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언덕〉리뷰: 상승 지대에 숨긴 나에게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해수 님의 글입니다.
비밀에 관대해야 튼튼하다 믿은 시기가 내게도 있었다. 가족의 사이를 기재해야 했던 갱지, 유무를 물어오는 친구들, 수월의 증거였던 상장. 명은이와 같이 나 역시 올랐던 언덕이다. 청소년기에는 친구와 손으로 ‘우리’를 점검하는 일이 많았다. 손을 내저으며 우정을 테스트하고, 진실을 걸고 게임했다. 다시 그 약지로 내일을 헐겁지 않게 조였다. 비밀이야, 라는 서두는 매번 섬뜩하게 좋고 아팠다. 〈비밀의 언덕〉은 명은이가 백일장을 통해 ‘나’에게 안을 터놓기 시작하는 영화이다. 쓰기는 손으로 머뭇대는 일 중에 유독 아름답고 어렵다. 그래도 명은이는 말려있던 곤란을 꿋꿋이 펴낸다. 굳이 이름 붙이거나, 상세해지기도 싫었던 미움을 서술하며 배워간다. 언덕을 왕복해낼 힘을.
명은은 선한 마음으로 선두에 서고 싶어 한다. 불우이웃을 돕는 전화에 동참하고, 병과 비닐을 잘 떼어내며, 반장이 되는 일 등. 명은의 가족은 대체로 이 나섬에 심상했다. 집에서 번거로움은 좋은 편에 속하지 못했다. 반면, 학교는 자원에 흔쾌하기에 명은이는 반장에 필사적이었다. 이때 차차 거짓이 동원된다. 왼손으로 써넣은 사연에서 가족의 직업을 속이기까지는 오래 소요되지 않았다. 명은은 의무에 성실했던 만큼 마땅한 일에 질려간다. 인사의 구령에 나서는 건 기뻤지만, 선생님의 타박에 처음으로 일어서지 않았다. 반장을 할수록 마음의 예외를 대면하게 된다. ‘꼭’의 영역에 해당하던 일은 필수일까?
〈비밀의 언덕〉은 위계가 드물어서 좋았다. 어른과 아이, 속임과 참. 여기서는 어느 양극이 완벽히 옳거나 그르지 않다. 명은이 전학과 맞물려 수상을 한 혜진에게,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묻는 장면이 있다. 혜진은 명은이가 애씀의 증표로 내민 굳은 살에 개의치 않고 말한다. 선생님들은 나의 이야기를 선호해서, 딱히 준비하지 않았다고 말이다. 실제로 혜진은 애석히 여겨진 마음을 원고에 서슴없이 발음했다. 다툼에서 “평화”를 적립하게 된 방법이나, 어른들이 함부로 가리려 했던 이음새들을. 이 기점으로 명은도 서서히 고백에 돌진한다. 명은은 계속 거짓을 불려 스스로를 보호했다. 그래도 나는 이 과정을 옹호하고 싶다. 명은이의 큰 강점은 정공법이니까. 거짓이든, 실제든 명은은 외면 없이 성실하게 달음박질했다. 결국 명은은 솔직으로만 찬 원고를 송부하게 된다. 가족이 싫은 항목에 세세했던 수필은 대상을 받았다. 영화의 사려 깊은 구간은, 마모된 마음이 일절 없는 멸균의 인물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명은의 수필에서 애정의 우위에 있던 삼촌과 할아버지는 서로를 헐뜯고,―험담하는 가족이 싫다는 명은의 부연이 있었다― 다정으로 일삼던 선생님은 명은의 피력을 훔쳤다. 큰 내색이 없던 엄마는 명은의 기사를 살살 뜯어 스크랩해두었다. 이 양면성에 영화는 개입하지 않고 묵묵하다. 명은은 섞인 마음 앞에서 궁리한다. 이때에도 영화는 판단을 길게 기다린다. 가장 상단에 설 수 있게 되었지만, 원고로 가족의 안을 헤집기는 싫다는 결론이 선다. 명은은 다시 정공법으로 맞선다. 만류하는 선생님께 몫에 관해 설명하고, 시청으로 가서 원고를 받아오며, 입선만으로도 선선히 웃는다.
꼭이란 없어, 이 영화가 나의 어린 말을 정정해주었다. 발휘하면 기쁜 행위가 있는 건 정확히 맞다. 다만 마음을 무리해서 열거나 구부리지 않아도 괜찮다. 애초에 언덕은 곡선이 있어야 성립되는 지형이니까. 어제는 명은이에게 고맙다는 쪽지를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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