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김장하〉 리뷰: 어른의 조건
* 관객기자단 [인디즈] 임다연 님의 글입니다.
어른이라는 말에는 무게가 있다. 성인은 때가 되면 자연스레 획득하게 되는 무엇이지만, 어른이라는 단어가 주는 인상은 그렇지 않다.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품성이 올곧아야 하고, 자신의 삶과 언행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하며 수없이 무거운 일들을 할 수 있어야만 할 것 같다. 고작 주민등록증을 받았고, 나이 제한 없이 영화를 볼 수 있는 정도로는 어려운 일인 것이다. 그렇기에 살면서 어른을 만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약방을 운영하는 평범한 할아버지 같은 김장하 선생에게는 그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평생에 걸쳐 그의 입을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하기를 거절해 온 그의 삶은 이러한 사람들로 인해 입증된다. 그는 50여년을 오로지 한약방만을 운영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돕고, 구원했다. 명일고등학교 설립 후 국가에 기증을 하기도 하고, 신분 차별 철폐를 위해 형평운동에 힘을 보태기도 하고, 여성평등기금을 조성하고 가정폭력 피해 여성 보호시설을 건립하는 등 그의 손길은 인권, 교육권, 언론 등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어른 김장하〉는 지역 언론인 김주완 기자를 따라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려운 김장하 선생의 선행을 찬찬히 되짚어 나간다. 이 여정의 재미있는 점은 정작 김장하 선생 본인은 말 한 마디 없는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마치 말 하기를 기다려 온 것처럼 줄줄이 나서서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길 가던 동네 할머니조차도 ‘김장하’라는 이름 석자를 듣자마자 칭찬 일색에 취재에 기꺼이 도움을 건넨다. 이 영화의 존재는 마치 김장하 선생이 살면서 뿌려온 씨앗이 발아하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그가 묵묵히 건넨 도움들이 모여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엮어낸 것이다.
수많은 씨앗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영화의 증인 중 거의 유일하게 금전적 지원을 받지 못한 사람이다. 그는 요리사로 식당을 열면서 김장하 선생께 도움을 요청하러 갔지만, 상황이 좋지 않아 어렵다는 대답과 함께 용기를 내라는 이야기를 듣고 돌아왔다. 그럼에도 그는 가장 큰 힘인 다시 일어날 힘을 얻었다 이야기하며 가장 좋은 것을 받았다고 답한다. 앞에 앉은 사람의 이야기를 묵묵히 잘 듣고 필요한 이야기를 잘 해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선생의 ‘어른’스러운 면모는 ‘심지어?’라는 생각이 자연히 들 수 밖에 없는 이 때에 가장 크게 와 닿는다.
지금에도 여전히 필요한 일들을 평생 동안 묵묵하고 꾸준히 지켜왔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짐작조차 어렵다. 그럼에도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는 질문에 더 공부하고, 앞으로도 해왔던 일을 꾸준히 해나가겠다는 선생의 대답에는 좌절하지 않는 희망이 보인다. ‘어른’이라는 것이 어쩌면 별 다를 게 아니라 묵묵하고 꾸준하게 사부작 사부작, 꼼지락 꼼지락 나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그를 보며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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