 맞이한 소감이 궁금합니다.

 

영화가 한 분이라도 더 많은 관객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우리 주인공분들을 위해서도 그렇고, 영화를 위해 애써주시는 많은 분들이 있어서인데요. 그래서 많은 자리들에 참석하고 있는데… 정말 솔직한 심정은 ‘이제 할 만큼 했다’인 것 같아요. 영화를 만들 때가 더 재밌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제 다음 영화로 넘어갈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피의 연대기〉 이후, 독립 다큐멘터리 확장성의 한계를 조금 느꼈어요. 이번에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역시나 힘든 부분이 있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일반관에서 가족 단위의 관객분들을 보셨다고 하니 반가운 소식이에요.

 

 

다양한 인터뷰와 관객과의 대화 기록을 통해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의 시작에 대해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섭식장애를 겪는 여성들을 담은 〈빅걸〉이라는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를 시작하던 중,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의 주인공 박상옥 님께서 근무 중인 무주 푸른꿈고등학교에서 열린 〈피의 연대기〉 상영회에 참석하셨다가, 상옥 님으로부터 채영 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어 지금의 영화가 완성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빅걸〉은 〈피의 연대기〉와 비슷한 기획, 상상해 보자면 여러 당사자와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섭식장애에 대한 이해를 돕는 거시적 관점에 이르는 기획이었을 것 같습니다.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가 옮겨감에 따라, 〈빅걸〉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과는 다른 형태의 결과물이 되었을 것 같은데요. 어떤 순간에 두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해야겠다고 결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피의 연대기〉와 같은 포맷으로 〈빅걸〉을 출발했던 건 맞아요. 섭식장애도 생리와 같이 오해받고 있는 여성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피의 연대기〉처럼 여성들의 목소리나, 섭식장애의 역사, 전문가 인터뷰를 넣어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섭식장애를 겪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니 〈빅걸〉이라는 영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얼마 전에 섭식장애 경험자 분들과 〈두 사람을 위한 식탁〉 GV를 가졌어요. 그분들에게 섭식장애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이전에 생각했던 포맷으로 섭식장애 이야기를 내보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상옥 선생님과 채영 씨를 만났던 순간, 이 두 사람을 찍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자연 다큐멘터리들에서 어떤 순간들을 기다리는 것처럼 두 분을 만난 순간, 이들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고, 삶에 들어가 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완성된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이 섭식장애에 관한 다큐멘터리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거칠게 말하면 그건 채영이라는 주인공의 일부일 뿐이고, 제가 정말 들여다보고 싶었던 것은 관계였어요. 그런데 상옥 선생님의 어머니, 채영 씨의 할머니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는 이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여성의 역사와 계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여성의 몸에 담긴 상흔의 계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편집 과정에서 지금의 이야기 형태를 만들었습니다.

 

 

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 스틸컷

 

 

관계에 대한 영화라는 말씀에 공감했습니다.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삶이 설명되었으면 좋겠다는 욕구가 모두에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하지만 어떤 정체성이나 질병을 앓고 있는 이들은 자신에 대해 말하기 이전에, 쉽게 오해와 편견에 의해 판단 당하곤 하는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은 인물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직접 꺼낼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연출자이자 이들과 관계 맺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 걸까’에 대해 고민하셨을 것 같아요.

 

영화가 두고 있는 인물에 대한 거리감이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의 큰 미덕이라고 많이들 칭찬해 주셨는데요. 사실 그런 걸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피의 연대기〉 또한 다양한 분들이 나오지만 한두번 만나 촬영한 장면들로 다양한 목소리를 꾸려본 것에 불과했고, 이렇게 타인을 찍는 다큐멘터리는 처음이었기에 매번 거리감에 대해 답변하는 일이 어려워요. 촬영 감독님과 거리감에 대해 대화를 나눴었는데, “그거 돈이 없어서 렌즈 다섯 개 못 빌리고, 세 개만 빌려서 생긴거다. 한정된 렌즈로 찍을 수밖에 없어 거리감이 유지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눴거든요. 저는 강렬한 대화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고, 이들의 이야기가 드러나는 데에 몰입을 깨고 싶지 않았어요. 유일하게 제 목소리가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채영 씨의 인터뷰 내용이 너무 좋아서 제 목소리가 나오는 장면을 뺄 수 없었어요.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르포르타주의 대상이 아니고, 한 이야기의 주인공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남의 인생에 대해 90분 구성안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어요. 이 사람들의 삶을 당연하게도 오롯이 담을 수 없기에, 허구적 인물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저는 제가 이해하는 것만 말할 수 있고, 이들의 삶을 전부 설명하려 하기보단, 제가 해석한 모습만을 보여주는 것이 맞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카메라 외부에서는 이들과 엄청나게 많은 관계와 역동들이 있었지만, 촬영과 편집 과정에서는 이들에게 개입하지 않으려 했어요.

 

 

인물을 담는 거리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하셨는지, 혹은 하지 않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감독님께서 나란히 서 있는 사람으로 대화의 자리들에 계셔준다는 인상을 받아 영화가 무척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처음으로 편집된 영화를 보고 이야기의 핵심이 보이지 않는다는 피드백을 받으셨다고, 그리고 상옥 님께서도 처음 영화를 보셨을 때 “이게 어떤 영화인지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쩌면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이 섭식장애나 인물들의 역사에 대해 대신 설명해 주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롯되는 것 같기도 한데요. 어떤 영화들은 더 많은 이들의 빠르고 쉬운 이해를 위해 질병 때문에 아파하는 모습을 담기도 하고, 인물들의 관계를 요약하기도 하는데요. 그런 방식이 어떤 경우에는 효과적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장면을 선택하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이야기와 사람들만을 담겠다고 선택하신 것 같습니다. 관객이 이 영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지켜봐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섭식장애에 대한 오해를 풀겠다는 생각으로, 섭식장애에 대해 길게 설명하는 채영 씨와 상옥 선생님의 모습을 담은 편집본을 만들었어요. 그다음으로는 이념이 무너진 상태로, 방향을 잃은 채, 한 아이를 키워야 했던 싱글맘이라는 상옥 선생님의 이야기가 둘 사이 관계의 큰 역동이라고 생각해서 그것을 오랫동안 보여주는 편집본을 만들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러고 보니 모든 것이 영화적이지 않다고 느껴졌어요. 〈피의 연대기〉를 만들 때는 영화의 장르와 문법을 따르되 캠페인적인 목표를 전달하겠다는 마음이 더 강했어요. 최대한 많은 사람이 편안하게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목표가 있었거든요. 반면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은 모든 내용을 설명하려니 말이 안되고, 또 그걸 다 삭제하고 나니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게 무슨 내용이야”라고 할만한 영화가 된 거죠. 들어줄 만한 마음이 있는 사람들을 타겟으로 하자고 생각했어요. 편집 감독님과 “영화 보기 전에 시험지를 나눠줘서 다 푸는 사람만 영화 보게 하자”고 농담을 나누기도 했는데요. 정말 농담이고, 저희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영화를 보기 쉽게 하려면 내레이션을 쓰거나, 전문가가 난입해 이야기를 전하게 할 수도 있는데요. 그러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영화는 제가 입장을 정확히 정하지 못하면 전부 들통나는 매체 같아요. 스크린에 너무 크게 다 나오니까요. 정직하거나 최선을 다하는 방식이 아니라면 전부 들통나버리니, 차라리 부족해도 말할 수 없는 건 하지 말자고 결정했어요. 그래서 어찌 보면 애매모호한 영화가 나왔죠. 상옥 선생님도 영화에 답이 있을 줄 알았는데, 답이 없으니까 그렇게 느끼셨던 것 같아요.

 

 

애매모호’라고 표현하셨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입장을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관객에게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가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도 영화가 어떤 위치에서 인물들에게 서 있는지가 설득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의 오프닝을 무엇으로 할지 오래 고민하셨을 것 같아요. 도킹 매거진에 쓰신 글을 보면, 지금의 오프닝 장면이 정해지기까지 오랜 기간을 거쳐 오신 것 같습니다. 그때의 고민에 대해 조금 더 여쭤보고 싶어요.

 

영화가 화두를 던지고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의 오프닝 장면에서, 상담사분이 “뭐가 두려우세요”라고 묻는 것은 좋은 화두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장면이 찍힌 것은 시점적으로는 촬영 시작으로부터 훨씬 뒤라서 타임라인이 꼬일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식당에서 일한 것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도 고민이었고요. 수백 번 오프닝을 가다듬으며 저희가 내린 결론은, ‘이 영화는 타임라인으로 정리되는 영화가 아니다. 그래서 이대로 하자’였어요. 장면을 좋아해 주시는 분도 계시고, 찰떡같이 의미로 읽어주시는 평론가분도 계셨고요. 이 장면이 오프닝인 것이 정말 이해가 안 된다고 대놓고 말씀하신 영화제 심사위원 분도 계셨어요.

 

 

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 스틸컷

 

 

상옥 님께서 호프집에서 타로점을 보는 장면에 대해 질문하고 싶습니다. 관계와 심리에 대한 많은 정보를 관객에게 알려주는데, 그 장면이 어떻게 찍혔을지 궁금했었거든요.

 

그 장면 처음 보셨을 때 어떠셨어요? 어떤 분들은 저에게 타로 장면에 대본이 있었냐고 여쭤보시기도 하더라고요. 너무 영화에 필요한 내용이 다 담겨있다며 궁금해하시더라고요.

 

저는 그 장면이 연출인지 아닌지가 궁금하기보다는, 상옥 님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었던 것들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색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영화에 나오신 분은 오랫동안 채영 씨를 알아 왔고, 상옥 선생님과 무척 친한 동료 교사분이셨어요. 오랫동안 타로를 공부하셔서 타로 마스터가 되신 분이셨고요. 채영 씨도 그분에게 자주 타로를 보기도 했다고 해요. 촬영된 날은 채영 씨가 호주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이었고, 채영 씨를 인천공항에서 픽업해서 무주로 돌아온 날이었어요. 그런데 그날 채영 씨가 촬영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상옥 선생님을 대신 찍으려고 했어요. 다른 교사분들이랑 술을 마시러 간다고 하시더라고요. 따라 나갔죠. 술집 사장님한테 “죄송한데 촬영 좀 하고 싶다고” 말하고는 10만 원을 드리고 촬영을 시작했죠. 당시에는 술집이 너무 좁아서 어떤 내용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저는 몰랐어요. 나중에 편집실에서 보니까, 지금과 같은 내용이더라고요. 처음에는 영화에 넣지 않으려고 했어요. 짜고 치는 이야기처럼 아귀가 너무 잘 들어맞더라고요. 그런데 이 장면이 영화에 모자란 정보들을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최종적으로 다시 넣게 되었습니다.

 

 

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 스틸컷

 

 

가끔씩 등장하는 채영 님의 내레이션에 대해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채영 님께서 원래 쓰시던 글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내레이션에 들어갈 내용을 따로 요청하셨는지 궁금해요.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은 제 영화이긴 하지만 채영 씨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채영 씨가 해석한 자기 삶에 대한 목소리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미 지나간 일들을 묘사하고 서술하는 내레이션을 쓰고 싶지는 않았고, 마음의 함축적인 묘사가 담긴 내레이션을 쓰고 싶었어요. 그게 딱 채영 씨의 일기였어요. 그래서 채영 씨의 일기에 담겨있던 내용들로 내레이션을 구성했습니다. 채영 씨가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첫 순간 중에 하나가 일기를 본 순간이었거든요. “나는 입이 없어. 나는 항문도 없어. 나는 살아있어?”라는 문장을 보고 정말 고통을 겪고 고민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문장들을 채영 씨의 목소리로 녹음해 내레이션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영화 속에 두 주인공을 담은 과거 방송 장면들이 나옵니다. 존재를 언제 알게 되셨고, 그걸 보며 어떤 기분을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려면, 중간중간 영화제나 영상위원회에 가서 펀딩을 받아야해요. 그런 자리에 갈 때마다 난감했던 질문이 “옛날에 있었던 일을 어떻게 보여줄 거냐” 였어요. 촬영 시작 후 1년 정도까지는 방송들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가, 채영 씨가 PD수첩에 나왔다는 것을 대화 중에 알게 되었고, 대안학교 방송은 상옥 선생님이 “어린 채영이 너무 예쁘지 않냐”며 직접 보여주셨어요. 너무 깜짝 놀랐어요. 창작자 입장에서는 금광을 발견한 것 같았죠. 처음엔 그렇게 쉽게 생각했는데, 영상들을 편집실에서 보면 볼수록 어린 채영이 가졌던 황망함과 고립감을 느낄 수 있었어요. 상옥 선생님의 외로움 또한 느낄 수 있었고요. 상옥 선생님이 농성하시는 장면을 제일 마지막에 찾았는데, 선생님께서도 직접 뉴스 장면을 본 적은 없고 소문으로만 들으셨대요. 이 사람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사진 말고 뭔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영상을 찾을 수 있어 기뻤죠. 어떤 인터뷰에서, 이런 영상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시작했냐고 여쭤보시더라고요. 몰랐죠. 1년 지점 정도에 알게 되었습니다.

 

 

 

 

영화의 제목은 어떻게 결정된 것인가요.

 

고민이 길었습니다. 처음에는 멋있는 제목으로 하고 싶었어요. 채영 씨가 있던 호주의 해변 능선이 예쁘거든요. 또 상옥 선생님이 있는 무주는 산 능선이 이쁘고요. ‘두 사람 사이의 능선을 표현해보면 어떨까’, ‘긴장된 능선이라고 하면 어떨까’ 생각해서 ‘Nervous Curves’라고 영어 제목을 지었어요. 그러다 PD님이 자기 친구에게 제목을 보여주니 4대강 다큐멘터리냐고 물어봤다는 거예요. 너무 말이 되잖아요. 그 뒤로 제목에 핵심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겉멋만 있다고 느껴져서 새로운 제목을 고민했습니다. 어느 날 상옥 선생님께 채영 씨와 밥 한 끼 마음 편하게 드실 수 있겠냐고 여쭤봤어요. 선생님을 호주로 데려가서 두 명이 밥을 먹게 할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못하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때 처음으로 두 사람 사이의 골이 얼마나 첨예하고 깊은지 생각하게 됐어요. 저희가 항상 만나면 이야기하던 자리가 식탁이거든요. 선생님이 무주의 집을 지으실 때부터 “여자들은 항상 식탁에서 대화한다”고 공간을 예쁘게 꾸미셨대요. 그래서 식탁이라는 이미지가 저에게 중요했고, 모두에게 식탁을 나눌 누군가의 존재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했기에 〈두 사람을 위한 식탁〉으로 제목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인터뷰를 통해 차기작 구상을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만성 질환을 앓고 있는 두 사람이 만나 함께 한의원에 가는 극영화, 그리고 산후 우울증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계신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이야기들에 관심을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차기작들에 대한 조금의 설명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제가 자질구레한 만성 질환이 많아요. 그래서 몸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피의 연대기〉와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을 지나며 몸과 마음의 상호작용이라는 주제에 더욱 빠져들게 되었어요. 그러던 중 아기를 낳고 산후우울증을 앓으며 정신질환의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좀 지친 것 같아요. 무거운 이야기를, 깊은 이야기를 한동안 다루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은 소동극에 관심을 돌려봤습니다. 만성 질환을 가진 30대 남녀가 한의원에서 만나 벌어지는 일들로 장편 시나리오를 썼는데… 어쨌든 영화는 제작비가 있어야 만들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프로듀서님과 계속 프로젝트를 발전시켜 보고 있습니다. 산후우울증 다큐멘터리에는 여전히 관심이 있어요. 그런데 지금 출산율이 이렇게 낮은데 일반인들은 거의 관심이 없을 것 같고요…. 아이를 낳았던 분들, 산후우울증을 겪었던 분들은 너무 힘든 기억이 떠올라 안 볼 것 같고요…. 아무도 영화를 안 볼 것 같고, 저 또한 그때를 떠올리자니 싫은 기분이라서요. 조금 주춤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관심을 가지게 된 주제가 있어요. 우연히 어린 시절 사고로 한 쪽 팔이 절단되어 전자의수를 착용한 20대 중반의 여자분의 영상을 보게 되었어요. 캠핑가서 라면 끓이기, 운동하기, 빼빼로 먹기 같은 소소한 일상을 나누시는 모습을 봤는데, 영상을 보며 신체의 자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이 어떻게 마음에 지나가고 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시작할 때의 질문으로 답이 된 것 같기도 하네요. ‘이미 지나갔다’!

 

네. 왜냐하면 채영 씨는 영화와 책을 시작으로 섭식장애에 대해 목소리를 더욱 크게 내실 거예요. 저의 역할은 여기까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물건도 잘 버리는 성격이고요. 〈피의 연대기〉도 언급은 하지만 거의 잊고 살거든요. ‘이제는 다음으로 넘어가야 하는 시점이구나’, ‘마음의 열정에는 유효기간이 있구나’ 생각해요. 그런데 창작자의 역할로 그렇다는 거죠. 채영 씨나 상옥 선생님에 대한 생각, 그리고 섭식장애 문제에 대한 관심은 여전합니다. 이 영화에 대해 제가 할 일은 다 했다는 심정입니다.

 

 

극장을 앞으로 찾아주실 관객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남의 인생을 바라보며 ‘쟤는 저래서 저런 병에 걸렸을 거야’라고 판단하곤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모두의 인생은 쉽지 않고, 그렇게 판단하기엔 너무 많은 맥락이 존재한다는 것. 그 정도의 주제를 영화에 담고 싶었습니다. 우리 자신의 삶도 마찬가지 잖아요. ‘원래 사는 게 쉽지 않지’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곤 하더라고요. 제가 주인공 두 분에게 그런 점을 배웠기 때문에, 관객분들도 그 정도의 마음을 가져가 주시면 좋겠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