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드는 사람들의 웃픈 마음.
〈익스트림 페스티벌〉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3. 6. 14(수) 19시 상영 후
참석 김홍기 감독
진행 오세연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태현 님의 글입니다.
〈익스트림 페스티벌〉의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지역축제 현장은 우연과 마주하는 영화 만들기와 닮아있다. 영화 안팎을 이루는 마음에 대한 두 감독의 즐거운 대화를 훔쳐들을 수 있었다.
오세연 감독 (이하 오세연):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진행을 맡은 영화감독 오세연입니다.
김홍기 감독 (이하 김홍기): 안녕하세요. 〈익스트림 페스티벌〉을 연출한 김홍기입니다. 반갑습니다.
오세연: 아마 웃음이 가득한 상영이었을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이제 갑자기 무슨 말을 하려나’, ‘뭐가 튀어나오려나’ 생각하며 영화를 보는 내내 많이 웃었어요. GV 때문에 메모하며 영화를 보는데 ‘ㅋㅋㅋ’를 계속 쓰게 되더라고요. 코미디 장르의 독립영화가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을 했고, 관객분들의 반응을 찾아보아도 ‘일단 웃긴 영화’라는 말이 많더라고요. 웃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셨는지, 그게 아니라면 어떤 마음으로 영화에 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홍기: 질문에 답하기 전에, 우선 영광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오세연: 갑자기요? (웃음)
김홍기: 원래 GV를 하기 전에 모더레이터분을 피해 다녀요. 항상 관객과의 대화가 첫 대화이기를 바래서, 감독님께도 인사만 드리고 피해 다녔는데요. 〈성덕〉(2021)의 오세연 감독님을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사실 제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셨어요. 영화의 기획을 듣자마자 욕이 나왔어요. 너무 대단해서요. 감독님의 아픔과 생각들을 드러내 보인 것이 대단했어요. 그래서 감독님께서 GV를 맡아 주신다고 하셨을 때 정말 기뻤어요. 반갑고 영광입니다. 혼자서 감독님과의 공통점을 찾아보기도 했고요.
오세연: 어떤 것이 있었나요?
김홍기: 부산 출신이시고, 토끼띠시고요. 제가 처음 대중들에게 얼굴을 비춘 자리가, 좋아하는 가수의 팬으로 등장한 공중파 방송이었어요. MBC의 〈능력자들〉이라는 방송이었는데, 그게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어요. 또 오세연 감독님의 ‘그분’이 라디오 방송을 하셨었잖아요. 거기서 가수의 팬들을 모은 특집에 출연하기도 했어요.
오세연: 방송 출연 경험이 많으시군요.
김홍기: ‘나대는걸’ 좀 좋아했어요. 여하튼 한 가수의 오랜 팬이었는데, 그래서 〈성덕〉을 보고 ‘나는 이런 빛나는 기획을 생각해 내지 못하는데…’ 라며 배가 아팠어요. 차이점이 있다면, 저는 아직도 ‘성덕’이죠.
오세연: 어떤 분의 팬이신가요?
김홍기: 서태지 씨의 팬입니다. 감독님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고 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준비해 봤습니다. (웃음) 영광입니다.
오세연: 저도 영광이고요. GV를 하기 전에, 보통 대기실에서 인사도 나누고, 대화도 나누고 그러는데요. 감독님이 안 계시더라고요.
김홍기: 숨어다니던 참이었습니다.
오세연: 그래서 감독님께서 말수가 적으시고 수줍으신 분인가 궁금했는데, 지금 살짝 피곤해지기 시작했거든요. (웃음) 평일 밤인데, 오늘 대화가 정성일 평론가님의 인디 토크처럼 길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면서도 흥미롭네요. 〈익스트림 페스티벌〉 안에도 ‘센도 아키라’라는 유명 가수가 등장하고, 오랜 팬이었던 ‘래오’가 실망하는 모습이 그려지는데, 감독님께 실망을 안겨준 우상은 없으셨던 거죠?
김홍기: 네. 그리고 ‘센도 아키라’를 그리며 서태지 씨를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오세연: 〈익스트림 페스티벌〉 인디 토크인데, 영화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정말 누군가를 처음 만나는 자리처럼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네요.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서, 어떤 마음으로 이번 영화에 임하셨는지가 궁금합니다.
김홍기: 일단 재밌는 90분 짜리 독립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90분 정말 깔끔하지 않습니까?
오세연: 요즘은 90분이 넘는 영화가 조금 힘들기도 해요.
김홍기: 맞아요. 그래서 90분이라는 러닝타임을 정해두고, 하루 동안 일어나는 이야기를 데뷔작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오세연: 목표가 굉장히 확고하셨네요.
김홍기: 이 영화가 코미디로 포장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어요. 왜냐하면 저는 어떤 작품을 써도, 웃음이나 재미는 따라붙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웃기기 위해 과하게 노력한 장면은 하나도 없어요. 정말이에요. 사실 우리의 일상은 영화보다 더 웃길 때가 있는데, 왜 영화에서는 그 재미를 외면해야 하는가 생각해요. 더 웃픈 사연들이 많잖아요. 영화를 만들면서 관객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오세연: 저는 조금 놀라워요. 관객분들도 ‘이게 영화의 연장인가?’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상상 가능한 답변에서 벗어나고 계신 것 같아서요. 영화를 만들며 각본. 촬영, 편집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영화를 여러 번 보셨는데도 여전히 웃긴 장면이 있으신지 궁금했었거든요. 그런데 여쭤보는 것이 맞는 걸까 생각하게 되네요. 그럼 혹시 본인 영화가 안 웃기세요? (일동 웃음)
김홍기: 아니요. 재밌어요. 사실 조금 무뎌지긴 했는데요. 볼 때마다 웃기다고 생각되는 캐릭터는 있어요. 저희 영화에서 웃기려고 하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어요. 사회자 ‘김멸치’씨가 저기 앉아 계세요.
오세연: 너무 재밌었어요.
김홍기: 저분이 실제로도 술자리 같은 곳에서 사람들을 웃기려고 노력하시는데요. 저는 그게 하나도 안 웃겼거든요. 근데 웃기지 않은 것이 재밌는 포인트라고 생각해서요. 그런 모습을 최대한 영화에 투영하려고 했습니다. 제가 뭉클해지는 장면은, 마지막 장면에서 ‘김멸치’ 캐릭터가 다음 축제에서 선보일 개인기를 연습하고 있거든요. 그 장면을 좋아해요. ‘김멸치’가 납작한 캐릭터가 되지 않도록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하고요. 김윤배 배우가 가감 없이 본인의 모습을 영화 속에 녹여줘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세연: 애정이 있으셔서 더 흐뭇하게 바라보시게 되는 건가요.
김홍기: 아니요. 저 친구에 대한 애정은 별로 없는데요. (웃음) 저는 제 영화에 함께 해주는 배우분들을 빛나게 해줘야 한다는 강박이 사실 조금 있어서요.
오세연: 배우들이 바라는 감독님이시네요.
김홍기: 크게 욕을 먹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세연: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독립영화 혹은 예술인의 이야기를 주제로 잡고 영화를 시작했다고 말씀하셨더라고요. 인터뷰를 먼저 보고 영화를 봐서 그런지, 마음 편히 웃지 못할 장면이 많았어요. 일단 지역축제 MC가 다개국어를 할 줄 알아요. 상황 대처 능력도 굉장해 보이는데도, 일이 들어오지 않는 사람이고요. 윗선의 지적이라면 하루아침에 행사의 주제를 바꿔야 하기도 하고, 축하공연 또한 ‘갑자사화의 형식을 빌린 팬데믹 종식 퍼포먼스’ 이런 내용으로 급하게 바뀌기도 하고요. 이런 것이 서글프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리고 혜수의 ‘너는 직장인이 되기에는 무능하고, 예술가가 되기에는 게을러’라는 말이 저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져 가슴이 아프기도 했어요. 감독님께서 지역축제의 모습을 빌려 예술인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시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김홍기: 인터뷰 내용이 조금 와전된 측면이 있는데요…. 기자분님께서 영화를 그렇게 봐주신 거예요. 그런데 감상을 듣고 보니, 저도 어쩌면 독립 예술계의 처우를 풍자하려고 했던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지역축제에 지대한 관심이 있거나, 예술인 혹은 행사의 본질을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요. 앞서 말씀드린 영화의 구상 속에서 하루 동안 일어나는 일 중에서 특출난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는 소재가 무엇일까 고민하다 지역축제를 소재로 삼게 되었습니다.
오세연: 이 작품을 만들며 방문하셨던 지역축제가 있으신가요?
김홍기: 없습니다.
오세연: 정말요?
김홍기: 취재라기보다는 상상에 기반해서 만든 것들이 많아요. 지역축제에 종사하셨던 분들이 리얼하다며, 일을 해본 게 아니냐고 말씀해주시는데, 그런 건 아니였고요. 어디서 본 듯한 풍경을 떠올려 봤습니다. 고문 체험이라든가, 사약 먹기 대회라든가, 진짜로 그런 걸 할 법하거든요. 관공서의 높은 분들이 자기 머릿속에서 재밌는 아이디어를 ‘이런 것 재밌지 않냐’며 아래 직원들에게 주입하고요. 이런 건 지역축제뿐만 아니라 우리가 직장생활, 사회 전반에서 느끼는 것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공감을 많이 해주시는 것 같아요.
오세연: 음… (질문지를 보며). 그럼 추천하고 싶은 지역축제 이런 건 없으시겠네요. (일동 웃음)
김홍기: 네…. 올해는 좀 가보고 싶어요. 사실 영화를 준비하는 동안에는 팬데믹 기간이라 축제가 열리지 않았거든요. 우리나라의 큰 축제들을 가보고 싶네요.
오세연: 어쩌면 축제를 기획하는 분들에게 교본처럼 이 영화를 보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군수님 같은 분들께 말이에요.
김홍기: 그분들은 아마 자기들 이야기 아닌 줄 알고 웃으실 것 같아요. ‘내가 저러진 않지’라며요.
오세연: 공동체 상영이 이뤄지면 좋을 것 같아요.
김홍기: 네. 관공서에서 연락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오세연: 저는 감독님을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2021)의 각본가로 처음 알게 되었어요. 그 작품의 대사에서 ‘말맛’을 느낄 수 있어서, 감독님의 연출작은 어떤 모습일까 기대했어요. 각본을 쓰며 상상하셨던 모습들이 현장에서 그대로 나왔는지, 아니면 다른 요소들로 인해 변한 부분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김홍기: 각본대로 찍었어요. 제가 말하면서 좀 웃긴데, 유럽식 블랙 코미디를 떠올리며 각본을 썼어요. 〈슬픔의 삼각형〉 같은 영화를 떠올렸는데요. 찍고 나니 너무 한국적인 거예요. 왜 그렇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말을 잘 듣는 감독이거든요. 배우나 스태프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요. 제안이 있으면 거기에 따라요. 포기도 정말 빠르거든요. 타협을 잘하고요. 컷도 귀신같이 생략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틀릴 수밖에 없고, 현장에서도 영화 경험이 제일 적었거든요. 제가 뭐라고 고집을 부리겠어요. 첫 연출 경험이었고, 여기저기서 의견을 들으며 영화가 질주하도록 내버려 두고 싶었어요. 이 방법이 100% 옳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실패를 줄일 방법이었던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세연: 그러면 실패를 줄이긴 했지만, 유럽식에서 한국식으로 온 걸까요.
김홍기: 그런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일본식으로 온 것 같은데요.
오세연: 저는 감독님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의견을 수용하는 게 사실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가끔 영화를 자신이 창조해 낸 세계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신이라고 생각하는 감독들도 있는 것 같은데요.
김홍기: 사실 그런 마음이 밑바닥에 있어요. 그래서 오히려 더 의견을 받는 것 같은데요. 다른 분들의 의견을 다 수용해도, 영화가 산으로 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끝 모를 교만함인데요. 저는 사실 인성도 엉망이고 인간적으로 본받을 게 없는 사람이거든요.
오세연: 진짜요? (웃음)
김홍기: 그걸 이성으로 애써 누르며, 많은 스태프분들과 배우분들의 말을 경청했던 것이 아닌가 싶어요.
오세연: 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 이성적인 T? (웃음)
김홍기: 그런 것 하나도 몰라요….
오세연: 오늘 대화가 재밌네요. 이런 사람이 만든 영화라 재밌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분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영화에 대한 것보다 감독님이 궁금해져서요. 개인적인 질문들을 몇 개 해보려고 합니다. 감독님 원래 영화 전공이 아니셨는데 학과를 중간에 바꾸셨다고요?
김홍기: 저는 원래 정치외교학과 05학번이었는데 학사 경고를 세 번 받아서 잘렸어요. 얌전하게 재입학을 하면 되는데, 좀 멋이 없는 거예요. 그때 짝사랑하던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연기를 시작했어요. 제가 그때 19살 정도밖에 안 됐었거든요. 바보 같은 생각이죠. 강백호가 농구를 시작한 동기와 비슷했던 거죠. 배우가 되어야겠다며 연기학원을 다녔어요. ‘김멸치’ 역할을 맡은 김윤배 배우와 같은 연기학원 출신이예요.
오세연: 그렇게 두 분이 알게 되신 거예요?
김홍기: 아니요. 그땐 전혀 몰랐어요.
오세연: 그러셨군요. 아이고 어지러워. (웃음)
김홍기: 2013년도까지는 연기를 정말 열심히 했어요.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에서 주인공으로 연극에 출연하기도 했는데, 저 스스로가 상품성이 없다고 판단했어요. 매력이 없었어요. 잘 못했어요. 그래서 미련이 없었는데…. 솔직히 미련이 있기도 해서, 단역으로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었는데요. 〈버닝〉에서 주인공 종수의 친구 역으로 캐스팅됐었는데요. 역할이 좀 컸는데, 결국 등장하는 장면이 편집됐어요. 이창동 감독님이 미안했는지, 대사가 있는 단역 역할을 주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세연: 아이고…. 그래도 그 덕분에 지금 여기에 계시네요.
김홍기: 그 보석 같은 경험들이 모여 이 자리에서 〈성덕〉 감독님과 GV를 할 수 있겠죠. (일동 웃음)
오세연: 그 뒤로는 어떤 길을 가셨나요?
김홍기: 직장인이 되고 싶었어요. 출퇴근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요. 2014년부터 취준생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남성잡지 에디터가 되고 싶었어요.
오세연: 갑자기요?
김홍기: 허지웅 칼럼니스트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예요. 웃기죠 진짜. 근데 안됐어요. 그 뒤로는 한국사 자격증을 열심히 땄어요. 설민석 씨가 연극영화과 출신인 거예요? 저도 말 잘하고 설명을 잘한다고 생각해서 한국사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수강생이 잘 안 모여서 유튜브에 한국사 강의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어요. 앞에 아무도 없는데, 막 혼자 설명하는거죠. 문상훈 씨보다 제가 먼저 했어요. (웃음) 근데 그것도 잘 안됐어요. 그 뒤로는 방송에 나갔던 경험을 떠올리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MBC 라디오 패널을 6개월 정도 했습니다. 제가 임진모 씨도 아닌데 음악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전문성이랑 콘텐츠가 없으니까 잘 안되죠.
오세연: 음악 관련해서 하신 게 없으셨잖아요?
김홍기: 그냥 서태지 이야기를 하다 온 게 다인데, 어쩌다 보니 6개월 동안 패널을 하고 있더라고요.
오세연: 그냥 리스너의 입장으로 참여하신 거군요.
김홍기: 네. 그러다가 PD님이 바뀌면서 잘렸죠. 돌고 돌아 다시 연극을 했어요. 그때 혜수, 상민, 민성이라는 친구들과 같이 연극을 했는데, 그들의 이름을 계속 영화에서 사용하고 있어요. 그 친구들이 아니었으면 이 자리에 올 수 없었을 거예요.
오세연: 감독님 삶이 정말 ‘익스트림’ 하네요. 말씀해 주신 기간보다 훨씬 긴 인생을 살아오셨는데,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궁금해지네요. 감독님께서 저로부터 도망치고 계실 때, 영화의 관계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영화 속에 숨겨두신 이스터 에그가 많고, 또 오마주한 장면들도 많다고 해요. 혹시 관객분들 알고 계셨나요? 저도 죄송하지만 찾지 못했는데요.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하는데 아무도 짚어내어 주지 않은 장면이 있으실까요?
김홍기: 오마주나 이스터 에그에 대한 내용은 아닌 것 같은데요. 우연에서 비롯된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은채의 방에 김치냉장고가 있는데요. 로케이션을 구할 때, 그 방에 김치냉장고가 있더라고요. 제가 귀찮은 것을 싫어해서요. 옮기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각본을 바로 수정했죠. 25살 여성의 방에 김치냉장고가 있으면 어떨까 생각해 봤어요. 그렇게 우연으로 얻어진 것들이 많아요. 축제 장면의 주전자에서 물이 새잖아요. 구멍 난 주전자가 의도는 아니었는데, 소품을 받아보니 그런 상태더라고요. 소품 담당 스태프께서 열심히 구멍을 막고 계셨는데, 구멍 난 것이 너무 좋아서 그 상태를 바로 촬영하기도 했죠.
오세연: 지나칠 수 있는 우연한 상황들을 활용하셨다는 이야기가 신기하고 재밌어요. 둘 다 중요한 역할들을 하잖아요.
김홍기: 선배 영화인들에게 그런 우연을 활용하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인터뷰나 블루레이 코멘터리를 듣는 걸 좋아하거든요. 거기서 얻은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오세연: 너무 우리끼리 떠들었나 싶어서요. 질문을 한 번 받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관객 1: 영화 정말 재밌게 봤고, 감독님 이야기도 너무 재밌어요. 재치가 넘치시는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직접 쓰셨다고 하셨는데, 보통 서울 사람들이 생각할 수 없는 말들도 많은 것 같아요.
김홍기: 제가 지금 서울에서 17년째 살고 있는데… (웃음).
관객 1: 그러시군요. (웃음) 아까 일본 코미디 이야기를 잠시 하셨는데, 지역축제에 일본 가수도 나온다는 설정과 일본어 대사들이 재밌었는데요. 어떻게 설정을 떠올리셨는지 궁금합니다.
김홍기: 제 취향과 하고 싶은 것들을 전부 쏟아볼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콘텐츠 소비자의 맥락에서 제 안에는 ‘친일’과 ‘친미’가 공존하는데요. (웃음) 저는 일본 문화의 세례를 받았던 사람이고, 애니메이션이라든가 제이팝을 좋아해요. 저희 시대는 ‘엑스 재팬’이 짱이었거든요. 그런 저의 취향이 들어갔고요. 지역축제에 일본 가수가 있다는 것이 안 어울리잖아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조합하는 걸 글 쓰는 사람으로서 좋아합니다. 또 제가 좋아하는 〈오피스〉라든가, HBO의 시트콤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저의 취향과 취미를 영화에 녹여내고 싶었습니다.
오세연: 저도 친구들 사이에서 별명이 매국노거든요…. (웃음) 제이팝, 애니메이션 이런 걸 좋아해서 친구들이 저를 시부야 양아치라고 부르기도 하거든요.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아서 굉장히 반갑네요….
김홍기: 너무 반갑습니다. (웃음) 갑자기 생각난 건데, 오늘 저희 영화 관객 수 3천 명을 넘겼어요. 이 기쁨을 여러분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오세연: 잘 됐어요. 축하드려요. 어디까지 가보고 싶으세요?
김홍기: 모르겠어요. 사실 제 기분은 축제의 관객들이 빠져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혜수에 가까웠거든요. 그래서 누구든 붙잡고 ‘어떻게든 해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관객분들 만나서 대화를 나누니 힘이 나네요.
오세연: 맞아요. 그럼 1만 관객을 목표로 공약 하나를 거시는 건 어떠신가요. 영화에 나오는 녹두빈대떡을 구워준다거나, 김치냉장고를 한 분께 드린다던가. 김치냉장고 어떠세요? 정말 만 명 될 것 같은데요.
김홍기: 개봉을 맞이하니, 감독이 돈 쓸 일이 참 많더라고요.
오세연: 완전 공감합니다.
김홍기: 이런 건 어떨까요. 만 명 넘기면 제가 감사 필리버스터를 하겠습니다.
오세연: 말을 하시겠다는 거예요? 죄송한데 그건 지금으로도 충분하고요. (웃음) 김치냉장고 괜찮죠. 최다 관람하신 분께! (제작사 대표와 김홍기 감독을 바라보며) 그럼 이야기를 나눠보시고, 다음 GV 때 알려주시는 걸로 하죠. 다음 질문 받아보겠습니다.
관객 2: 영화를 찍으며, 극 중 상황처럼 돌발 변수들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촬영장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김홍기: 준비된 답변이 있습니다. 촬영 마지막 날이었는데요. 새벽 6시에 축제 무대를 철거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어요. 촬영이 원활히 이루어진다면 전혀 문제없는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마지막 날에 비가 계속 오는 거예요. 혜수와 군수의 대화 장면과 행위예술 장면을 찍지 못한 상태였는데요. 새벽 2시까지 촬영에 들어가지 못했어요. 4시간 후면 사라지는 무대 앞에서 많은 좌절을 겪었어요. 그런데 정말 잠시 비가 그쳐준 거예요. 모든 사람이 함께 의자에 묻은 비를 닦으며 빠르게 촬영을 끝냈습니다. 포효하며 자축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 순간이 제 인생에서 가장 익스트림한 순간이었습니다.
오세연: 행위예술 제목이 뭐였죠. 고양이는 평행주차를….
김홍기: ‘우리 집 고양이 평행 주차를 못 해’.
오세연: 그 장면을 못 볼 뻔했네요. ‘맛있다’ 소리치는 장면을요. 그 상황을 겪은 배우분들은 어떤 기분이었을지 궁금하네요. 오늘 은채 역의 장세림 배우님이 객석에 앉아 계시는데,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마이크가 가도 괜찮을까요.
장세림 배우: 네. 괜찮아요.
김홍기: 그런데 세림 배우님은 그날 일찍 촬영이 끝나서 가셨어요. (일동 웃음)
오세연: 그러면 그 장면 말고, 고난으로 느껴지셨던 장면이 있으시면 이야기 해주시겠어요?
장세림 배우: 혜수 대표님이랑 연봉 협상하는 장면에서, 제가 원래 울었어야 했는데요. 눈물이 안 나오는 거예요. 고민하고 있었는데, 감독님께서 설정을 바꾸셨어요. 그냥 웃으라고요.
오세연: 탁월한 연출력과 순발력으로 만들어진 장면이네요. (웃음)
김홍기: 생각해보니 우는 건 좀 과한 것 같았어요.
오세연: 캐스팅이 탁월하다고 생각했어요. 익숙한 얼굴들이 많이 보이고, 또 새로운 배우분들도 발견하게 되었거든요. 배우분들이 캐릭터에 딱 달라붙는 느낌이었어요. 어떻게 배우분들과 작업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오늘 자리 해주신 세림 배우님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나요.
김홍기: 세림 배우에게 탈색 머리도 붙여보고, 외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봤는데 하나도 안 어울리는 거예요. 함께 시간을 보내며 사람을 알아가다 보니, 그런 외적인 것들에 큰 관심이 없고 배우로서의 고민, 본인의 성공 이런 것에 관심이 더 많은 사람이더라고요. 또 영화에 등장하는 무용도 몇 년을 배웠다고 하는데, 좀 어색한 거죠. 극단 대표로 나오시는 김종구 배우님도 ‘너 연기는 좋은데, 무용은 다시 하지 마라’고 말할 정도로 살짝 웃겼는데, 근데 자기는 왜 웃긴 건지 모르고요. 그런 게 재밌었어요. 그래서 완전한 본인으로 연기해달라고 주문했어요. 별다른 코멘트를 하지 않았고요. 철저한 자연인 장세림으로 존재해달라고 주문했어요. 그 모습이 캐릭터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오세연: 배우 입장에서도 좋으셨던 거 맞죠?
장세림 배우: 네!
오세연: 네 알겠습니다. 정말 배우들이 좋아할 감독! 앞으로 어떤 배우분들과 작업을 하시게 될지 궁금합니다. 혹시 함께하고 싶은 배우분 있으세요?
김홍기: 이 영화가 잘되면, 속편을 찍고 싶어요. 같이 한 배우들과 함께요. 왜냐하면 너무 호흡도 좋았고 즐거웠거든요.
오세연: 시즌 2가 나왔으면 좋겠네요. 아마 그때는 밴댕이 축제겠죠?
김홍기: 그럴 수도 있고, 장르가 바뀔 수도 있어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속편은 너무 뻔하잖아요. 축제 날이 루프물처럼 안 끝난다거나 그럴 수도 있고요.
오세연: 마치 오늘 감독님과의 대화처럼요?
김홍기: 네 그런 거죠. (웃음)
오세연: 또 감독님다운 작품이 나올 것 같습니다. 다음 질문 받아볼게요.
관객 3: 평소에 독립 영화를 자주 보지 않는데요. 오늘 영화의 시작을 보며 참 느슨하고 빈틈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걸 독립 영화라고 하는구나’ 생각했는데요. (일동 웃음) 그런데 나중에 보니, 이건 허술한 영화가 아니라 섬세한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교만한 태도로 방심하고 있었는데, 깜짝 놀라게 되었어요. 영화 정말 좋았다는 소감을 남기고 싶고, 영화를 본 관객들이 가져갔으면 하는 메시지가 있으신지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김홍기: 영화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질문에 대한 답변을 피하고 싶은 것이, 제가 관객분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느끼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한다면, 관객을 방심하게 만들 수 없을 것 같아요. 말씀해 주신 것처럼 관객분들을 방심하게 내버려 두고 싶습니다. 소감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세연: 영화를 관객의 입장에서 말해 보자면, ‘원래 지역축제는 이런 맛에 보는 거다. 너무 사랑스럽지 않냐’ 라는 대사가 정말 좋았어요. 이 말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고 생각했어요.
관객 4: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사랑스러웠어요. 혹시 감독님의 최애 캐릭터가 있으신지, 그리고 감독님 스스로가 가장 많이 반영된 캐릭터는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김홍기: 최애 캐릭터를 정하는 건 조금 조심스럽고요. 모든 배우분들과 역할을 사랑해서요. 아마도 제가 가장 많이 반영된 캐릭터는 래오겠죠. 자기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프리랜서로 살아남는 방법은 사실 근면성실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른 곳에서 이유를 찾는 저에게 따끔한 말을 듣게 하고 싶었습니다. 박강섭 배우님이 제 의도를 정말 잘 알아차리고 연기해 준 것 같아요.
관객 5: 저는 행사 대행 용역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웃음) 정말 현실성 있게 만들어 주신 것 같아요. 영화의 디테일에 대해 질문해 보고 싶습니다. 축제의 모습을 보니 전체 예산이 약 6천만 원 정도로 보이는데, 대체 어떻게 가수 섭외비로 2천만 원을 보냈을까. (일동 웃음) 감독님이 생각하셨던 축제의 전체 예산은 얼마정도였는지 궁금합니다.
김홍기: 그런 부분이 제가 디테일이 없다는 거고요. (웃음) 그런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속절없이 당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시즌 2를 찍게 된다면, 조금 더 면밀하게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관객 5: 그런데 그런 게 없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인 것 같아요. 또 하나의 디테일을 여쭤보고 싶은데, 은채가 회사 로고를 가지고 명찰을 만드는데 로고의 해상도가 깨져있어요. 너무 웃겼는데, 그 모습 의도하셨던거죠?
김홍기: 맞아요. 관련된 장면이 있었어요. 래오가 그 모습을 보며 홈페이지에 CI가 올라가 있는데 이게 뭐냐고 타박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런데 편집 과정에서 생략되었는데요. 찾아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관객 6: 축제를 지켜보는 두 명의 캐릭터가 궁금했어요. 이분들은 정말 뭐하는 분들인가요?
김홍기: 그것도 수수께끼로 남겨두고 싶어요.
오세연: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해요.
김홍기: 오늘 GV 너무 재밌었어요. 독립 영화 GV 중에 탑 3에 들지 않을까요.
오세연: 〈성덕〉 이후로 이렇게 재밌는 GV는 처음이네요. (일동 웃음) 아무튼 전부 관객분들 덕분이고요. 마지막으로 인사와 소감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김홍기: 오랜 시간 자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희 영화 상황이 썩 좋지 않습니다. 큰 영화들이 개봉해서 상영관이 많이 줄었어요. 이 영화를 이렇게 보내고 싶지 않거든요. 주변에 많은 홍보 부탁드립니다. 극장을 찾아주시는 관객 한 분 한 분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관객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언제나 행복과 행운이 가득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Community > 관객기자단 [인디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디즈 Review] 〈206: 사라지지 않는〉: 발굴, 제대로 잠들 수 있도록 (0) | 2023.07.06 |
---|---|
[인디즈] 〈드림팰리스〉인디토크 기록: 이기적인 여자의 뒷모습 (0) | 2023.06.30 |
[인디즈] 인디돌잔치〈오마주〉인디토크 기록: 연기로 흩어져야 했던 그림자를 찾아 나서며 (0) | 2023.06.27 |
[인디즈 Review] 〈익스트림 페스티벌〉: 가까이 보아야 사랑스러운 K-축제, etc… (0) | 2023.06.27 |
[인디즈]〈말이야 바른 말이지〉 인디토크 기록: 바른 말이 바른 행동이 될 수 없다면 (0) | 2023.06.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