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즈 Review]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리뷰: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채운 님의 글입니다. 

속절없이 무너지는 순간이 있다. 그때의 얼굴을 헤아려 본다. 다리뼈가 으스러진 듯 땅바닥에 주저앉다가도 서서히 들어 올려지는 고개. 느리게 사방을 헤매는 눈동자. 눈물에 젖은 채 구겨지는 표정. 이들을 품고선 정지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는 얼굴이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속 인물들로부터 새어 나온다. 그렇게 이들은 거대하고 뾰족한 쇠붙이에 꽂혀있는 어느 시간 주위를 맴돈다.  

 

 

영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스틸컷

 

익히 알려져 있듯,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소설가 김애란이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소설과 사뭇 다른 지점들이 꽤 발견되는데, 특히 인물과 공간적 배경의 변화가 가장 시선이 가는 대목이다.

우선 소설은 사고로 남편 '도경'을 잃은 '명지'를 주요 인물로 구성한다. 그런데 영화는 '명지' 뿐만 아니라 같은 사고로 세상을 떠난 '지용'과 소설 속에서 편지의 발신인으로만 등장했던 '지은'을 직접 등장시키면서 초점을 다각화한다. 뿐만 아니라 원작 소설에 없던 인물인 '해수'는 영화 속에서 '지용'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지은'을 짝사랑하는 인물로 새롭게 등장하여 서사에 새로운 흐름을 주입한다.

어쩌면 이것이 영화의 효력이 아닐까. 활자의 체계에서 감지하기 힘들었던 존재들이 자신의 몸을 부여받아 소리를 내고 몸짓을 보여주는 것. 차가운 냇물처럼 벌어진 인물과 인물 사이가 어느 소년의 스케이트 주행으로 청량과 활력을 회복해 하는 것. 그리하여 다시 땅을 내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생기를 전해주는 것 말이다.

 

 

영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스틸컷

 

소설에서 '명지'가 한국을 떠나 머무는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는 영화에서 폴란드 바르샤바로 교체되고 한국에서 명지가 거주하는 도시는 광주로 제시된다. 영화 속에서 명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바르샤바 봉기 희생자를 추모하는 1분 묵념을 목격한다. 그리고 영화에서 잠깐 등장하는 옛 전남도청과 그 앞의 분수대 광장은 역사의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두 국가의 공간을 연결시킨다. 한편 영화 속에서 두 지역, 특히 광주는 그 참사의 장소가 강조되어 드러나기보다 인물들의 입을 통해 그 이름이 호명되며 소환된다. 이는 국가적 학살과 사회적 참사, 공동의 아픔에 대한 슬픔들이 어떻게 우리의 몸에 축적되고 발설되는지를 보여준다.

제목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는 명지가 시리에게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물었을 때 시리가 두 번째로 뱉은 말이다. 이 되물음은 영화 말미에 이르러 지금 명지와 우리가 딛고 있는 이곳은 어디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영화는 바르샤바와 광주에서 일어났던 무수하고 무고한 희생과 그에 대한 저항을 이야기하고 이는 우리에게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이 밖에도 숱한 사회적 비극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 있음을, 한 명의 슬픔은 결국 우리 모두의 슬픔과 연결되어 있음을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서늘하고도 기운 있게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