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존재했으면 좋겠어
〈버텨내고 존재하기〉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3. 11. 20(월)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권철 감독, 최고은, 황현우, 곽푸른하늘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윤정 님의 기록입니다.
유독 장난스러운 질문과 웃음이 많았던 날.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같은 영화와 음악을 공유하며 영화관을 나온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우리만의 비밀스러운 농담이 생긴 기분이었다. 광주극장에서 노래하는 뮤지션들의 모습과 인디스페이스에 있는 뮤지션들이 겹쳐 보일 때, 어렴풋이 이 공간도, 그리고 그 안의 우리도 오랫동안 버텨내고 존재할 수 있길. 마음 속으로 고요히 소원했던 하루의 기록.
최고은: 안녕하세요, 다 마이크가 나오고 있을까요? 소리가 나는 것은 존재한다는 뜻인데, 왼쪽부터 자신의 존재를 좀 알려보죠.
황현우: 황현우라고 합니다.
최고은: 저는 최고은 입니다. 안녕하세요.
곽푸른하늘: 안녕하세요, 저는 곽푸른하늘 입니다.
권철 감독(이하 권철): 안녕하세요, 이름만 소개하는 분위기네요, 저는 권철 입니다.
최고은: 오늘 영화 처음 보시는 분들 계세요? 생각보다 많으시네요.
황현우: 그게 정상 아닌가요?
곽푸른하늘: n차 관람 하실 수도 있잖아요.
최고은: 많이 보셨을 줄 알았어요. 이름만 말해도 될 줄 알았는데, 오늘 처음 보는 분들이 계시군요. 잘 보셨나요? 영화를 볼 때 시간이 되게 빨리 가잖아요, 64분 정도 되니까. ‘기승전결이 있는가’ 싶은 느낌 속에서 시간이 훌렁 지나가는데.. 저희가 어떻게 시작해보면 좋을까요 감독님?
권철: 저희가 오늘 진행자가 없어요. 저희 MBTI가 현우만 T고 나머지는 F여서 저희끼리 대화하다보면 자꾸 산으로 가거든요. 언제든지 질문 있으시면 편하게 질문을 주셔도 좋습니다. ‘버텨내고 존재하기’라는 주제와 제목을 최고은 님께서 정하셨어요. GV를 다니다보니 많은 분들께서 ‘버텨내고 존재하기가 무엇이냐’, 내지는 ‘너의 버텨내기는 무엇이냐, 가치는 무엇이냐’ 그런 어려운 질문들을 많이 해주셔서 제가 요즘 위로와 희망의 메신저가 돼야하나, 근심이 있어요. 오늘은 가볍게 영화 얘기부터 해볼까요? 영화 중간에 나오는 책 제목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입니다. 그 책을 정한 이유가 곽푸른하늘님 팬이라면 아시겠지만 곽푸른하늘님 노래 중에 ‘읽히지 않는 책’이라는 노래가 있어요. 거기서 영감을 얻어서 영화관 매표소에서 일하는 직원인 곽푸른하늘님이 책을 읽긴 하지만 책장을 넘기지 못하는 그런 도착 상태에 빠져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곽푸른하늘: 1, 2, 3편도 아니고 4편이니까요.
권철: 사실 저도 안 읽은 책이에요. 읽히지 않는 책을 떠올려 봤을 때, 학창시절에 잠깐 보았던 ‘장미의 이름’이라는 소설이 생각났어요. 중학교 때 읽으려고 하니까 도저히 못 읽겠더라고요. 그래서 ‘장미의 이름’을 준비해야겠다 했는데 책 표지가 별로 안 예쁘더라고요. 인터넷에 ‘읽기 어려운 책’이라고 검색해봤더니 많은 분들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추천해주시더라고요. 그 책이 7편 정도 있었는데 4편이 제일 예뻤어요. 그래서 곽푸른하늘 님께 선물로 드리게 되었습니다.
곽푸른하늘: 딱 중간이네요.
권철: 제가 알기론.. 옴니버스 식이어서 1편부터 읽을 필요는 아마 없는 걸로..
곽푸른하늘: 그때도 그렇게 말씀해주셨었어요. 근데 막상 선물로 받았지만 한 장도 못 읽고 보이는 곳에만 꽂아 놓은 상태에요. 꼭 읽어야지 하고 리마인드는 하고 있는데 아직 못 읽고 있어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최고은: 책도 그런데 영화도 그런 영화들 있지 않나요? 주변에서 “이 영화 꼭 봐야 돼” 하는 영화들이요. 예를 들어 영화에서 김사월씨가 에릭 로메르의 〈녹색광선〉 얘기 하셔서 교양처럼 봐야하는 영화인가 보다 하고 목록에 넣어놨는데 몇 년 째, 그 〈녹색광선〉이 빛을 보지 못하고 그 자리에 굳건하게 있어요. 각자 이런 영화들이 있는 것 같아요.
황현우: 저는 〈쉬리〉요. 이상하게 다른 사람들은 다 봤다고 하는데 저만 안 봤네요.
권철: 저도 〈쉬리〉랑 〈타이타닉〉을 아직 안 봤어요. 〈접속〉도 최근에 봤어요.
황현우: 의외로 천만영화인데 (나는) 천만 중에 못 속하는 구나..
곽푸른하늘: 저는 〈기생충〉을 아직 못 봤어요. 너무 기대가 높아져서 시작을 못한 영화가 됐어요. 전에 봤어야 하는데.
최고은: 그런 의미에서 〈버텨내고 존재하기〉를 오늘 보신 분들이 있다는게 중요한거죠. 질 높은 시네 콘서트 느낌의 영화를 보신 게 아닌가 싶어요. 한 뮤지션, 한 사람마다의 음악을 듣다 보면 이게 라이브인가 싶을 정도로 카메라도 한 번에, 소리도 한 번에 받은 경우 잖아요.
황현우: 보통 라이브클립은 테이크 1, 2, 3 중에 하나를 결정합니다. 보통 신기하게도 테이크 2가 가장 많이 선택되고, 테이크 2에서 촬영한 영상을 다시 틀어서 싱크를 맞추는 식으로 진행이 됩니다. 보이는 그림을 우선적으로 살리고, 싱크를 맞추고 편집할 때도 그 테이크를 우선적으로 사용합니다. 이번 영화에선 그 과정이 번거로워서 감독님이랑 ‘한 번에 하시죠’ 해서 실제 이전의 방식들과는 다르게 라이브 영상을 사용 했습니다.
권철: 요즘에는 라이브를 뮤직비디오처럼 찍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데 말씀하신 경우가 마찬가지이고 흔한 경우이긴 해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원래 라이브는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똑같은 연주를 하더라도 에너지가 달라요. 그래서 영상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다른 테이크를 가져와보면 느낌이 미묘하게 달라요. 저는 그게 뮤지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최고은: 근데 가끔 영상과 음향을 편집하는 방식이 뮤지션한테는 편할 때가 있거든요. 저는 노래 부를 때 표정이 일그러지는 경우가 있는데, 카메라팀이 ‘오늘 라이브클립은 이렇게 찍을게요’하고 ‘고은님이 가장 마음에 드시는 라이브 연주를 골라 주시면 그걸 소리로 틀어놓고, 연주하시는 걸영상으로 담을게요’라고 말씀해주시면, ‘아 나 표정관리 할 수 있네.’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어요. 근데 이번 경우에는 카메라가 ‘이 사람을 찍어야겠다’고 명확하게 집중하는 경우였거든요. 화면과 음향을 한 번에 담는 경험이 그때의 나를 온전히 담는 경험이라는 점에서 뮤지션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
황현우: 그런 고민을 저도 했는데, 어느 순간 사람들이 모든 작품이나 작업에 항상 ‘원하는 상황의 결과’가 마스터피스라고 생각하더라고요. 나의 작업물을 최상의 것이고 누구의 것보다 좋아야한다는 압박이 있어서요. 물론 그렇게 되면 가장 행복하겠지만, 그런 방식을 따르는 경우엔 자꾸 포장을 하게 되더라고요. 실제로 일상에선 포장이 잘 돼있는 경우를 우리가 많이 마주하잖아요. 최근에는 쇼핑을 하다가 그런 비슷한 경험을 느꼈는데요. 겉만 봐서는 나에게 맞는 옷인지 모르는 것처럼, 너무 겉만 번지르르한 모습으로 덮어씌우려고 한다던가, 없는 걸 만들어 내는 상황을 지양해야겠다고 느낀 것 같습니다.
최고은: 이번 〈버텨내고 존재하기〉는 방금 저희가 말한 내용이 무색해질 정도로 원테이크에, 그 뮤지션의 그때의 그 순간, 그 소리, 그 모습이 온전히 담겨있다고 - 라이브 콘서트를 즐기는 영화다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권철: 이게 한 테이크를 살렸다는거지, 한 테이크만 연출했다는 건 아니거든요. (이번 영화를 제외하더라도) 제 촬영 경험 상 뮤지션 성향에 따라 리듬이나 테크닉적인 부분에서 요구하는 테이크 수가 다른데, 광주극장에서는 가장 많이 간 테이크가 3-4 테이크 정도였습니다.
곽푸른하늘: 엄청 집중되니까요. 저도 집중하고 카메라 감독님들께서도 집중하시고, 음향팀에서도 다 같이 초집중 상황이여서 그 상황이 크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황현우: (관객석의 음향팀을 향해) 음향팀 힘들었나요?
음향팀: 힘들었습니다.
권철: 소소한 비하인드씬 얘기를 하자면, 곽푸른하늘님이 평상시나 공연 때도 중간중간 말씀이나 멘트를 잘 하시는데 카메라 앞에만 서면 울렁증이 생겨서 되게 얼어버리세요. 그래서 연기를 되게 못하는 것처럼 보이게 돼요. 매표소 장면에서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음료수 마시는게 연기가 아니에요. 연기 컷이 아닌데 마시고 있길래 레코드를 끼워넣었어요.
곽푸른하늘: 저는 영화배우의 꿈이 없었는데, 그 날 접었어요. 제가 연기를 못하는 구나..
권철: 곽푸른하늘님이 사월님께 티켓을 주는 역할도 찍었는데, 보통 받는 사람이 ‘무슨 영화 주세요’하면 발권 작업 후 주는 단계를 거치잖아요. 사월님이 도착하자마자 티켓 두 장을 준비했다는 듯이 내미시더라고요. (일동 웃음)
곽푸른하늘: 매표소에서 일해볼걸. 타이밍을 잘 못 맞춰서. 마음이 좀 급한 편인가 봐요..
최고은: 근데 저는 곽푸른하늘의 눈에 보이는 점이 좋아요. 그걸 감추질 않는 편이. 그래서 음악도 그렇게 나오는 것 아닐까요? GV 시작 전 했던 라이브 사이사이에 멘트가 되게 울림이 있더라고요. 버텨내는 것 중에 가장 소중한 게 음악이라고 말을 했는데, 저는 곽푸른하늘이 정규 2집을 내기 조금 전부터 봐온 입장에서, 그 이전이든 이 후든 음악을 다루는 모습을 보면 음악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 같아요. 그래서 〈버텨내고 존재하기〉를 기획할 때 곽푸른하늘이 이 영화의 한 부분으로 반드시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래서 그런 음악이 또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곽푸른하늘: 근데 저 뿐만 아니더라도 영화에 나오신 모든 분들이 다 그런 모습이 있으실 것 같아요. 저도 영화를 보면서 그게 느껴졌어요.
최고은: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은 앨범이 안나온지 좀 오래 된 것 같아요. 그래도 최근에 SNS계정도 생긴 걸로 알고 있는데, 특별히 따로 계획하고 계신게 있으신가요?
황현우: 항상 계획은 있지만 그걸 실천하는 사람이 아티스트여서 할 수 있는지는 알아가 보는 중입니다.
최고은: 제가 ‘버텨내고 존재하기’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주변의 아티스트들을 광주에 초대했어요. 예를 들어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같은 경우에는 어쿠스틱한데 우주적인 서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가사가 단편소설 같기도 하다는 점에서 재밌게 느껴왔어요. 언제 음원이 나오나 하고 생각하는데 시동을 걸고 있다니 다행이네요. 다른 얘기를 하자면, 영화 속 풍경들이 저희가 억지로 연출한 모습이 아니라 광주극장에 가시면 다시 만날 수 있는 풍경이 그대로 담겨 있거든요. 관객분들은 특히 좋았던 풍경이 있으신가요?
관객: 사무실이 좋았어요.
권철: 하지만 일반 관객들은 아쉽게도.. 사무실은 물론 영사실에 갈 수가 없지요.
최고은: 저희는 이 GV를 시작하기 전에 인디스페이스 사무실에 대기하다 왔는데 그 생각이 겹쳤어요. 〈버텨내고 존재하기〉를 촬영할 때도 일반 관객들에겐 열려 있지 않은 공간들에 들어가는게 엄청 큰 경험이었는데 오늘도 같은 경험을 하는구나 싶었어요. 감독님께서는 영화 안에서 제일 좋았던 장소가 있으신가요?
권철: 광주극장 사무실이 해가 들어야 예쁜 공간인데 아마도이자람밴드를 촬영할 때 이미 해가 진 상황이었어요. 낮 같은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조명을 설치하려고 했는데 사무실이 2층에 위치한 공간이라 설치가 어려운 상황이었거든요. 근데 창 밖에 조명기구를 힘들게 설치해서, 낮처럼 나와서 뿌듯한 경험이 있어요. 그리고 매표소 공간 자체도 굉장히 예뻤고요.
최고은: 저는 아무래도 제가 라이브 클립을 촬영한 미술실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박태규 선생님을 검색하면 ‘우리나라 마지막 손 간판쟁이 박태규’라고 소개가 돼요. 우리 시대의 마지막 손 간판쟁이가 광주극장에 걸릴 그림을 그리는데, 그 뒤에서 저희가 라이브 연주를 했던 경험도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그때의 그 순간, 선생님이 그림을 잘 그려 주셨으면 하는 바람을 담기도 하고, 오묘한 에너지를 담아서 노래를 불렀던 것 같아요.
황현우: 음향팀은 옆에 위치한 2층 주차장 때문에 음향 잡기가 힘들었어요. 철판 소리 같은 걸 막아보자 하고요. 갑자기 생각난 건데, 영화에 다른 분들 인터뷰는 있는데 곽푸른하늘 님은 없으시잖아요. 그래서 오늘 간단하게 영화에서 나왔던 공통질문들로 인터뷰를 해보면 어떨까요?
권철: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는 무엇인가요?
곽푸른하늘: 〈슈렉〉이요. 〈슈렉〉 1편을 봤습니다.
권철: 평상시에 즐겨 듣는 음악은 무엇인가요? 곽푸른하늘 1집?
곽푸른하늘: (웃음) 그 정도로 제 음악을 좋아하진 않아서.. 요즘 듣는 건 힙합을 중세시대 스타일로 편곡해서 유튜브에 올라오는게 있거든요. 에미넴이랑 아이스큐브도 있어서 아침에 힙합듣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중세시대 스타일을 틀어놓으면 아침에 잘 어울려요. 스눕독을 아침에 들을 수 있으니까.. (웃음)
권철: 좋아하는 영화감독은?
곽푸른하늘: 저번에 여쭤 보셨을 때, 폴 토마스 앤더슨 좋아한다고 했는데 장 피에르 주네 얘기할 걸 하고 후회했어요. 〈아밀리에〉를 제가 정말 좋아하거든요. 〈에일리언 4〉도 굉장히 좋아합니다.
최고은: 혹시 관객 분들 중에서는 영화에 대해서 궁금하신 점들 있으실까요?
관객: 영화에 등장하는 악어 인형 연기는 누가 해주신 건가요?
권철: 저희 촬영팀에 이인규라는 분이 계세요. 그 분이 연기를 정말 잘 해주셨는데 제가 영화를 완성하고 크레딧에 ‘악어 연기’라고 올린다는 걸 깜빡했어요. 정말 아쉬운 부분입니다.
황현우: 인규 감독님 연습 굉장히 많이 하셨어요.
권철: 그 테이크가 저희의 유일한 립싱크 테이크네요.
관객: 악어 인형은 개인 소장품이신가요?
권철: 마치 영화를 찍기로 한 운명인 것처럼, 제가 30대 이후로 인형을 산 적이 없는데 어느 날 토이저러스를 갔다가 악어인형과 눈이 마주쳐서 사게 됐는데 집에 있어서 현장에도 데려왔습니다.
최고은: 그러고보니 소소한 연출이 있었던 것 같은데, 다른 것도 있나요? 뮤지션에게 시도하려고 했던 부분이라던가.
권철: 대단한 건 아닌데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이 라틴 음악을 표방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엔 서부 카우보이 같은 느낌이 있어서 서부영화 같은 구도를 잡고 싶었어요. 일렬로 서있는 모습이라던지 타란티노처럼 등장한다던지, (입장 때 사용된) 음악은 인생극장 음악이지만.
황현우: 두 가지 소재가 합쳐지면 만들어지는 하나의 공감각적인 연출법이군요. 요새는 의도가 있던 없던, 새로운 게 생겨나잖아요. 그걸 해석하는 것이 관객들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개인적으로 저는 작품의 의도가 100프로 해석이 되면 매력이 조금 덜어지더라고요. 그래서 미지의 영역이 생기면 그 부분이 굉장히 재밌어요. 그래서 GV가 좋은 것 같아요. 몰랐던 부분을 알 수 있고, 또 알려드릴 수도 있고요.
최고은: GV를 여러 번 했는데 할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나와요. 연출 이야기 같은 경우에도 오늘 처음 듣네요. 얘기 반복은 없고 발전이 있네요. 그러면 황현우씨가 음향을 담당하셨으니까, 광주극장에서 소리나 사운드면에서 새롭게 시도했던 방식이 있나요?
황현우: 우선 마이킹 하는게 굉장히 어려웠어요. 영화관 같은 경우에는 울림이 없어서 드라이하지만 실제로는 에코처럼 남거든요. 마이크가 여러 개 사용하는 경우 소리 간섭을 어떻게 없앨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게 녹음 때 무조건적으로 필요한 과정이거든요. 근데 사실 출장 녹음을 가서 확인을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요. 모니터링 시스템이 열악하니까. 녹음실에 가면 분석을 제대로 할 수 있는데 직접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헤드폰 하나여서요. 음향팀들끼리 서로 돌려 들으면서 “이건 이걸 거야” 하고 추측하고 의문을 던지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근데 시간이 짧고 촬영팀은 셋업이 끝난 상태에서 저희는 결정을 내려야 하고.. 그래서 감에 의지해서 작업을 진행했던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어려웠던 마이킹 중에 하나가 곽푸른하늘 님이었어요. 마이크가 원래는 보컬에 하나, 기타에 하나 설치하는데 그때는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마이크 하나로 두 개의 소리를 모두 잡아내야 했어요.
곽푸른하늘: 각도가 굉장히 중요해서, 그 자세에서 벗어나면 안될 것 같아 움직임을 최대한 없애려고 하니까 다음 날 몸에 담이 왔어요.
황현우: 심지어 매표소가 가장 바깥에 있고 외벽 자체가 얇아서 외부 소음이 잘 들어오는 상황이었어요. 녹음은 아티스트가 틀렸다기 보다는 셋업이 덜 돼서 조금 버벅거린 감이 있었어요. 듣는데 엄청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한 걸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최고은: 이 영화의 기획의도가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라기보다는 영상들을 장소에 맞춰서 엮다 보니 64분의 사간이 되었고, 영화관에서 상영이 되는 상황이 돼서.. 장난스럽게 얘기하지만 시작점은 진지했던 영화거든요, 〈버텨내고 존재하기〉가. 광주극장이라는 1935년 조선인이 세운 극장이 88년동안 한 자리를 지키면서 극장이라는 역할을 해내고 있더라고요. 이 사실 자체가 주는 보이지 않는 메세지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 공간을 음악하는 친구들과 같이 기억을 남겼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촬영 당시에 코로나 팬데믹이 굉장히 심했던 시기였는데 이동이 어려웠던 시기이다 보니 음악으로 기록해서 온라인 공연을 하고, 광주극장에 대해 찾아볼 때 다시 볼 수 있는 방부처리가 되어있는 영상이 되었으면 해서 시작된 작업이었어요.
황현우: 내러티브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건 또 아니에요. 주인공이 누군가를 구출하는 식의 전개 과정이 아니어서 그렇지, 저희 영화 같은 경우는 다큐잖아요. 근데 이 주제와 내용이 관객들에게 무겁게만 다가가지 않게 하자는 게 저희 목적이었거든요. 제목에서 오는 부정적인 느낌을 없애고 계속 유지되는 나의 상태, 친구의 상태로서 전달되길 바랬어요. 어떤 삶의 이상적인 형태를 직접적으로 제시하려고 한 건 아니었어요. 혹시 다른 질문 있으실까요?
관객: 감독님께서 이전에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마감일이 이 영화의 마감일이라고 생각하셨다고 들었는데 이 모든 과정을 영화로 제작하게 되고 영화제에 출품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요?
권철: 이미 온라인 공연이 끝난 상태에서는 영화를 만들어야 할 이유와 압박이 없었어요. 찍어 놓은 것이 아까우니 마무리를 지을 수 있는게 있을까 생각하다가 때마침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출품 마감일을 봤어요. 그때에 맞춰서 마감을 해보자, 한 것 같아요.
황현우: 원래 영화화 하자고 업무적으로 접근한 게 아니어서 영화가 되면 재밌겠다 하고 공연과 촬영을 끝나고 농담처럼 나온 얘기였어요. 얘기가 그렇게 휘발될 줄 알았는데 시간이 흐르고 다른 일들을 공유하고 작업하면서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마감일이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됐어요. “영화화 해보자, 지금 안 하면 영원히 안 할 것 같다.” 해서 같이 만들고 제출하게 된 것 같아요.
권철: 러닝타임도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1차 편집을 마치니 60분이 조금 넘었었어요. 각 뮤지션 마다 노래가 있으니 시간을 늘리거나 줄이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같은 경우에는 1시간 미만이면 모두 단편으로 분류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만약 시간이 더 짧았더라면 오늘 이 자리에서 상영을 하고 관객분들을 만나는 경험이 어려웠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래서 저희가 다큐라는 장르로 봤을 때 극영화로서 내러티브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맞지 않고, 전달하려는 메세지가 있느냐 없느냐, 그게 얼마나 노골적이냐가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메세지를 잘 전달하는 감독님들을 존경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개인적으로 어떤 메세지를 담고 그게 정답이라는 식으로 전달하려는 게 두렵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약간 폭력적이기도 하고,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 대한 예의도 아닐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생각을 해보니 반면에 저는 기록을 잘 해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영화를 만들 때도 다른 것보다 기록을 잘 하자는 마음이었건 것 같아요. 영화 제목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지만 특정한 메세지와 주제를 전달하는 의도보단 역사가 잇는 광주극장의 한 공간에서 뮤지션들이 모인 2-3일 간의 기록이라고 생각하고 만들었거든요. 관객분들도 편하게 접근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최고은: 저는 다큐멘터리적인 사람이에요. 정답이 있다고 말하는 걸 좋아한다기 보다는 전하려는 가치가 있으면 제 식으로 이야기하는 편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자칫하면 굉장히 무거워졌을 것 같은데 (의도적인 메세지를 담지 않으려는) 권철 감독님이나 황현우 피디님의 성향이랑 시너지가 있었던 것 같아요.
황현우: 제가 이해한 식으로 답변을 하면, 저도 삶의 옳고 그름은 크게 구분하지 않거든요. 선악의 관점이 모두 다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악의 관점을 모두 없애버리면 옆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성이 지속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약속을 하는거죠. 이게 맞지 않니? 이건 좀 잘 못 됐지 않니? 이런 약속의 개념이 들어가는게 아닐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깔아놓고 느낀 자신이 동의하는지 혹은 동의하지 않는지, 만약 비동의하는 부분이 생긴다면 그건 개인적으로 다시 논의할 부분이라고 생각하고요.
관객: 영화 시작때부터 궁금했던 부분이 영화의 배경을 ‘광주극장으로 설정한 이유가 무엇일까’ 였어요. 그리고 광주극장을 전반적인 배경으로 설정함으로써 뮤지션 분들에게 개인적으로 다가오는 인상도 궁금했어요.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엔 광주극장이 오랜 기간 동안 한 자리에서 누군가에겐 기쁨을, 혹은 위로를 주면서 버텨온 공간처럼 느껴졌는데 뮤지션들이 하는 음악작업도 누군가에겐 기쁨과 위로를 준다는 점과 결과적으로 버텨내고 존재하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권철: 저는 말씀하신 경우랑 순서가 조금 다른데, 영화의 배경을 고은님이 광주극장으로 섭외해주시긴 했지만 오히려 광주극장이었어서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던 것 같아요. 멀티플렉스 상업영화관을 섭외하셨으면 영화로 만들지 않았을 것 같지만, 광주극장이라는 공간 자체가 무언가를 더 기록하고 더 만들어야겠다는 영감을 주는 장소였고, 그 마음이 영화를 만드는 마음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최고은: 이야기를 좀 더 덧붙이자면, 정확히 무엇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공간의 소중함이 알게 모르게 와닿는거죠. 그 공간이 가지고 있는 정서는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 덕분에 생긴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공간을 누가 가꾸고 누가 지키는지에 따라 공간이 담고 있는 에너지나 말하고 있는 이야기가 다르다고 생각해요. 마찬가지로 광주극장을 그렇게 지켜냈던 이전의 많은 사람들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마음 같은 것들이요. 예를 들면 처음에는 파트타이머로 입사하신 분이 직원이 돼서 10년 넘게 근속하는 분도 계시고, 그렇게 공간을 지키고 유지해온 분들 덕분에 광주극장이 그 모습으로 보여지는 거거든요. 저도 처음엔 정확히 무엇인지 몰랐지만 그게 자기에게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지켜내는 태도였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모습이 되게 광주사람으로서 자부심이 들었고, 자기 음악에 대한 목적이나 방향이 모두 있겠지만 그런 태도를 공유하고, 표현하는 뮤지션들과 이 공간에서 같이 이야기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 음악가들이 이 영화에 있다고 보시면 좋을 것 같고, 충분히 지지받거나 소중하게 생각해도 좋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관객: 인디스페이스가 〈버텨내고 존재하기〉를 볼 수 있는 가장 큰 스크린 중 하나더라고요. 그래서 영상이 더 잘 보여서 좋았습니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라이브가 병렬적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아티스트별로 연출 개성이 있더라고요. 김일두님이나 김사월님은 한 카메라로 쭉 찍은 반면에 곽푸른하늘님은 영상이 먼저 나오고 노래하는 장면이 나오고, 이런 사이사이 재미있는 장면들이 나오곤 했는데 관련해서 아티스트별로 연출 개성을 어떻게 생각 하시게 됐는지, 그 이유나 순서 배치 이유도 궁금했습니다.
권철: 순서는 촬영 전부터 계획을 했던 부분이 있었어요. 최고은님은 호스트로서 피날레를 장식해야하니 노래 선택의 여지도 드리지 않고 ‘축제’를 부르셔야 한다고 정해놨어요. 나머지 일곱 분들께는 주제를 설명 드리고 ‘주제에 맞는 노래를 골라주세요’하고 보내주신 노래를 받아봤더니 뮤지션 별로 성향이 드러나더라고요. 일두님과 사월님 같은 경우에는 ‘버텨내고 존재하기’를 항상 사랑으로 표현하시고,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이나 곽푸른하늘이나 고상지, 이자원 같은 분들은 가사가 은근히 비관적이고 자조적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현에서 버텨내는게 힘이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따뜻한 햇살’이나 ‘살아 있기 좋은 날’ 같은 표현들이요. 정우와 아마도이자람밴드는 노래에서 에너지가 느껴져서 이런 순서로 배치를 하면 좋겠다 하고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 뮤지션의 순서들에 맞춰서 극장에서 노래를 하는 배경도,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을 때 우리가 경험하는 일련의 순서들을 배치를 하면 재밌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뮤지션 별로 연출은 다양한 시도를 준비한 것도 있고 후반작업에서 맞춘 것도 있어요. 사실 첫 번째의 두 곡만 원 테이크 라이브로 진행을 했는데 그건 김일두 님의 경우 의도한 것이 맞지만 김사월 님은 의도한 게 아니었어요. 뮤지션분들이 의도에 맞게 준비해주신 노래 한 곡과 B 사이드 노래가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김사월 님의 노래만 B사운드 노래를 사용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김사월 님의 원래 버전을 살렸으면 카메라 여러 대를 사용했을 텐테 어쩌다보니 시작의 두 분이 원 테이크로 촬영되는 통일성이 의도치 않게 생기게 됐어요. 다른 곡들을 연출 할 때는 음악의 성향에 맞게 가장 잘 음악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방식으로 보여주고 싶어서, 풀밴드 사운드의 경우 에너지 전달을 위해 무조건 카메라가 많은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밴드 사운드는 사실 리듬 앤 베이스 같은 느낌이 중요하거든요. 그 리듬을 연주에서도 많이 보여줄 수 있지만 리듬을 만드는 큰 요소 중 하나가 컷의 편집이에요. 그래서 카메라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해서,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이나 아마도이자람밴드 같은 경우에는 최대한 카메라 연출을 했습니다.
최고은: GV 덕분에 비하인드 얘기도 하고요. 영화가 완전히 끝이 나지 않고 오히려 이어져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한마디씩 하고 퇴장하도록 할까요?
황현우: ‘버텨내고 존재하기’라는 제목이 조금 묵직하지만, 태어났으면 당연히 버텨내고 존재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스트레스를 너무 받거나 감정에 취해 있지 말고 열심히 살다 보면, 주변 친구들과 쿵짝쿵짝하며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정도의 힘이 되어드리고 싶네요.
최고은: 저는 자기 감수성 정도 하나는 지켜내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그 감수성 덕분에 모든 것들이 무난하고 무탈하게 넘어가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요. 영화보고 나가실 때 그래 “나 오늘 감수성 하나 정도 지켜냈다.” 하면서 나아가시면 좋겠습니다.
곽푸른하늘: 오히려 나를 존재하는 것들이 나를 버티게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흔히들 ‘존버’라고 하지만 앞으로는 ‘버존’으로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권철: 저는 ‘버텨내고 존재하기’ 같은 주제에 대해 한 번도 생각이 한 적이 없는데 영화를 만들면서 이 질문을 너무 많이 받았어요. 항상 답하기 어려워서 무언가를 찾아서 준비해 다니고 있는데 이화여대 명예교수님으로, 정신과 전문의로 50년간 진료하고 학생을 가르치신 선생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살아보니 인생은 필연보다 우연에 좌우되었고, 세상은 생각보다 불합리하고 우스꽝스러운 곳이었다. 그래서 산다는 것은 슬픈 일 이지만 사소한 즐거움을 잃지 않는 이상 인생은 무너지지 않는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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