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아래〉 리뷰: 느티나무 아래, 억세고 고요한.
*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이빈 님의 글입니다.
지키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 시기에 고집 세다는 말을 들었다. 고집 세다는 말을 자신만의 견고한 뜻이 있는 거라 받아들이려던 찰나 나를 굽힐 줄 모르는 사람으로 보고 있는 눈을 읽었다. 싫어하는 눈을 살금살금 피할 수밖에 없었던 때를 떠올리면 묻고 싶어진다. 너의 고민은 고민이 되고, 나의 고민은 고집이 되는 이유를. 〈느티나무 아래〉는 느티나무가 괴산 농부들의 매일매일을 느긋하게 관망하는 것처럼 시작된다. 봄이 되면 개나리가 고개를 내밀고 가을이 되면 단풍이 들기 시작한다. 트럭 짐칸에 앉아 소리 지르면서 이동하기도 하고 그네를 타면서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목가적인 전원 풍경이지만 이야기는 이 풍경에서 멈추지 않고 멈춰서도 안 된다. 토종 씨앗을 지키고자 하는 안상희 농부의 신념은 느티나무 아래에서 고민과 고집이라는 얇고 중요한 경계를 넘나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씨들은 둘이 함께 키우면 경쟁을 하느라 더 잘 크고, 바람을 타고 씨를 뿌리지 않으면 뭉쳐 버리고 만다. 씨를 심는 순간부터 다시 받는 순간까지 안상희 농부의 손을 타지 않은 과정이 드물 정도지만 이 모든 일을 홀로 해낼 수는 없다. 농사 일을 막 배우기 시작한 청년 농부, 괴산을 떠날 생각을 하고 있는 농부, 계속 함께하자고 선뜻 말할 수 없는 안상희 농부까지 이해 관계가 조금씩 다른 이들이 같은 땅을 일구고 있다. 이들의 서로 다름은 농업과 생계과 직결되는 상황에서 종종 각자의 고민으로 닿지 못하고 타협 불가능한 고집이 되고 있었다. 농부들 간에 소통이 잘 되지 않고 손발이 맞지 않으면 씨앗이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반복 작업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느티나무 아래에서의 풍경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한편, 소규모로 땅을 살리고 토종 씨앗을 지킨다는 안상희 농부의 사명감에 함께하면서도 들었던 의문은 무언가 지키는 일이 왜 오직 개인의 책임으로 돌아가야만 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감독은 사람 얼굴이 그러한 것처럼 씨앗의 얼굴도 모두 다르다고 말한다. 농부도, 씨앗도 다른 얼굴과 입장을 갖고 있지만 해내야 하는 것은 대량 생산이다. 안상희 농부의 토종 씨앗 지키기는 물론 한살림과 함께하고 있지만 소규모 생산 시스템은 여전히 존중받지 못하고 있고, 씨앗 생산 기관은 무너져 있다. 느티나무 아래서 씨앗과 농부들의 상황은 다르지 않다. 어느새 이곳은 각각의 생존과 책임이 충돌한 채로 살아 있는 터전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씨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단계, 씨 받기. 우엉은 가시가 있어 하나하나 손으로 작업해야 하고 고추는 물로 씻으면서 해야 한다. 밟아야 하는 작물, 털어야 하는 작물이 있다. 갑작스러운 봉합은 벌어진 틈을 강조할 뿐이다. 〈느티나무 아래〉는 떠나는 농부와 남아 있는 농부들을 강조하지 않고 그러한 사실이 있다는 것만을 그대로 둔 채 씨 받는 과정에 함께하도록 한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그 아래로 떨어지는 씨. 고요한 풍경 위로 그렇지 못한 고민들이 둥둥 떠다니지만 결실의 과정만큼은 마음을 흔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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