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원망하고 이따금 춤추자
〈지옥만세〉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3. 9. 6(수)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임오정 감독, 오우리 배우
진행 가수 그래쓰
*관객기자단 [인디즈] 조영은 님의 기록입니다.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껴안아 주지 않더라도, 우리는 서로를 껴안아 줄 수 있습니다. 임오정 감독이 그려내는 세계는 여기저기 떠도는 외톨이들을 어떻게 해서든 껴안아 주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지옥만세〉는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무수한 것들 앞에 혼자 두지 않을 것이라는 뚜렷한 믿음이 있습니다. 너의 건너편에는 내가 있고, 나의 건너편에는 네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우리 눈앞으로 불러내어 보여줍니다. 나의 어떤 경험이 영화 안에서 감각될 때, 그 개인의 감각이 공동의 감각이 될 때, 영화가 끝난 뒤 기다리고 있을 대화의 장에서 하나의 감각을 여럿이 나눌 때 더 큰 위로로 다가옵니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외톨이가 아닐까요. 그러므로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이 영화는 당신을 외면하거나 어디 세상 바깥으로 밀어내지는 않을 것이니까요.
가수 그래쓰(이하 그래쓰):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가수 그래쓰라고 합니다. 현재 뮤직비디오도 직접 연출하고 있고, 광고도 몇 번 찍고 있는 연출자로서 감독님 너무 존경하는데 이렇게 함께 진행하게 되어서 기쁩니다. 감독님과 배우님에게 뜨거운 박수로 한번 맞이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임오정 감독(이하 임오정): 안녕하세요. 〈지옥만세〉를 만든 감독 임오정입니다. 감사합니다.
오우리 배우(이하 오우리): 안녕하세요. 나미 역할을 맡은 배우 오우리입니다.
그래쓰: 제가 조금 색다른 질문을 준비해 보기에 앞서 그래도 형식적인 질문을 하나 드리려고 합니다. 제목이 저는 너무 궁금했어요. 원래부터 ‘지옥만세’라는 제목을 생각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임오정: 저는 단편 영화 쓸 때도 항상 제목 때문에 괴로웠어요. 저도 제목을 잘 짓는 편은 아니라서 고민이 많았는데요. 〈지옥만세〉는 일단 영화에서 주인공 두 명이 나오니까, 이를테면 ‘나미와 선우’ 이런 식으로 가제를 쓰거든요. 근데 이건 문서 제목인 정도고요. 처음부터 끝까지 쓰고 난 다음 마지막에 제목으로 가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이 영화는 마지막 장면을 썼을 때 저도 모르게 “웰컴 백 투 헬이다.”라는 대사가 나왔고, 그래서 ‘지옥만세’를 제목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쓰: 저는 영화를 볼 때 포스터와 제목을 보고 영화를 볼지 말지 결정하거든요. 곡도 아무리 좋아도 앨범 커버와 제목이 뭔가 아닌 것 같으면 사람들이 많이 안 들어주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지옥만세〉는 무조건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관람하고 나니까 또 너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감독님도 마음에 드시나요.
임오정: 제가 제목 덕을 많이 보고 있어요. (웃음) 사람들을 홀리는 게 조금 있는 것 같아서 나름대로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쓰: 배우님께서는 고등학생으로 보이기 쉽지 않았을 텐데, 나미를 연기하기 위해 본인이 했던 노력이 있을까요. 요즘 세대 특유의 말투를 되게 잘 연기하신 것 같거든요. 그런 것도 혹시 따로 연습하셨나요?
오우리: 원래 저의 말투가 조금 있기도 하지만 대사를 어떻게 조금 더 맛깔나게 살릴까 고민은 있었죠. 근데 욕하는 부분에서는 완전히 저의 스타일로 번역하긴 했어요.
그래쓰: 국내 하이틴물은 보통 친구들끼리 떡볶이 먹거나 따로 방과후에 하하호호 이야기한단 말이죠. 근데 감독님께서 학교폭력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선택하셨어요. 또, 사이비라는 소재가 같이 합쳐지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임오정: 일단 두 곳 모두 외톨이가 발생하기 좋은 시스템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학교는 아이들에게 잘 잡히지 않는 미래에 대한 환상을 계속 심어놓죠. 너희가 크면 어떻게 될 것이고, 지금 성적이 오르면 좋은 학교에 가게 될 것이고, 또 뭐 하게 될 것이고… 뻔하지만, 어떤 환상을 파는 거요. 하지만 사실 아이들이 살고 있는 공간은 하나의 목적을 향해 달려가기 때문에 경쟁해야 하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을 테고, 화풀이 대상으로 누군가 외톨이가 된다는 방식에서 그 집단성을 잘 보여주는 곳이 학교라고 생각했어요. 마찬가지로 사이비 종교는 단체에서 보이기를 노골적으로 은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죠. 경쟁함으로써 낙원에 갈 수 있는 것처럼, 한국 사회에서 느꼈던 잘못된 기성 시스템이 잘 작용하는 것을 은유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어요. 특히나 그곳은 맹목적으로 바라게 되는 잘못된 신이나 목사가 주장하는 가치관, 경쟁 시스템을 무작정 따라야 하는 신도들이 있잖아요. 그들이 어떻게 보면 그 집단성의 피해자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피해자와 피해자가 서로를 발견하는 공간이 연결성이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쓰: 저도 오래전부터 다단계라든지 사이비라든지 이런 무거운 주제로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어떻게 보면 후킹 포인트가 될 수 있을 만한, 사람들이 잘 알지는 못하지만, 호기심은 있고 살짝 거부감이 있는 주제니까요. 하지만 이런 주제가 또 공부해야만 알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공부를 하다가 혹시나 저의 미래가 바뀌는 것이 아닐지… 그런 생각도 살짝 있어서 기피하게 되었거든요.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사이비라고 느껴지기보다 이건 분명 가보셨던 경험이 있는 것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이런 소재로 제작을 결심하고 나서 어떠한 공부를 하셨나요.
임오정: 저는 영화를 찍을 때 어떤 심상에서 출발하게 되는데, 대체로 불안이 많더라고요. 그런 맥락에서 사람들이 왜 사이비를 믿게 될까… 호기심이 있는 채로 접했다가 결국 그걸 믿게 되는 마음의 저변에 자기 삶이 안정되지 못하고, 거기 안에서 결핍이 생긴다는 것을 느꼈어요. 이를테면, 병원에 가도 아이를 낳게 해줄 수가 없다는 절망감, 누군가 낯선 곳에 혼자 살아가는데 아무도 자신과 교류하지 않는 외로운 심정, 무언가를 아무리 원해도 자꾸만 계속되는 실패에 대한 절망감 같은 거요. 그러니까 공동체 혹은 동료, 가족의 역할을 사이비가 채워주고 있더라고요. 정확히 이런 것들이 그들의 공략 포인트니까 당연히 마음이 힘든 사람들은 거기서 위안받으려고 하겠죠. 한마디로, 좋게 보면 대안 가족 시스템인 것 같아요. 무슨 마을회관 시스템 같기도 하고… 사회가 주지 못하는 복지의 공동체를 만들어 주는 거죠. 그런데 사실 건강한 종교집단은 이미 하는 일인 것 같아요. 사이비가 다른 점은 그러한 목적을 통해서 결국 누군가를 착취하기로 마음먹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서 종교의 나쁜 점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거죠. 아무렇게나 오용되는 방식으로 신을 가져다 쓰는 건데, 그 지점이 조금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쓰: 각본에 캐릭터 이름은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채린’이라는 이름은 사실 학교에서 한 번쯤은 괴롭힘을 했을 것 같은 친구 이름이거든요. 그런 친구의 이름을 상징적으로 잘 설정하신 것 같아요.
임오정: 한 명씩 말씀을 드리자면, ‘나미’는 일단 이름에 ‘나’가 있어서 뭐랄까, 저랑 좀 비슷한 캐릭터이기도 한데요.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중간의 방관자 위치에 놓이잖아요. 어쨌든 생존하기 위해서 버텼던 비겁한 인간 같은 느낌인데, 그게 사실 가장 보통 사람들이 처할 수 있는 포지션이라고 생각했어요. 보통 사람들은 엄청난 피해자 혹은 엄청난 가해자가 아니라 그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이야기나 실제 삶도 바뀐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사람의 시선을 따라가 봐야 한다고 느꼈던 게 있어서 ‘나’가 들어가는 ‘나미’를 했고요. ‘선우’는 이름에 빛이 있어서(the sun). 그리고 혹시 《천사들의 합창》이라는 작품을 아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네요. 아이들이 주인공인 드라마인데, 거기에 정말 예쁜데 정말 나쁘게 나오는 아이가 한 명 있어요. 하지만 마냥 미워할 수만 없이 복잡하고 양면적인 모습을 많이 갖춘 인물이거든요. 저에게도 그런 이름을 떠올리다가, 굉장히 낯선 이름이 ‘채린’이었어요. 저는 사실 ‘채린’이라는 이름이 정말 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지은 거였거든요. 아무도 자기라고 생각할 수 없게요. 근데 지난번 관객과의 대화에서 한 관객분께서 본인이 ‘채린’이라고 손들어주셔서 깜짝 놀랐어요.
그래쓰: 저는 작명할 때가 가장 힘들더라고요. 감독님은 작품 하실 때마다 주인공 이름을 주변에서 얻어오시나요? 아니면 이름에서 뜻을 찾으려고 하는 타입이신가요?
임오정: 제가 작명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나름대로 뜻을 넣긴 해요. 이를테면, ‘효천선교회’도 하늘에 효를 다한다는 의미로 사이비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나미와 선우가 살고 있는 ‘수안보’라는 도시도 원래는 가상의 도시로 만들고 싶어서 이름을 ‘무천’이라고 짓고 싶었어요. 하늘이 없다, 이런 느낌으로요. 나름 장난 삼아서 계속 작명하는 편입니다.
그래쓰: 그리고 혹시 나미가 목매다는 장면에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필름 효과는 어떻게 촬영하신 건지 궁금했어요.
임오정: 그 장면이 나미가 느끼는 공포를 주면서도 너무 자극적이지 않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영화의 세계관에도 맞는 죽음 같은 느낌을 어떻게 줄지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일단 계속 종말이나 불지옥 이런 것들이 나오니까 불을 좀 사용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런 것들이 의도된 효과나 정형화된 이미지로 보이지 않았으면 해서 촬영 감독님과 레퍼런스를 많이 찾아봤어요. 그때 제안 주셨던 게, 직접 35mm 셀룰로이드 필름을 가지고 불을 한 컷씩 태우는 거예요. 태우는 과정을 녹화해서 빠르게 편집한 거고요. 그러니까 처음에 소스 촬영을 하는 디지털 촬영이 있었고, 그 디지털 소스를 필름으로 촬영한 두 번째 촬영이 있었고, 그 필름을 불태우는 작품을 촬영한 세 번째 촬영으로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쓰: 나미와 선우가 살아가는 과정들이 초반에는 굉장히 무거웠는데, 서울에 올라가면서 조금씩 밝아지고 천진난만한 모습들이 보였어요. 의도를 하신 건가요?
임오정: 서울로 가기 직전까지는 ‘그래. 여기도 끝이다.’ 하면서 되게 비장한 각오를 다짐하지만, 사실 쓸쓸하게 이곳을 떠나면서 들었던 회한이 있었을 것 같거든요. 밤에 창밖으로 수안보의 깜깜한 풍경이 비치잖아요. 그러니까 돌아오고 싶지 않은, 지옥 같은 곳임과 동시에 또 엄청나게 사랑했던 공간이고, 그래도 아직은 사랑하는 엄마가 남아있는 공간이죠. 제가 열여덟 살짜리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어요. 그 친구들이 울컥하면서 힘겨워하더라도 장난을 쳐주면 바로 또 꺄르르하며 뒤집어지게 웃더라고요. 그렇게 되게 격차가 큰 나날들을 보내는 게 그 시기인 것 같아요. 그래서 나미와 선우도 마찬가지로, 여러모로 들었던 회한도 잠시 죽음을 멈추고 복수하러 간 곳인데도 불구하고 막상 서울이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고 여행처럼 설레기도 한 거예요. 지금 사실은 복수의 대상을 찾으러 가는 건데 이렇게 천진하게 웃을 수 있는 아이들이라는 점이 저는 되게 짠했어요.
그래쓰: 저도 영화를 보다 보니까 같이 동화되더라고요. 말씀하신 청소년 나이대가 가장 불안한 시기 아닌가 싶어요. 인생에서 자기가 가장 힘들다고 착각할 시기거든요. 감독님께서 이 나이대 분들께 이런 점에서 영화를 꼭 봤으면 좋겠다는 지점들이 있을까요.
임오정: 개인적인 어떤 힘듦이 있다고 했을 때, 그것이 익숙하지 않고 조금은 생경한 것이기에 자칫하면 안 좋은 결단을 하게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돌이켜봤을 때 절대 그 나이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거든요. 근데 그게 꼭 나쁜 일이 있었다기보다는, 모든 일을 되게 신생아처럼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학교라는 공간에서 나오고, 고향에서도 떠나오고, 완전 새것으로 매일 스스로를 챙겨야 하는 일상인데 기댈 곳이 별로 없고, 그냥 계속 혼자 있어야 하니까요. 어떤 무리나 집단에 들어가야 하는지 아니면 거기서 졸업해서 나와야 하는지 이런 초조함도 있었던 시기 같아요. 그럴 때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주변의 누군가와 함께 영화를 보러 올 수 있다면, 혹은 카페에 가서 수다를 떨 수 있다면, 또 다른 매일의 일상에 서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면 괜찮을 거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 영화를 통해서요. 너무 극단적인 생각이나 힘듦을 좀 덜어냈으면 좋겠다…
오우리: 저도 그 나이대는 아니지만 그런 감정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저는 되게 기분 좋다가도 가끔 스스로가 이기적이고 비겁하기도 한 순간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가끔 혼자가 된 느낌을 받을 때가 있거든요. 근데 이 영화가 그런 얘기를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잘 살아남기 위해서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 이야기인데, 어쨌든 나미가 선우를 찾잖아요. 나미가 가장 잘못한 사람한테서 조언이나 용서라고 할까요, 함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영화인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그래쓰: 배우님께서는 연기도 하고 연출도 하신다고 들었어요. 어떤 게 더 재밌으신가요? 더 해보고 싶으신 역할이 있는지, 앞으로 연출을 계속하실 생각도 있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오우리: 글로 써야겠다는 느낌을 받으면 거기에 완전히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편이라서요. 지금은 연기가 조금 더 재미있는 상태입니다. 해보고 싶은 캐릭터는요… 저는 치정 멜로. (웃음) 근데 요즘 사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조금씩 피어오르고 있어서 약간 왔다 갔다 하는 상태예요.
관객: 처음에 이 영화에서 “오키오키”라는 말이 되게 생소한 표현으로 느껴졌는데, 점점 끝으로 갈수록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더라고요. 특히나 마지막에 나오는 대사는 뭔가 전율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이게 의도하신 바인지 궁금했습니다.
임오정: 초반에 ‘오키오키’라고 할 때는 약간 학습된 긍정어 같은 느낌이에요. 대략 상황을 무마시키거나 긍정의 표현으로 아무 말이나 대답하는 거죠. 나미랑 이야기할 때도 진심으로 동의해서 ‘오키오키’ 하는 게 아니라 대충 ‘그래그래’ 같은 거죠. 아마 선우가 살아온 지금까지 버텨왔던 시간에 학습된 것 같아요. 초반에 돈을 빼앗겨도, 케이크에 맞았을 때도 웃고 있잖아요. 그런 모습이 긍정어를 억지로 학습해야 했던 삶을 보여주지만, 마지막의 ‘오키오키’는 나미에게서 진심으로 대답할 수 있는 말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관객: 보통 학교 폭력을 다룬 영화가 불가능한 과정이나 결론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이제는 내가 할 수 없는 것들, 되돌아갈 수 없고, 미래에도 어쩌면 할 수 없는 것을 제안하는데요. 〈지옥만세〉는 그런 거 다 필요 없고 주변에 있는 좋은 친구가 짱이구나, 그 생각이 들어서 영화한테 굉장히 고마웠어요. 저는 당사자성이 있다 보니까 세세한 디테일에 소름 끼치더라고요. 용기를 가지고 다가갔지만,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것들을 보면서 영화가 어떠한 것도 미화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감독님께서 당사자성이 있으신가 생각도 들었거든요. 연출하실 때 실제 경험을 많이 듣거나 도움을 받으신 건지 궁금합니다.
임오정: 제가 물리적인 학교 폭력의 피해자는 아니에요. 하지만 외톨이가 든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경험은 누구나 어느 정도 가지고 있지 않나요. 집단에서 나를 어떻게 볼까,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나를 싫어할까, 이런 마음이요. 우리가 모두 겪었던 한 시절의 이야기인 것 같아요. 사실은 어린 시절뿐만 아니라 사회생활 하면서, 직장생활 하면서, 대학에 가서도 계속되는 갈등이죠. 분명히 저한테도 그런 경험이 있고, 너무나 고립되었다고, 외롭다고, 그 외로움조차 외롭다고 느끼지 못했던 정도까지 외로웠던 적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영화의 반응을 보면 마지막이 생각보다 시시하다고 이야기 해주시는데, 어쨌든 제가 살아오고 경험했던 것에 대한 깨달음이 결국 이거지만, 이게 제가 할 수 있는 진짜 대답 같은 거였던 것 같아요. 다른 대답은 뭐, 영화적으로 더 통쾌할 수야 있었겠지만 그건 제가 가짜를 쓰는 거니까요. 이게 제가 살아왔을 때 느꼈던 답이어서요. 이게 저한테 진실이었거든요. 그래서 그걸 느껴주시는 분들이 분명히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아요.
관객: 감독님의 단편을 좋아해서 기대감이 컸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다른 느낌으로 좋아지는 것 같아요. 한 십 년이 지나도 그 당시 젊은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우리 배우님께서 워낙 본인이 나미 캐릭터와 비슷하다고 말씀하셨지만, 캐스팅되고 나서 캐릭터 설정 같은 것에 조금 달라진 부분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임오정: 배우님이 나미를 맡아주시면서 캐릭터가 바뀐 거… 근데 너무 딱 이라서. (웃음) 저는 아직도 다른 영화 볼 때 적응이 잘 안될 정도로 저한테는 너무 귀한 나미였고, 오히려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이를테면, 나미가 선우에게 사과하는 장면에서 대사가 너무 안 나왔거든요. 영화 내내 미안하단 말을 계속 쓰잖아요. 근데 이번에야말로 진짜 미안하다는 걸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더라고요. 제가 아무리 써도 배우분들께서 ‘진심이 안 느껴져요.’, ‘자기 생각만 하는 것 같아요.’ 이렇게 이야기해서 너무 괴로웠는데, 우리 배우님이 직접 쓰기도 하고, 그걸 바탕으로 제가 고치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함께 나미를 계속 만들어 나가는 작업을 했어요. 그래서 실제 우리 배우랑 다르냐고 물으신다면, 그것은 너무 엉켜 있는 뿌리 같은 거라서 잘 모르겠지만… 제가 만든 나미랑은 훨씬 더 다르게, 멋있고 풍부한 나미가 된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관객: 저는 영화를 봤을 때 감독님이 어떤 분일까 되게 궁금했어요. 연출하시는 부분이 되게 세심해서 작은 배역들도 다 빛이 난다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장면 하나를 꼽자면 마지막 장면이 제일 좋았는데, 감독님께서는 개인적으로 현장에서 바라보는 시선으로 빠져들었던 부분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임오정: 제가 가장 째지게 웃었던 때는 불꽃놀이 장면입니다. 나미가 춤추는 거 보면서 제가 엄청 함박웃음 짓고 있었더라고요. 일단 그 춤도 너무 귀엽고, 아이들이 웃을 수 있는 상황이라서 되게 좋았고, 갑자기 영화 밖으로 나와서 좀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슬펐던 장면은 두 번 있어요. 혼자 세 번 울었는데, 선우가 케이크 맞을 때. 클로즈업 딸 때 울었고, 혜진이 보면서 한 번 울었고요. 이상하게 명호가 죽었을 때 울었어요. 시체를 찍고 왔을 때 캐릭터에 대한 연민 이런 걸 떠나서 그냥 한 사람의 죽음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주인공들에게 이걸 경험하게 하려고, 그렇게 이야기를 여기까지 끌고 와서 본 게 이 죽음이구나… 이런 생각이 조금 들었어요. 그리고 모두가 제가 좋아할 거로 생각하고, 실제로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 장면은 당연히 엔딩 장면. 너무 좋아해요. 근데 우리 배우님이 진짜 잘 뛰시거든요. 배우분 중에서 뛰는 모습이 예쁜 게 엄청 장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뛰는 모습이 진짜 잘생겼어요. 정말 잘 뛰세요. 저는 이 영화 시작했을 때, 팔딱팔딱 살아있고 싶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고 싶어서 뛰는 장면을 엄청 넣고 싶었거든요. 여기서 다 우리 배우님이 너무 멋지게 표현해 주신 것 같습니다.
그래쓰: 우리 배우님께서도 최후의 장면과 별개로 촬영하면서 행복했던 순간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려요.
오우리: 저 사실 뛰는 장면 찍을 때 진짜 재밌었어요. 옆에서 차랑 같이 달리는데 정말 즐겁게 뛰었었어요. (웃음)
그래쓰: 마지막으로 질문드려 볼 텐데요. 저도 저를 좋아해 주는 팬 분들 모습을 보면 저랑 닮았다는 게 느껴져서 어디 오프라인 자리에서 만날 때마다 약간 눈물이 차오르고 그랬거든요. 감독님이 작품 하시다 보면 매번 관람하거나 응원 와주시는 팬 분들 있잖아요. 어떤가요? 뭔가 좀 닮아 있다는 그런 느낌이 드시나요?
임오정: 저는 다 나미 같아요. (웃음) 그런데 어떤 분들은 또 선우 같기도 하고요. 어쨌든 영화를 만들어서 제가 생각하고 느낀 걸 보여드렸는데, 저는 응답받았거든요. 제가 영화를 왜 찍는가, 그리고 왜 사람들의 반응을 궁금해하나 이런 걸 항상 고민하는데요. 똑같은 걸 보고 같이 낄낄거리거나, 좋아하거나, 아니면 같이 욕해줄 친구 있으면 해서 가능하면 같은 걸 보고 감동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만드는 것 같아요. 여러 번 봐주시는 분들은 이미 그런 분들이신 것 같고, 그렇지 않더라도 어떤 강렬한 무언가가 남았다면 그것만으로도 뭔가 통한 것 같아서 기쁩니다.
그래쓰: 감사합니다. 이렇게 영화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하고, 아까 보셨다시피 여러 번 관람해 주시는 분들은 그런 이유가 있거든요. 그래서 두 번, 세 번 볼 때 또 다른 관점에서 보일 수 있으니까 여러분들 앞으로도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수고해 주신 배우님과 감독님께 박수 한번 부탁드릴게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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