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 사라지지 않는〉 리뷰: 발굴, 제대로 잠들 수 있도록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이빈 님의 글입니다.
적막 속 땅을 향해 고개를 조아린 듯 보이는 사람들의 손에는 낯설지 않은 도구들이 들려 있다. 플라스틱 쓰레받기와 호미 그리고 먼지털이 붓. 별다른 말을 주고받지 않던 사람들은 흙을 옮겨 담고 나뭇가지와 뼈를 분간하다 이내 입을 연다. 그게 아니지, 봐. 나뭇가지잖아. 이건 고무신이 아니라 여자 구두 같은데. 아주 짧은 순간에 과거의 흔적은 현재를 살고 있는 이들의 입안으로 접속해 사실이 된다.
과거를 길어올려 자명한 사실로 두어야 하는 이유는 민간인 학살 사건은 왜곡의 역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206: 사라지지 않는〉은 민간인 희생자의 유해 발굴을 진행하고 있는 공동조사단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기억과 호명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유족들은 억울하고도 터무니 없는 죽음 앞에 침묵한 채, 당신만의 방식으로 가족을 기억해 왔다. 낙엽이 잔뜩 깔린 뒷산의 바위에 앉은 유족은 그곳에서 아버지의 유해를 찾지 못했지만 ‘아버지의 봉분이 가장 넓다’ 말하며 위안 삼는다.
유해를 발굴하는 일은 말하자면 ‘제대로 잠들 수 있도록’ 해 주는 일이다. 기념과 의례가 동반되지 못한 죽음, 행방불명으로 남아 있는 죽음은 실종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아직 남아 있는 사랑니를 제 것 가져가셔야 한다며 뼈에 다시 끼워 주고, 이의 크기를 재어 보며 나이를 유추한다. 젊은 분이 금연을 안 하셔서 충치가 생기셨다며 치과에 온 것마냥 말을 건네기도 한다. 자기 것을 찾아 제자리로 돌아온 유해들을 모셔 두고 공동조사단은 ‘제대로’ 잠드실 수 있도록 제사를 지낸다.
현장에서 발굴되는 것은 뼈뿐만이 아니다. 옷가지, 신발, 라이터, 장신구, 탄환. 라이터에는 ‘혁규’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고, 고무신 밑에도 이름이 새겨져 있다. 학살은 이름을 지우고, 얼굴을 지운다. 있었던 사람을 감쪽같이 없었던 사람으로 만들어 놓는다. 그러나 새겨진 채 오랜 시간 버텨온 이름은 없었던 것이 되지 않았다. 발굴 현장에서 농담처럼 삼돌이 가족이라며 이름을 붙여 준 자원활동가는 ‘이름을 붙여야 기억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름을 남겨 놓고, 또 붙여 준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그 이름들을 불러 주는 일이다.
유해를 대하는 공동조사단의 모습은 숭고하고 결연하기보다 우리 생활에 가까워 그 순간에만큼은 살아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기억하는 자와 기억되는 자는 현장에서 교차되고 섞인다. ‘지나간 일’로 못 박아 두었던 일은 누군가 지나쳤을 수는 있겠지만 지나간 일이 되지 못한 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유해 발굴을 위해 흙을 걷어내는 것은 마치 시간을 걷어내는 일 같다. 시간을 걷어내어 금연 왜 하지 않으셨냐고, 마지막 순간에는 만세를 하고 계셨더라고 입을 모으고 나면 빼곡한 나무들 사이로 볕이 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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