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해고도〉리뷰: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채운 님의 글입니다.
윤철은 한때 전도유망한 조각가였다. 그러나 작품 활동만으로는 사정이 여의치 않기에 지금은 인테리어 업자를 겸하며 생계를 이어 나간다. 이런 윤철에게 거의 유일한 버팀목은 그의 딸 지나이다. 이혼한 아내를 따라 떨어져 지내는 지나는 미술적 재능만큼은 윤철 자신을 닮아 타고났다. 그러나 학교 친구들과 선생님은 지나의 독창성을 굳은 표정으로 대한다. 점점 학교로부터 철저히 고립되어 간 지나는 방황을 거듭하다 출가를 감행한다.
지나가 거센 혼란을 헤집는 사이, 윤철은 또 다른 감정을 맞닥뜨린다. 윤철은 지인과 들으러 간 역사 수업에서 영지를 알게 된다. 지적이고 냉철한 강사 영지와 그의 빈틈을 파고드는 수강생 윤철. 상대방의 폐허가 된 마음을 어루만지던 둘은 새로운 호흡으로 일상을 꾸려나간다. 그렇게 서로에게 의지하며 날들을 보내던 윤철과 영지는 언젠가부터 불안정한 기류를 감지한다. 크고 작은 불신이 계속하여 결별을 택한다. 이후 두 사람은 공백을 둔 채 각자의 삶을 챙겨 나간다.
그러다 영화는 어느새 시공간을 훌쩍 넘겨 산골짜기 사찰을 담아낸다. 행자가 된 지나와 불자로 사찰을 드나들며 국수집을 운영하는 윤철은 연희가 지나에게 건넨 말마따나 너무 많이 변한 듯하다. 파란 머리카락을 다 밀어버리고 아빠와 경어를 주고받는 지나와 용모를 단정히 하고 그간 해왔던 일과는 전혀 다른 행로로 생업을 이어 나가는 윤철. 이들을 보는 순간 마치 영화 초반과는 다른 세계로 진입한 듯한 기분에 휩싸인다.
여기에 더해 영화 중간중간 사용되는 점프컷은 영화의 감촉을 낯설게 하는 데에 일조한다. 장면을 급격히 전환시켜 그 연속적 흐름을 깨트리는 점프컷의 효과와 인물들의 예측 불가한 경로는 어쩐지 겹쳐 보인다. 영화는 새로운 터전에 임시 착륙한 인물들이 직전까지 지나온 궤적을 생략한다. 덕분에 어디로 튕겨 갈지 모르는 삶의 속성이 영화 전개에 명료하게 스며든다.
그런데 이후 펼쳐진 볕 좋고 공기 좋은 산골짜기 사찰에서 기시감이 드는 사건들이 목격된다. 라오스, 중국에 이어 등장하는 브라질이라는 타국의 이름과 이곳으로의 이동을 명시하는 대목. 아빠보다 엄마에게 기우는 지나의 선택. 일련의 상황들을 지켜보며 연희가 ‘너무 변했다’며 지나에게 건넨 말에 대한 대답이 불현듯 스친다. ‘그러는 넌 그대로’라는. 두 사람이 서로 주고받은 말은 마치 격변과 불변이 늘 한 몸이라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이처럼 꺾이고 요동치는 삶의 항로에서도 되풀이되는 것이 있다. 모양과 촛불 개수가 다른 생일 케이크가 매해 같은 날 눈앞에 놓이는 것처럼 말이다. 케이크를 조각내어 나눌 사람이 있을 수도, 혹은 그 누구도 없을 수 있다. 영화는 말해준다. 마치 ‘절해고도’ 같은 외딴곳에 머무르더라도 그건 영원치 않은 것이라고. 나를 좋아하다가도 싫어하는, 그러다가도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오고가기를 반복할 것이라고. 그렇게 삶은 기쁨과 슬픔이 한 덩이로 굴러가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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