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로 흩어져야 했던 그림자를 찾아 나서며
인디돌잔치 〈오마주〉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3. 5. 30(화) 19시 상영 후
참석 신수원 감독
진행 이다혜 기자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채운 님의 기록입니다.
여기, 누구보다 담배를 맛있게 피우는 영화감독이 있다. 세 편의 장편 영화를 연출한 베테랑이자 당시 20만 관객을 동원한 흥행 감독이었던 그는 이내 역사에서 자취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대한민국의 두 번째 여성 영화감독이다. 〈오마주〉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담배 연기처럼 흩어져야 했던 그를 찾아 나선다. 지금의 여성 감독들은 옛날로부터 얼마나 멀어졌을지를 가늠하며 엔딩 크레딧을 바라보았다.
이다혜 기자(이하 이다혜): 안녕하세요. 영화 관련해서 궁금했던 점이나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 분들은 편하게 말씀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감독님이 띠를 두르고 계시는데요. (웃음)
신수원 감독(이하 신수원): 미스코리아 된 기분입니다. (웃음) 작년 5월 31일인가에 개봉을 했거든요. 오늘이 딱 개봉 1주년이더라고요. 그런데 인디돌잔치가 인디스페이스의 돌잔치에 당선이 되어서 너무 기쁘고요(웃음). 제가 원래는 몇 달 전에 영상자료원에서 GV를 하면서 마지막 GV가 될 것 같다고 말씀드렸거든요. 그런데 오늘 돌잔치인데 안 올 수는 없잖아요. 아무쪼록 늦은 시간인데도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다혜: 마지막이라는 것은 없다. (다 같이 웃음) 지금 보신 영화도 그런 내용이죠. 끝나는 것도 없고 마지막이라는 것도 없고 계속 이어진다라고 하는 것이 어떤 뜻인가에 대해서 계속 생각해 보게 만드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2011년도에 〈여자만세〉라는 단편을 통해 1950년대에서 60년대 여성 감독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되었는데요, 그때만 해도 홍은원 감독의 영화가 남아 있는 것도 없고 영화 관계자들도 전혀 없다고 알려져 있었단 말이에요. 영화 관계자들도 전혀 없다고 알려져 있었단 말이에요. 그러다가 2015년도 개인 소장 필름으로 영화에서도 잠깐 언급이 되는 〈여판사〉를 찾게 되는데요. 이때의 얘기에 대해 잠깐 해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신수원: 제가 2011년에 박남옥 감독님의 〈미망인〉하고 홍은원 감독님 작품들을 다큐멘터리에 넣으려고 했어요. 〈미망인〉은 작품이 있었는데 홍은원 감독님은 세 편이나 장편을 연출하셨는데도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판사〉가 최초의 장편 영화고 그 당시에 연극예술 극장에서 상영을 하니 20만 명이라는 관객이 관람했다고 해요. 지금으로 치면 몇백만의 숫자인 것일 텐데요. 다만 필름이 남아 있지 않아서 되게 안타까웠는데 2015년에 한국영상자료원이 복원작업을 했습니다. 2015년 영화 상영 쪽 관련 일을 하시는 분의 아드님이 집에서 필름을 무더기로 발견해서 영자원에 기증을 했고, 그 안에 〈여판사〉가 있었는데, 사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고요. 1/3이 현재에도 없습니다. 없는 상태로 발견이 되었고요. 실제로 제가 〈여판사〉를 처음 접했을 때는 시나리오와 비교를 했을 때 정말 많이 누락되어 있더라고요. 현재까지도 그런 상태입니다.
이다혜: 지금 말씀해 주신 것처럼 〈여판사〉가 2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고 홍은원 감독님께서 3편의 장편을 연출하셨단 말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통해서 보게 되는 ‘홍재원'이라는 감독의 ‘영화 만드는 삶'이라는 것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거나 자신의 커리어에 만족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굉장히 쓸쓸한 느낌이 묻어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감독님께서도 영화 만드시면서 여러 가지 자료를 찾아보셨을 텐데 ‘왜 이 커리어는 계속 이어지기 어려웠을까?’ 혹은 ‘왜 영화를 세 편밖에 찍지 못했을까?’라는 점에 대해서 감독님께서도 생각하신 지점이 있을 것 같아요.
신수원: 저도 사실은 홍감독님을 뵌 적이 없기 때문에, 영화에 등장하는 홍감독님도 제 유추와 상상으로 빈 공간을 채운 부분들이 있는데요. 저도 미스터리였던 것이, 우리가 생각했을 때 20만 명의 관객이 동원했다면, 상업적으로 성공했다면 그 뒤 작업들을 더 쉽게 이어갈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러지를 못하셨어요. 그래서 그 뒤 작품들 모두 굉장히 고생하시면서 찍으셨다고 들었어요. 따님을 통해서 들은 것과 제가 편집 기사님과 다른 자료들을 통해 접한 정보들도 있고요. 또 고인이 써둔 일기들을 책으로 엮어 따님께서 가지고 계셨어요. 그런데 거기에 아무래도 자기가 여성이기 때문에 느끼는 불합리함, 그것들에 대한 고충들이 있었어요. 과거엔 더 심했겠죠? 편집 기사님이 말씀하신 것들 중에, ‘여자가 아침에 가면 재수 없다’고 하잖아요? 다큐멘터리에도 나오지만, 박남옥 감독님도 아침에 녹음실 가면 푸대접을 받았다고 하시거든요. 아무래도 그런 것들이 지속적으로 좋은 영화를 만들지 못한 것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다혜: 제가 처음 사회생활 시작할 때만 해도 아침에 택시 탈 때, 첫 손님으로 안경 쓴 여자 손님 태우면 재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제가 구한말 사람도 아닌데 말이죠.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영화 속에서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라는 물음에 ‘예전보다는요.’라고 이어지는 대목이 많은 것들을 함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이 영화 만드시면서 앞세대 여성 영화인들에 대해 생각을 많이 생각하셨을 텐데, 사실 영화뿐만 아니라 관련 자료도 없단 말이에요. 영화가 물리적인 매체로서 그 자체로 기록적이라는 특징이 있고 언론이나 책으로 엮이며 역사로 남게 될 텐데요. 그런데 이런 것들이 없었기에 선배 여성 영화인들의 기록을 찾는 것이 이렇게나 어려운 것인가에 대해 놀라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신수원: 다큐 찍을 때 느꼈지만, 저 스스로도 충격적이었던 것이 2017년에 박남옥 감독님과 홍은원 감독님의 존재를 처음 알았어요. 그전에 임권택 감독님이나 김기영 감독님의 작품은 접할 수 있었고 좋아하는 작품들도 있는데, ‘그 시대엔 남자 감독님들만 계셨나 보다’ 생각했었거든요. 이런 점이 충격이었기에 박남옥 감독님이나 홍은원 감독님에 대해 남겨 봐야겠다 생각을 했었어요. 단순히 짧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긴 작품을 만들어 봐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제가 힘이 들 때 문득 생각이 나더라고요. 제가 뵈었던 편집 기사님이 제게 어머니 같은 느낌이었는데, 며칠 동안 그분과 함께 지내고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많은 의지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분들께 모종의 동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오히려 편집 기사님의 말씀 중간중간에 어떤 기개 같은 것이 보였어요. 제가 범접하지 못하는 카리스마가 느껴졌습니다. ‘내가 할머니를 만난 게 아니라 여장부를 만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요. 영화 만들 때 힘든 순간마다 편집 기사님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다혜: 영화 안에서 그런 점들이 담겨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가령 바닷가에 있는 편집 기사님을 찾아가는 장면이 좋았거든요. 편집 기사님이 잊어버리는 단어 중에 하나가 ‘영화’였잖아요. 사실 오래 영화 일을 해온 사람이 영화라는 단어를 잊는 게 상징적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이후에 필름 감는 장면에서는 또 자연스럽고요. 이주실 배우님의 연기가 훌륭한 것과 더불어서 자신의 몸에 배어 있는 과거로 돌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지금 감독님께서 말씀하신 부분도 잘 표현되었던 것 같아요. 특히 저는 〈여판사〉를 보면서 이 이야기가 지금 약간만 각색해서 내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부분에서는 요즘 작품들보다 더욱 공격적인 부분도 엿보이고요.
신수원: 제가 〈미망인〉도 함께 봤는데 이 작품은 16mm로 찍었고 〈여판사〉는 넓은 화면, 와이드 앵글로 찍었는데, 이걸 보면서 ‘아, 이분이 10년 동안 스크립터와 조감독 생활을 하신 걸 절대 무시 못 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카메라 촬영 등이 너무나 유려해서 정말 준비된 감독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분을 아무도 데뷔를 안 시키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인물들의 관계가 옛 영화의 경우엔 선과 악이 분명하게 구별되는데 이 영화는 그렇지를 않았어요. 인물들을 다루는 방식이 굉장히 세련되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다혜: 말씀하신 것처럼 인물들이 굉장히 입체적이란 말이죠. 평면적으로만 강조되어서 그 역할로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인물 하나하나가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마주〉를 보면 영화를 복원한다는 것, 잊힌 영화의 역사를 되살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되새겨지는 것 같아요. 〈오마주〉는 이것들을 ‘부활'시킨다는 느낌을 받았고 이야기에서 빠진 부분들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를, 홍은원 감독님의 입장에서 어떻게 채울 것인가에 대해 고심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신수원: 우선 제가 홍감독님을 유령으로 만들었잖아요. 그런데 자칫 잘못하다가 이것이 소위 말하는 ‘짜치는' 작업이 될까 봐 염려스러웠어요. (다 같이 웃음) 그런데 이것을 점점 시나리오에서 버리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제 그림자를 유심히 관찰했어요. (웃음)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를 서브플롯으로 엮으면서 리얼한 이야기를 넘나드는 것들이 작업 중에 흥미로웠고요. 그러다 보니까 현장에서 떠오르는 이야기들도 많았어요. 다행히도 이 영화가 해외에 상영되면서 홍감독님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어요. 어떤 영화제는 박남옥 감독님의 영화를 상영하고 또 어떤 영화제는 〈오마주〉와 같이 홍감독님의 영화를 같이 상영하는 곳도 있었어요. 그리고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한국에 이런 여성 감독들이 있다는 점에 대해 많이들 흥미로워 하시더라고요. 제가 극중 이름을 ‘홍재원'으로 바꿨잖아요. 누가 될까 걱정을 했는데 〈여판사〉도 다시 상영을 하는 등의 좋은 소식이 들려서 제가 조금은 빚을 덜어내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웃음)
이다혜: 혹시 해외 영화제에서 받으신 질문들 중 기억에 남는 게 있으실까요?
신수원: 사실 한국과 반응이 비슷한데요. 커피에 계란 넣는 것을 신기해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한테도 먹어봤냐 물어보시는데 ‘나도 안 먹어봤다. 먹어봐라.’ 하고 권유하곤 했는데 (웃음) 그런데 실제로 기록을 보면 정말로 다방에서 커피에 달걀을 넣어 먹었다 하더라고요. 일본에서 개봉했을 때 그 반응을 번역해 주잖아요. 그래서 SNS를 뒤져봤더니 실제로 그렇게 한 사람이 있더라고요. 자기가 해 먹은 걸 사진으로 올렸더라고요. 아무 맛이 없다고. (웃음) 그게 재미있는 반응이었어요. 또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해외에서도 한국처럼 여성차별에 대한 이야기가 존재하니까 그 부분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고요. 〈옆집 여자〉에 관한 스토리가 왜 필요했는지에 대한 질문도 많이 받았고 모자에 필름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엄청나게 놀라더라고요.
이다혜: 영화 보면서 제일 놀라웠던 부분이 그 점이었는데요. 실제로 그게 물자가 귀하기에 그런 것이잖아요. 한 번만 쓰고 버리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그 쓸모를 찾아야 하는 것도 필름들이 오고 갔던 부분들을 설명해 주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주인공 ‘지완' 역으로 이정은 배우를 캐스팅 한 부분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사실 이 ‘지완'이라는 역할이 감독님을 직접적으로 연상시키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다 같이 웃음) 누구를 캐스팅할 것인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신수원: 실제로 처음으로 건넨 배우가 정은 씨였고요. 워낙 〈미성년〉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셔서 팔색조처럼 느껴졌고, 제가 원래 드라마를 잘 안 보는데 나오시는 드라마를 다 찾아봤고요. 또 기생충에서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셨는데, 신기하게도 본래 본인의 목소리가 아닌 가성을 사용해서 연기하는 것이 힘들 텐데도 잘 하셨어서 신뢰가 많이 갔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망설임 없이 시나리오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저와 비슷하게 된 것은 제가 의도한 것이 아닙니다. (웃음) 의상 감독님과 분장 실장님의 음모에 제가 휘말리지 않았나 생각이 들고요. 그러다 보니 제가 가지고 있는 이 안경을 빌려 드렸어요. 저는 눈이 없이 살았습니다. 다른 안경을 쓰기도 하고. (웃음) 제 옷도 빌려 드렸는데, 저 갈색 자켓이 제 옷이에요. 맞으시더라고요. 잘 어울린다고 부추겨서 저는 외투도 없이 지냈는데, 그 외투는 영상자료원에 기증했습니다. 그래서 영원히 제 손을 떠났습니다. 깜짝 놀랐던 것은 첫날 촬영을 하고 모니터를 보는데 저와 정말 비슷한 사람이 안에 있더라고요. (웃음) 저의 현장 스태프분이 정은 씨한테 감독님이라고 부른 적이 있어요. 정신없을 때였는데, 다들 웃고 그랬습니다.
이다혜: 사실 이정은 배우님에 대한 연기는 말할 것도 없이 너무나 훌륭한데요. 말씀하셨던 것처럼 〈미성년〉이나 〈기생충〉에서처럼 연기하실 때마다 목소리가 달라지는 게 신기했거든요. 목소리가 하이톤이 되면서 가성이 되듯 말씀을 하시는데, 장르적인 색채와 딱 결합을 하면서 인상적으로 느껴지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을 해보면 지금 여기에서 하는 ‘지완' 역할을 보여줄 때에 배우의 연기라고 하는 것은 정반대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러니까 연기를 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 점점 감독님과 흡사해지는 것 같아서요. 연기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을지 궁금합니다.
신수원: 우선 일상적인 톤이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고요. 해효 선배님과 탕준상 배우의 연기도 마찬가지였어요. 정은 씨가 그간 해온 코믹한 연기가 과장되어선 안되기에 찍어나가면서, 모니터 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워낙 베테랑 배우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해주셨고요. 30년 만에 첫 주연이다 보니까 긴장도 많이 하셨을 것 같고 저희 영화가 저예산이다 보니까 여유 있는 현장이 아니었어요. 더구나 코로나 때문에 밥을 같이 먹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래서 산책할 때나 오가면서 ‘오늘 어땠냐.’ 하는 이야기를 많이 나눴던 것 같아요.
이다혜: 신기하게도 지금 감독님 말씀하시는 것들을 들으면 영화 속에서 지원이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해요. 말투가 너무 비슷해요. 이정은 배우님이 감독님을 열심히 관찰하셨나 봐요. (웃음)
신수원: (웃으며) 저도 안 물어봤는데 관찰한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한 번 물어보겠습니다.
이다혜: 영화의 전체적인 톤을 어떻게 하실지에 대해 고심을 하지 않으셨을까 싶은데요. 예를 들어서 이게 잊혀진 영화감독의 이야기를 발굴하는 내용이잖아요. 이것을 비장한 톤으로 만들 수도 있고 고발하는 톤으로 만들 수도 있고 슬픈 톤으로 만들 수도 있을 텐데, 사실 이 영화를 보면 경쾌한 분위기가 실려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런 것들을 유념하셨는지 궁금했습니다. 영화 만드시면서 어떤 식으로 만들면 좋을지에 대해서 고민하셨던 것들에 대해서요.
신수원: 사실 이 영화는 저의 전작 〈젊은이의 양지〉라든지 〈마돈나〉나 〈명왕성〉처럼 어두운 톤이라기 보다 가장 첫 번째 장편인 〈레인보우〉에 가까운 편이었어요. 〈레인보우〉 자체가 일상적인 톤으로부터 출발을 했기 때문에 이 영화도 소소하게 우리 일상들 속의 슬픔과 기쁨이 잘 녹아들어 가길 바랐어요. 다만, 정은 씨와 일부러 웃기려 하지는 말자고 이야기 하기도 했어요. 자연스럽게 웃기는 것이 아니라 괜히 배가하지는 말자. 왜냐하면 자칫 잘못해서 밸런스가 깨지게 되면 지완이가 극장 안에서 필름을 발견했을 때 지완이 주는 뭉클함 등, 감정선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이다혜: 영화 속에 ‘지완’이라고 하는 인물이 보여주는 행동들을 보면 많이 걷고, 이동한다는 점이 특이했어요. 영화감독이라기보다 역사학자나 기자처럼 굉장히 활동적으로 보이고 그래서 로드무비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로드무비라는 장르를 떠올리면 등장인물이 어디론가 출발해서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란 말이죠. 아예 떠나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돌아오는 경우가 많은데요. 출발했던 장소로 돌아오지만 떠나기 전과는 다른 자신이 되어 돌아옵니다. 그래서 이런 지점도 고려하셨는지 궁금했어요. 왜냐하면 워낙 활동 반경이 넓은 이야기이다 보니까요. 감독님께서 말씀 하셨 듯 영화 예산 자체가 넉넉지 않은데 로케이션 자체를 많이 가져가면서 촬영을 하신 이유가 궁금했어요.
신수원: 어쨌든 필름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로드무비가 될 수밖에 없고요. 그리고 지완이가 많이 걷도록 했습니다. 왜냐하면 초반의 지완이 정체되어 있는 인물이잖아요. 아무것도 못한 채 꼼짝없이 있는 상황에 걸려있는데, 필름을 찾겠다는 작은 욕망 때문에 걷기 시작하거든요. 이때 관객들도 지완이의 등짝을 보면서 함께 걷기를 바랐고요. 촬영 감독님이 조금 힘드셨습니다. 허리도 안 좋으신데, 계속 쫓아가느라. (웃음) 로케이션 같은 경우, 당시 코로나 단계가 격상되는 바람에 요양원, 병원, 수영장 등 모두 허가가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갑자기 안된다는 연락을 받아서 난리가 났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원주아카데미 극장, 사무실 같은 공간들을 먼저 촬영하고 단계가 완화되면서 미뤄 둔 촬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헌팅 장소는 원주아카데미 극장이었습니다. 지금 안타깝게도 철거 결정이 나 있는데요. 이 극장의 공간 자체가 주는 느낌이 뭐랄까요, 꿈을 꾸게 하는 느낌이었어요. 문 열고 그곳을 들어선 순간, 꼭 여기서 해야겠다는 다짐이 섰어요. 저희 예산에 원주로 가서 지방 촬영을 하는 게 무리이긴 했으나 방법이 없었습니다. 너무나 좋은 공간이었기 때문에. 그다음 중요한 게 편집 기사의 집이었습니다. 그 곳도 외딴 들판에 집이 덜렁 하나 있잖아요. 그 그림이 너무 좋았어요. 헤어질 때와 처음 만났을 때의 장면을 원샷으로 담았을 때의 미장센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어요. 너무 좋은 공간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무리해서라도 갔습니다. 다들 편집 기사님 공간 촬영할 때 행복해했어요. 해 떨어지면 못 찍는 곳이거든요. 그래서 저녁에 필름 돌리는 장면만 찍고 편하게 작업했던 곳이었습니다.
이다혜: 원주아카데미 극장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까 하는데요. 어쨌든 철거 결정이 나고 영화에서 보는 장면이 기록에 남는 순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극장이 중요한 공간인데, 그게 아카데미 극장이어야 했을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이를테면 오래된 극장이 주는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거대한 홀에 층이 나뉘어 있고 스크린도 커다랗고 단차가 크지 않아서 앞에서 봤을 때는 넓게 펼쳐져 있는 느낌이 있는데요. 원주 극장을 보시고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드셨을지 궁금합니다.
신수원: 사실 오래된 극장 중엔 광주극장도 있고 애관극장도 있는데 그 공간들은 사실 상영 중이잖아요. 실제로 촬영이 쉽지가 않았고 그 내부도 리모델링 중이었어요. 반면 원주아카데미극장은 문을 닫은 상태였어요. 과거에 오래된 극장의 허름한 원형이 유지된 상태였어요. 또 원주아카데미극장을 살리고자 하는 모임도 있어서 그쪽 국장님께서 도움을 주셔서 극장 주인분께 허락을 받아서 촬영할 수 있었어요. 가장 좋았던 점은 엔딩에 나오는 장면이 CG가 아닙니다. 극장 문을 열었을 때 아주 강한 햇빛이 유리 문을 통해 스크린 사이에 맺히더라고요. 그걸 보고서 ‘이거야말로 영화다.’라는 생각을 했었고 꼭 엔딩 장면으로 써야겠다 느꼈어요. 그건 CG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고 빛과 공간이 주는 선물이거든요. 대표님을 설득하고, 엔딩 장면 찍을 때엔 저희 스태프들이 출연을 했습니다. 또 흐린 날에도 찍을 수가 없어서 맑은 날 찍었습니다. 지금 철거되는 게 너무 안타까운데요, 있으면 복원을 할 수 있는데 아예 철거하면 복원이 불가능하잖아요.
이다혜: 해외 영화제를 가보면 옛날 건물들을 지금도 많이 쓰잖아요. 칸 영화제도 그렇고요. 한국은 멀티플렉스 극장을 쓰고 옛날 극장 활용 자체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데다 백화점과 함께 있는 멀티플렉스 극장이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형태의 극장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옛날에 영화를 상영하던 환경 자체가 낡은 것으로 치부되는 것 같아서 정말 안타깝습니다. 영화 속에서 편집 기사님이 끝까지 살아남으라는 이야기하잖아요. 저는 편집 기사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쩌면 감독님이 스스로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영화 보시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그 말들이 또 감독님께 와닿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는데 어떠셨나요?
신수원: 편집을 오래 했는데요. 우선 끝까지 살아남으라는 이야기는 편집 기사님을 전에 뵈러 갔을 때 기사님께서 비슷한 이야기를 해 주신 것에서 쓰게 된 대사입니다. 당시 〈레인보우〉 하나만을 장편으로 찍어 놓은 상태였는데요, 그대로는 기억이 안 나네요. 좋은 제작자, 돈 많은 제작자 만나서 좋은 영화 많이 찍으라는 말씀을 해 주셨어요. (웃음) 당시 손을 잡아 주셨을 때의 기억, 온기가 남아있어서 그런 대사를 썼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제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항상 합니다.
이다혜: 〈레인보우〉 이야기가 몇 번 언급이 되어서 한번 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2010년작이에요. 이 작품 경우엔 영화감독 지망생이 나와요. 그 인물의 이름도 ‘지완'인데, 특별히 이 이름을 쓰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신수원: 지완이라는 이름은 ‘뜻 지'에 ‘완성할 완'이라는 의미인데요. 제가 사실 데뷔를 못하던 상태에서 투자 못 받고 엎어지고 엎어지던 상황에서 〈레인보우〉 작품을 쓰면서 지완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사실 이 작품 같은 경우엔 코믹하고 음악도 나오니까 그 영화를 좋아하셨던 분들은 저한테 왜 어두운 영화만 찍냐, 레인보우 같은 영화 좀 찍으라고 말씀하시고 같이 일했던 PD 님도 언젠가 ‘Over the rainbow’ 같은 영화를 만들어 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침 제가 〈오마주〉는 2019년 겨울에 시나리오를 썼는데요, 자연스럽게 지완이라는 이름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저의 분신이기도 하면서 또 다른 캐릭터인데요. 이 캐릭터가 영화 속에서 또 하나의 나로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다혜: 〈레인보우〉 할 때엔 첫 번째 영화를 만들기가 어려웠던 상황이란 말이죠. 그동안 영화가 쌓였고 지완이 평행 우주에 살아가고 있으면서 성장을 했을 거란 말이죠. 그런데 영화라는 게 데뷔하기도 어렵고 데뷔한다고 해서 끝이 나는 것도 아니고 영화를 만들 때마다 똑같은 산을 매번 넘어야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레인보우〉 시절의 지완과 〈오마주〉의 지완이 겪는 어려움이 다를 것 같단 말이죠. 이 지점에선 감독님의 부분이 투영되어 있을 것 같은데요.
신수원: 우선 제가 이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레인보우〉를 보며 ‘내가 참 젊었구나'라고 생각을 했어요. 지금처럼 조명도 잘 못 썼기에 거칠게 만들 수밖에 없었는데요. 여기에서는 지완의 어설픈 모습들이 많이 담겨 있는 반면 〈오마주〉에서의 지완은 홍감독님처럼 영화를 세 편 만든 사람으로 설정을 했어요. 영화를 세 편 만든 사람의 불안감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레인보우〉에서는 아들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루었다면 〈오마주〉에서는 지완의 불안감과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과거의 유령을 쫓아다니는 이야기를 가자고 생각했습니다.
이다혜: 그렇다면 감독님은 실제로 그러한 불안을 느끼셨을 시기가 있을 텐데, 어떻게 해소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신수원: 불안을 해소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불안은 항상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영화가 잘 되더라도 흥행을 해본 적이 없어요. 홍감독님은 20만 명을 동원하셨지만 저는 제가 만든 영화를 다 합쳐도 20만 명이 안 될 거예요. 여섯 편의 장편을 만들었는데도요. 그런데 흥행을 하든 말든 영화제 가서 좋은 평가를 받을 때 보람을 느끼기도 하고 같이 일했던 스태프들, 배우들이 잘 되면 또 거기에서 빚을 조금 갚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면서 만족감도 있어요. 반면 또 이렇게 되지 않을 때 불안감이 드는 것 같아요. 영화를 시작한 순간부터 늘 이렇게 불안감과 함께 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러한 불안감들이 전작들에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것 같아요. 〈오마주〉에서는 지완의 불안감이 옆집 여자의 죽음에 대한 공포감으로부터 시작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다혜: 불안을 잡아내는 방식이 좋았다고 생각했어요.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지완의 입장이 아니더라도 느끼는 불안이 있을 수 있잖아요. 이를테면 지완과 비슷한 나이대로서 느끼는 불안감,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느끼는 불안 등. 이런 지점들을 잡아내는 방식이 섬세한데다 이것을 표현하는 이정은 배우의 연기가 너무 훌륭했던 것 같습니다. 관객에게 혼란을 주지 않으면서 또 무겁지만 않게 전달하는 방식에서 균형감이 느껴졌습니다. 〈오마주〉 만들기로 결정을 하시면서 이 영화가 어떤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감독님께서 생각하신 부분이 있으실 테고, 영화를 만든 후에 편집실에서 보시고 완성하시면서 까지의 통과 과정이 감독님을 변하게 한 부분도 있었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영화 속에서 실컷 담아내기도 하고 결과가 어찌 되든 앞으로 어떻게 해야겠다는 마음에 대해서도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다짐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영화 만들기 전과 후, 감독님이 겪으신 심정적인 변화가 있으실지에 대해 궁금했습니다.
신수원: 우선 〈오마주〉 만들기 전에 제가 굉장히 지쳐있는 상태였어요. 저예산으로 계속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한 피로함, 스탭들을 착취하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생각들도 있었고요. 특히 2018년 TV 단막극을 찍고 얼마 안 되어서 이 촬영이 들어간 거였어요. 그러니까 제가 두 개를 준비하고 있었던 건데요. 그렇다 보니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는지 고민이 들었고 신체적,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있었어요. 여러 가지 피로함들이 있었는데요. 그래서 〈오마주〉를 시작할 때엔 써지는 대로 써지도록 놔버렸어요. 물론 2012년 〈여자만세〉 작업 당시 작성해 놓은 기획안은 있었지만, 시나리오를 작성할 땐 물 흐르듯 써지도록 놔두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레인보우〉를 촬영할 때와는 또 다른 새로운 감각, 제게 없었다고 생각한 감각들이 바늘로 찌른 듯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 느낌이 〈오마주〉할 때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마주〉는 그 작업 과정이 이전 작품들과 공통된 부분들도 있고 다른 부분들도 있었는데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모험이었어요. 끝에 이르러서는 다음 영화는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들었던, 그런 영화입니다.
이다혜: 지금부터는 관객석에서 질문을 받아볼까 하는데요. 혹시 질문 있으신 분 계시면 손 들어주시겠어요?
관객: 저는 영화 속에서 가족 간의 관계성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는데요. 독특하다고도 볼 수 있는 관계성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처음 나오자마자 밥 달라고 하는 것도 그렇고 갑자기 별방을 하더니 각자 생활을 하자고 하는 모습들이 독특해 보였는데, 그런 요소를 넣으신 이유가 있으실까요?
신수원: 처음에는 지완의 가족을 등장시키지 않고 갈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홍감독님 자체도 딸이 있었고.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있어서 자유롭지 못했을 거란 말이죠. 그런데 제가 플래쉬백으로 그 과거로 들어갈 순 없으니 지완이 일상에서 가족들과 부딪히는 상황을 통해 반사적으로 홍감독에 대해 공감하는 식으로 가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먹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요. (웃음) 집에 가면 먹는 걸로 싸웁니다. 오늘은 누가 밥을, 설거지를 할지부터 해서요. 그게 사실 제가 살아온 일상이기도 한데, 저희 집의 풍경하고는 다릅니다. 사실 옛날에는 제가 더 일을 많이 했는데, 요즘은 상우가 더 많이 합니다. 그래서 조금 억울해하더라고요. (웃음)
이다혜: 왜냐하면 영화 본 사람들은 영화가 그대로.
신수원: 완전히 저의 가족으로. (웃음) 영화에서 아들 캐릭터가 문과로 나오는 것도 실제와는 다르고요. 리터치를 많이 했어요. 일반적으로 워킹맘들이 가지는 일상들이 영화 안에 많이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구성했습니다.
이다혜: 영화감독이 남자일 경우엔 살림하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데, 여자 감독일 경우엔 빨래하고 설거지하는 이야기가 안 들어가기 힘든 것 같아요. 그 점이 되게 중요한 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음 질문 받아볼게요.
관객: 영화에서 아들이 지완에게 영화 찍지 말라고 하는데, 실제로 감독님 가까우신 분들 중에 그러시는 분이 계시는지 궁금하고요. 원주극장의 고양이는 캐스팅한 건가요? (다 같이 웃음)
신수원: 우선 첫 번째 질문에 답을 해 보자면, 제가 아무래도 일반적으로 집안일을 많이 돌보는 가정주부는 아니다 보니까 불편함이 있긴 한데 직접적으로 영화 하지 말란 말을 한 적은 없고요. 대신 영화로 돈 좀 벌어오라는 말은 합니다. (웃음) 상업영화해라, 돈 되는 영화를 찍으라는 이야기는 하는데요. 아무래도 계속 독립영화 찍고 있는 걸 지켜보는 게 조금 그런가 봐요. 그래도 영화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안 하고, 실제 저희 가족과는 다른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제 영화에는 항상 동물이 나옵니다. 〈유리정원〉때부터 함께 일한 동물들 데려오는 업체가 있는데, 그분께서 인천에서 원주까지 오셨어요. 고양이들 중에는 그분께서 키우시는 고양이도 있고 데려오신 고양이도 있는데요. 그런데 그 고양이들을 극장에 풀었더니 의자에 숨어서 찾느라 힘들었습니다. 그나마 말 제일 잘 듣는 아이가 영사실에도 있는 등 촬영에 수월했던 고양이도 있고요. 아무튼 그 장면이 시간이 많이 걸렸고 다음 날 또 다른 곳에서 촬영이 있어서 빨리 찍어야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원주극장에 고양이들이 원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극장 주변에 쥐도 있는데 며칠 지내다 보니까 쥐도 귀여운 점이 있더라고요. (웃음)
이다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작품 중에 〈박하경 여행기〉라고 있는데, 여러 에피소드 중에서 하나가 예술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의 이야기였어요. 이것과 관련하여 어떤 분이 ‘영화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질문을 하니까 이종필 감독님이 이에 대해 ‘뭐라고 말하긴 어렵고,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 것과 영화를 만들고 싶은 것은 다른 이야기인 것 같다.’라는 말씀을 해주신 게 잠깐 떠올랐어요. 주변에서 모든 사람이 순탄하게 응원만 하는 경우는 어떤 집에도 없을 것 같고 반대만 하는 경우도 없을 것 같고 그 사이에서 배곯지 않고 해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음 질문 받아볼게요.
관객: 영화를 보면서 흡연에 대한 생각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흡연하는 사람들은 여성들인데, 홍감독님이 활동하셨을 당시에 여성 흡연이 검열의 대상이 되면서 필름이 잘려나간 것이 지완이 여정을 떠나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여성이 흡연하는 것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옛날부터 지금까지 집요하게 이어져오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흡연자는 홍감독과 홍감독의 그림자로만 제시가 되고 지완이 모텔에서 흡연하는 장면은 직접 나오지 않은 채 재떨이랑 꽁초만 등장을 하더라고요. 지완과 옥희가 같이 흡연을 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로 안 나오고요. 지완이 직접 흡연하는 장면을 제시하지 않은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신수원: 우선 말씀드려야 할 것은, 흡연으로 인해 필름이 잘려나갔다는 것은 제가 영화 속에 허구로 집어넣은 것이고요. 당시엔 정치적 이유 등 여러 사안으로 검열이 있었어요. 옛날 영화들을 보면 여성들이 흡연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옵니다. 홍감독님이 흡연하는 장면을 넣은 이유는 홍감독님께서 실제로 담배를 굉장히 사랑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리고 지완이 흡연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홍감독이 밤에 담배를 피운 다방 테라스에서 지완이 흡연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나중에 편집하는 과정에서 그 장면이 애매해 보여서 잘랐습니다.
관객: 지완이 영화를 복원하면서 부활하는 것과 함께 영화 첫 장면과 끝 장면에서 수영하는 데에도 변화가 엿보이는데요, 지완이 특별히 수영을 하는 이유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신수원: 사실 수영이 초보자들에게 힘든 스포츠 중인 것 같아요. 특히 물에 대한 저항이 엄청난데, 그 저항을 뚫고 가는 것 자체가 큰일이기 때문에 지완이 수영을 하는 장면을 넣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지완이 접영 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데, 제가 실제로 수영을 배우며 접영 하는 사람들을 멋있어하던 모습이 반영된 것이에요. 처음에는 지완이 접영까지 하게 되는 장면을 넣었다가 뺐습니다. 엄청나게 실력이 나아지지 않고 발만 툭 치는 정도로만 발전이 있게 묘사를 했고요. 정은 씨가 사실 수영을 못하셔서 (웃음) 힘들어하셨어요.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연습을 하셨을 텐데 수영장을 갈 수가 없잖아요. 마지막에 수영을 하시는 분은 대역 배우를 썼습니다.
이다혜: 감독님 다음 작품 계획하시는 게 있다면 어떤 게 있을지 이야기 여쭙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신수원: 다음 작품에 대한 생각을 늘 하는데요, 원래는 2년마다 한 번씩 찍었는데 지금은 벌써 3년째 되고 있습니다. 예전에 썼던 입양인 스토리가 있어요. 요새 투자 환경이 좋지 않아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는데 어떻게 될진 모르겠는데 그걸 해보고 싶고 그게 안될 수도 있어서요. 오늘 처음 이야기를 드려보네요. 아무튼 요즘 워낙 극장 쪽이나 투자 쪽 상황이 안 좋아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이다혜: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오늘 영화 보신 다음에 질문 많이 해 주셔서 좋았고 저도 오늘 영화 보면서 힘 얻은 부분이 있는데요. 영화에서 45살 정도의 나이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창작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위기감이나 시대적인 고충들을 보면서 이것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속에 있는 불안감들을 살살 긁어서 영화가 나온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환상적인 연출이 주는 위로도 많이 경험한 것 같습니다. 오늘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수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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