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줍다〉리뷰: 기묘한 수취인 불명의 사랑
*관객기자단 [인디즈] 조영은 님의 글입니다.
사랑에는 수신인과 발신인이 있다. 한사람이 수신인이자 발신인이기도 하며, 두 사람이 서로에게 마음을 주고받는 긴 여정이다. 〈너를 줍다〉에서 지수의 사랑은 분석이다. 이미 지나가 버린 사랑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어도, 택배 상자에 담겨온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어 볼 수는 있다. 지수는 하얀색 종량제 봉투에 모아진 쓰레기를 다시 조각조각 펼친다. 뒤섞인 물건들을 정갈하게 들여다본다. 욕실 한편에 놓인 욕조의 용도는 그뿐이다. 타인의 쓰레기를 붓고 채집하기 위한 공간 그 이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렇게 눈에 들어온 정보를 화이트보드에 옮겨놓는다. 프로파일링하듯 분석한 타인의 일거수일투족은 지수에게는 일상이다.
타인의 계정을 염탐하는 일은 아주 작은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피드에 업로드된 사진보다도, 선택받지 못한 사진이 어쩌면 누군가를 잘 설명해 줄지도 모른다. 지수는 그래서 쓰레기를 줍는다. 그의 일상에 작은 균열을 가하듯 공간을 침투하는 것은 남들과는 조금 다른 쓰레기 때문이다. 옆집에 이사 온 우재는 함께 사는 물살이가 있다. 토굴에 틀어박혀 좀처럼 나오지 않는 성격을 가진 ‘안시롱핀’인데, 지수는 그의 쓰레기에서 아주 작은 사체를 발견한다. 다른 물건들과 뒤섞여 있었더라면 아마 미세해서 으스러졌거나,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모를 크기의 사체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몇 겹의 외피로 감싸져 있는 모습을 본 지수는 그에게 호기심이 생긴다.
지수는 같은 안시를 곁에 들이고, 그가 즐겨 마시는 티백을 사서 마시고, 그가 자주 가는 펍이나 영화관으로 향한다. 이런 사사로운 일상의 변화들이 서로의 마음을 흔들면서 두 사람은 점차 가까워진다. 그러나 우연을 가장한 계획된 만남이 오래 갈 리 없다. 일상에 서로가 파고든 자리에는 빈틈도 있기 마련이다. 지수의 공간은 버려진 쓰레기와도 같다. 아무도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지만 실은 진짜 모습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우리는 이것이 우재의 시선에서 비춰지지 않길 바라지만, 지수의 불안과 염려는 영화에서 서스펜스로 그려진다. 공간으로 침입해 마주한 장면들은 완전히 어긋나버린 균열처럼 돌이킬 수 없다.
지나간 사랑에 수신인과 발신인이 공존하기란 어렵다. 그러므로 〈너를 줍다〉는 꽤나 기묘한 수취인 불명의 사랑이다. 지수는 하루아침에 집을 비워버리고 발자취를 감춘다. 우재는 심란하다가도 자신이 본 지수를 믿어보기로 한다. 두 사람은 수족관 앞에서 조우한다. 더 이상 어떤 개입도 하지 않겠다는 듯 이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카메라가 두 사람이 서로에게 내딛는 발걸음을 보라고 하는 것 같다. 마치 심해 속에 있는 듯이 프레임을 가득 채운 질감이 이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어항 속 토굴로 숨어버리는 안시처럼, 마음 깊숙이 닿기 어려운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는 직접 물속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는 듯이 말이다. 〈너를 줍다〉는 어렵게 밖으로 나온 한 사람이 깊이 잠겨있도록 두지 않는다. 물 속 깊은 곳에서 재회한 두 사람의 모습이 잔상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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