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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인디토크 기록: 머물고 간 시간

by indiespace_가람 2023. 11. 23.

머물고 간 시간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3. 11. 11(토) 오후 1시 상영 후

참석 장건재 감독, 김주령, 문호진 배우

진행 박꽃 기자

 

*관객기자단 [인디즈] 임다연 님의 기록입니다.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0년 전의 주희가 돌아와 잠시 머물고 홀연히 떠난다. 닥쳐오는 죽음에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온전히 자신으로서의 하루를 보내는 주희의 모습에 오히려 그를 지켜보는 관객이 위로 받는다. 마찬가지로 10년이 흐른 시간 동안 담담히 자리를 지켜온 영화의 주인공들이 머물고 간 시간을 짚어 보았다.

 

 

영화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스틸컷

 

 

박꽃 기자(이하 박꽃): 감독님부터 간단하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장건재 감독(이하 장건재):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를 연출한 장건재라고 합니다. 토요일 주말 낮에 다른 데 안 가시고 극장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주령 배우(이하 김주령): 안녕하세요. 저는 주희 역의 배우 김주령입니다. 오다 보니까 사람이 되게 많더라고요. 다른 곳 안 가시고 저희 영화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문호진 배우(이하 문호진): 귀한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주희 남편 호진 역의 문호진입니다.

 

박꽃: 먼저 이 작품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여쭙고 싶어요. 그래야 관객 분들도 영화에 대해 수월하게 이해를 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건재: 2020년도 1월에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오랜 기간 동안 준비했던 작업이 무기한 연기되는 일이 있었어요. 와중에 〈잠 못드는 밤〉으로 만난 김주령 배우님과 간혹 집에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료 사이로 지냈었는데요, 이야기를 나누다가 무언가 같이 해봤으면 좋겠다고 말을 꺼냈어요. 당시에 김주령 배우님도 ‘오징어 게임’ 작업을 앞두고 계셨고, 저도 준비하고 있는 게 있다보니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의 완전한 청사진을 공유한 건 아니었고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각자 시간을 내어 조금씩 만들 수 있는 작업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시작을 하게 되었어요. 그게 2020년 9월이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기도 하고, 한 달에 한 번 만나기도 하면서 촬영을 했어요. 코로나 때문에 제가 근무하는 학교도 비어 있어서 제 연구실을 사용해서 촬영을 했고요. 그리고 당시 방역 문제 때문에 연극 무대가 다 닫히면서 돈을 벌 수 없는 배우들을 위한 국가 지원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그 때 문호준 배우님과 안민영 배우님이 프로그램에 신청하시면서 제 이름을 강사로 올렸으니 단편 영화 제작 워크샵을 해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미팅을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교육보다는 단편 영화를 찍는 실습 쪽으로 하게 되었어요. 제가 걸맞는 대본을 하나 써올 테니 같이 카메라 보조도 하고, 조명기도 들고, 번갈아가면서 연기도 직접 해보기로 했어요. 이렇게 하다보니까 같은 시간대의 남편 이야기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두 작업을 병렬로 진행하게 되었고요. 처음부터 두 공간을 합칠 생각은 없었어요. 두 작업을 진행하다가 겹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배우 분들께 전달하게 되었어요.

 

문호진: 나도 모르는 나의 부인 이야기가 어디선가 진행이 되고 있었더라고요. (웃음)

 

장건재: 김주령 배우님도 마찬가지였고요. (웃음) 그래서 작년 봄까지 그렇게 촬영을 했어요. 러닝타임이 76분 정도로 짧은데 촬영은 상당히 오랜 기간 했습니다. 띄엄띄엄 시간이 맞으면 하는 방식으로 진행했거든요. 주희가 죽은 뒤에 추모식 장면은 촬영이 다 끝나고 나중에 떠올린 장면이라 몇 개월 뒤에 찍은 장면이에요. 병원 촬영도 나중에 생각한 장면인데, 코로나 기간이었던지라 엄두도 못 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아는 교수님께서 도움을 주셔서 병원에서 촬영을 할 수 있었고, 그 장면이 영화의 오프닝이자 마지막 촬영날이 되었어요. 뒤죽박죽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을 찍고, 또 찍으면서 촬영을 마치고 편집을 한 뒤에 부산에서 프리미어를 할 수 있었습니다.

 

박꽃: 설명을 들으시는 동안 두 배우님들의 얼굴에 지난 기억이 스쳐 지나가는 듯한 표정이 떠오른 것 같은데, 두 분께도 여쭤보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이 작품을 시작할 때에 무엇을 하고 어떤 기분으로 지내시다가 작품을 수락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김주령: 저는 2020년 초에 ‘오징어 게임’ 대본을 받고, 2020년 6월에 촬영에 들어갔어요. 그 즈음부터 감독님과 이야기하면서 40대의 주희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런데 지금 하는 작품이 있으니까 끝나고 촬영에 들어가도 되니 너무 부담 갖지는 말아라, 하는 대화를 나눴던 걸로 기억해요. 그래서 제 기억에는 11월 초 정도에 감독님께서 시나리오를 건네주시고, 이야기에 대해 설명해주셨어요. 10년 전 감독님과 함께 했던 〈잠 못 드는 밤〉이 워낙 좋았고, 즐거웠기 때문에 수락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어요. 저에게 아주 멋있는 영화를 만들어주실거라는 믿음이 강하게 있었기 때문에 틈틈이 시나리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오징어 게임’ 촬영이 끝나자마자 시작했어요.

처음에 받은 시나리오에는 주희 이야기만 있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남편이 생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촬영을 하면서 조금씩 보여주셨던 것 같아요. 그러면 이야기가 훨씬 더 풍성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신기한 게 남편 역의 문호진 배우를 부산영화제에서 처음 만났거든요.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주희와 호진이 어떤 결혼 생활을 했을지 너무 상상이 되는거예요. 그래서 감독님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호진: 장건재 감독님은 2022년에 이 영화를 만들면서 처음 뵙게 되었어요. 함께 영화에 나온 안민영 배우님과 함께 살고 있는데, 저희는 연극 무대를 주로 하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고 둘 다 백수가 되어버려서 쉬고만 있었거든요. 그러다 한 감독님의 추천으로 영화진흥위원회의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되었고, 시간을 썩힐 바에는 뭐라도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장건재 감독님은 안민영 배우님의 강력한 추천으로 모셔오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처음 영화를 시작한 목적은 완성된 작품은 아니었어요. 단편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장건재 감독님을 통해 배우들에게 배우고 생각할 지점을 주자는 취지로 만들었는데, 결국 완성된 영화도 보고 부산국제영화제도 가서 기쁨이 두 배였습니다.

 

김주령: 이런 방식으로 영화를 만든다는 생각을 하기가 어렵잖아요. 어떻게 보면 장건재 감독님이 한 본보기를 만드신 것 같아요. 앞으로 더 많은 감독님들이 이런 시도를 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건재: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많은 감독들이 여러 돌파구를 찾고 있어요. 감독들이 생각하는 영화 작업이라는 게 대본을 쓰고, 캐스팅을 하고, 투자를 받는 펀드레이징을 해야 되는 건데 그러지 못하는 영화도 되게 많거든요. 책상 서랍에 들어가는 대본들이 많아서 감독님들이 어떤 식으로든 작업을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세요. 저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인데, 두 분께서 이런 방식의 작업의 방향성이나 방식에 동의를 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일을 하면서 촬영을 하게 되면, 어떻게 보면 촬영이 취미 생활이 되는거잖아요. 그런데 본업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심각해질 수 있거든요. 우리가 풀타임으로 일해서 영화를 만들었는데 관객이 예상만큼 안 차면 다음 작업에 대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어요. 그런데 이번 영화는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완성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연출자로서는 또 다른 생각을 했었는데요. 그냥 만들어서 우리끼리 보고 끝내도 저한테는 충분히 의미 있겠지만, 관객한테 가는 것까지가 완성이라고 생각해서 그 과정도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같이 작업한 문호진 배우님도 연극은 많이 하셨지만 영화 경험은 많지 않으셔서 관객을 만나는 작업을 했을 때 느껴지는 어떤 게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많이 표현하지는 않았는데 내심 이 이야기를 귀하게 잘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든지 완성도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서 관객 분들을 만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박꽃: 장건재 감독님은 독립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팬이 많은 감독님 중에 한 분이신데요. 오늘 오신 분들 중에는 〈잠 못 드는 밤〉을 보고 오신 분들이 분명히 계시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 작품 속의 30대 주희가 이제 40대가 되었는데, 그 때의 사랑 넘치고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고민이 있지만서도 행복하던 주희가 40대에는 쓸쓸하고 어려운 시간을 겪는 여인이 된 것을 볼 수 있어요. 감독님께 여쭤보고 싶은 점은 40대 주희를 왜 아픔을 겪게 되는 캐릭터를 그리신 이유입니다. 40대는 생애 주기로 봤을 때 왕성하게 일을 하고 사회적으로도 활발한 시기잖아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그런 시선을 녹여내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또한 40대의 주희가 죽었기 때문에 50대의 주희는 만날 수 없는건지도 여쭤보고 싶었어요.

 

장건재: 〈잠 못드는 밤〉도 제가 살고 있는 집에서 촬영을 했었어요. 그렇다보니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를 보신 분들께서 종종 부부 생활은 괜찮은지에 대한 질문을 하세요. 제가 아무래도 자기 창조적인 작업을 하다 보니까 당연하게 궁금해하실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물론 연출가이자 학교 선생님이기도 하고, 주령 배우님 남편 분도 연극 연출가이자 학교 선생님이세요. 그렇다 보니까 여기 등장하는 인물이 누구라기보다는 저희들이 평소에 이야기하고 제가 영향을 받은 것들이 그대로 녹여 내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주령 배우님과 저 모두 딸이 있고요, 극 중 윤서진 양이 저희 딸과 나이가 같아요. 극 중 주희 딸 이름이 하영인데, 주령 배우님 딸 이름도 하영이거든요. 그래서 하영은 제 딸 같기도 하고, 주령 배우님 딸 같기도 하고, 주희 딸 같기도 해요.

주령 배우님께서 주희가 죽는다는 이야기를 드렸을 때 엄청 섭섭해하셨어요. 또 찍어야 되는데 못 찍으니까요. 그런데 〈잠 못 드는 밤〉의 주희와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의 주희도 조금 다른 인물이에요. 주령 배우님과 저의 삶이 반영된 인물이긴 하지만 또 다른 인물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다른 인물로 부활시킬 수 있어요. 그러니까 저희가 또 잘 살아낸다면 다시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주령 배우님께서는 올 초에 미국 기획사와 계약을 했기 때문에 조만간 헐리우드에 진출하시거든요. 미국 배우조합 파업이 끝났기 때문에 곧 대본을 받으실겁니다. (웃음) 요즘 헐리우드 중견 배우들이 작품권을 사서 감독을 고용해서 만든 영화가 많잖아요. 그래서 저를 고용할테니 준비를 잘 해놓으라고 이야기하셔서. (웃음) 50대는 미국 어디선가 작업을 하면 너무 좋지 않을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영화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스틸컷

 

 

관객: 제목에서 야네스 바르다 감독의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바르다 감독의 작품은 주인공 시점으로 진행되는 반면, 감독님의 영화는 주인공의 불안이나 사랑, 불화가 간접적으로 제시된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시나리오를 구상하게 된 이유에 대해 들어보고 싶습니다. 또한 주희가 학생들한테 하는 말 중에 ‘우리는 계속 불안이나 그런 감정에 대해서 생각해야 돼.’라는 말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신 말인지 궁금합니다.

 

장건재: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는 이 영화로 들어가는 관문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마케팅용으로 감히 오마주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고, 저도 종종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영화 중간에 비슷한 세팅이 있는데, 첫 장면은 오마주를 의도하고 찍기는 했어요. 바르다 감독님의 영화는 미래를 예견하는 타로점으로 시작하는데, 저희 영화의 첫 장면에 나오는 엑스레이는 예견이라기보다는 과학의 결과물이잖아요. 의사가 이야기하는 건 과학을 근거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훨씬 근본적인 이야기이고, 그 지점이 이 영화로 들어가는 입구이자 차이점이라고 생각했어요. 전개는 좀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클레오는 젊고 아름다운, 건강한 신체의 여성이었고, 주희는 말하자면 그런 아름다운 시기는 지나고 다른 주기로 들어가는 여성이잖아요. 몇 년 뒤에 월경이 끝날 수도 있고, 많은 것이 변화하면서 어떤 결심을 세울 수 있는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남편과의 이별이라든가 직장에서의 문제들이 어떻게 보면 큰 결심인데 누구에게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 않고 본인이 뚝심 있게 해내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것을 보여주거나 과시하지는 않지만 주도적인 부분들이 클레오와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영화가 간단하면서도 깊게 보고자 하는 관객들에게는 깊이까지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영화 속의 연극이라든가, 연극 속에서 두 인물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느낌이라든가, 추모식에 나온 연극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식으로 여러 겹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학교 장면은 실제로 제가 이 영화를 만들면서 만나고 싶었던 졸업생들을 초대했어요. 지우씨 같은 경우는 학교 다닐 때 눈에 띄는 고학번 학생이었거든요. 이 친구가 주희한테 건넸던 그림을 저한테 준 적이 있어요. 수업 끝나는 날 저한테 그림을 코팅해서 주더라고요. 졸업하고 나서 궁금해서 연락을 한 번 했었어요. 그런데 영화에서처럼 아동 연극을 하고 있고, 주말에 일을 하면서 대학로 근처에 살고 있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같이 밥을 먹고 헤어졌는데, 잔상이 깊게 남아 있었어요. 한참 있다가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지우씨를 모델로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대본을 보낼 테니 직접 연기를 해줄 수 있겠냐고 물어봤어요. 그리고 김주령 배우 사진을 보면서 그 때처럼 그림을 그려줄 수 있겠냐고, 영화에 그 장면을 쓰고 싶다고 부탁했고요. 주령 배우님께는 상대 배우가 그림을 줄테니 그 전까진 보지 말고 촬영할 때 그림을 보라고 말씀드렸어요.

 

박꽃: 그럼 촬영할 때 그림을 아예 처음 보신거예요?

 

김주령: 처음 봤어요. 근데 말로 표현을 할 수가 없더라고요. 촬영이 시작되고 대사를 하다가 그림을 건네 받았는데 처음에는 말을 못 이었어요. 제가 감격하는 장면을 결국 못 썼어요.

 

장건재: 주령 배우님이 너무 감격하셔가지고. 주희는 그런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렇게 막 들쭉날쭉한 사람이 아니에요. 성적을 고쳐 달라고 이야기해도 마음이 고요한 인물이거든요. 내면은 힘들지 모르겠지만 차분한 인물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윤정 역은 제 연구실에 와서 몇 년 동안 계속 울고 나간 학생을 기반으로 만든 인물이에요. 와서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나가고, 어떤 날은 너무 많이 울기도 해서 누가 보면 제가 울려서 나가는 줄 알았을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오해할까봐 연구실 문을 열어놓은 적도 있어요. 그래서 한 때 제 연구실 별명이 통곡의 방이었거든요. 그랬는데 제가 우는 이유를 끝까지 안 물어봤어요. 졸업하고 한 번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사람이 너무 밝아져서 다른 사람이 되었더라고요. 그래서 안 물어봤어요. 지금 밝은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그리고 선생 일을 하다보면 학기 말마다 성적 고치는 일이 있어요. 관객 분들도 억울한 점수를 받아보신 기억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왠지 이야기하면 바꿔주실 것 같은 분들한테 부탁 드려본 적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에피소드도 하나 넣어보고 싶었어요.

 

관객: 주희가 학교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는데 감독님이나 배우 분들은 대학 생활을 하시면서 어떤 것을 배우고 무엇을 목표로 생활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문호진: 한 번 이런 생각은 해본 것 같아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대학교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 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고민하지도 않았고, 아침에 일어나서 할 일도 많고 저녁에 피곤해서 잠도 잘 자고. 밖에서 친구들이랑 술 먹을 시간도 공부할 시간도 없이 하루가 그냥 재미 있었거든요. 연극과에서 공부를 하면서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연극학을 공부하고 싶었어요. 그 때 현장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 독일로 유학을 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아쉬움은 항상 있습니다. 다시 돌아가면 연극은 안 하겠지만 공부를 하러 나가서 심도 있는 공부를 하고 싶어요. 공부에는 끝이 없더라고요.

 

장건재: 문호준 배우님은 부산에서 공부하셨고, 돌아가신 부산국제영화제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의 제자이시기도 하세요.

 

김주령: 저는 소위 말하는 정통 연극과 학생은 아니었고요, 원래는 역사교육과에 있다가 전과를 한 경우예요. 제가 저희 학교 연극영화과 1호 전과생이거든요. 그래서 제 스스로를 증명해냈어야 했어요. 늘 긴장하고 남들보다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자랑이지만 실제로 열심히 해서 장학금도 받으면서 학교를 다녔어요. 그래서 대학 시절을 떠올리면 항상 운동복을 입고 연습을 하던 제가 생각나요. 모든 연극과 학생들이 그래요. 실질적으로 방학이 없거든요. 저도 방학마다 있는 워크샵 공연에 모두 참석을 해서 스스로를 증명해내고, 전과자가 아니라는 것을 남들한테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그때는 희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열심히 해서 졸업하면 다 잘 될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막상 학교를 나와보니 현실은 제 마음처럼 되진 않더라고요. 아무튼 대학 생활은 나름 치열하게 보낸 기억이 있습니다.

 

장건재: 저는 영화과 학생이었어서 주구장창 찍고, 편집하고, 리뷰 받고의 연속이었어요. 10대와 20대 내내 영화에 대한 공부를 하고, 촬영에 대해 배우면서 지금까지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20살 이후의 삶은 거의 영화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 같아요.

 

 

영화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스틸컷

 

 

관객: 영화를 관람하면서 주희라는 인물을 둘러싼 불편함이 느껴졌습니다. 영화의 초반부터 여러 근거를 보여주면서 주희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 같은데, 주희는 자신의 삶을 놓지 않으려고 하고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 둘 사이에서의 장력이 묘한 불편함 혹은 긴장을 만들어낸다는 인상을 받았는데요. 감독님께서는 이 부분에 대해 의도하신 점이 있는지, 배우님께서는 연기를 하시면서 캐릭터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장건재: 보통 인물의 질병이나 죽음을 생각할 때 떠올릴 수 있는 비극이나 심판과는 다르게 그리는 게 일단의 목표였어요. 그리고 저에게 중요한 텍스트는 수잔 손택의 글이었어요. ‘은유로서의 질병.’ 검사 받기 전 날과 받은 날의 주희의 신체에는 변함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 날 이후로 생긴 불안은 어떻게 보면 덮여진 서사인데,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 인물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영화 후반부에 친구한테 멘토링을 해주는 장면에서 괴로움에 너무 휩싸이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는데요, 그게 제가 이 영화를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해요. 주변에도 그렇고 스스로에게도 그렇고 그 마음에 사로잡히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것. 영화에서는 두시간을 다루고 있지만, 그 작은 시간 동안은 주희가 단단하게 마음을 부여잡으려고 해요. 그런데 그것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저 그 마음의 순간을 엿보는 장면은 만들고 싶었는데, 고통을 이겨내려고 발버둥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렇다 보니까 이런 인물이 나오게 된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사람은 못 되는데 비극적인 상황을 마주했을 때 그 실체를 보려고 노력하는 인물을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김주령: 개인적으로 주희 같은 상황이었다면 저는 절대로 그러지 못했을거예요. 길거리를 울면서 돌아다니고, 앞으로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생각하면서 너무 괴로웠을 것 같아요. 그런데 아까도 이야기 했듯이, 그림을 보고 담담하게 반응하는 모습이 주희인거잖아요. 그런 점 때문에 연기를 하면서 감독님이 잡아주실 수 밖에 없었고, 저는 주변에 이런 어른이 있으면 참 좋겠다, 이런 어른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연기를 한 것 같아요.

 

장건재: 주령 배우님은 주희보다 온도가 높은 사람이에요.

 

김주령: 맞아요. 저는 뜨거운 사람이에요. 온도도 높고.

 

장건재: 〈잠 못 드는 밤〉 때도 그렇고 이번 영화도 그렇고, 종종 촬영하다가 컷을 하면 답답하다고, 이런 사람이 어디 있냐는 말을 많이 하셨어요. 제가 워낙에 주령씨의 우아한 모습을 영화에 담고 싶어 하니까 주령씨의 뜨거운 마음이 담기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주령씨의 이런 모습을 풀어내는 연기들이 있어요. ‘오징어 게임’이나 다른 드라마들에서 아주 고점의 에너지를 볼 수 있는데, 저는 좀 다른 부분을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보니까 종종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 무엇보다 주희가 가진 좋은 점이 자신의 두려움과 불안을 타인에게 전염시키지 않고, 오히려 다른 기운을 주려고 하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다 만들고 나서야 주희가 이런 인물이었구나, 내가 이런 인물을 그리고 싶었구나, 를 깨달은 점이 있습니다.

 

 

영화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스틸컷

 

 

박꽃: 벌써 마지막 인사를 할 시간인데요, 세 분께 조금씩 다른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문호진 배우님께서는 이번 영화로 가진 새로운 경험을 어떻게 느끼고 계신지 소감 한 말씀 하시면서 마지막 인사를 전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문호진: 저는 오랜 기간 연극 무대를 위주로 살아왔는데요, 배우로서 또 다른 장르를 개척한 느낌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장건재 감독님과 김주령 배우님과 함께 헐리우드에서 더 깊이, 행복하게 배우 생활을 정진해나가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박꽃: 김주령 배우님께서는 에이전시와 계약을 하셨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앞으로의 계획과 출연하고 싶은 작품을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주령: 제가 도전하고 싶은 마음과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계약을 한 건 맞고, 배우로서 큰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어로 연기하는 것도 어려운데 영어로 연기하는 건 사실 상상하기도 어려워요. ‘카지노’에서 조금 영어 연기를 해봤는데 많이 어렵더라고요. 두려움은 많지만 어쨌든 도전을 할거고요. 이제 배우 파업이 끝났으니 분명히 기회가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내년에는 반드시 헐리우드 작품을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지금 찍고 있는 드라마는 내년 상반기에 방송이 될거예요. 앞으로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할 것 같고,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50대, 60대, 70대의 주희를 만들 생각이에요. 감독님은 힘들다고 하셨지만, 제가 더 열심히 해서 영향력 있는 배우가 되어 프로듀서로 참여해서라도 실현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나이대의 주희가 만들어진다면 영화사에 의미 있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욕심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박꽃: 감독님께서는 〈한국이 싫어서〉라는 작품도 가지고 계시죠.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고, 저는 이미 봤는데 매우 괜찮은 작품입니다. 두 작품을 연달아 선보이게 되셨는데, 이 두 작품을 어떻게 봐주셨으면 좋겠는지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장건재: 〈한국이 싫어서〉라는 영화는 오랜 기간 동안 준비한 작업입니다. 내년 초에 관객 분들을 뵙게 될 것 같습니다. 11월 말에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최초의 기억〉이라는 새로운 장편을 하나 더 발표합니다. 이것 역시 워크샵을 통해 만든 영화인데요, 마무리 과정에 있습니다. 우선 영화제에서 소개하고 내년 극장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관심 가져주시면 부지런히 작업해서 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꽃: 네, 감사합니다. 앞으로 감독님과 두 배우님 더 관심 갖고 지켜봐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오늘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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