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습이 변한대도, 방향이 다르대도. 그래도 가족
썸머프라이드시네마 2023〈가을이 여름에게〉 원은선 감독 인터뷰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수영 님의 글입니다.
엄마와 이혼, 프라이드라는 대주제에 걸맞지 않아 보이는 두 단어가 등장한다. 인생의 가을에 다다른 미숙은 딸들에게 무슨 애기를 하고싶은 걸까. 아직 무더운 여름날을 보내는 딸들은 결혼, 미래, 사랑의 영역에서 어떻게 자신만의 계절을 준비하고 있을까. 가족과 친밀함의 경계가 끝없이 확장되는 지금, 원은선 감독이 영화로 드러낸 관계의 이면이 무엇일지 인터뷰를 통해 들어봤다.
무더운 여름에 영화를 보고 있어 그런지 제목이 인상 깊습니다. 〈가을이 여름에게〉 제목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저도 오랜만에 영화를 봤어요. 〈가을이 여름에게〉라는 제목을 처음 생각했을 때 담고 싶었던 의미는 계절을 생각했을 때 미숙은 가을로 딸들은 여름에 비유하고 싶었어요. 미숙이 39년의 결혼생활을 끝내기 위해 이혼을 결심하고, 딸들을 불러 모으는데요. 그 모습이 마치 습하고, 덥고, 조금은 짜증 날 수 있는 여름이라는 계절을 지나 그 과정을 모두 겪어낸 가을의 계절에서 여름에 아직 머물러있을 딸들에게 얘기하는 것 같아서 제목을 '가을이 여름에게'로 지었습니다.
인물이 여럿 등장한 만큼, 캐릭터 디자인에도 꽤 긴 시간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가장 애착 가는 캐릭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알아주셔서 감사해요.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 결혼이라는 큰 주제 안에서 다양한 상황 안에 있는 인물을 만들기 위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딸들의 각자 다른 성격에 따라 엄마의 이혼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를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요.
예를 들면, 둘째 민아의 경우에는 퀴어로서, 자신을 둘러싼 여러 차별적인 시선들을 견뎌내고 있는 인물이자, 엄마와 가까워 미숙 편에서 가장 엄마의 입장을 지지해 줄 수 있는 인물로 설정했습니다. 셋째 다은이는 자유분방하다 보니까, 처음에 반발했을지언정 자신만의 방법으로 쿨하게 이혼을 받아들이고요.
이렇게 각각의 캐릭터의 반응을 상상하며 구축했는데, 모든 캐릭터가 애착이 가지만 아무래도 가장 애착 가는 캐릭터는 미숙(엄마)인 것 같아요. 영화에서 처음과 끝의 얼굴을 차지하기도 하고, 촬영 장소가 실제 제 외할머니 댁이었거든요. 장소가 주는 감정도 있었던 것 같고요. 옥상에서 촬영할 때, 막내 민희 역할 노아 배우님과 자영 배우님이 대사를 하시는데 약간 울컥하더라고요. 엄마와 딸 사이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무언의 감정이 있잖아요. 배우님들도 연기하시면서 그런 감정을 느끼셨던 것으로 기억해요.
가족이든 퀴어든, 사랑 얘기를 할 때 중년 여성이 주체로 등장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왜 엄마의 삶, 그중에서도 엄마의 이혼을 조명하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개인적 얘기로 시작했어요. 아마도 매체에서 처음 얘기하는 듯한데, 어머니가 이혼하시면서 저희 모녀에게도 변화가 생겼거든요. 그래서 이혼을 슬프게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일어난 하나의 사실로서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거기서부터 딸들의 얘기가 시작되죠. 만약 엄마가 이혼한다면 각자 다른 성격의 딸들은 무슨 고민을 겪게 될까? 이 상상에서 시나리오가 발전됐고 동시에 결혼제도 밖에서 생활하고 싶은 사람들의 얘기를 포함하고 싶었어요. 자주 다뤄지는 사람들이 아니니까요. 그들을 포함해 이야기를 발전시키고 싶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게 됐어요.
마지막 장면, 미숙의 후련한 표정과 여성 가족 구성원들이 다 같이 차를 타고 ‘집’을 떠나는 행위가 인상 깊어요. 결말을 통해 특히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다면 공유해 주실 수 있을까요?
영화 결말을 보면 해결된 게 없어요. 미숙의 이혼도, 민아도. 결론지어진 것이 없거든요. 그래도 다시 웃을 수 있는 게 가족이라고 생각했어요. 하루 동안 힘들고 고민되는 지점이 있었지만, 아무리 지지고 볶아도 결국은 가족이란 이름으로 계속 살아가게 되는구나. 그래서 마지막 차를 타고 가는 주인공들을 보며 ‘아, 어려운 일이 있다고 해도 각자 방식대로 해결하며 또 살아가겠구나’라는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어요.
엄마의 이혼과 결혼하고 싶어 하는 딸이 대비되는 관계인 것 같습니다. 딸이든 엄마든 가족으로의 결합 및 인간관계 구성에 관해 얘기하고 있는데,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가족이란 무엇인가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내가 생각하는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가족을 선택하고 태어나진 않잖아요.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이 좋을 때가 많지만 가끔은 미울 때도 있고요. 그런데도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하나 있는 내 편이라는 점이 가족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영화에서도 주인공들이 한창 거실에 싸우다 특별한 사과 없이 차를 타고 밥을 먹으러 가잖아요. 말하지 않아도 이어지는 정서를 공유하는 게 가족이지 않을까요? 요즘 가족 구성권 3법(혼인평등법, 생활동반자법, 비혼출산지원법) 제정과 같이 가족의 외연을 확장하는 여러 제도가 등장하는데, 가족 범위를 넓힐 필요는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지금 발의되는 법안들은 의미 있는 행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들어 퀴어의 가족 구성권에 대해 꾸준히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미숙과 민아를 비롯해 주인공들의 미래를 상상해 본다면 어떨 것 같으신가요?
영화에는 그 시대의 정서를 담는 시의성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제 영화에게 안 좋을 수는 있지만, 개인적 바람으로 이 영화가 구식이 됐으면 좋겠어요. 아까 언급했던 법안들이 다 성공적으로 입법돼서, "아니, 저 때는 생활동반자법도 없었어?", "저 때는, 혼인 평등법도 없었어?" 이런 얘기가 나올 수 있도록요.
각 캐릭터의 미래를 상상해 보면 지금과 크게 다를 거 같지는 않아요. 미숙의 이혼에 대한 결심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막내 민희도 엄마의 이혼과 별개로 잘 결혼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첫째 연서도 시어머니와 싸우면서까지 일하고 있는데, 결혼이라는, 출산이라는 개인적인 일들로 커리어를 놓지 않고 오래오래 잘 살았으면 좋겠고요. 다은도 그때그때 순간의 감정에 최선을 다하며 사랑했으면 하고요.
등장하는 캐릭터 중 가장 어린 캐릭터가 첫째 연서의 딸인 아현인데요. 그 친구가 어떻게 보면 가족의 미래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아현이가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한여름에 열린 썸머프라이드시네마에서 관객을 만나는 것은 즐거운 경험일 것 같습니다. 방금 GV도 하셨는데, 기억에 남는 질문이나 다른 영화제와 달랐던 점이 있나요? 상영 소감도 궁금합니다.
썸머프라이드시네마에 평소에도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꼭 참여해 보고 싶었는데 감사하게 초청해 주셔서 관객분들과 만났어요. 오늘이 특별했던 점은, 아무래도 제 영화가 상영된 섹션 자체가 장르나 형식 면에서는 다르지만, 공유하는 정서가 있거든요. 그러한 지점을 잘 기획해 주셔서 감사했고, GV 때도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얘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마도 준비해 주신 분들의 노고 덕분인 것 같고, 그게 아마 이 영화제만의 큰 장점이겠죠.
아! 이 영화를 여러 번 봐주시는 분이 계세요. 창피하면서도,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저 혼자만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를 누군가 공감해 주고, 이 이야기를 통해서 위로받으셨다는 게 영화 만드는 사람으로서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단편영화는 특히 상영 기회가 정말 소중하거든요. 너무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는 날이었습니다.
앞으로 촬영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지금까지 너무 달려왔던 것 같아서 요즘은 쉬고 있어요. 근데 쉬다 보니 하고 싶은 얘기가 생각나더라고요. 제가 관심 두는 주제가 아무래도 지금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이어서, 제 안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드라마가 아닌 스릴러, 멜로 장르물이라든지 새로운 것들에 도전할 수 있는 날들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고민으로는 요즘 들어 코로나가 나아졌음에도 영화계가 몹시 어려운 것 같아요. 제가 느끼는 것도 이 정도인데, 고민하는 영화인 분들이 더욱 많을 것 같습니다. 영화제를 준비해 주신 많은 분들을 비롯해 힘든 시기를 겪고 계신 영화인 분들이 모두 지치지 않고, 힘내셨으면 좋겠고, 저도 힘을 내서 영화를 오래오래 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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