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영혼의 가장 밑바닥에는 사랑이
〈너와 나 〉 조현철 감독 인터뷰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소정 님의 글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죽음들이 있었던 2014년과 〈너와 나〉의 이야기를 이루는 여러 우연들이 속속 겹쳐지던 2016년, 그리고 영화가 세상에 공개되는 지금 2023년까지, 〈너와 나〉라는 이야기가 길어 올려지고 다듬어지고 세상으로 확장되는 모든 시간들을 가늠해 보았다. 통과해 온 삶의 순간들을 포착하고 재구성해 하나의 눈부시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만들어 낸 조현철 감독과의 대화를 통해 영화 바깥의 또 다른 이야기들의 편린을 붙잡아 보았다.
〈너와 나〉가 개봉을 곧 앞두고 있어요.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영화에 대해 고민하셨고 개봉하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리셨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이미 관객들에게 선보이신 자리도 꽤 있었지만 이제는 더 많은 분들이 볼 수 있게 되었는데요. 개봉하게 된 소감은 어떠신가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할 때만 해도 반응이 궁금하기도 해서 조금 떨렸었어요. 지금은 한 번 경험해서 그런지 그냥 담담한 것 같아요. 애초에 작업을 시작할 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 어떤 한 사람한테 말을 건다는 느낌으로 시작했어서 그런 것 같아요.
〈너와 나〉가 상영되었던 영화제마다 꽤 많은 분들께서 관심을 가져주셨어요. 감독님께서 생각하시는 〈너와 나〉만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그동안 현장 경험이 좀 쌓였는데 그간 접했던 영화나 이야기에서 갈증을 느꼈던 것 같아요. 제가 어렸을 때 좋아했던, 엄마가 읽어주셨던 동화책 같은 느낌을 주는 이야기들이 요즘 한동안은 없다고 느꼈었거든요. 특히나 최근 들어 개인적으로 위안을 얻거나, ‘이게 우리가 사는 삶이다’라고 말해 주는 작품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 스스로 그런 이야기를 보고 싶다는 어떤 욕망이 있었어요. 스태프들도 똑같은 피로감을 느끼던 와중에 작품을 하면서 저와 비슷한 위로를 받았던 것 같아요. 관객분들도 같은 마음을 가져주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를 만든다는 일은 정말 많은 사람의 노력이 드는 일이라는 것을 최근 들어 더욱 새삼스럽게 깨닫고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아무리 느끼더라도 실천에 옮기기까지는 강한 의지와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너와 나〉를 끝까지 완성하고 개봉해서 공개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있었다면 무엇일까요?
저뿐만 아니라 이 영화에 참여한 모든 스태프들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또 혼자서 시나리오를 쓸 때는 제 주변에 있던 많은 생물들이 위로를 주었고요. 저를 끌어당기는 것 같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들, 결국에는 사랑 덕분에 이렇게 완성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전작 〈부스럭〉에서도 그렇고 현실과 꿈, 과거-현재-미래 등 시간성과 공간성의 경계를 흩뜨리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작업을 이어오신다고 느꼈습니다. 〈너와 나〉는 하은이 아니라 세미의 시선으로 영화가 흘러가는데요. 그런 지점에서 말씀드린 ‘경계들이 무너지는 것’이 역시 영화에서 보였습니다. 감독님께서 이러한 작업 방식을 평소 중요하게 여기시는지, 이런 작업들을 왜 중요하다고 여기시는지 궁금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영화를 구상할 때 ‘하은이의 꿈에 찾아온 세미’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것이 삶이다’라고 종종 느껴지는 순간순간이 있잖아요. 그럴 때마다 저는 동시에 ‘꿈 같다’는 생각을 항상 하거든요. 현실과 스크린 사이의 경계도 이런 느낌에 속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제가 하은이에게 세미를 되돌려 보내는 작업을 하면서 파생된 어떤 행위들로 인해 실제로 어떤 순간에는 세미가 현실과 동등한 지위로 우리에게 다시 돌아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전체가 하은의 꿈 같기도 하고요, 또 영화 속에서 세미가 불길한 꿈을 꾸는데 그 꿈에서 세미가 하은이 되어서 등장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서로의 꿈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주신 게 아닐까 싶었어요. 다른 인터뷰에서 종종 언급하셨던 애니메이션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의 구조와도 비슷하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그 이야기에서도 계속 시간과 공간을 거스르면서 소중한 사람을 구하러 간다는 지점이 두드러지잖아요. 그런 지점들에서 영향을 받으신 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어서 세미와 하은이에 대해서 간단한 질문들을 드리고 싶습니다. 책가방을 멘 꼬마 아이 둘이 두 번 정도 등장하는데요. 이 아이들을 세미와 하은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중간에 공룡을 웅덩이에서 구하면서 ‘다은이가 브라키오사우루스를 구했어’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인물이 무언가의 그림자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초등학생 아이들도 세미와 하은의 과거일 수도 있고, 병원에 나오는 의사와 할머니 둘도 세미와 하은의 미래일 수도 있고요. 꿈을 꾸고 무서워서 밖으로 나온 손녀도 역시나 누군가의 반영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강아지 진식이가 다양한 장소에 여러 번 등장하더라고요. 밤의 길거리에서, 학교 운동장에서, 그리고 세미가 찰흙 인형들을 내려놓았던 곳에서 나타나는데요. 하은이가 잃은 제리의 모습 같기도 했어요. 이것도 역시 그림자 같은 느낌을 내려고 의도하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네, 특히나 개들 같은 경우에는 더 의도적으로 아이들을 떠올릴 수 있게끔 했어요. 세미가 옮겨 놓는 지점토가 나오잖아요. 아이들이 각자 저마다 다른 것처럼 지점토를 제각각의 감정으로 만든 것이고, 저희는 거기에 영혼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그런 아이들의 손길이 있었던 것들에 진식이가 닿음으로써 하나의 메타포가 되는 것이죠.
영화를 굉장히 치밀하게 설계하시고 연출하신 것 같아서 저도 영화를 반복해서 보며 새로운 지점들을 계속 발견할 수 있었어요. 중간중간 하은이가 ‘인플루언서’를 ‘인플루엔자’라고 한다든지, ‘프라이버시’를 ‘프라이드’라고 한다든지, ‘MBTI’를 ‘MBA’라고 한다든지 하는 말실수들이 재밌었는데요, 혹시 이 부분은 감독님께서 의도한 부분인지 아니면 배우들의 애드리브로 탄생한 장면인지 궁금합니다.
의도를 한 부분이었고요, 하은이가 속을 알 수 없고 웃긴 캐릭터잖아요. 그래서 쟤가 하는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정말 몰라서 저러는 건지, 아니면 웃기려고 일부러 틀리는 건지 그런 느낌을 주기 위해서 계속해서 그런 뉘앙스의 대사들을 쓰려고 했어요.
제목에 관해 여쭤보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너와 나’는 사실 ‘우리’라고도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왜 ‘우리’라는 말로 하나로 묶지 않고 각자 보려고 하셨는지 궁금했습니다. 또한 영화에 다양한 생물종들이 나오는 만큼 ‘너’와 ‘나’라는 대명사에 이 모든 것들을 포함하려는 의도가 있으셨는지요.
어떤 경계를 희미하게 하고 싶은 것과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아요. 영화의 전반부에서 어쩌면 잠깐 들떴다 사라질 수도 있는 연애 감정을 느끼고 세미가 하은이에게 직진하는데 저는 그런 세미의 감정이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조금 다른 의미의 사랑으로 변하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비단 인간 사이의 사랑뿐만이 아니라, 인간과 다른 종들도 다 포함한 사랑이라고 생각했어요. 굳이 경계를 나누어서 인간에게 어떤 특권을 부여하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너와 나’라는 제목을 정하고 나서 생각을 해보았을 때 항상 그런 느낌이 계속해서 들었던 것 같아요. 나랑 너랑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고, 어쩌면 우리 안에 있는 것들이 서로 비슷하지 않나 하고요.
그런 지점에서 다종다양한 생명체들이 공룡 인형이나 앵무새 키링 같은 소품들로 표현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관련해서 에피소드가 있었을까요.
영화 안에서 소품들이 하나하나 가진 이야기도 있고요, 외적으로도 저희가 준비하면서 나름대로 이야기를 만들어서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던 것들도 있었어요. 어떤 인서트나 정물들을 보실 때 ‘이건 어떤 상징일까, 어떤 메타포일까?’ 생각하시는 것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단순한 사물에 어떤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고, 아이들이 떠나고 난 다음 이 사물들이 또 다르게 보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세미가 꿈에서 돌아올 때 보이는 세미의 키링은 자세히 보시면 약간의 때가 타 있어요. 저희 미술 감독님에게 그 키링을 진도에 가지고 가서 바닷물을 뜬 다음 조금만 담가 놓고 있어 달라는 주문을 했어요. 그런 식으로 하는 의미 부여도 중요했지만, 미술 감독님이 이 영화에 참여하면서 그렇게 진도에 가는 여정을 겪게 될 거잖아요. 그런 과정들도 저희 이야기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시간이 없어서 실제로 가지는 못하셨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소품을 제작해 주셨습니다.
이어서 감독님의 이전 작품들과의 연장선상에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척추측만〉의 경우 이미지가 강렬하고 실제로 감독님께서도 좀비 영화 느낌을 내고 싶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아요. 마찬가지로 〈뎀프시롤: 참회록〉도 복싱이라는 소재가 전면에 드러나면서 장르 영화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럼에도 두 작품 모두 본질에는 사랑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독님께서 방금 사랑과 관련해 말씀해 주신 것처럼, 〈너와 나〉에서는 또 다른 사랑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너와 나〉 속 사랑에 전작들과 비슷하거나 혹은 달라진 것 같다고 느끼는 점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지금도 제가 사랑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이전 작품들에서는 〈너와 나〉 초반부의 세미처럼 ‘직진하는 감정’으로 사랑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죽음에 대한 관점이 새롭게 바뀌었던 개인적인 사건을 겪고 나서 조금 달라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죽음 자체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는데 정말 내일 죽는다고 가정하고 이 모든 것들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하면, 모든 게 단순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세속적인 욕망이나 미움, 분노 같은 것들이 다 제거되고 그 자리에 사랑만 남는 것 같아요. 항상 좋기만 하고 들뜨고 이런 것은 사랑이 아닌 것 같아요. 어딘가 두렵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근데 나를 움직이게 하는 유일한 동력인 것 같기도 하고 또 벅차오르기도 하는 감정인 것 같습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매우 많잖아요. 마찬가지로 감독님의 영화도 논리적/비논리적인 장면들이 섞여 있다고 생각했어요. 영화가 굉장히 직관적이기도 하고 감각적이기도 하다고 느꼈습니다. 또 감독님의 연출 방식을 들으며 '아름다운 것들을 그물로, 체로 걸러내는 것 같다'는 표현이 떠올랐습니다. 어떤 인터뷰에서는 ‘채집’이라는 단어를 쓰셨던 것 같고요. 지금은 〈너와 나〉를 기획하셨을 당시보다는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요. 요즘은 어떤 것들을 채집하고 계시는지, 주로 관심을 두고 계신 것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최근에는 4.3사건으로 죽은 사람들과 제주도의 숲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제주도의 숲이 서로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살아 있다고 느낍니다. 우선 그런 차원에서 숲을 상정해 두고 거기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어요. 어떤 소녀가 건넛마을에 사는 어린 아이의 엄마의 시신으로 추정되는 것을 수레에 끌고 가는 이야기예요. 그 아이와 시신을 만나게 하기 위해서 수레를 끌고 가는, 그리고 그 숲속에서 길을 잃는 한 소녀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혹시 다음 연출작으로 생각하고 계신 걸까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웃음)
머릿속에 계속 남아 있는 이미지 같은 것들이군요. (웃음) 물리 선생님 역으로 박준 시인이 나오셨더라고요.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익숙한 얼굴이 있어 크레딧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이에 관한 비하인드를 돌려주실 수 있을까요?
박준 시인님은 예전에 〈이름들〉이라는 작품으로 알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시인님의 시를 항상 동경하다가 '나도 저렇게 시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와중에 제가 〈너와 나〉를 쓰게 되었고, 학교 수업 장면을 구성했는데 그때 물리 선생님이 박준 시인님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인이 물리학 강의를 한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시적으로 느껴져서 그렇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감독님께서 영화를 연출하시면서 시적으로 접근하려 했다는 이야기를 일전에 읽었습니다. 시적이라는 것이 감독님께 어떤 의미인지 묻고 싶었습니다. 감독님께서 시와 어떤 관계를 맺고 계신지도 궁금했고요.
시적이라는 거… (웃음) 저는 사과를 본다고 했을 때 단순히 사과를 관념적으로 지시되는 ‘사과’라고만 나타내는 게 아니라 이면에 깃든 이야기를 지각할 수 있게끔 해주는 아주 근사한 장치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시는 사실상 인간이 세상을 지각하는 방식을 아주 흡사하게 모방하고 있는 원초적인 매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제가 누군가의 삶을 얘기해야 한다고 했을 때 삶이 담고 있는 진실이 있잖아요. 만약 시적인 방식을 거치지 않고 그걸 다 설명하게 된다면 저는 이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의 얘기를 다 하지 못할 것 같아요. 그래서 시적인 방식을 거쳐서 이 인물이 가지고 있는 어떤 삶의 진실을 얘기할 수 있지 않은가 싶었습니다.
혹시 추천하고 싶은 시도 있으실까요?
루이즈 글릭의 〈야생 붓꽃〉이요. 제가 요새 시골에서 살고 있어 그런지 이 시의 화자가 풀이거나 나무이거나 해서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감독뿐만 아니라 배우로도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배우로서, 감독으로서 이루고 싶은 것들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합니다. 또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것에 대해서 혹시 특별한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별다른 계획 없이 사는 사람이라서 특별한 계획은 없고요. (웃음) 배우는 특정한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에너지를 쏟으면 되는 일이라서 그 외의 시간은 글을 쓰면 밸런스가 잘 맞고 또 좋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여력이 되는 한 잔잔하게 하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너와 나〉를 관람할 관객분들에게 건네고 싶으신 말이 있으실까요?
극장에 와서 보시면 감흥이 몇 배는 더 크게 다가올 거라고 생각해요. 찍을 당시에도 특히나 세미의 클로즈업 같은 경우에 되게 영화적이라고 느꼈거든요. 큰 화면에서 인물이 가진 생생함을 최대로 목격하고, 마치 이 인물이 정말로 살아 돌아온 것처럼 느끼기 위해서는 극장에서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화를 보며 그리고 제작 과정을 찬찬히 살펴 가며 줄곧 떠올린 이미지는 물처럼 흐르는 삶 속에서 그가 무언가를 자꾸만 발견하고 건져내는 모습이었다. 체로 거른 어떤 것들 안에 가장 무겁고 반짝이는 조약돌이 있고 그럼 그게 어쩌면 그가 말하는 사랑이 아닐까 싶었다. 조용하고 수줍지만 확고하고 뚜렷한 믿음으로 만든 꿈결 같은 이야기가 우리의 현실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가 되는 걸 함께 지켜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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