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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물꽃의 전설〉인디토크 기록: 바다의 안색을 살피듯이

by indiespace_가람 2023. 10. 23.

바다의 안색을 살피듯이

〈물꽃의 전설〉 인디토크

 

일시 2023. 9. 9(토) 오후 1시 상영 후

참석 고희영 감독, 김형선 사진작가

진행 김경란 아나운서

 

*관객기자단 [인디즈] 안민정 님의 기록입니다.

 

 

바다에도 요령이 있다고 말하는 영화. 하지만 영화를 연출한 고희영 감독의 시간에는 어떠한 요령도 없었다. 영화를 만드는 데 걸린 6년의 시간만큼이나 깊고 솔직한 이야기가 오간 주말 오후의 인디스페이스. 김경란 아나운서가 사회를 맡았고 고희영 감독과 김형선 사진작가가 자리했다.  

 

 

김경란 아나운서 (이하 김경란): 팬으로서 이 자리에 오늘 함께하게 됐습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물꽃의 전설〉 어떻게 보셨을 지 참 궁금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지금 가슴 속에 많은 감동과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이 자리에 앉아 계시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 또한 〈물꽃의 전설〉을 보고 영화가 어떻게 이렇게 잔잔하면서도 먹먹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그 때 제가 느낀 감정은 아마 자연이 주는 감동에서 온 것이겠죠. 인간이 만들어 놓은 어떤 현란하고 화려하고 것보다 자연이 주는 감동이 이렇게 여운이 깊고 가슴이 먹먹하게 만든다는 것을 배웁니다. 또 그 자연에게서 삶을 배운 한 인간의 발자취를 따라간다는 것, 그 삶을 본다는 것은 바로 이런 느낌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영화 봤던 기억이 나는데요. 두 분께 각각 개봉 소감을 들어볼게요.

 

고희영 감독 (이하 고희영): 이 영화가 92분짜리 영화지만 만드는 데는 6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 저희 제작진들이 굉장히 고생을 했는데,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오늘처럼 관객분들과 만나는 순간을 꿈꿨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데 또 막상 이 순간이 오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고요. 두려움도 있고 설렘도 있고 마치 해녀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바다의 안색을 먼저 살피듯이 관객분들이 어떻게 보셨나 이런 것들이 늘 궁금합니다. 잘 봐주셨기를 바라고요. 이따가 또 질문하는 시간들도 있으니까 그때 또 많은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김형선 사진작가 (이하 김형선): 저는 한 10만 관객을 목표로 했거든요. 그런데 관객 수가 너무 안 들어서 좀 참담하고. (웃음) 결과는 개봉 후에 관객으로 증명이 되니까, 제가 그 부분은 걱정 말라고 감독님께 얘기 했었어요. 왜냐면 제가 촬영했으니까요. 그랬는데 참담하죠. 여기 와 계신 관객 여러분들께서 주위에 많이 홍보를 해 주셔서 남은 기간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하는 그런 바람입니다.

김경란: 네. 보신 분들이 이런 시대에 우리의 마음을 이렇게 채워주는 영화가 있더라, 하고 주변에 얘기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뒷심을 한번 믿어보면서 지금부터 이야기를 이어나가 볼게요. 두 분이 사실 오랜 인연은 아닙니다. 근데 만나신 계기가 궁금해요. 어떻게 만나게 되셨어요?

고희영: 저는 이 영화 전에 〈물숨〉(2016)이라는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게 2016년에 개봉한 영화였는데 그 영화도 한 7년 동안 제주도 우도에서 해녀분들을 촬영 했었어요. 근데 사실 해녀분들 촬영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굉장히 폐쇄적이고 강한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말 말 그대로 돌을 던지시는 분도 계시고 카메라를 흔드시기도 했죠. 저는 고향이 제주도인데도 그랬어요. 그렇게 한 2년 동안은 아예 촬영을 못하고 제가 직접 해녀분들 나오실 때 그물 끌어들이고, 음료수 들고 서 있고 했어요. 그 후에 5년 간 촬영을 해서 〈물숨〉을 만들게 됐죠.

그래서 그 누구보다 해녀들을 촬영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어요. 이번에는 성산일출봉 앞에 있는 우도라는 섬에서 촬영을 했어요. 거기서 열심히 욕을 먹으며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또 저쪽 바다에서 한 남자가 엄청나게 욕을 먹으면서 돌아다니고 계셨더라고요. 그 분이 바로 이 분(김형선 사진작가)이셨습니다. (웃음)

 

 

영화 〈물꽃의 전설〉 스틸컷

 

 

김경란: 거의 비슷한 시기였군요.

고희영: 네. 그런데도 그 때는 전혀 몰랐죠.

 

김형선: 2016년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유네스코 행사에서 데이비드 앨런 하비(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그룹 매그넘 포토스 소속 작가), 에바 알머슨(스페인 출신 일러스트 작가)과 공동으로 해녀와 관련된 사진전에 참여했었어요. 그 때 고희영 감독님과 처음 알게 됐습니다.

 

김경란: 그렇게 사진을 찍으시다가 이번 〈물꽃의 전설〉을 촬영하게 되신거군요. 그런데 사진과 영상 촬영을 하는 입장에서, 해녀라는 교집합이 있지만 그래도 차이를 느끼셨던 부분은 없을까요?

김형선: 사진은 굉장히 정적이고 혼자 작업을 해도 괜찮은데, 영상은 제가 해오던 것도 아닐뿐더러 또 이게 극영화가 아니고 다큐멘터리잖아요. 그러다 보니 예산적으로도 힘들었죠. 그런데 감독님께서 해녀라는 공통점이 있으니 사진 말고 영상을 찍으라고 감언이설을 하신 거예요. (웃음)

 

김경란: 어떤 감언이설이었는지 궁금한데요. (웃음)

 

김형선: 제가 해녀 사진을 찍으면서 제주 전역을 다녔는데 우도가 그 중에서 가장 폐쇄적이에요. 그래서 가장 힘들기 때문에 제일 마지막에 찍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마침 감독님을 행사장에서 만나서, 감독님, 에바 알머슨과 저 이렇게 셋이서 우도에 내려갔어요. 고 감독님이 거기에 계신 해녀 분들을 소개시켜 주셔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하셨거든요.


김경란: 지역 선정이 탁월하셨네요. (웃음)

김형선: 왜냐하면 해녀분들을 촬영하는 게 너무 어렵다는 걸 몇 년에 걸쳐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들어가서 촬영을 하기 시작했죠.

고희영: 저는 억울한데요. 이건 그 누가 봐도 명백한 윈-윈 아닙니까?

김경란: 오늘의 관전 포인트 대충 아시겠죠? 두 분이 어떻게 해서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되셨는지,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과거사를 여러분 듣고 계십니다. (웃음) 그런데 작가님께도 매혹적인 제안이었을 것 같아요.


김형선: 저는 영상을 따로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영상을 찍고 싶기도 하고 또 해녀를 영상으로 기록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배우면서 촬영을 하다 보니 부족한 부분도 있고 완성도가 좀 떨어지는 부분들도 있다는 게 굉장히 속상했어요. 그래서 이번 작품이 개봉하고 나니 더더욱 다음 영화를 찍을 때는 좀 더 영상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고희영: 저는 김형선 작가님의 해녀 사진을 보고 정말 반했어요. 그 동안 봤던 수많은 해녀 사진과는 확연하게 달랐거든요. 첫 번째, 배경에 바다가 없었어요. 너무 놀랐어요. 모든 사람이 다 바다를 배경으로 찍잖아요. 그래서 처음 만나자마자 물어봤습니다. 왜 뒤에 바다가 없느냐고. 그랬더니 해녀를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뒤에 배경을 지우고 해녀에 집중하도록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스튜디오에서 찍었냐고 물어봤더니 그게 아니라 그냥 흰 천을 들고 다니시면서 찍었대요. 그러니까 해녀 분들이 물질하러 들어가시면 하루 종일 기다렸다가 나오시면 흰 천을 뒤에 펼쳐서 찍은 거예요. 해녀 분들이 얼마나 욕을 했겠어요. 정말 힘들어 죽겠는데 누가 와서 아침부터 앉아 있다가 흰 천을 들이대면서 사진을 찍으면요. 그렇게 어렵게 찍은 사진들이 이후에 영국 가디언즈에 실렸던 것이고 이분이 보는 해녀에 대한 본질과 그 이면이 담겨있는 것 같아서 저도 제안을 했던 거죠. 그 해녀를 봤던 눈이라면 뭔가 다른 걸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하지만 사진은 정말 완벽한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이잖아요. 조명 하나하나 세팅이 돼야 촬영을 하는데 다큐멘터리는 그렇지 않단 말이예요. 뭔가 돌발상황이 일어나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 때 조명을 언제 치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계속 빨리 찍어달라고 하고 작가님은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찍으라는 얘기냐, 이렇게 설왕설래를 꽤 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상황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시고 이제 자신이 갖고 있던 걸 버리시더라고요.
이건 제가 자랑하고 싶은 건데 저희 영화가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됐을 때, 이 영화는 무엇보다 숨막히게 아름답다 라는 평을 해 주셨어요. 영상을 보시고 너무 좋다는 분들이 계셔서 아마 작가님도 지금은 후회 안 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물꽃의 전설〉 스틸컷

 

 

김경란: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왔던 작업의 방식을 한순간에 놔 버린다는 건 사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죠. 지금 얘기를 듣다 보니 문득 궁금한 게, 그래서 작가님은 촬영한 것 중에서 이 순간은 내가 생각해도 뿌듯하다 했던 장면은 뭘까요?

김형선: 원래 제가 이전에 광고 사진을 찍을 때는 어시스트도 한 두세 명 데리고 다니면서 모든 상황을 다 세팅을 하고 촬영을 했어요. 그런 환경에서 한 30년 동안 작업을 했는데 저도 쉽지 않았죠.
카메라도 3대를 들고 운전해서 내리자마자 상황이 있으면 들고 뛰어야 됩니다. 그렇게 뛰어서 촬영을 해야 되는데 이제 한 번은 물속에서 상황이 생겼어요. 근데 이제 감독님은 저 보고 바다에 들어가라는 거죠. 근데 파도는 치고. 들어가서 죽든 자존심을 지키든 둘 중 하나였어요. 결국은 들어가서 촬영을 했죠.

그 장면이 바로 현순직 할머니가 바다에서 보말을 채집할 때 채지애 해녀가 올라가는 장면이에요. 바다 안에서 찍어야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김경란: 그렇게 무리를 해서 입수해 주신 덕분에 저희가 가슴으로 와닿는 장면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영화를 보면서 숨이 막히게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그 중에 인상깊었던 부분이 사실은 바다가 아니라 달이었어요. 영화 속에 참 다양한 달의 모습이 보이는데요. 이 달이라는 요소를 영화 속에 담으신 것은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어요.


고희영: 어떤 평론가분이 달이 나오는 순간을 세셨더라고요.  7번 들어갔는데요, 달이 정말 중요했습니다. 해녀들은 태양과 전혀 상관없이 달의 시간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집에 가보면 달력에 다 물때가 적혀 있어요. 그렇게 달의 시간으로 살아가는 분들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고, 그래서 달의 이미지를 잘 찍었으면 좋겠다고 처음부터 의논을 했어요.

근데 참 반성을 많이 했던 게 저희가 촬영할 때 보통 기계적으로 어디 가면 무조건 일주일 찍거든요. 그래서 일출은 참 많이 찍었는데 제가 바다에서 뜨는 달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달은 어디서 어떻게 뜨는지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했는데 이게 또 만만치가 않더라고요. 왜냐하면 저희는 바다에서 딱 올라오는 바다와 달의 이미지를 찍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이 프레임에 담기게 세팅해 놓으면 이미 달이 올라가 버리거나 하는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김형석 작가님이 찍느라 고생이 많으셨죠.

김형석: 고생은 안 했습니다. (웃음) 어떻게 보면 일출은 찍는 시간이 정해져 있잖아요. 그런데 월출은 저도 본 적이 없었던 거예요. 왜냐하면 서울 도심에서 바닷가에서 달이 뜨는 걸 볼 수가 없었죠. 그런데 제주도는 찍기가 아주 용이해요. 달이 뜨는 방향을 생각하고 바닷가를 가면 찍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오히려 잘 담을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우선 시간이 계속 바뀌고, 방향도 바뀌었어요. 그리고 제주도 바닷가에는 오징어배가 굉장히 많잖아요. 달을 찍으려고 하면 이 오징어배의 불빛 때문에 달을 잡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유일하게 1년에 두 번 찍을 수가 있습니다. 고요한 적막한 바다는 오직 구정 때와 추석 때. 그 때는 오징어 배가 안 뜨거든요. 그걸 1년 만에 알게 된 거예요. 그렇게 1년 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적막한 바다를 기다렸다가 구정과 추석 때마다 꼭 내려가서 몇 번에 걸쳐서 달을 촬영했습니다. 여러분이 마지막에 보셨던 할머니의 바다는 저희가 2년 만에 촬영한 겁니다.

그때 근데 너무 재미있는 게 나중에 색보정 작업을 하잖아요. 거기 계신 실장님께 저희가 저 달 찍으려고 엄청 고생했다고 얘기를 했더니, 왜 그러셨어요? 하면서 갑자기 CG로 0.1초 만에 달을 딱 끼워주는 거예요. 감독님이 찍은 게 더 CG 같더라고요.
저는 그래도 CG로 띄울 수 있는 세상이 됐다고 하더라도 진짜 찍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 때 고요한 망망대해에서 아무런 연출 없이, 할머니가 마치 어떤 것에 이끌려가듯이 그 바다를 보고 돌아오시는 것. 그 상황을 촬영하면서 감독님과 둘이서 우리가 이래서 고생스럽지만 다큐멘터리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희영: 그 장면이 이렇게 탄생했고, 우리가 만난 그 장면 뒤에 이런 이야기들이 있다는 걸 아니까 부자가 되는 기분이에요. 저희도 같이 더욱 깊어지고 애착이 가고, 작품이 소중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김경란: 네. 이제 관객 분들 질문도 받아보겠습니다.

 

 

 

관객: 우리 삶 속에서 어떻게든 아름다운 장면을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들어서 관객들한테 전달을 한다는 것 자체가 힘드실 것 같습니다. 그런 고통을 어떻게 이겨 내시는지가 궁금해요.

고희영: 저는 그 슬픔도 단련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참 이상하게 슬픈 건 기쁨으로 치유가 안 되는 것 같아요. 슬픔은 슬픔이 치유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늘 하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그 해녀 삼촌들이 자기 딸이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는데도 다시 그 바다로 나간다고 했을 때, 그것은 슬픔 보다는 슬픔 후의 힘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그 슬픔에 머물지 않고 또 한 발 나서는 그 분들의 모습에서 제가 더 위안 받고 힘을 얻었던 것 같아요.

관객: 다음 작품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고희영: 저희가 내년에는 4﮲3과 여성 희생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생각이에요. 여성들을 가장 잔인하게 살해한 한 가해자를 추적하는 〈4월 초사흘〉이라는 작품을 거의 다 완성했고요. 그리고 9월에는 일본에서 또 새로운 작품에 들어갑니다.

김경란: 그럼 끝으로 두 분께 간략하게 질문 하나씩 드리고 마치도록 할게요.

먼저 우리 김형선 작가님께 여쭤보겠습니다. 지금까지 계속 상업 사진작가로 활동하시다가 또 순수 작업을 하시고, 또 거기서 영상이라는 새로운 분야로 발을 디디셨잖아요. 김형선 감독님께 이제 영상 작업이란 어떤 건가요?

김형선: 제가 영화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래서 어떤 영화를 촬영한다는 로망은 있었는데 직접 하게 되리라는 건 생각도 못했어요. 왜냐하면 사진 하나만 표현하는 데 있어서도 전력 투구를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우연치 않게 시작은 했는데, 하면 할수록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을 해마다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다음 작품에도, 또 그 다음 작품에서도 기존보다 훨씬 더 끌어올려서 제가 촬영한 영화가 베를린도 가고 칸도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품고 작업하고 있습니다.

김경란: 네. 설레고 기분 좋은 답변이었습니다. 고희영 감독님은 그렇게 바쁘게 사시지만 정작 영화 안에서는 시간이 묶여 있습니다. 영화 속에 굉장히 긴 시간을 담아내시기도 하고 시간을 거의 관통하면서 사시는데요. 고희영 감독님에게 이 삶의 시간이란 어떤 건가요?

고희영: 그냥 뭐라고 할까요. 저는 사실 제가 보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진실은 항상 제가 보는것 이면에 숨겨져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해녀도 어릴 때부터 늘 바다에서 봤지만 그 분들을 제대로 본 적은 없었거든요. 그래서 본다는 것과 보여지는 것 사이에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는 걸 알았죠. 그런데 그 이면을 보기 위해서는 시간이 굉장히 필요하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좀 느린 사람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우리가 빨리 보고 빨리 판단하는 시대가 될수록 저는 더 늦게, 천천히 그 이면을 바라보고 싶었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평소에는 잘 안 보이는데 출장 다녀오면 냉장고 손잡이에 손때 같은 게 보이잖아요. 옆에 있을 때는 잘 안 보이는데 말이죠. 그게 아마 시간이 우리에게 주는 눈인 것 같아요. 그래서 좀 멀어져서 보려고 하고, 이면을 보려다 보니까 저의 시간은 촬영할 때만큼 굉장히 느리고 많이 늘어나 있습니다. 그래야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이 영화에서도 소멸해가는 것들에 대한 기록을 하고 싶었습니다. 청정바다에서만 빛나는 물꽃도 점점 시들어 가잖아요. 그래서 제가 세 가지 소멸이 이 영화에 담겨 있다고 얘기하는데, 물꽃과 그리고 제주 해녀들. 그리고 마지막은 우리 주인공 할머니가 쓰셨던 제주어입니다. 할머니들은 100% 제주어를 쓰고 계시지만 제주어도 소멸 위기 5등급 중에 4등급이에요. 지금 제주어를 쓰실 수 있는 분이 한 5천 명에서 많게 잡아야 7천 명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우리가 지킬 수 있었지만 지키지 못한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 이면에 이런 이야기를 좀 담고 싶었습니다. 근데 그게 시간이 걸리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거더라고요. 저의 시간은 그렇습니다.

김경란: 세상이 요구하는 시간을 따르지 않고, 나의 호흡과 내가 바라보는 속도로 이 세상을 담아 주시는 두 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자리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이것으로 관객과의 대화를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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