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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인디토크 기록: 우리는 매일매일

by indiespace_가람 2023. 12. 4.

 

우리는 매일매일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3. 11. 9(목)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김보람 감독, 출연자 박채영, 이옥섭 감독

진행 셀럽 맷(영혼의 노숙자)

 

*관객기자단 [인디즈] 조영은 님의 기록입니다.

 

 

나는 언젠가 “왜곡된 세계 안에서 영화나 문학의 역할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이해해 보려고 하는 게 아닐까 싶다”라고 말한 김보람 감독의 말을 기억한다.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은 그것이 무엇이든 회복을 기대하거나 질병의 근원을 찾지 않는다. 타인의 고통에 한 걸음 다가가고, 함께 고민해 보자는 시도에 가깝다. 이들이 일 인분의 식사만큼의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그 물음에 응답할 수 있는 거리에서 삶을 이어 나감에 감히 안도를 느끼는 까닭은 평행선을 걸어온 두 사람의 궤적을 담아낸 영화의 성실한 노력 덕분일 것이다.

 

 

 

 

셀럽 맷(이하 셀럽 맷): 안녕하세요. 오늘 〈두 사람을 위한 식탁〉 관객과의 대화 모더레이터를 맡은, 영혼의 노숙자 셀럽 맷이라고 합니다. 오늘 세 분과 함께 인사 나누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박채영 출연자(이하 박채영): 안녕하세요. 박채영이라고 합니다. 오늘 재미있는 이야기 나누고 갔으면 좋겠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김보람 감독(이하 김보람): 안녕하세요. 방금 보신 영화 만든 김보람입니다. 반갑습니다.

이옥섭 감독(이하 이옥섭): 안녕하세요. 저는 이옥섭이라고 합니다. 오늘 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개인적인 감상이 여러분께 방해가 될 수도 있지만 친구의 가벼운 생각이라고 여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일단 이 영화를 만든 감독님과 출연하신 채영 님, 그리고 상옥 님을 안아주고 싶다고 느끼면서 왔어요. 이렇게 처음 뵙게 되어서 친근하게 인사하지는 못했지만, 그런 마음으로 여기에 앉아있습니다.

셀럽 맷: 그래서 저는 오늘 세 분을 정서적으로 지지하기 위해서 나와 있습니다. (웃음) 오늘 편하게 이야기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영화 개봉이 벌써 삼 주차예요. 감독님과 채영 님은 지금 어떠신지, 혹시 주변에 보신 분들의 반응은 어떤지도 궁금합니다.

박채영: 제 사촌 동생들이 너무 좋아했어요. 이번에 출간된 제 책에 가족 얘기가 더 많이 나왔는데 사촌 동생들이 써줘서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가장 안심이 되었어요. 그리고 자신들의 엄마와 이모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고, 한편으로는 ‘위로가 많이 된다’는 이야기들을 들어서 너무 기쁩니다. 그런 걸 잘 담아주신 감독님께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는 요즘인 것 같습니다.

김보람: 저도 삼 주차 되니까 정신없고 지쳐있는데 오늘이 저한테 특별한 이유는 영화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로 참여해 주신 김해원 음악 감독님과 최미혜 애니메이션 감독님께서 와주셨어요. 그래서 너무 소개를 드리고 싶습니다. (일동 박수) 영화를 완성하고 상영될 때 제가 가진 역량보다 훨씬 더 좋은 분들이 함께해 주셔서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었어요. 개봉하고 시간이 좀 지나니까 더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셀럽 맷: 이옥섭 감독님께서는 영화 어떻게 보셨는지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이옥섭: 최근에 제가 지인과 이야기하다가 저희 할머니를 “엄마보다 더 사랑한다”라고 말한 거예요. 그런데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엄마만큼’ 사랑한다고 하면 되는데 왜 ‘엄마보다’라고 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엄마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게 아니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마음 속에 엄마에게 풀리지 않는 서운함이 아직도 있었나 봐요. 영화 보며 모녀의 관계에 많이 투영해서 봤던 것 같아요. 만약 엄마가 제 곁에서 희생했다면 지금의 상처는 상처가 아니었을지는 저도 답을 내릴 수 없어요. 영화에서도 어릴 때 학교 가던 길만 어머니와 같이 보내던 시간이 아니라, 만약 365일 24시간 같이 있었다고 한다면 채영 님은 어떤 마음이었을지 제가 판단할 수 없더라고요. 그리고 주방에서 대화하시잖아요. “나를 태어나게 해준 엄마 앞에서 나 죽고 싶었어”라고 얘기하는 마음이 저를 움직이게 했던 것 같아요. 저도 엄마랑 저렇게 대화한 적이 없어요. 오늘 엄마와 차에서 보낼 시간이 있어서 이야기 꺼내볼까, 했는데 실패하긴 했지만요. 어쨌든 조금씩 제 안에서 뭔가 움직이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사실 지금은 엄마와의 관계도 괜찮아서 굳이 덮어놨던 걸 이야기 꺼내면 분란이 생길 것임이 분명한데, 왜 자꾸 다시 열어보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어요. 관객과의 대화하면서 답을 찾고 싶어요. 사실 답을 못 찾아서도 제가 차선도 이미 조금 정해왔긴 했어요. (웃음) 그런데 혹시나 정말 제가 최선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 그런 기대로 이 자리에 왔습니다.

셀럽 맷: 채영 님은 방금 말씀처럼 어머니와의 어렸을 때 관계가 좀 달랐다면 지금은 어땠을지 생각해 보신적 있나요?

박채영: 아니요. 저는 그때 당시가 최선이었다고 생각해요. 엄마가 나한테 이러지 않았다, 보다는 엄마가 이렇게 될 수 있을까, 이런 걸 조금 더 생각했어요. 앞으로는 엄마와 조금 더 대화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엄마한테 더 솔직하고 기댈 수 있을까, 우리는 도대체 서로에게 무엇을 바라는 걸까, 이런 질문을 많이 했죠. 제가 기숙사 생활하거나 다른 사람 집에 맡겨졌을 때 다들 엄청 ‘불안정한 양육 상태’ 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그 상태에서도 저는 주변에 정말 좋은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이건 제 복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의 눈빛과 지지 덕분에 저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를 가질 수 있었어요. 그리고 기숙사에서 같이 지낸 언니들이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었는데 그동안 엄마가 수많은 일탈을 했거든요. 그런데 언니들이 빈자리를 채워주고, 엄마가 일탈 또한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살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그냥 우리는 ‘최선의 삶’을 살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셀럽 맷: 영화 찍으면서 되게 많은 대화를 시도하신 거잖아요. 서로 이해해 가는 과정이기도 하면서도 상처 주는 과정이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화를 통해서 얻은 점이나 나아진 점이 있을까요?

박채영: 얻은 건……. 〈두 사람을 위한 식탁〉. (웃음) 제가 워낙 독설가예요. 영화 속 대화들은 특별한 게 아니고, 제가 비슷한 말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날 엄마에게 먹히는 게 일상인 거죠. 어버이날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보셨잖아요. (객석 웃음) 그러나 영화라는 결과물을 가지고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서 변하는 게 조금 더 많아요. 사람들에게 질문받고, 거기에 대답하는 엄마를 보면 제 안에서 동요가 일어나요. 종종 제삼자의 눈으로 영화를 다시 보면서 엄마의 눈빛을 보고, ‘아,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저런 눈빛으로 바라봐질 수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것에 점점 감사함을 느끼죠. 저한테 큰 변화인 것 같아요.

 

셀럽 맷: 아까 이옥섭 감독님께서, “김보람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 나를 행동하게 만든다”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보면 다큐 찍는 분들께 최고의 찬사 중 하나가 아닐지 싶어요. 들으시니까 어떤 기분인가요?

김보람: 〈피의 연대기〉는 영화라는 장르를 택했지만 사실 캠페인적 성향이 강했어요. 특히 생리컵을 끼는 것에 되게 많은 시간을 할애했거든요. 근데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은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이거 보고 부모님이랑 가서 대화하세요, 이런 영화는……. (일동 웃음) 네, 아니었고요. (웃음) 근데 저도 이옥섭 감독님 말씀처럼 엄마에게 항상 열심히 하는 딸, 엄마에게 기쁨이 되는 딸이고 싶은 마음으로 거의 사십 년 살았거든요. 그래서 영화 찍을 때 ‘이제 정말 솔직하게 말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그때 예술인 심리 상담을 받던 시기였는데, 영화 찍으면서 불쑥불쑥 엄마에 대한 어떤 것들이 올라오는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제가 어릴 때는 엄마가 힘들 때마다 저를 집에 혼자 두고 교회로 가셨어요. 그러니까 혼자서 그 외로운 공기와 폭력적인 어떤 순간들을 견뎌야 했던 것이 갑자기 막 화로 올라오는 거예요. 그런데 채영 씨가 방금 말했듯이 엄마의 일탈이 결국 엄마를 살린 것처럼, 상담가분께서도 엄마가 그때 교회라도 가지 않았더라면 엄마는 그 순간을 어떻게 견뎌올 것이냐, 그 순간에 엄마도 안됐고, 아무 데도 가지 못하는 아이의 입장도 안됐다, 그렇게 이야기하시더라고요. 제가 영화를 찍으면서 느낀 건 나의 입장도 좀 어루만져 주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입장도 인간으로서 이해하는 시간이 저한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걸 해보시라고 말할 순 없겠지만, ‘모두가 그런 사정은 있을 수 있다’정도로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옥섭: 저도 엄마를 다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직접적으로 엄마에게 이야기한 적은 없거든요. 저도 뭔가 예민해지면 불쑥 날카롭게 대할 때가 있어서, 스스로 ‘지금 이 문제에 대해 엄마에게 화를 내는 건가?’ 싶으면 아니더라고요. 저 밑에 있는 어떤 것들이 풀리지 않은 채로 있으니까 때때로 저의 안 좋은 모습들이 나오는 것을 느껴요. 채영 님께서 독설가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런 모습들이 독설가라기보다 오히려 솔직하게 이야기했고 마음속에 있는 것을 꺼내서 보여줬다고 느꼈거든요. 저도 엄마와 화해를 원하거나 엄마를 공격하려는 게 아니라 ‘내가 그때는 그랬는데, 지금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라고 대화하고 싶다는 상태인 것 같아요.

 

 

 


셀럽 맷: 혹시 영화 보시고 김보람 감독님께 궁금했던 점 있으신가요?

이옥섭: 저는 대학교 졸업작품으로 단편 다큐멘터리로 찍었던 적이 있어요. 이번에 촬영하시면서 ‘여기서 좀 꺼야 하나?’라는 생각이 드시기도 하셨을 것 같아요. 아니면 두 분의 대화에 있어서 한쪽에 편들고 싶다거나, 아니면 여기서 찍으면 두 분이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든다거나, 이런 지점이요.

김보람: 일 년 정도는 촬영할 때 채영 씨 얼굴을 가장 많이 살폈어요. 언제든지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면 안 찍기로 했지만, 어디까지 찍을 수 있는지 혼자서 많은 갈등이 있었죠. 최소한 지금 이걸 찍겠다고 말하는 순간도 있지만, 어디까지 양해 구해야 하나 어려움도 있었고요. 일 년이 지날 무렵부터는 양가적으로 캐치가 빨라지는 순간이 왔어요. 사실 타로 장면도 원래 채영 씨를 찍으러 갔다가 제 판단에 카메라를 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생님께 저녁 일정을 여쭤보니 술집 가서 타로 보신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다큐멘터리를 배운 적이 없어서 찍는다는 경계가 분명하지 않았어요. 어느 시점에는 이 사람하고 나하고 찍고 찍히는 관계를 넘어서서 설명이 불가능한 다른 관계가 되어버린 거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상옥 선생님, 채영 씨, 저 셋 다 ‘영화를 완성하겠다’는 목적이 분명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어느 순간 찍고 찍히는 것이 힘들어지는 순간은 분명히 있었고, 채영 씨가 촬영을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요청도 했고요, 그때 저도 제가 뭔가를 더 하려는 건 욕심인 것 같다고 생각해서 촬영을 마무리했죠. 편집 기간이 길었어요.

 

이옥섭: 〈두 사람을 위한 식탁〉 관객과의 대화를 조금 찾아봤거든요. 어떤 관객분이 “앞에 카메라가 있으면 의식되지 않느냐”라고 물으셨는데, 채영 씨의 대답이 되게 기억에 남아요. “오히려 무기가 되어서 카메라가 있어서 더 솔직할 수 있었고, 더 믿고 얘기할 수 있었다”라고 하셨더라고요. 만약 제가 감독이었다면 너무 행복할 것 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찍히는 사람이 내가 찍고 있는 카메라를 ‘무기’라고 이야기해 준다는 것은 그래도 걱정이 많이 내려앉을 것 같은 말처럼 들리더라고요. 그래서 채영 씨의 마음을 좀 더 듣고 싶었어요.


박채영: 감독님의 카메라는 저와 엄마에게 정말 좋은 계기였어요. 저는 혼자 상담을 되게 오랫동안 받았고 엄마도 가끔 상담받았지만, 저희가 가족 상담을 받은 적은 없거든요. 사실 섭식장애는 가족 치료가 중요한데 그걸 해보지 않은 거예요. 그리고 상담에서도 내담자와 상담자 사이의 신뢰 관계가 중요한데 카메라 너머에 있는 감독님만큼 신뢰가 가는 제삼자가 그 당시 저희에게 없었던 것 같아요. 저는 엄마의 친구들에게 자주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에 늘 그 자리에서 죄인이었죠. 반대로 제 친구들은 엄마에게 노출되지 않는 대상이었고요. 저는 질병이 있다는 것 자체가 친구들에게 엄청난 죄책감과 미안함, 무엇을 해줘야 하나 쩔쩔매는 친구들 앞에서 늘 의연해야 했던 책임감 같은 것 때문에 솔직해질 수 없었던 게 있었어요. 감독님의 카메라만큼은 누구의 편도 아니고, 때로는 누구의 편이 되면서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꿋꿋한 제삼자였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수많은 이야기가 웃음과 함께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감독님이 늘 촬영하고 분위기가 안 좋으면 저를 따로 카페에 데려간다든지, 엄마와 따로 이야기 나눈다든지, 그런 노력을 정말 많이 하셨거든요. 저는 덕분에 긴장이 한번 풀어지고 그 과정에서 감독님에 대한 신뢰가 쌓였던 것 같아요.

이옥섭: 신기하게도 화면에서 그게 느껴졌어요. 다른 사람이 봤을 때 ‘되게 세게 말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너머에는 무언가 있다는 것이 다 화면에 담겨 있었던 것 같아요.

김보람: 근데 채영 씨가 ‘나의 고군분투를 알고 있었다니!’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웃음)

이옥섭: 이런 대화를 한 번도 안 해보셨어요?

김보람: 어느 순간에는 서로 그런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하기보다, 정말 일상다반사였거든요. 어디가 맛있고, 그런 얘기만 하지. 우리 촬영 때 어땠다, 이런 얘기는 사실 거의 안 했죠. 우리에게 그냥 지난 일이었으니까요.

박채영: 그런 거 있잖아요. 친구 사이에서도 과거 이야기를 꺼내서 그때 그 감정을 다시 말하려는 게 약간 민망하거든요. 저도 촬영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뒤늦게 그 시간대를 곱씹으면서 아 그때 참 그랬지, 근데 이제 와서 말하기 좀 쑥스럽네, 이런 것들도 되게 많았던 것 같아요.

셀럽 맷: 이옥섭 감독님께서 영화 감상을 다섯 장으로 적어와 주셨는데 아직 말씀 못 하신 부분이 있나요? 김보람 감독님은 혹시 오늘 이옥섭 감독님과 대화 나누는데 어떤 기대감이 조금 있으셨나요?

김보람: 사실 저를 제일 밤잠 못 이루게 한 건 이옥섭 감독님께서 영화를 좋아하셨을까, 그런 게 제일 두려웠죠.

셀럽 맷: 그게 또 되게 떨리는 지점인 것 같아요. 같은 영화감독으로서 작품을 봤을 때 뭔가 불안하죠.

이옥섭: 당연히 너무 좋았어요. 내내 말씀드렸던 것도 다 진심이고요. 심지어 엔딩크레딧까지 좋은 거예요. 저는 제사 지내고 식사하시는 장면을 계속 다시 보고 싶었거든요. 이상하게 두 분의 대화를 멍하니 보고, 엔딩곡을 듣고 또 들었는데 그 여운이 오래 남았어요. 그게 가사에서 ‘당신의 어린 양이 되어 / 슬픔의 배를 가르고 / 어리석은 사랑을 꺼내 보이겠어요’(정우-양)라고 하잖아요. 저는 그 의미를 계속 알지 못하다가 최근에 깨달은 거예요. 제 해석도 있지만 두 분의 해석이 궁금했어요.

김보람: 정우 님의 ‘양’이 상옥 선생님과 채영 씨의 관계, 혹은 제가 자식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너무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최대한 제 감정을 개입하지 않고 영화를 완성하려고 했기 때문에 ‘곡이 너무 센가’하고 고민은 있었지만, 이번에는 어떤 직감 같은 걸 믿기로 했어요. 일단 제 해석은 하나님이 아브라함한테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시험하겠다, 네 아들을 바치라고 하셔서 갔더니,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마음을 아시고 양을 준비해 주셨다, 이런 걸로 생각했어요. 제가 임신하고 출산하면서 생명의 양육에 대해 이전까지 해보지 않은 생각들을 하게 됐거든요. 오로지 나에게 의지해서만 살 수 있는 존재를 받는 것에 대한 너무 싫은 감정, 그렇지만 그것을 할 수밖에 없는 이상한 종류의 사랑인 거죠. 자식은 엄마한테 제일 듣기 싫은 말이 ‘아프지 마’이지만, 엄마로서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저 어리석은 사랑’밖에 없구나. 이런저런 제 감상에 취해서 그 곡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박채영: 저는 아직 저 곡을 해석할 만큼 제가 성숙한 사랑을 못 해봤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저는 감독님께서 아이를 감당하는 모습을 보면서야 엄마가 내게도 그랬겠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 같거든요. 그래서 감독님과도 이야기했었지만 저건 아프지 말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아프지 마’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는 그 마음의 경지를 아직 저는 감히 받아보지 못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가 꽂힌 부분은 첫 소절인 거죠. ‘내가 잘못했어요’, 엄마한테 자존심을 다 내려놓고 저 말을 할 수 있을까, 듣고 싶은 말이었던 때도 있지만 지금은 진짜 하고 싶은 말인 것 같아요. 내가 진짜 잘못했어, 내가 진짜 잘못했어요, 나 좀 살아보겠다고, 내가 살기 위해 한 거지만 그래도 그렇게 당신의 삶을 괴롭게 한 건 정말 미안해, 이런 복잡한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 첫 소절이 가장 마음을 울리는 것 같아요.

이옥섭: 감사합니다. 제 감상을 말하기 쑥스러울 정도로 좋네요. 저는 어떤 생각이 많이 들었냐면, ‘슬픔의 배를 갈라 어리석은 사랑을 꺼낸다’고 하잖아요. 그게 뭘까를 떠올렸어요. 요즘 제 걱정은 주변에 누군가 떠나는 것의 두려움이거든요. 그래서 누군가 떠나도 나는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낼 수 있어, 라고 계속 훈련하고 있어요. 근데 슬픈 이유가 너무 어리석게도 내가 그 사람을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이야기하지 못해서 미리 슬픈 거예요. 지금으로서 저는 저희 할머니가 수술받을 때도 두렵고, 떠날 때도 진짜 무서울 거잖아요. 근데 할머니한테 한 번도 대화다운 대화를 시도하기보다, 할머니가 떠나면 안 된다는 무서움이 먼저 드는 게 어리석다고 생각했거든요. 오늘도 그랬어요. 할머니 만나고 왔는데 말을 제대로 못 하고 와서 참 어렵다고 생각했던 하루였어요.

김보람: 특히 가족관계의 사랑은 진심을 말하기 힘든 것 같아요. 그래서 항상 내가 어리석은 건지 헷갈리죠.

 

 

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 스틸컷

 


관객: 안녕하세요. 저도 섭식장애를 어느 정도 겪기도 했지만, 두 분의 관계처럼 이걸 겪고 있는 제 지인들에게도 주변에 진지하게 고민해 주고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가까운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함부로 먹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기 어렵거든요. 근데 저는 주변인들을 제가 어떻게 바꿔보고 싶어요. 어떤 태도를 권해야 할까요?

박채영: 저는 당사자이기도 하지만 주변인이었던 사람으로서 어려운 질문인 것 같아요. 근데 섭식장애라고 특정하는 것 보다, 몸이 아프다는 것 또는 인생의 큰 변화를 겪은 어떤 사람이 그 상흔으로 고통받고 방황하고 있을 때 주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일상을 반복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자리를 지켜주고, 돌아올 자리를 만들어 주는 거예요. 저는 먹지 않았을 때도 굳이 지켰던 게 식사 시간이거든요. 한국 사회에서 식사 자리는 소속감을 확인하는 자리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제가 잘 먹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이 그 자리에 있는 게 저한테 되게 중요했어요. 그 시간으로부터 소외당하지 않는 느낌이 되게 의미 있었던 것 같아요. 숨거나 혼자 먹는 분들도 있지만, 그렇게 하다가도 집으로 돌아갔을 때 소속될 시간이 있다는 거요. 아픈 건 분명 주변에 큰 짐이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지되는 무언가가 있을 때 회복 탄력성이 그나마 좀 생기는 거죠. 그것이 저한테는 매일매일 주어지는 기회처럼 느껴졌어요. 이게 주변 사람들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 사실 삶의 주도권에 있어서 가장 특효약은 외국 생활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안타깝게도 일찍 들어오시게 되기는 했지만, 브리즈번에서의 생활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혹시 극복에도 도움이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박채영: 이건 진짜 좀 신기한 건데, 저는 외국 여행을 하면 증상이 없어져요. 브리즈번 갔을 때도 저는 비건을 시작했고 너무 잘 지냈어요. 근데 길면 한 달 정도 유효하고 그다음부터 증상이 계속 반복되더라고요. 저는 외국 생활에 대한 동경이 되게 컸거든요. 어릴 때부터 모든 어른으로부터 “채영아, 너는 사주에 물 건너가서 살아야 한대.”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저는 꼭 외국에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지 못하면 제 인생의 실패라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근데 이런 슬픔을 모국어로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이걸 희생할 만큼 좋은 삶인가 하는 고민을 하게 했어요. 사실 워킹 홀리데이라는 건, ‘홀리데이’하고 싶지만 사실 ‘워킹’이 삶이거든요. 저는 주 오십 시간 이상 일했어요. 그리고 제가 호주에서 뼈저리게 느꼈던 건, 동양인 젊은 여성은 이 지구상에서 최하위라는 사실이에요. 똑같이 영어를 못해도 프랑스인과 한국인을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다르거든요. 특히 성인 백인 남성들의 가르치려는 말투 같은 것들이 되게 거슬렸어요. 그렇다면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한국에서 비슷한 삶을 살 거라면 이왕 한국에서 모국어를 쓰면서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관객: 이렇게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어떻게 알게 되셨고, 언제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보람: 섭식장애가 되게 오해가 많은 병이고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캠페인적 목적으로 다양한 경험자와 전문가의 이야기, 역사적 맥락, 대화까지 하는 도식적인 다큐를 찍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모든 사람이 본인 역사와 발병하게 된 맥락이 다르고, 전문가 또한 치료의 방법에 대해서도 많은 입장 차이가 있어서 혼란스럽더라고요. 그리고 거의 공통으로 인터뷰하신 분들의 이야기 끝에는 항상 가족 문제, 특히 엄마와의 어떤 문제들이 있었어요. 그 와중에 무주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피의 연대기 상영 요청이 와서 갔고, 관객과의 대화에서 마지막 질문으로 차기작이 무엇이냐고 하셔서 섭식장애에 관해 작게 준비하게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그 학교에 저를 초청하신 상옥 선생님께서 저를 주차장까지 따라오셨어요. “우리 딸이 십 년 넘게 섭식장애를 앓고 있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계기로 두 분을 만났고 각자 인터뷰를 했는데 그 안에서 나오는 수수께끼 같은 말들이 있었고, 두 분께 더 호기심이 생겼어요. 얼마 전에 인터뷰로 “이 모든 과거 영상이 있는 걸 인지하고 프로젝트를 시작했냐”라고 여쭤보셨는데, 저는 일 년이 지나도록 이런 영상이 존재하는지 몰랐거든요. 제가 피칭할 때도 심사위원분들께서, “그래서 이 과거를 어떻게 보여줄 거냐”라고 하시더라고요. 할머니 이야기도, 그 영상들이 있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면서야 가부장제의 맥락 속에서 여성의 몸에 남긴 어떤 궤적이 있구나,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런 게 있다’는 뉘앙스 정도는 영화에서 만들 수 있겠다고 갈피가 잡혔던 것 같아요.

 

관객: 섭식장애를 개선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도 있지만, 영화를 봤을 때 저는 사실 이해가 되는 거예요. 채영 님이 왜 먹는 게 힘들었는지, 상옥 님은 왜 최선의 삶일 수밖에 없었는지, 두 분 각자의 삶을 담은 영화가 굉장히 의미 있게 다가왔어요. 지금까지는 과거를 조금 이해해 보는 시간이었다면, 채영 님께서 앞으로 살고 싶은 삶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했어요.

 

박채영: 저는 일단 영화와 책이 나온 이상, 섭식장애와 무관하게 살 수 없게 점을 찍었다고 생각해요. 최소 내년까지는 섭식장애와 관련해서 계속 무언가를 하고 싶어요. 한국에서는 이게 편견도 많고, 보험처리도 안 되고, 이것을 정체성으로 볼 것이냐는 논의도 있고, 완치의 기준도 그렇고, 되게 많은 담론이 있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하고 계속 목소리 내는 사람으로 있고 싶습니다. 올해 ‘섭식장애 인식주간’이 열렸어요. 내년에도 할 것이고, 일차적으로는 앞으로 지속해 나가는 것이 저한테 중요해요. 두 번째로는 저희 엄마 세대 여성들의 삶에 대해서 조금 더 알리고 싶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셀럽 맷: 이제 마무리를 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이옥섭 감독님은 오늘 어떠셨나요?

 

이옥섭: 좋은 영화를 만나면 삶과는 별개로 이게 계속 지배하거든요. 앞으로 몇 주 더 좋은 느낌으로 지배당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요. 주변에 많이 이야기 해주시고, 채영 님의 책도 읽으시면 더 깊게 채우실 수 있을 거예요. 상옥 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기 때 신던 신발 자국처럼 가지런히 종이 위에 놓여있다.’라는 대목이 좋았거든요. 한 번씩 사서 읽어주세요. 오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보람: 책을 읽으시면 영화에는 정말 백분의 일도 안 나왔다고 생각하실 거예요. 단순히 박채영이라는 사람의 개인 서사가 아니라 한국 여성들이 어떠한 궤적을 통해 살아왔고, 그 관계들이 어떻게 역동하는지 여실히 볼 수 있는 기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이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더 많은 분과 만날 수 있게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셀럽 맷: 한 분씩 책을 언급해 주셨는데, 아무도 제목은 말하지 않으셨어요. (일동 웃음) 책 제목은 『이것도 제 삶입니다』예요. 주변에 많이들 추천해 주시길 바라고, 마지막으로 채영 님 말씀 듣고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채영: 오랫동안 이 영화와 책을 통해 더 많은 여성을 만나는 게 제 꿈이고, 저는 전국 팔도 다 다니고 싶어요. 그리고 이건 제 생각인데 저는 정말 한국 여성들이 강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스스로 되게 자부심 가지면서 서로를 독려하는 동지로 오래오래 살아남았으면 좋겠어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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