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리뷰: 완전한 7시를 향해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지윤 님의 글입니다.
5시부터 7시 사이. 해가 차츰 지고 캄캄해지면 비로소 완전한 저녁이라고 부르는 그 두 시간. 누군가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만을 기다리고, 누군가는 집에 돌아올 그 사람을 기다린다. 또 누군가는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누군가는 만남을 약속한 사람을 기다린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평일 7시 연극의 입장 대기 줄에 서 있다. 완전한 저녁, 완전한 7시를 향해 시계 위에 놓인 사람들. 영화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는 그 사람들을 시계 위에 올려두고, 우리는 그 시계 위 초침과 분침, 그리고 그 위를 걷는 인물들을 지켜보게 한다.
조직검사를 받고 돌아온 주희(김주령)는 자기만의 공간이면서 열려있는 공간이기도 한 교수실에 있다. 주희가 자기만의 공간으로 교수실 의자에 앉아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암의 가족력을 물을 때에는 걱정과 불안이 피상적으로 드러난다. 이윽고 그 걱정과 불안은 여러 인물이 그녀의 방을 찾아오며 숨어든다. 주희의 방을 찾아온 이들에게 주희는 교수로서 할 일을 다 한다. 연기에 대한 진로 문제로 주희를 찾아온 학생에게도, 성적 이의제기를 하러 와 핑계를 늘어놓는 학생에게도. 주희는 그저 교수로서 책임을 다하는 모습으로 그들에게 ‘길’을 알려준다, 그들과의 대화에서 정작 주희의 걱정과 불안은 쉽사리 보이지 않는다.
주희가 겨우 걱정과 불안을 드러내는 순간은 혼자만의 공간에서이다. 화장실 거울 앞에 홀로 서서 자가 진단을 해보는 주희의 얼굴에 잠시 당연한 걱정과 불안이 비치더니 또 금세 복도에서 동료 교수를 만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걱정과 불안의 얼굴을 뒤로한다. 그 교수와의 대화에서도 주희는 묵묵히 상대의 고민을 듣다, 또 묵묵히 진심 어린 조언을 하며 길을 알려주는 사람을 자처한다. 심지어는 단잠을 자던 자신을 깨워 길을 물어오는 배달원에게까지. 주희는 말로만 들어도 복잡한 길을 배달원에게 충분히 자세히 설명한다. 그렇게 순간순간 길을 알려주는 주희를 보며 우린 영화가 보여주지 않는 주희의 길이 더욱 궁금해진다. 다른 이에게는 아무리 어려워도, 아무리 복잡해도 길을 알려주는 주희의 모습에서 주희 자신의 길 위에는 점점 더 갈래가 많아지는 듯하다.
영화는 주희의 평행선을 둔 채 한 편엔 호진(문호진)의 평행선을 걸어둔다. 호진은 극단의 단장으로, 그가 쓴 극을 연습하는 배우들의 입을 빌려 자신을 발화시킨다. 그의 발화는 그의 기억 속 호진과 주희의 모습이다. 영화 내내 만나지 못하는 평행선에 위치한 두 사람이 유일하게 함께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건 호진 앞에 있는 연극 무대뿐이다. 그 무대 위에선 호진과 주희의 기억이 재현된다. 기억의 재현을 담은 공연의 시간이 다가오고, 평일 7시, 공연은 곧 시작된다. 그 시간, 호진은 교수실 의자에 앉아 잠들었던 주희의 모습처럼 대기실 옆 의자 위에서 눈을 감고 있다. 마지막까지 호진과 주희라는 평행선을 달리던 영화는 하나의 평행선이 사라져 결국, 남은 한 사람의 시간을 조명한다. 그마저도 호진의 시간이라서인지 두 사람의 기억을 또다시 연극적인 형태로 그려낸다. 두 사람이 각자의 평행선 위에 서 있기 전, 함께 하던 공간이었을지 모를 그 집에서 둘의 기억과 감정은 다른 이의 연기를 통해 들려온다. 영화 내내 다른 이의 발화로 주희와의 기억을 되짚어온 호진은 거실 소파 한 편에 우두커니 앉아있다가 공연장을 빠져나간 듯 보이지 않는다.
완전한 7시를 향해 살아가면서도 그 7시를 코앞에 두고 길을 헤매기도 하고, 먼 길을 둘러 가기도 한다. 그 시간 속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지나온 길을 알려주기도 하고, 앞으로의 길을 함께 고민하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홀로 남아 이 길의 끝을 알지 못해 서성이는 무수히 많은 평행선들. 그 평행선들과 함께하고 싶어 한 흔적이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에 물씬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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