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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단평] 〈절해고도〉: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

by indiespace_가람 2023. 10. 16.

*'인디즈 단평'은 개봉작을 다른 영화와 함께 엮어 생각하는 코너로,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인디즈 큐'에서 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영화 〈절해고도〉 스틸컷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 
〈절해고도〉〈그녀들의 방〉

 
* 관객기자단 [인디즈] 조영은 님의 글입니다. 

 

 

때로는 한 걸음 내딛는 일이 마치 타인의 거리를 읽어내는 일처럼 느껴진다. 그것이 어그러지는 환상인지, 관계를 가로지르는 희망인지, 그 사이를 들여다보는 영화에서 걸음과 걸음 사이가 유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다면, 어딘가 도달하는 마음 한가운데에 상상해 볼 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케이크에 올라간 작은 촛불일지도, 누군가의 어색한 포옹일지도, 악수를 건네는 건조한 손길일지 모른다. 끈끈하지 않더라도, 〈절해고도〉 와 〈그녀들의 방〉 에는 잠깐이지만 곁에 머무르는 어떤 마음이 있다. 〈절해고도〉 에서 윤철에게 어느 날 성큼 다가온 영지의 존재는 뜻밖의 선물 같았고, 인생의 절정 같았다고 말한다. 후 불면 금방 꺼지는 촛불처럼 잠깐 안착했다가 떠나버리기도 하지만, 이들은 두 번, 세 번, 서로의 촛불을 빈다. 비록 거리의 여백을 채우는 걸음이 헛되거나 실패에 가까울지라도, 그렇게 사람 사이에서 나부끼는 인생이 덧없게 느껴질지라도, 그것은 언젠가 결코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쌓아 올려지는 것임을 깨닫는 과정에 있다. 지금의 나를 이루는 것, 내가 존재하는 것. 그리고, 그 너머에 당신이 존재한다는 것. 바로 그것이 다시 또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게끔 우리의 곁을 지켜주는 믿음이다. 그러니까 인물들 사이를 지탱하는 힘이 되어주는 촛불은 금방 서먹하게 바스러지기도 하지만, 이 작은 온기 하나가 커다란 세상에서 누군가의 곁을 지켜주는 존재라고 영화는 말한다. 

 

영화 〈그녀들의 방〉 스틸컷


햇빛을 움켜쥐는 손, 〈그녀들의 방〉 에서 가는 발걸음마다 문전박대를 당하던 학습지 교사 언주(정유미)는 우연히 대문이 열려있는 단독주택을 발견한다. 그곳엔 이상하리만치 늘 소박한 음식이 준비되어 있고 따뜻한 온기가 서려 있다. 그것은 언젠가 쓰러져있던 자신을 발견하고 목숨을 구해준 부랑자의 몫을 잊지 않은 석희(예수정)의 흔적이다. 그는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을 항상 목전에 두고 스스로 장례를 준비하며 살아간다. 반면, 매일이 죽음뿐인 언주가 얻은 새 방은 곰팡이로 뒤덮인 벽과 발 디딜 틈 없이 좁은 바닥이고, 형광등은 위태로이 깜빡인다. 창백한 빛깔의 음침한 방에 들어서는 언주를 하이 앵글로 바라본 오프닝에는 꼭 삶 한가운데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것만 같다. 이것이 산 자의 숙명인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바스러진 벽의 구멍을 메운 청 테이프는 금방 제힘을 잃고 너덜거려진다. 오랫동안 곤궁에 놓여있던 그는 우연히 들어간 석희의 열린 방에서 느낀 안온함에 곤히 잠들고 만다. 영화는 그를 문틈 사이로 답답하게 바라볼 뿐이지만, 높은 담장 너머의 큰 집에는 왠지 모르게 어느덧 잠들어 버릴 평온이 깃들어 있다. 그런 그를 석희가 알아보기라도 하듯, 죽음을 홀로 견뎌내는 그 초연한 얼굴은 자기 집에서 잠든 낯선 이를 마주하고도 상대방의 얼굴에 난 흉터부터 걱정한다.

 

영화 〈그녀들의 방〉 스틸컷



촛불 하나에 의지하며 어두운 방에서 홀로 잠에 들려던 언주는 밤에 석희의 집으로 찾아간다. 내일이 생일인데 잠깐 들릴 수 있냐는 석희의 한마디를 기억했기 때문이다. 혼자서 식은 밥을 먹거나, 인스턴트로 끼니를 때우던 이들은 함께 밥을 먹는다. 여기서 부엌에서 채소를 썰고, 찌개를 끓이는 두 사람의 모습이 한 프레임에 담긴다. 점점 구석으로, 어둠으로 내몰리던 이들이 함께 무언가를 나누는 찰나이다. 언주는 차려진 생일 밥상에 사 온 케이크를 올리고, 성냥으로 촛불을 붙이고, 서먹한 박수와 함께 생일 노래를 불러준다. 그 순간 어둠을 밝혀주는 건, 식탁 위 케이크에 올라간 촛불 다섯 개뿐이다. 먼발치에서 서로를 내려다보거나 올려다보던 두 사람은 나지막이 포옹해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든다. 작은 손짓 혹은 몸짓조차 너무나 벅찬 이들에게 잠깐이지만 스쳐 지나가는 위로의 풍경처럼 보인다. 

 

결핍은 짐덩이인지, 밥을 먹는 마음 같은 것인지, 자연스레 외로움이 따른다. 한 사람이 견뎌내고 있는 외로움의 부피는 커다랗고, 그 커다란 외딴섬에 발걸음하는 이 또한 제 몫의 부피만큼 자리한다. 〈절해고도〉 에서도 좀처럼 전해지지 않고 어긋나기만 해 보였던 마음은 돌고 돌아 서로를 마주 보게 한다. 윤철은 생일인 지나에게 미역국을 만들어 주고, 두 사람은 영지가 먹고 싶다고 말한 고추장찌개를 끓이고, 세 사람은 어느새 케이크에 초를 붙이고, 조각조각 나누어 먹는다. 윤철은 영지가 좋아하는 과일인 사과를 기억하고, 지나가 좋아하는 과일 또한 포도가 아닌 딸기임을 떠올린다. 이들은 기나긴 영화의 시간 속에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이맘때쯤 찾아간다. 윤철의 기묘한 꿈처럼 이따금 꺼지지 않는 촛불을 마주했을 때, 혹은 외딴섬에 어둠뿐이라는 사실을 직면할 때, 덜컥 겁이 난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것은 허황이 아니며, 막다른 길도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삶이 너무 버거워도, 심지어는 누군가 죽어도, 세상은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당장의 눈앞에 놓인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것은 서로 막다른 길에 마주했을 때조차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지나가는 찰나의 풍경이기도 하다. 이러한 굴레 속에서 그 의미를 깨달을 때 다시금 무의미를 반복하며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 그뿐이다. 

.영화 〈절해고도〉 스틸컷

 

언주는 아플 때 꼬박꼬박 병원 가는 것, 집이 홀랑 타버려도 길가에 나앉지 않는 것, 배고플 때 빌어먹지 않고 먹고 싶은 거 골라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지만, 누구보다도 제자리에서 타인과의 포옹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 같다. 하지만 방 안을 유일하게 밝혀주던 초 하나를 언주가 손에서 미련 없이 놓아버릴 때, 죽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매트리스에 번지는 불길을 바라보는 체념한 얼굴이 비춰질 때, 그다음 장면에서 영화는 어둠 속에서 석희의 손을 클로즈업한다. 그는 손가락의 반지를 내려놓고, 얼마간 바깥을 응시하다 주저앉는다. 죽음에 초연했던 얼굴은 다시 회복되기도 어렵다. 언주는 다시 홀로 남겨진다. 두 사람은 이제 한 프레임에 담기지 못한다.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움켜쥐어 보던 손은 펄펄 끓는 뜨거운 물에 놓이고, 그 손을 잡아주던 손에는 피가 흐른다. 제 죽음이 방치될까 항상 문을 열어두었던 석희와, 그 문을 통해 들어와 기어코 열린 문을 닫는 언주는 그렇게 세상과 단절된다. 안온하던 공간에 고립되고, 그는 어둠 속에 혼자다. 일부러 닫지 않는 것과 제아무리 노력해도 닫히지 않는 것은 다르다. 〈그녀들의 방〉 의 기어코 열리지 않던 문은 열리고, 닫지 않던 문은 닫아둔다. 

두 영화의 마지막, 우두커니 롱 숏에 담긴 한 사람의 뒷모습이 보인다. 카메라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는다. 〈그녀들의 방〉 에서 일정하게 고정된 위치로 담아낸 마지막 장면은 죽음 앞에 무색하게도, 투명한 창 너머의 빛이 거실을 따분하게 밝혀줄 뿐이다. 여기서 역광으로 어두워진 언주의 작고 흐릿한 형상은 지독한 가난 앞에서 좌절하던 첫 쇼트를 떠올리게 한다. 이러나저러나 그는 외딴섬의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다. 그가 곰팡이로 뒤덮인 벽에 뚫린 구멍을 매만지던 것처럼, 제 몫을 하기에 너무나 큰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그는 깨진 꽃병 조각을 줍는다. 하지만 이제는 그의 표정을 알 수 없는 먼 거리에서 영화는 청소기를 돌리는 언주를 관조한다. 밤낮으로 아비규환인 고시원에서 보내던 기나긴 소음의 끝에는 외딴섬에 홀로 울려 퍼지는 절망의 소리다. 그 소리의 한가운데서 영화는 그만 닫아버린다.  

 

 

영화 〈절해고도〉 스틸컷


〈절해고도〉 는 윤철이 가게 문을 닫고 나서면서 막이 내린다. 영화는 어디론가 걸어가는 윤철의 뒷모습을 잠깐 동안 바라본다. 여기서 “섬은 눈앞에 있었지만, 멀었다.”라고 말하는 인물이, 이제 어디로 향할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말이 어떻게 또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지 궁금했다. 죽음 같은 나날 앞에 나타난 당신, 당신과 나 사이 실패한 걸음이, 그러나 일 년을 돌고 돌아 찾아온 촛불이, 대체 무엇이길래 서로를 마주 보게 하고, 다시 살아보게 만드는지 말이다. 알 수 없는 그 길의 끝에 어디로 다다르게 될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막다른 길에서 또 한 번 깨달을 것이다. 우리는 나와 타인의 거리를 좁혀나가기 위해 한 걸음 내디딘다. 그리고 타인의 세계를 두드리는 일은 곧 나의 세계를 여는 일과 같다. 분명한 것은, 이것이 제자리걸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고맙습니다.”라는 지나의 말에 윤철 또한 “고맙습니다.”라고 대답하던 두 사람의 순간을 기억한다. 〈그녀들의 방〉 에서 “고마워요.”라는 말 다음에 “안아봐도 돼요?”라고 한마디 용기 낸 석희와, “그러죠. 뭐, 돈 드는 것도 아닌데.”라고 마음에 응하던 언주, 그렇게 서로에게로 걸음을 돌린 두 사람을 기억한다. 모든 걸 내려놓더라도 붙잡게 되는 것, 막다른 길에서 떠올리게 되는 것, 다시 살아보겠다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 그것이 때때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것이 비록 외로움일지라도 말이다. 

 

* 작품 보러 가기: 〈그녀들의 방〉 고태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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