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들이 피워낸 영화라는 꽃이 우리에게 닿아서
〈작은정원〉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3년 7월 22일(토) 15:30 상영 후
진행 여성인권영화제 정 프로그래머
참석 이마리오 감독, 방은진 감독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소정 님의 기록입니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현장의 분위기가 영화가 담고 있는 무드를 그대로 닮는다는 생각이 든 적이 많다. 역시 〈작은정원〉의 인디토크 현장 또한 영화 〈작은정원〉의 아름답고 산뜻한 분위기를 그대로 닮아 있었다. 할머니 감독들이 한데 옹기종기 모여 각자가 찍어 온 영상을 보는 다큐멘터리의 분위기처럼 게스트와 관객들이 〈작은정원〉을 함께 보고 서로의 감상을 나누고 각자의 삶을 응원하는 모습은 작은 정원에서 피어나는 영화라는 하나의 꽃을 보는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는 작고 보잘것없는 꽃일지도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꽃이 매일매일의 삶의 활기를 가져다주는 것처럼 소소하지만 빛나는 〈작은정원〉의 인디토크 현장을 공개한다.
정 프로그래머(이하 정): 안녕하세요? 영화 재밌게 보셨나요? 저도 같이 영화를 보았는데요. 굉장히 재밌게 영화를 보시는 것 같아서 역시 영화를 보는 맛은 혼자 보는 게 아니라 이렇게 같이 보는 거구나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같이 보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더 좋은 건 영화 마치고 같이 이야기 나누는 거겠죠. 좋았던 점, 궁금했던 점 같이 나누면 참 좋을 텐데요. 오늘 제 옆에 계신 감독님과 게스트님과 함께 약 1시간 동안 우리 관객 여러분과 GV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오늘 GV의 진행을 맡은 저는 여성인권영화제 프로그래머이자 한국여성의전화 공동사무처장 정이라고 합니다. 감독님과 게스트님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마리오 감독(이하 이): 안녕하세요. 영화 만든 이마리오입니다. 이렇게 주말에 영화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방은진(이하 방): 안녕하세요. 저는 이마리오 감독과 별로 친하지 않아요.(웃음) 가끔 연기도 하고 영화 만드는 방은진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정: 오늘 GV에는 강릉의 이스트씨네에서 ‘영화 찍는 할매들’이라는 엽서가 특별히 이 영화와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협찬해 주셨어요. 그래서 나가시는 길에 꼭 받아가시기 바라겠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이제 영화 GV 한번 시작해 볼까 합니다. 영화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한데요. 이런 얘기는 우리 관객분들께서 함께해 주셔야 더 풍부하고 재밌겠죠. 그전에 혹시 아직 입이 바로 트이지 않으셨을 수 있으니까요, 혹시 소감을 나누어 주시고 싶으신 분이 계실까요? 없다면 먼저 방은진 선생님 혹시 영화 어떻게 보셨는지(웃음)
방은진: 아시는 분들은 아실 수도 있지만 강원도와 연을 맺게 된 건 영화 촬영과 로케이션을 돕거나 제작 지원을 하는 영상위원회라는 곳 덕분이에요. 강원도가 전국에서 영상위원회가 가장 늦게 생긴 지역이에요. 제가 초대 위원장이 되면서 연을 맺게 됐어요. 그리고 작년에 중단이 됐지만 평창에서 국제영화제를 4회까지 치르게 되면서 한 6년 반 정도 행정을 담당했어요. 그러면서 강원도에 대해서 예전에 관광객으로서 느끼지 못했던 이면을 보게 됐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됐고요. 그중에서 한 분이 이마리오 감독님이셨습니다.
전작 다큐들 이후에 오랜만에 작품을 만드셔서 뭘 만들고 있는지 궁금해하다가 작품이 완성이 됐다는 얘기를 듣고 어떻게 보면 가장 먼저 와서 보게 됐어요. 그 이야기가 명주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던 거였죠.
영화에 나오시는 분들의 자존심이 엄청 세시잖아요. 저는 그런 게 참 좋아요. 이분들이 그냥 무너져 있거나 아무것도 못하고 그런 게 아니라 작은 텃밭을 가꾸는 것부터 시작해서 결국은 셀카봉을 쥐고 자신이 주인공이 된 다큐를 찍는 얘기를 만드는 방식이요. 처음에는 너무 앞뒤가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좀 들었는데 다 보고 나서 생각해 보니 이해가 됐고 이렇게 서로에게 평소에 못 하는 말을 할 수 있는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저는 굉장히 위로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얘기가 길었습니다.
이마리오: 강원영상위원회 초대위원장이셨죠. 영화 시작할 때 보면 앞에 제작 지원에 강원영상위원회가 있는 게 실제로 돈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영화를 제작하라고 지원을 해주는 것에 지역에 있는 영상위원회가 굉장히 중요하고 특히 저 같은 경우에는 강원영상위원회가 있어서 이렇게 왔다고 하는 건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방은진: 근데 그건 솔직히 저의 의지랑 상관이 없어요. 아시겠지만 심사는 심사위원들이 하시기 때문에 제가 관여할 수도 없는 거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고, 그냥 감독님의 기획과 시놉시스로 지원금을 받으신 거죠. 그러나 여튼 감사합니다. (웃음) 강원도가 너무 떨어져 있다 보니 독립 영화인들은 구심점이 좀 없었어요. 강원도 출신의 훌륭한 감독들 중 젊은 감독들도 꽤 많거든요. 그분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독립영화협회를 구성하게 된 스타트가 된 것에 대해서는 저도 감사하고 좀 자부심을 느끼긴 해요.
정: 관여하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시지만 사실 너무 중요한 역할을 하셨을 것 같아요. 우리가 지역에서 문화적인 것들의 기반을 마련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수장의 의지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요즘 느끼시죠. 그래서 굉장히 상징적인 역할로 많이 애써주셨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사실 이런 영화 〈작은정원〉이 나오기까지, 그러니까 우리 언니들이 영화를 만들고 같이 보고 할 수 있는 건 모두 지역에서 문화활동을 지원해주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마리오 감독님께서는 지역으로 좀 돌아가서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활동을 하고 계신데 혹시 그렇게 마음 먹게 되신 계기가 있으셨을까요?
이마리오: 20대 후반에 서울에 왔죠. 너무 재밌고 갈 곳도 많고 좋았는데 시간이 좀 지나다 보니까 이 도시가 나를 받아주는 느낌이 전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는 여전히 이 도시의 이방인이고 나 혼자인 것 같은 느낌들. 그러니까 늘 막 바쁘게 지내다가 어느 하루 한가할 때 집에 가만히 있으면 나만 세상에 뒤처져 있는 느낌. 이런 느낌이 너무 싫어서 빨리 벗어나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냥 가버리면 나쁜 놈 되잖아요. 바빠 죽겠는데 사람도 없는데 너만 살겠다고 가야지 이러면 안되잖아요. (웃음) 그런데 마침 강릉에서 미디어 센터를 만들 계획이 있었고 그걸 준비하는 사람이 좀 필요해서 주변에 아주 당당하게 강릉에 사람이 필요하다, 나를 원한다고 말하고 내려가게 됐습니다. 그게 2009년이에요.
정: 그러면 벌써 10년이 넘게 꾸준히 활동하고 계시는데 혹시 변화가 느껴지시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이마리오: 그 안에 있으니까 사실은 잘 느껴지지는 않는데 초반에 실제로 2009년에 내려가서 10년부터 강릉의 미디어센터가 만들어져서 거기에서 미디어에 대한 일반적인 교육을 포함해서 영화 제작 교육까지 다양하게 교육들을 진행을 했고요. 그게 좀 씨앗이 됐다고 보여지기도 하는데 또 한편으로는 정동진독립영화제 중심에 활동하고 있었던 그룹이 있었고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생겨났던 것 같아요. 지금은 강릉에 인디하우스라는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교육이나 제작을 돕는 중입니다. 사실은 아시다시피 지자체장에 따라서 상황들이 휙휙 바뀌기도 해요. 늘상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어려움을 느낀다기보다 또 이렇게 반복이 되는구나 하죠. 더불어 강릉이라는 지역은 굉장히 오래된 도시다 보니까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지역이에요. 그래서 새로운 걸 한다고 했을 때 어쩔 수 없는 어려움들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런 것들을 조금씩 바꿔 나가고 있고요. 그러한 책임이나 역할들이 제가 아니라 다음 세대나 젊은 친구들한테 조금씩 넘어가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정: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해 주시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우리 언니들이 영화를 만드시는 것도 강릉시 영상 미디어센터 최승철 사무국장님이 함께 하신 거죠. 또 여기 되게 나이대가 다양한 스태프들이 함께 있잖아요. 뿐만 아니라 봉봉방앗간 같은 지역 커뮤니티가 함께하고 있고요. 그 후에 영화제라든지 신영극장과 같은 작은 예술극장에서 상영까지 할 수 있는 것이 모든 것이 함께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었겠나 하는 생각이 다시금 듭니다. 이마리오 감독님도 그런 면에서 굉장히 애를 많이 써주시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혹시 또 영화 보시면서 눈여겨보셨던 점이나 궁금하셨던 점, 아니면 격려의 소감이나 이런 것들도 관객분들 좀 나누어 주실 수 있을까요?
관객: 제가 말은 잘 못하는데요. 느낀 게 조금 있어서 말씀을 드려보자면 저는 원래 할머니 이야기에 쉽게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라서 손수건을 가져왔거든요. 근데 생각보다 굉장히 많이 웃었고요. 대신 가족들 생각이 많이 났고요. 되게 벅찬 영화였어요.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를 보다 보면 상업영화랑 다르게 스토리라인이 뚜렷하지 않으니까 내가 영화를 어떻게 잘 따라갈 수 있을까 고민을 하면서 보게 되는데 이번에는 그런 생각 없이 그냥 쭉 따라가면서 봤던 것 같아요. 그래서 너무 좋고요. 전에 인디스페이스에서 GV를 했을 때는 모더레이터님이랑 감독님이랑 말씀을 많이 하셔서 그냥 보는 입장이었다면 오늘은 아예 관객과 대화하는 포지션이어서 ‘오늘은 말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정말 귀한 시간이랑 귀한 발걸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방은진: 말씀하시고 나니까 기분이 어떠세요?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적극적인 관객으로 참여해 주시면 창작자들에게는 너무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영화도 여러 가지 소회가 각자 있으시겠지만 우리가 진짜 가깝다고 하는 가족들한테 얼마나 진심을 전하고 살았는가 그런 생각이 참 많이 드는 영화잖아요. 내 진심을 전하는 데에도 어떤 의도나 마음 먹음이 필요하다는 걸 이 영화를 보면서 또 많이 생각을 하게 됐는데 여기 계시는 분들이 그런 분들이라고 저는 믿고 싶습니다. 그래서 다음 분? (웃음)
관객: 할머니들의 서사를 보면서 그 질문들을 따라가는 게 너무 좋았어요. 저는 딸이기도 하고 제가 아이 둘을 키우고 있기도 해서 엄마하고 좋았던 기억을 떠올릴 수도 있었고 서운했던 걸 떠올릴 수도 있었는데요. 반면에 저의 아이들에게 제가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를 같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나중에 아이들한테 이런 질문을 했을 때 아이들은 어떤 이야기를 할까 싶었고요. 감독님께 궁금한 것이 저는 여성이고 또 할머니가 될 사람이기도 하고요, 해서 여성 서사에 워낙 관심이 많아요. 그런데 예산이 한정돼 있고 시간이 한정돼 있을 때 환경 문제를 다룰 수도 있고 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만들 수도 있는 것처럼 감독님의 여러 관심사가 있으실 텐데 그중에서 할머니들의 이야기들을 이렇게 아름답게 담으신 계기나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이마리오: 늘상 만나서, 그냥 옆에 있었던 분들이었어요. 여기 나오는 최승철 감독이 2016년부터 사진 수업을 3년 정도 진행을 했어요. 저는 수업을 하지는 않았고 기획자 역할을 했죠. 돈 필요하면 돈 따오고 구경하고 이런 역할을 하면서 쭉 지켜보는데 한편으로는 굉장히 행복해 보이고 더 나아가서 부러움이 좀 느껴졌어요. 나도 저 나이에 저렇게 살 수 있을까, 어떻게 저렇게 사실 수 있지 하는 부러움의 감정들이 아마 영화를 시작했을 때 가장 크게 느껴지는 거였어요.
어떤 분이 왜 할아버지는 없냐 라는 질문을 하시기는 하셨어요. 그런데 할아버지들은 모여서 아무것도 안 하세요. (웃음) 술 마시고 화투 치시고 혹은 서로 싸우시고 안 보시고. 그래서 찍을 기회가 많이 없었던 것 같아요. 농담 반 진담 반입니다. (웃음)
정: 안 그래도 여쭈려고 했는데 (웃음) 다른 관객 분 손 드셨는데 말씀 부탁드립니다.
관객: 저도 할아버지들은 왜 안 계시냐고 여쭤보려고 했는데요. (웃음) 전 인상적이었던 것이 이 작품이 하나의 결과물이기는 하지만 그동안의 과정이 더 눈에 들어왔어요. 지원사업 아래서 어르신들만이 아니라 젊은 스태프 분들이나 지역 내 어떤 협동조합이 함께 협업해서 훌륭한 결과물이 나온 거잖아요. 그래서 세대 간의 통합 내지는 소통 측면에서 굉장히 큰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자체별로 이런 사업들이 강원도가 아니더라도 얼마나 활발하게 진행이 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저도 이걸 보면서 나도 영화 찍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드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작업들을 같이 하고 싶으면 어떤 경로들을 밟거나 어디 가서 문의를 해야 하는지 궁금하네요.
이마리오: 제가 알고 있는 건 사실 딱히 없어요. 강릉 같은 경우에는 언니들하고 수업하면서 영화 찍을 때 처음 공모 지원 사업을 신청해서 받았어요. 제작비 때문에 영화 찍으려면 돈이 필요하죠. 그래서 그때 강원문화재단에서 이런 사업을 해서 지원을 받았고 지역에 있는 젊은 영화인들이 스태프로 참여를 한 거죠. 언니들이 가장 좋았던 게 젊은 친구들하고 손자 손녀 관계가 아닌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료로 지낼 수 있는 부분이었다고 얘기를 하셨어요. 어떻게 보면 그건 지원 사업이나 정책의 문제라기보다 어떤 단위에서, 혹은 어떤 사람들이 추진하느냐에 따라서 내용들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습니다.
정: 지금 서울에 살고 계시다면요, 아마 서울에서도 시민들 대상으로 한 영화 제작 워크숍 같은 것들은 많이 열리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 선생님도 그런 것을 통해서 도전해 보시면 좀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는데요. 이 영화의 멋진 점이 그런 게 아닌가 싶었어요. 누구나 영화를 만들고 싶어지고 내가 나이 들어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생각하게 하는 점이 참 멋있지 않았나 싶었는데요. 혹시 관련해서 노년에 대한 이야기나 영화를 만들거나 혹은 배움을 시작하는 설렘 등에 관해서 혹시 좀 나누어주고 싶으신 경험이나 이야기 있으시면 손에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고요.
관객: 앞서 질문들을 많이 해주셨는데 저는 그냥 소감을 얘기하려고 해요. 한 2년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인지 할머니 생각이 되게 많이 나더라고요. 제가 할머니한테 마지막에 돌아가실 때 할머니도 하고 싶은 거 있지 않냐고 물어봤거든요. 영화를 찍고 싶었다든지 다른 도전 같은 거 해보고 싶은 거 있냐 그런 얘기를 많이 했었는데 딱 이 영화에서 그런 얘기들이 많이 나오니까 저는 제 할머니가 대신 하고 계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나도 나이 들어도 이렇게 멋지게 도전하고 저런 활동들을 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할머니 생각도 하고 나이 드는 게 무섭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런 영화 만들어주신 걸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정: 맞아요. 저도 감독님들께 질문을 드리고 싶었던 게 선배 창작인으로서 나이 들어가면서 창작 활동을 지속하시는데 좀 고민이 있지 않으실까 생각이 들었거든요. 혹시 고민을 공유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마리오: 개봉하고 나서 인터뷰 요청이 올 때 그런 말씀을 드렸는데 사실은 거의 저는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다 이렇게 표현을 했거든요. 그러니까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그 순간을 그냥 옆에서 찍기만 한 거예요. 내가 나서서 하는 작업도 있지만 이 영화는 제가 지금까지 작업한 것들 중에 가장 힘을 빼고 편하게 작업했던 이야기이긴 해요. 특히 다큐멘터리는 극영화하고는 다르게 시간도 오래 걸리고 소수의 팀으로 꽤 오래 가야 돼요. 그리고 저는 사실 대부분 혼자 작업해본 적은 없고 다 팀을 꾸려서 작업했는데 다큐도 계속 이렇게 작업하면 내가 최대한 힘을 안 들이면서 뭔가 그럴 듯한 작업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꿈을 꿔보기도 했었어요. 개인적으로는 그런 생각은 들긴 해요.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갖고 있는 특성이기도 할 것 같은데 돈이 없어도 만들 수 있고 나이를 먹어도 나이를 먹은 대로 뭔가를 또 만들어낼 수도 있겠다. 다큐도 한계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극영화에 비해서 조금 더 자유롭고 조금 더 할 수 있는 방식들이 다양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많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방은진: 감독님께서 극영화에 대해서 얘기를 해주셨는데 바톤을 이어받아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저는 극영화 감독이고 2005년도에 처음 연출하고 장편을 네 편, 단편을 한 세 편 만들었는데 준비한 건 그것의 한 4배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자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죠. 저는 제가 배우로서 상업적인 배우는 아니었어서 처음 시작할 때부터 상업영화의 주류 장벽을 넘어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고 그래서 상업영화 감독으로 데뷔를 했어요. 잘 나갈 줄 알았죠. 그런데 두 번째 작품까지 몇 작품이 중단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그게 저의 능력이 부족해서인지 운 때문인지. 제가 한 3-4년 정도 준비했는데 작년에 코로나 관통하면서 제작 중단이 된 게 있어요. 나이 듦에 대해서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제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좀 느껴요. 엄청나게 운동을 열심히 하죠. 지금 그런 부분을 무너뜨리지 않으려고는 하지만 체력이 떨어지면 판단력이 좀 떨어지잖아요. 남의 돈 80억, 100억 영화에 쓰는 건 엄청난 일이니까 두려움이 생겨요. 내가 육십이 넘어서까지 연출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그래서 마음이 좀 조급하고 실제로 남성 감독도 60이 넘어서 활동하는 사람이 박찬욱, 이준익 감독님 정도밖에 없거든요. 그게 왜 그러냐면 열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회가 그만큼 변화됐고 문화를 소비하는 주층이 더 많은 신선하고 변화를 많이 요구하기도 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사실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에 대한 두려움이 많아요. 그래도 아직은 한 번은 남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으로 더 열심히 하려고 하고 더 지치지 않으려는 것 같아요. 저는 끊임없이 배우려 합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에 대해서 한 번도 쉬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로하고 사랑하고 아껴주려고 하는 것 같아요. 또 ‘일이 잘 되거나 일이 성공하면 내 인생이 성공하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걸 버리자 싶어요. 일은 실패할 수도 있는데 실패했다고 내 인생이 실패한 것까지 가는 거는 너무 비참한 거 아닌가, 나이가 드니까 이런 생각이 좀 들어요.
관객: 말씀 나눠주시는 거 너무 좋아요. 왜냐하면 계속 힘든 시간들을 보내면서 단순히 돈을 벌어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내 삶을 운영해 나가야 할까에 대한 고민을 하는데 나보다 조금 더 생을 사신 분도 여전히 저런 고민을 하면서 살고 계시는구나를 들으면 내가 지금 단순히 괴로워할 고민이 아니라 계속해야 되는구나, 나 혼자만 그런 고민을 하는 게 아니고 이런 걸 나눠줄 수 있는 분이 분명히 계시구나 하는 거에 진짜 큰 위로를 받아요. 그래서 힘내셨으면 좋겠고요. 응원하고 같이 열심히 살아가면 될 것 같은 거예요.
다큐멘터리라고 해서 또 질문드리고 싶은 게 제가 작년에 친구 때문에 다큐멘터리라는 세계를 조금 발견했어요. 다문화 이주 여성을 담고 싶어 하던 친구였는데 자기 얘기가 아니고 타인의 이야기다 보니까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어디까지 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엄청나게 깊더라고요. 그래서 감독님도 어떤 과정을 통해 촬영을 하셨는지 작업 과정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이마리오: 처음에 기획 단계에서 한 2년 찍으면 충분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이제 1년 지나고 2020년이 돼서 이제 본격적으로 언니들의 내밀한 개인들의 공간으로 들어가겠다는 계획을 하고 있었는데 코로나가 터진 거죠. 그러면서 거의 6개월 이상 사실 촬영을 못했어요. 아예 언니들이 집 밖을 나오지도 않으셨어요. 본인이 이제 나이 드신 분도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자식들한테도 민폐가 될까 봐 아예 집 밖으로 나오지 않으셔서 그때 촬영이 연기되면서 1년을 더 찍게 됐어요. 편집이 굉장히 여러 가지 버전이 있는데 초반 편집본은 언니들이 찍은 스마트폰 영상이 없는 다른 흐름의 이야기들로 됐는데 그걸 보면 조금 더 예술적일 수도 있고 더 작가적인 느낌이 나오는 영상일 수도 있는데 제가 봐도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그리고 그전까지 사실 언니들이 찍은 영상은 제대로 본 적이 없었는데 그때 처음부터 모든 영상을 다시 쭉 훑어보게 되면서 느낀 것이 있었죠. 처음 영상을 배우고 만들 때에 들었던 생각들이 그 영상에 굉장히 잘 담겨 있었어요. 그런 에너지가 좋아서 언니들 영상을 조금 쓰는 게 아니라 대놓고 쓴다, 그렇게 전략을 딱 바꿨어요. 실제로 영화를 보면 언니들이 촬영한 영상이 50% 이상이에요. 제가 숟가락을 얹었다는 이유가 그런 지점인 거고요.
관객: 아까 어떤 분이 할머니 얘기만 하면 운다고 하셨는데 저에게는 엄마가 그래요. 엄마라는 단어만 들으면 눈물이 나는 사람인데 제가 엄마한테 평소에 듣고 싶었던 말, 하고 싶었던 말이 후반부에 나와서 오늘 엄마한테 이런 말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어서 좋았었고요. 친구들이랑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 나이 들면 공동체를 꾸려서 같이 살자, 이렇게 얘기를 항상 해요.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여러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좋았어요. 궁금한 점은 어떻게 출연 설득을 하셨는지 그리고 어려운 부분이 있으셨는지에 관한 부분입니다. 또 사적으로 한마디만 해도 된다면 방은진 감독님 팬이어서 사실 오늘 깜짝 놀랐었거든요. 앞으로 다 잘 풀리실 거라는 말씀과 더불어 이마리오 감독님도 건승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거 생각하고 기억하셔서 힘내시면 좋겠습니다.
이마리오: 제가 설득한 건 아니고 이분들이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셨던 것 같아요. 저도 이따금씩 영상에 제가 나온 걸 볼 때마다 흠칫하죠.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고 그런데 나이가 들면 그게 더 심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근데 그걸 언니들이 매주 수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신 것 같아요. 내가 나이를 먹었고 저게 내 본 모습이라고 받아들인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관객: 포스터에서도 꽃이 많이 보이고 영상에서도 계속 꽃에 대한 이미지들이 되게 많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꽃이 의도하는 바가 있는지 그게 좀 궁금했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꽃이라고 생각을 하면 능소화가 생각이 나거든요. 능소화가 업신여길 능(凌), 하늘 소(霄) 자를 쓴대요. ‘아무리 난리쳐봐라 나는 피어나고 말지’ 이런 뜻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이 영화 자체가 능소화 같은 느낌이 들어서 꽃이 나오는 영상을 많이 쓰신 이유가 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이마리오: 특별한 의도는 없었고요. 아마 타이틀 디자인이나 이름 디자인 영상이나 홍보물 포스터 디자인 하시는 분들이 보기에 그러한 부분들이 굉장히 눈에 띄었던 것 같아요. ‘꽃아, 피어줘서 고마워’라는 말을 많은 분들이 인상적으로 보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디자이너 분들도 그 부분을 적극적으로 끄집어내서 이미지화시켜주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정: 저도 그 장면 보면서 너무 좋았던 게 나이가 어리고 젊을 때는 내가 너무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들면서 내가 최고가 아니어도 각자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는 여유 같은 걸 보여주는 장면인 것 같아서 너무 아름다웠어요. 우리가 나이 들어가는 게 얼마나 더 많은 세계를 보게 하는 중요한 좋은 경험인가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희 시간이 이제 거의 끝나가서요. 마지막으로 하나 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관객: 우선 저는 영화를 보면 영화 자체로 그냥 온전히 남았으면 하는 영화가 있고 그 바깥의 얘기가 궁금해지는 영화가 있는데 이 작품은 후자라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영화에 넣고 싶었는데 못 넣었다 하는 것들도 무궁무진 많을 거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그중에 기억에 남는 거 한 가지가 듣고 싶고요. 왜냐하면 GV에 참석하면 여기 있는 관객들과 저만 아는 이 영화에 대한 얘기를 제가 갖고 싶은 욕심이 있거든요. (웃음) 그런 욕심을 제가 좀 채우고 싶어서 아까부터 질문을 준비하고 있었고요. 그리고 또 한 가지만 그냥 간단한 거 여쭤보고 싶은데 언니들께서 영화를 딱 상영해서 보셨을 때 반응이 너무 궁금했습니다.
이마리오: 언니들한테 최종 완성이 된 걸 보여드린 게 작년에 서울독립영화제 때였어요. 그전에 보여드린 거는 편집도 제대로 안 돼 있고 사운드도 막 튀고 색도 이상하고 음악도 없는 그래서 그걸 보고 나서 굉장히 실망하셨어요. 그래서 서울에 모셨을 때 자녀분들 부르세요 했는데 아무도 안 부르시는 거예요. (웃음) 그래서 영화를 다 보시고 나더니 좋았다고 기대 이상이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혹시 다큐하실 분 계시면 이거 잘 참조하셔서 하시면 되겠습니다. (웃음)
방은진: 일부러 그렇게 보여주신 거네요.(웃음)
이마리오: 지금도 사실은 부끄러워하세요. 자신의 속 이야기를 사실 끄집어낸 거다보니까 처음 본 사람들이랑 같이 본다고 하는 행위 자체가 굉장히 민망스러운 거죠. 여전히 민망하고 부끄럽고 이런 감정들이 여전히 좀 남아 있으시면서 또 한편으로는 굉장히 자랑스러워하시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나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있구나라고 하는 부분을 굉장히 좋아하셨던 것 같고요. 그리고 빠진 장면은 너무 많아서 어떤 장면을 말씀드려야 할지. 3년 정도 찍었고 횟수만 치면 한 200회 정도를 찍었거든요. 여기 쓰인 건 사실 그중에 한 300분의 1, 500분의 1밖에 못 쓴 거죠.
인상적인 것을 말한다면 처음에는 명주동의 봄 여름 가을 겨울, 비가 올 때 눈이 올 때 등등 온갖 상황을 다 찍었어요. 근데 찍어보니까 너무 예쁜 거예요. 그래서 너무 예쁘면 안 되겠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올 것 같다 생각했어요. 2019년에 레트로가 유행할 때 명주동에 사람이 정말 많이 왔거든요. 처음에는 그런 나쁜 마음으로 가지고 했는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큰 타격을 입게 됐죠. 그래서 많이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그전보다 디테일하고 굉장히 다양한 명주동의 모습들을 담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영화 안에는 조금밖에 표현이 안 돼서 좀 많이 아쉽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라도 나중에 강릉 오실 일 있으면 명주동에 들러서 커피도 한 잔 하셔요. 아마 다니다 보면 언니들 지나가면서 보실 수도 있어요. 아는 체 해주시면 굉장히 좋아하세요.
정: 이제 마무리할 시간인데요. 저는 여성인권영화제 프로그래머로서 가족과의 밀접한 관계를 강요하는 우리 사회에서 ‘가족을 벗어나서 여성들이 새롭게 도전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장면인가’ 늘 영화를 고르면서 생각하게 되는데요. 처음에 언니들이 등장했을 때 내 소개를 할 게 없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 영화 이후에는 우리 언니들이 나는 감독이고 배우라고 소개할 거라고 생각하니까 너무 마음이 설레더라고요. 이마리오 감독님이 이런 여성들의 도전에 함께해 주시고 그들의 모습을 만들어가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었고요. 마지막으로 한마디씩 하시면서 마무리할까 합니다.
방은진: 아까 관객 분들 중에서도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요. 다큐멘터리 제작 지원금이 얼마나 나오겠습니까. 그런데 거기에 스태프로 참여한 20대의 굉장히 어린 친구들이 거기 섞여서 슬레이트도 치고 촬영도 하는 이러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고맙고 기특했어요. 그거 시켜서는 절대 못하는 일이잖아요. 그분들을 기록하는 데 있어서 큰 역할을 해준 그런 젊은이들에게 저는 또 다른 희망을 봅니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이마리오: 저 말고도 강릉에 20-30대의 영화를 작업하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 친구들이 정동진독립영화제에 가면 자원 활동 하고 있고 그렇거든요. 그런 사람들의 작업을 많이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최근에 극장 가서 영화를 잘 안 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특히나 오늘 같이 이렇게 와주신 관객 한 분 한 분께 굉장히 감사드립니다. 영화를 집에서 볼 때도 재미있지만 극장에서 다른 사람이 같이 볼 때 사실 더 재미있잖아요. 그래서 극장 많이 찾아주시고 주변 분들과 이따금씩은 독립화나 예술영화를 보러 와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오늘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정: 감사드리고 오늘 이렇게 같이 영화 보는 경험이 너무 소중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우리 극장에서 또 다른 정원에서 많이 만나 뵙기를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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