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프리 철수 리〉: 목소리를 들여다보면.

by indiespace_가람 2023. 10. 31.

〈프리 철수 리〉리뷰: 목소리를 들여다보면.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태현 님의 글입니다.

 

 

영화 〈프리 철수 리〉 스틸컷

 

 

〈프리 철수 리〉에는 이철수의 목소리가 있다.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진 시기에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지만, 그가 남긴 말을 통해 재구성된 내레이션이 그의 목소리를 대신한다. 영화는 그의 목소리로 하여금 그가 겪어야 했던 세계의 분위기를 증언하게 한다. 눈으로 보여지는 아카이빙 자료 또한 1973년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을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프리 철수 리〉의 영화적 육체는 인종차별과 구명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서술에 앞서 이철수의 일인칭 삶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영화를 보며 이철수의 삶과 자신의 삶 사이의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우리와 같은 한인이라는 특정한 정체성을 공유하기 때문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세계 앞에서 두려움과 불안, 외로움을 느끼는 보편적 인간이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를 삼인칭의 자리에서 판단하는 시스템은 그를 감옥으로 내몬다. 반(反) 범죄를 선전도구로 이용한 닉슨 시대의 ‘범죄와의 전쟁’은 이철수의 삶을 똑바로 확인하지 않은 채, ‘차이나타운의 범죄경력 있는 동양인’ 이철수에게 유죄를 선고한다. 그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의 시간을 상상하고 행동에 나선 이들은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만든 사건의 모순을 이해한다. 그의 목소리를 들여다본 우리 또한 이철수를 위해 직접 투쟁에 뛰어든 이들처럼 사건을 이해할 수 있다. ‘범죄와의 전쟁’에 동조하는 경찰과 언론은 사실관계를 똑바로 전달하기보단, 그의 사건을 통해 차이나타운의 폭력적인 세태를 강조한다. 똑바로 범죄 현장을 목격하지 못한 이들로 증인이 구성되고,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언어를 갖지 못한 이철수의 목소리는 무시된다. 범죄에 대한 증거를 확인하기 이전에, 이철수는 인종차별에서 기인한 무지에 의해 판단 당한다. 

 

 

 

영화 〈프리 철수 리〉 스틸컷

 

 

이철수를 위해 나선 사람들은 그에게 벌어진 일들을 자신의 일처럼 느낀다. 마치 오래 알아 온 사이처럼, 혹은 자식처럼. 그의 존재는 시스템의 문제를 드러내는 상징이 되고, 더 많은 사람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만드는 촉매제가 된다. 이들의 연대는 자신들의 무지와 실패를 감추려는 시스템의 반동을 이겨낼 만큼 강하다. 인종차별의 확증편향을 다시 발견한 사실관계로 되짚어 나가고, 배심원의 무죄 판결을 이끌어낸다. 그들은 이철수라는 사람을 벽 너머에서 구출해 올 수 있었다. 감동적인 순간이지만, 승리의 역사로 기록되지 못한다. 철수를 감옥에 보낸 것은 인종주의를 포함한 불평등이라는 모든 문제를 방관하고 있는 시스템이고, 구명운동은 그 시스템 자체를 무너뜨리지는 못한다.

 

영화 속에 묘사되는 구명운동은 철수의 석방과 함께 끝난다. 그리고 파티가 끝나면 결국 감옥에서처럼 혼자가 되었다는 말을 끝으로 철수의 내레이션 또한 끝난다. 차별과 홀로됨의 기억, 그리고 사회 복귀를 지원하기보단 억압에 힘쓰는 흉악범 수용소의 환경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철수는 이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 철수에게 공동체의 막연한 믿음은, 앞으로의 삶 동안 상징됨의 도리를 다하라는 죄책감으로 작동한다. 이를 철수의 개인적 실패, 혹은 공동체의 실패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철수를 상징의 자리에 놓아둔 것은 연대자들이 아닌 사회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영화 〈프리 철수 리〉 스틸컷

 

철수의 죽음을 회고하는 〈프리 철수 리〉의 후반부가 새로운 투쟁의 필요성, 혹은 가능성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당사자가 아닌 관계 맺어진 관찰자의 위치에서, 당사자에게 주어지지 못한 기회를 통해 사회의 문제점을 구호화해낸 구명운동의 참여자들처럼, 우리는 〈프리 철수 리〉를 보고 영화가 닿지 못한 더 많은 논점을 떠올릴 수 있는 자리에 놓여있다. “저는 모든 사회에 다른 버전의 이철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싱글맘, 입양아, 북한이탈주민, 재소자처럼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죠. 오로지 한 인간을 구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힘을 통해 한국 사회의 또 다른 이철수들은 누구인가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라는 줄리 하 감독의 말처럼, 이철수가 처했던 상황은 우리 주변에 만연하다. 이데올로기가 자연화한 이미지에 갇혀 존재를 부정당하는 이들을 떠올린다. 이를테면,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피하는 위정자들과,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를 재생산하는 언론의 모습은 〈프리 철수 리〉 속 책임자와 언론의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 눈을 돌려 이 땅, 한민족에게 일어난 일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인류에게 닥친 많은 일들을 떠올릴 수 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채 목숨을 잃어가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이야기,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학살을 제도권 언론은 어떻게 전하고 있는가.

 

사회 문제에 대해 이야기와 시청각적 감각을 다루는 영화라는 매체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다른 이의 감각을 일인칭으로 떠올려 보게 할 수 있는 역량에 기인한 것일 테다. 영화는 각자의 기준으로 인물을 판단하기 이전에, 그가 보고 듣는 감각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프리 철수 리〉의 목소리는 이철수의 사건을 우리의 사건으로 만들고, 그 방법을 통해 또 다른 타인의 사건 또한 우리의 사건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모두가 같은 사람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는 말을 떠올린다. 〈프리 철수 리〉의 목소리가 우리를 집단으로 엮어내는 촉매제가 되길 바란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