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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즈] 〈안녕, 내일 또 만나〉인디토크 기록: 후회의 가정이 필연을 가리킬 때

by indiespace_가람 2023. 10. 17.

후회의 가정이 필연을 가리킬 때

〈안녕, 내일 또 만나〉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3. 9. 15(금) 오후 7시 상영 후

참석 백승빈 감독, 심희섭 배우

진행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수영 님의 기록입니다.

 

 

‘만약에’라는 말이 가진 힘은 얼마나 거대할까.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가정 아래서는 모든 게 바뀔 수 있다. 만약 그때 달려가지 않았더라면, 내가 조금 더 용기 냈다면, 나를 인정해줬다면. 영화 〈안녕, 내일 또 만나〉는 모두가 해봤을 법한, 과거를 향한 후회의 순간들을 영화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관객에게 다시 한 번 질문한다. “어떤 게 정말 바뀔 수 있었을까?”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 (이하 김현민): 2년 만에 영화를 개봉하게 되셨습니다. 소감과 함께 관객분들께 인사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백승빈 감독(이하 백승빈): 안녕하세요, 〈안녕, 내일 또 만나〉 감독 백승빈입니다. 금요일이라는 소중한 시간에 영화 보러 오신 관객분들께 너무 감사드려요. 영화를 보면 2021년이라고 자막이 크게 뜨잖아요. 저는 이게 2021년에 개봉할 줄 알았는데 2년이 더 걸렸어요. 저희들끼리 2년 동안이라는 공백 동안 등장 인물이 어떻게 지냈을까 생각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심희섭 배우 (이하 심희섭): 안녕하세요, 저는 동주 역할을 맡았던 배우 심희섭입니다. 이렇게 귀한 시간 내셔서 극장까지 와주신 관객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좋은 시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현민: 감독님이 2021년에 개봉할 줄 알았다고 말씀하셨는데, 마음 아프지 않다면.. 왜 개봉이 늦어졌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백승빈: 저는 작업을 끝내고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상영 의뢰를 받았을 때 잘 어울리는 첫 번째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내용과도 많이 맞닿아 있는 부분이라 생각해서 프라이드 영화제에서 공개했다는 것 자체는 자랑스러웠는데… 이후 배급사 만나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제가 적극적으로 배급사를 만나려고 시도했던 것들도 미진한 부분이 있었고, 그러다 보니까 시간이 지나서… 결국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많은 시도를 하다보니 좋은 회사를 만나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김현민: 심희섭 배우님께서는 본인이 찍었던 영화가 2년 만에 개봉을 하게 됐다고 얘기를 들었을 때 어떠셨어요?

 

심희섭: 애착 가는 작품이라 감독님께서 소식을 전해 주셨을 때 너무 좋았죠. 마냥 그냥 너무 기쁘다고 감독님한테 말씀드렸던 기억이 있어요. 보셔서 아시겠지만 제가 많이 나오다 보니 고생한 것도 많아요. 그해 겨울에 정말 추웠던 겨울이었거든요. 현장에서 스태프 포함 다들 고생 많던 영화라 기억에 남고 정이 많이 가는 영화로 남아 있습니다.

 

김현민: 기자회견에서도 애착이 있는 영화라고 말씀 하셨고 오늘도 또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왜 그런지 조금 더 들어볼 수 있을까요?

 

심희섭: 원작인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야기 흐름, 구성 혹은 장르보다 인물들이 하는 말 한마디와 느껴지는 감성이 저랑 잘 맞는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다 제쳐두고 감독님과 작업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바로 했죠. 촬영하면서도 이전보다 더 집중했다고 할까요. 그러면서 느꼈던 것들이, ‘앞으로 배우를 계속하게 된다면 이 작품은 한 지점이 될 수 있을 만한 작품으로 남겠구나’ 였어요. 정말 시작부터 너무 좋았던 영화라서 그런 애착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나 싶습니다.

 

 

영화 〈안녕, 내일 또 만나〉 스틸컷

 

김현민: 감독님의 자전적 요소가 들어간 영화로 알고 있는데, 이 역할을 심희섭 배우님에게 줘야겠다고 생각하신 계기가 있는지 궁금해요.

 

백승빈: 동명 소설 내용이 제가 10대 시절에 겪었던 이야기와 교차되는 지점이 있어서 제 경험인 논픽션과 일종의 팩션이 돼서 혼재돼있어요. 저도 있던 얘기인지 아닌건지 헷갈리는 부분이 있을 정도로요. 초반에 형과 관련한 에피소드들은 실제 제가 경험했던 부분들이고 그 이후 얘기들 어느 정도는 다 픽션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희섭 배우 같은 경우, 〈1999, 면회〉의 김태곤 감독과 친분이 있어서 희섭 배우를 소개 받고 인사 나눴어요. 근데 희섭 배우가 나이를 짐작하기가 어려운 얼굴이잖아요. 동준이 42살인 캐릭터인데 심희섭 배우가 가진 얼굴에 소년의 모습과 청년의 모습까지도 언뜻언뜻 다 있어서 캐스팅하게 되었습니다.

 

김현민: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고 복합적인 정서를 가진 얼굴이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저도 그렇고 관객분들도 다 그렇게 느끼실 것 같아요. 또 심희섭 배우님이 등장하신 장면들에선 긴장감 그리고 미스터리를 느끼게 됩니다. 이번 영화에서는 그런 모습을 다양하게 종합적으로 볼 수 있어서 배우님이 조금 더 애착을 갖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고요. 대구의 교사, 서울의 교수, 부산의 강사 이렇게 세 가지 동준이 있잖아요. 동준 1, 2, 3이 있다고 생각 했는데 순서대로 찍힌 영화는 아니라고 들었지만 그래도 배우님 스스로 어떤 목표나 기준점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미묘하게 다른, 그러면서도 동일성을 가지고 있어야 되잖아요. 어떻게 접근하셨는지 듣고 싶어요.

 

심희섭: 일단 말씀하신 것처럼 세 가지 공간, 다른 이야기와 인물이다 보니까 차이점이 분명히 있어야지만 기본적으로 같고, 그러면서도 이 차이점이 외적으로 보여주는 연기보다 인물로서 그대로 풍겨져 나오기를 바랐던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서울의 동주는 어떤 상황에 놓여 있고 무엇을 가장 많이 생각하며 사랑하고 있나’ 같은 식으로 내면에 집중하려고 했죠. 저는 개인적으로는 세 번째, 아들 가진 아버지 역할 할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물론 사투리도 굉장히 좀 어색하고 힘들어했죠. 연기에 있어서는 제가 아버지로의 경험이 없다 보니까 더 깊이 들어갈수록 힘들다고 느꼈습니다.

 

김현민: 아무래도 세 번째 파트에서는 부모 자식 간 관계나 사랑이 훅 들어가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잖아요. 감독님께서는 처음부터 이런 에피소드 파트 1, 2, 3의 순서로 쓰셨는지와 함께 세 번째 이야기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로 더 깊게 들어가게 되신 그런 이유나 계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백승빈: 말씀하신대로 1, 2, 3의 순서대로 쓴 것 같아요. 제 기준에서 동준은 첫 번째는 클로짓 게이(closet gay)고, 두 번째는 자신의 정체성을 일단은 받아들이고 사는 사람이었고, 세 번째는 그것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마지막 인물 같은 경우 “인간적으로 폭발하게 만들 수 있는 어떤 기능을 더 하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보면 부모가 부모의 역할을 자기 의지와 다르게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식을 만났을 때, 자식에게 어떤 속마음을 고백할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자식이 그걸 듣게 만드는 단계는 또 뭘까 하는 생각을 되게 많이 했고 그러다 보니 소년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것 같습니다.

 

김현민: 관객분들도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첫 번째 파트,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올 때 어두운 유흥가 뒷골목을 걸어가고 있는 동준의 뒷모습이 나오고, 두 번째 파트에서는 어두운 건물 안을 올라가는 동준의 뒷모습이 나옵니다. 세 번째 파트에서는 굉장히 밝게 빛나는 바다를 보여준 다음 달리고 있는 동준의 앞모습이 나와요. 그리고 마지막 장면도 꿈이나 희망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고요. 감독님은 이 이야기의 끝을 처음부터 희망적인 것으로, 낙관적인 가치관으로 쓰셨을지 궁금하더라고요.

 

백승빈: 제가 의도했던 거를 제대로 얘기하신 것 같아요. 저는 마지막에 폭발하는 결말은 기본적으로는 낙관을 향해 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결국에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후회, 억압되어 있던 인간적인 감정을 자리를 통해 얘기 하면 그때부터 무언가가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부모 자식 간의 관계일 수도 있긴 한데, 세 번째 파트의 사람이 가장 쿨하게 살았을 것 같아요. 인간적인 느낌으로요. 왜냐하면 본인이 벌려 놓았지만 수습하지 못했던 것들을 어떻게든지 해보려고, 관계를 놓쳤던 그 분한테 전화해서 오열하면서 잘못했다고 하잖아요. 이번 작업 같은 경우에는 제 지인 분들이 봐도 “진짜 잘 봤다”라는 말을 할 만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작업 시작할 때의 목표이기도 했습니다.

 

김현민: 그래서 뭐라고 하시던가요?

 

백승빈: 영화를 아직 못 보신 걸로 알고 있어요

 

김현민: 예매를 좀 해드리세요. 그 정도 적극성은 필요해요.

 

백승빈: 고백하자면, 여기 나오는 가족 관계 있잖아요. 사실 제 가족 관계의 거울 같은 존재들이에요. 저는 어머니가 돌아가셨고요. 영화 속에 나온 것처럼 아버님이 혼자 계시는데, 아버님이 영화를 보고 충격 받으실까봐 걱정스러운 부분들이 있어요. 저희 아버님은 영화에 나오는만큼 가부장적이거나 폭력적인 분은 아니세요. 그래도 한번 보셨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말씀은 드려야겠네요.

 

김현민: 아버지도 창작물로서 받아들이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니 심희섭 배우님은 가족한테 보여주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아요.

 

심희섭: 예 저는 보여드렸거든요. 어떤 대화를 나눠야 될지 애매한 부분들이 있어서 그냥 고생했다, 잘 봤다 정도 얘기로 끝났던 것 같아요.

 

 

영화 〈안녕, 내일 또 만나〉 스틸컷

 

 

김현민: 감독님께서 ‘세 번째의 동준이 가장 쿨하게 살았던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눈에 띄는 행동 양식이 하나 있다면 ‘청소’ 같아요. 일찍 와서 청소를 하는 모습으로 등장시키셨잖아요.  그것은 어떤 의도였을까요?

 

백승빈: 첫 번째와 두 번째 동준과는 많이 다른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부산 바다에서의 조깅으로 시작하는 것도 의지의 단서 같은 것인데, 뭔가 자기 삶 속에서 운동도 하고, 차근차근 준비하는 사람처럼 보였으면 좋겠다는 목표가 있었어요.

 

김현민: 다 만들어진 영화를 시간을 두고 봤을 때 심희섭 배우님께 동준이란 인물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궁금해요. 두 번째 동준이 조금 못된 사람처럼 나오잖아요. 저는 첫 번째 동준이 너무 답답하게 억압되어 있었기 때문에, 해소되는 느낌이 있었어요. 연기하실 때는 어떤 느낌이셨는지 궁금하고요.

 

심희섭: 거리를 두고 보는 건.. 글쎄요. 아무래도 개봉을 2년 뒤에 했고, 촬영을 3년 전에 했으니.. 이 영화와 동준, 나 사이 어떤 거리감이 시간에 비례해서 멀어진 것 같다는 느낌보다 배우로서 제 연기가 어떤지 생각해 보는데 영화가 영향을 많이 주는 것 같고요. ‘10년정도 지나서’라면 질문에 더 명확하게 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드네요.

 

김현민: 세 번째의 동준이 차에서 누나한테 전화를 걸잖아요. 오열하는 장면이 저는 가장 인상적이었거든요. 배우님께서는 연기 하시다가 가장 이입이 되었던 순간이나, 혹은 세 명의 동준 중에서 그래도 가장 밀착되었다고 느껴지는 동준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심희섭: 배우로서 감정적으로는 첫 번째 에피소드 동준이 가장 많이 마음에 남아 있는 것 같고요. 첫 번째 동준이 나와 비슷한 점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제가 책 읽을 때 끝까지 한 번에 안 읽어서 첫 부분을 가장 많이 읽어서일까, 약간 의문이 남아 있는데요. 어쨌든 첫 번째 동준이 저는 가장 가깝다고 느껴지고요. 그리고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방금 말씀하셨던 누나와 통화하면서 오열하는 장면이랑,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누나 집에서 소주 한 잔 하면서 어머니 얘기했던 장면, 그리고 나와서 주호를 만나 카페에서 화 내는 장면인데요. 화 내는 장면 같은 경우는, 연기 하면서 당시 느꼈던 감정이 1년 뒤 다시 느껴지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제가 지금 떠올려봐도 다시 두근거릴만큼 선명하게 남아 있는 감정들이에요. 이 영화가 전체적으로 보면 잔잔하긴 하지만 감정적으로 울림이 센 장면이 많다 보니 그 중 하나를 선정을 하자면 그 세 장면일 것 같습니다.

 

 

영화 〈안녕, 내일 또 만나〉 스틸컷

 

 

김현민: 감독님께서는 〈1999, 면회〉를 보고 캐스팅 하셨다고 했잖아요. 눈 밝은 감독님들은 기본적으로 〈변호인〉에서의 윤중위 캐릭터를 연기한 심희섭 씨에게 호감이 많이 있었을 거에요. 다 보고 나서 감독으로서 기대하는 부분이 있고 현장에서 카메라로 배우를 봤을 때는 다르게 느껴지는 지점들이 있잖아요. 새삼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잘하는 지점도 있고 내가 예측하지 못했던 에너지가 있을 때도 있고 또 편집실에서 그런 걸 발견할 때도 있고요. 어떤 점들이 있었는지 좀 들어보고 싶어요.

 

백승빈: 실제 작업하면서 희섭 배우님이 영화 속 인물로 생각했던 이미지와 조금 괴리가 있는 건 사실이었어요. 이 영화가 희섭 배우에게 중요한 영화로 남아 있을 수 있다면, 영화 자체의 완성도보다 한 네 편의 영화에서 해 볼 역할을 조금씩 실험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억압되어 있는 사람들도 있고, 본인이 잘 모르는 아버지 역할을 하면서 힘들지만 이런 느낌과 역할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의미로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에피소드에 약간 얄미울 수도 있는 교수 역할이 제일 잘 붙는다고 생각 했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에드워드 노튼 같은 사람이 해맑은 얼굴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바뀌잖아요. 학생들한테 지적을 하다가 잠깐 얼굴 각도를 살짝  틀면서 클로즈업 되는 장면이 있어요. 전체 장면 중에 그 얼굴이 제일 좋았어요. 그래서 편집 버전을 감독인 지인이 보면서 이 얼굴이 베스트라고 얘기를 했던 게 기억나네요.

 

김현민: 심희섭 배우님은 어린 시절의 동준과 강현 촬영본은 중간중간 보시면서 촬영했는지 궁금했어요.

 

심희섭: 제 기억으로는 봤던 것 같아요. 감독님이 어른 동준과는 다르게 엄청 화사하게 뽀샤시한 두 아이의 모습이라고 설명을 해 주셨는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아름다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강현에 대한 감정에 집중하긴 했지만 저는 가족을 더 깊게 생각했었어요. 그러다 보니 내가 강현에 대한 감정선을 너무 덜 주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 했는데, 글쎄요. 관객분들이 보시기에 마지막 장면에서 어떻게 보셨을지 좀 궁금해요. 아무래도 그게 방점을 찍는 장면이라고 생각을 해서요.

 

백승빈: 강현의 존재를 계속 의식하면서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다른 관계들이 있잖아요.

특히 가족 관계에 집중 하게 되는데, 관객분들께서 보실 때 마지막에 강현과 관계로 수렴 되니 그런 맥락으로 보시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강현은 사실 초반부 등장하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형태 말고는 중간의 현실 플롯 안에서는 없잖아요. 사실 예를 들면 파트 원의 학생, 두 번째는 노동자이자 아이 아빠인 존재처럼 각자 가족 구성원이 강현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결국 이 모든 과정이 강현을 만나러 가는 과정이다, 작은 바다를 건너서 결국 강현을 만나러 간다, 강현을 만나기 전까지 강현의 어떤 환영 같은 가족의 존재들일 것이다 라고 생각 했습니다.

 

 

영화 〈안녕, 내일 또 만나〉 스틸컷

 

 

김현민: 감독님께서 적절하게 플래시백을 삽입하셔서 그런 느낌을 따라가며 보게 되었던 것 같아요. 이제 관객 분들의 감상과 질문을 들어보겠습니다.

 

관객: 영화를 보고 나니까 현재에 용기를 가지고 충실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 평행 세계를 다룬 영화가 되게 많은데, 보통 다른 영화에서 볼 때는 그 순간이 쌓이고 또 쌓여서 결국 여러 세계에서 상이한 삶을 사는 것처럼 많이 그려지잖아요. 근데 이 영화 같은 경우는 직업적 뿌리 같은 것도 그렇고 어머니의 병원 같은 장소들이 어느 정도 통일성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작품의 배경을 구성하실 때 기본적인 설정 같은 것이 있었나요?

 

백승빈: 어렸을 때 ‘TV인생극장’이라는 SF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자랐어요. 저는 SF가 결국 사고 실험에 대한 이야기고 어떤 선택을 하던 간에 길을 돌아갈지언정 결말이나 가는 방향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저는 한국영화아카데미를 가기 위해 서울에 올라온 게 29년 인생 처음으로 상경하는 길이었는데요. 제가 만약 아카데미에 가지 않았다면 저는 이 영화처럼, 교사 일을 하고 있었을 거에요. 근데 교사 하면서도 시나리오 같은 걸 쓰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영화를 너무 좋아했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저는 이 큰 세계가 서로 다른 세계, 세 편으로 보이긴 하지만, 이야기들이 결국 하나의 거대한 운명 같은 흐름으로 가는 것이고, 그 사이 ‘용기를 좀 더 내느냐 내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조금씩 다를 뿐이다는 생각을 주제로 영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김현민: 강현에 대한 감정이 처음에는 동경도 분명히 있었잖아요. “저런 사람이 되고 싶어.”라는 마음이요. 대체로 첫사랑의 시작이 좀 그런 느낌인 것 같기도 한데요. 감독님은 동경과 사랑의 상관관계가 어떻다고 보십니까?

 

백승빈: 똑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사랑니〉라는 첫사랑 영화를 좋아하는데요. 마지막 대사가 “다시 태어나면 ‘이석’이 되고 싶어.”에요. 정유미 배우 캐릭터가 쌍둥이 형제를 계속 사랑하는 이야기잖아요. 저는 강현이를 동경하고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이 영화가 첫사랑 영화라고 불려질 수 있다면 저는 그런 이유였으면 좋겠습니다.

 

김현민: 사랑에 빠져서 연애하는 과정이 결국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저도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이 이야기가 정체성을 알아가고 인정하는 이야기인 것으로 맞닿아져서 저는 되게 강력하게 다가왔습니다.

 

 

영화 〈안녕, 내일 또 만나〉 스틸컷

 

 

관객: 세 명의 동준이 강현을 다 만나는 이야기라고 이해했는데, 제가 느끼기에는 사실 두 번째와 세 번째의 동준이 과연 강현을 만나러 갔을까 의문이 들었어요. 여전히 첫사랑에 집착하고 있는 건 첫 번째 동준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만약 감독님과 배우님은 세 명의 동준 중에서 어떤 동준이 가장 강현을 만나러 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시는지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세 명의 동준 중 가장 가장자리에 살았다고 생각이 드는 인물은 누구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백승빈: 가장자리에 대한 얘기는 영화 소개에도 등장하는,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고층 빌딩 사이를 건너갔던 프랑스 곡예사분의 실제 이야기이기도 해요. 언제든 떨어질 듯이 위태롭게 살아야 한다는 이미지를 오래도록 생각했고요. 그 이미지가 강현과 맞닿은 지점이 있을거에요. 그런 면에서는 제 마음은 항상 첫 번째 에피소드로 흐르는 거 같아요. 그래도 세 편 다 어떤 형태로든지 해피엔딩처럼 마무리하려고 애를 썼어요. 하지만 첫 번째 에피소드의 결말은 다른 에피소드에 비해 덜 행복해 보일 수는 있겠다 싶어요. 그래도 완전 불행하지는 않을 것이고요. 첫 번째 질문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저는 첫 번째 동준이 갔을 것 같아요.

 

김현민: 배우님이 생각하시기에 가장 가장자리의 삶을 살고 있는 동준은 누구인가요?

 

심희섭: 어느 구간이 가장자리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글쎄요, 그런 거라면 첫 번째가 아닐까요? 딱 떠오르는 게 저도 첫 번째, 대구에 사는 동준이 가장 위태롭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영화 〈안녕, 내일 또 만나〉 스틸컷

 

관객: 저는 마지막이 독특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국내 퀴어 영화 중에 부성애를 그려내는 경우는 정말 드물었던 것 같아요. 다른 이야기들이 이전에 평행 세계들하고 연결되는 게 있다면, 아이에 대한 부분은 독특하다고 느껴졌는데요. 이 얘기를 꼭 넣고 싶었던 이유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백승빈: 초반 비슷한 맥락에서 잠깐 대답을 했던 부분도 있는 것 같은데 앞 두 에피소드 같은 경우 다른 삶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첫 번째 주인공은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던 사람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갈등이나 고민 같은 부분들이 영화의 큰 텐션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죠. 두 번째는 그것을 인정하고 하면서도 여전히 풀리지 못했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고요. 세 번째 같은 경우는 그 자체를 아예 모르고 사는 사람인데, 어떻게 보면 마흔 두 살이라는 나이는 중년의 시작 지점이라고 볼 수 있잖아요. 그 나이 또래들은 어떤 부모 자식 간의 정체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보니 또래의 삶을 살고 있는 친구와 비슷한 속도로 살면서도 어떤 계기를 통해서 갈등이 벌어지고, 또 그 갈등을 봉합하려고 하는 부모의 시간을 담고 싶었어요. 또래들이 가질 수 있는 고민을 끌어 안는 얘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으로 아버지 역할을 넣었던 것 같아요. 사실 이 영화 안에는 가족이라는 테두리가 많이 묻어 있죠. 멀어졌던 가족과 어떻게든 봉합하려고 시도하는 걸 보여줌으로서 제가 풀어 놓았던 이야기들을 가족이라는 사랑 안으로 끌어 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도 있었던 것 같아요. 영화를 만드는 저의 의도와 마찬가지로 이 작업을 통해 제가 관계를 봉합하고 싶어 했던 것들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가족 관계는 인간적으로 오열도 하고 끌어 안는 행위들이 나오는데 제 바램을 거울처럼 비치고 있는 부분인 것 같아요. 외향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얘기했던 부분들이 실제로 어머니가 하셨던 말씀이었구요.

 

김현민: 제가 알기로 감독님이 영화 초고를 일주일 만에 쓰신 걸로 알고 있는데, 일필휘지로 쓰셨을 때도 이런 이야기였을까요?

 

백승빈: 딱 앞에 두 에피소드까지만 쓰고 세 번째는 못 썼던 상황이었죠.

 

김현민: 감독님의 무의식이나 욕망이나 많이 투영되었겠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세 번째 에피소드에 그런 내용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관객: 영화에서 책이 굉장히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을 하는데 감독님 평소에 좋아하셨던 작품들인지 궁금합니다.

 

백승빈: 고백하자면 저는 궁극적으로는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에요. 저는 10대, 20대를 도서관에서 그냥 책 보면서 보낸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어떤 의미 있는 사회적 관계에 대해서 관심이 없고요. 인간관계도 협소한 사람이었어요. 영화 학교에 들어오고 나서야 제가 평생 만나지도 않을 것 같은 스타일의 사람들과 어떻게든 친해지려고 했고요. 이런 관계를 제 친구들이 보면 놀라요. “백승빈이 저런 일을 하고 있다고?” 그러죠. 여기 등장하는 모든 것들은 제가 영문과 출신이다 보니까 제가 제 10대, 20대 시절의 감수성을 조각했던 사람들이 다 들어가 있어요. 알퐁스 도데의 「별」이라는 단편 소설 보셨나요? 별자리에 대한 정보가 조금 있으면 그 이야기가 훨씬 풍부하게 느껴지거든요. 그래서 '영화에 나오는 것은 뭔가 맥락이 있으니 나도 궁금한데 검색해 볼까, 이 내용 줄거리 재미있을 것 같은데'처럼 생각해주시기를 개인적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뭔가 소개해드리고 싶다는 정도로 받아들여졌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도 있습니다.

 

 

 

 

김현민: 감독님은 다섯 번째 장편을 곧 찍는다고 하시더라고요. 최근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피치&캐치 상을 받으셨다고 해요. 

 

백승빈: 제가 본격적으로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요. 주인공 이름도 '오사랑'이라는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추적하고 그 사랑을 소개하는 이야기라고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만약 오늘 영화가 마음에 드셨다면 나중에 그 작품을 보러 또 오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심희섭: 영화가 조금 긴데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가을이 오고 있는데요, 주변에 〈안녕, 내일 또 만나〉를 많이 추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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