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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단평] 〈믿을 수 있는 사람〉: 모래를 쥐어 보는 일

by indiespace_가람 2023. 10. 30.

*'인디즈 단평'은 개봉작을 다른 영화와 함께 엮어 생각하는 코너로,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인디즈 큐'에서 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영화 〈믿을 수 있는 사람〉 스틸컷

 

모래를 쥐어 보는 일 
〈믿을 수 있는 사람〉 〈마담 B〉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채운 님의 글입니다. 

 

 

아주 고운 모래가 가득한 해변, 손으로 모래를 떠 쥐어본다. 곧바로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모래 알갱이들.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모래를 쥐는 일과 유사해 보인다. 아무리 꽉 움켜쥐어도 이내 날아가고 마는 모래처럼 여러 사람에게 굳건히 향해있던 믿음 역시 머지않아 잇따라 구부러진다. 그럼에도 사람이라면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할 순간을 피할 수 없기에 폐기된 믿음을 새로운 만남을 통해 갱신하며 삶을 이어 나간다.

 

그리고 여기, 믿음이 주는 상처에도 무너지지 않으려는, ‘믿음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 인물이 있다. 바로 영화 〈믿을 수 있는 사람〉 속 한영(이설)이다. 영화는 탈북 여성인 그가 서울에 정착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함께 탈북한 동생의 실종과 직장 동료들의 견제, 하나뿐인 친구의 이민까지, 켜켜이 쌓이는 불신과 배신의 사건들에도 한영은 믿음을 잃지 않으려 한다. ‘돈을 많이 벌어 서울에 살겠다'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꿈을 간직한 채.

 

그랬던 한영이 서울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공항으로 향한다. 이 시퀀스는 한영이 자신을 담당하던 탈북 전담 경찰인 태구(박준혁)에게 건넨 고백이 거절당한 이후 펼쳐지는데, 사실 이 대목에서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태구를 줄곧 경계해 오던 한영이 대뜸 그의 손을 잡고 고백을 하는 행위는 줄곧 쌓아온 ‘한영'이라는 캐릭터를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것처럼 보였고 무엇보다 태구로부터의 실연이 한영을 떠나도록 결정지은 원인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흐름을 납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물론 해당 장면은 새로운 관계가 생성될 듯하다가 끝내 좌절을 보인다는 점에서 긴장감과 반전의 묘미를 가지고는 있다. 그러나 그 효과가 극히 협소한 범위에서만 작용하는 데다 한영이 탈북 여성으로서 품고 있던 특수한 문제의식들을 로맨스적 요소로 덮어버릴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기도 하다. 이는 어쩌면 영화의 시놉시스에도 소개된 것처럼, ‘서울살이’를 하는 청춘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보편적인 요소를 함께 고려한 결과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영화 〈마담 B〉 스틸컷

 

그럼에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은 한국 사회에서 탈북민 노동자가 어떤 차별과 수모를 겪는지, 이에 더해 여성이기에 추가적으로 마주하는 위험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영화이다. 이에 주안점을 둔다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윤재호 감독의 〈마담 B〉와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마담 B〉는 중국으로 월경한 탈북 여성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윤재호 감독은 〈마담 B〉 외에 탈북민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두 편의 영화 〈뷰티풀 데이즈〉와 〈파이터〉를 연출하기도 하였다. 〈믿을 수 있는 사람〉과 〈마담 B〉를 나란히 살펴보면 탈북 여성의 이야기가 영화적으로 어떻게 펼쳐지는지에 관해 보다 풍부한 감상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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